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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신자와 도시히코 글, 아베 히로시 그림, 유문조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1

 


우리는 모두 별빛
― 별을 보며
 신자와 도시히코 글
 아베 히로시 그림
 유문조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9.2.3.

 


  두 아이를 잠자리에 누입니다. 불을 끕니다. 두 아이 사이에 눕습니다. 등허리를 펴고 누우니 온몸이 우두둑우두둑 하루 내내 애썼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피어납니다.


  오른쪽에 누운 큰아이가 나를 부릅니다. “노래 불러 줘요.” 그래, 부르마. 노래를 부르면 듣는 너희도 즐겁고 부르는 나도 즐겁지. 노래를 두 가락쯤 부를 무렵, 집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납니다. 무슨 소리일까? “조용히 해 봐.” 10초 남짓 귀를 기울입니다. 아닌가?


  “무슨 일이야?”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 듯했거든.” “그래? 바람이 부는 소리인가 봐.” 큰아이 말대로 바람소리일는지 모르지만, 내 귀에는 틀림없이 이 저녁에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가 가늘게 들린 듯했습니다. 포근한 볕과 바람이 감도는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개구리가 깨어날 때가 되었거든요. 마침 엊그제 비가 촉촉히 내려 논에 물이 고였고 웅덩이도 곳곳에 생겼습니다.


.. 언제나 별은 있었다 ..

 


  다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를 부르다가 끊어집니다.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노래가 끊어진 줄 깨달은 큰아이가 나를 다시 부릅니다. “노래 더 불러 줘요.” “응? 그래, 그래.” 다시 노래를 부릅니다. 겨우 끝까지 마칩니다. “노래 더 불러 줘요.” “알았어.” 새로 다른 노래를 부르다가 두 마디쯤에서 또 스르르 잠듭니다. 큰아이는 나를 다시 깨우고, 나는 다시 노래를 부르다가, 또 끊어지고, 어찌저찌 네 가락쯤 더 부른 뒤 “벼리야, 이제 자꾸 잠이 쏟아져서 못 부르겠다. 자야겠어.” 하고 말합니다. 큰아이는 스스로 노래를 한 가락 부르고는 조용합니다. 다 함께 잠드는 저녁이 됩니다.


.. 하늘의 별을 보며 / 우리들은 자란다 ..

 

 


  밤에 아이들이 깨어나 쉬가 마렵다 하면 쉬를 같이 누입니다. 쉬를 누인 뒤 쉬통을 비우러 마당으로 내려서면 밤하늘이 언제나 별잔치입니다. 구름이 낀 날에도 구름 사이로 비추는 별빛이 곱습니다.


  누군가 우리 식구한테 ‘왜 도시에서 안 살고 시골에서 사나요?’ 하고 물으면, 곧잘 ‘별을 보려고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도시에서도 별을 볼 수 있잖아요?’ 하고 되묻는데, 이때에 ‘시골에서는 별잔치예요.’ 하고 다시 말합니다.


  다른 식구들보다 나 스스로 별을 보고 싶어서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또, 우리 아이들이 별빛을 누리기를 바라며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앞으로 아무 전깃불 없이 깜깜한 보금자리를 꿈꾸면서 우리 땅을 늘리려 합니다. 별을 누릴 수 있기에 시골이고, 별빛과 함께 새근새근 잠들기에 시골이에요. 별과 함께 노래하니 시골이며, 별웃음으로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니 시골입니다.


  신자와 도시히코 님 글에 아베 히로시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별을 보며》(문학동네,2009)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참말 별빛입니다. 참으로 별꿈입니다. 숲에서도 남극에서도 들판에서도 모두 별노래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별이고, 우리 가슴에도 별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별을 보며 자랍니다. 해님도 별이고 달님도 별입니다. 지구도 별이고 우리 몸뚱이도 별입니다. 다 함께 별이 되면서 빛납니다. 다 같이 별빛으로 어우러지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별꾳을 느끼고, 저 먼 곳에서 포근하게 드리우며 찾아오는 별살을 맞아들입니다. 4347.3.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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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을 지었어요 바바파파 BARBAPAPA 5
아네트 티종 글, 탈루스 테일러 그림, 글샘터 옮김 / 빛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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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0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
― 새 집을 지었어요, 바바파파 5
 안네트 티종, 탈루스 테일러 글·그림
 글샘터 옮김
 빛글 펴냄, 2011.4.25.

 


  누구한테나 집이 있습니다. 스스로 장만한 집이든, 남한테서 빌린 집이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집이든, 어버이와 함께 지내는 집이든, 누구한테나 따사로운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보금자리가 되는 집은 넓을 수 있고 좁을 수 있습니다. 시골에 있을 수 있고 도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이웃과 사이좋게 나란히 있을 수 있고, 홀로 조용히 외딴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즐겁게 지내려는 집입니다. 사랑을 나누려는 보금자리입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은 집입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보금자리입니다.


  새벽을 여는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며 일어납니다. 천천히 퍼지는 햇살을 느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일하고 놉니다. 찬찬히 기우는 어스름을 바라보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어둡게 깔린 별빛을 헤아리면서 이부자리에 깃듭니다.


.. 바바 가족은 새 아파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바바 가족은 아파트를 떠나기로 했어요 ..  (17쪽)

 


  우리 집은 우리 사랑이 감도는 곳입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우리 꿈이 태어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집은 우리 노래를 부르는 곳입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우리 이야기를 꽃피우는 자리입니다.


  돈으로 집을 짓지 않습니다. 꿈꾸면서 집을 짓습니다. 재산이나 부동산으로 집을 얻지 않습니다. 즐겁게 노래할 터를 닦고, 기쁘게 춤출 자리를 다집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어른들은 씩씩하게 일해요. 아이들이 먹을 밥을 손수 길러서 마련하고, 어른들은 구슬땀을 흘리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집이란 잠자는 곳이 아닌 살아가는 곳입니다.


.. 바바 가족은 프랑수아와 클로딘과 함께 정원을 꾸미고 있었어요. 그런데 또 집 부수는 기계가 나타났어요 ..  (26쪽)

 

 


  안네트 티종 님과 탈루스 테일러 님이 글과 그림을 함께 엮은 ‘바바파파’ 그림책 가운데 하나인 《새 집을 지었어요》(빛글,2011)를 읽습니다. 바바파파가 처음에 살던 집은 너무 좁아서 새 집을 찾습니다. 처음에는 바바파파 혼자였으니 작은 집으로도 넉넉했지만, 바바마마가 찾아들고 아기바바가 태어나면서 작은 집이 좁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바바파파 식구들이 지낼 만한 마땅한 집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높다란 층집에 깃들어 잘 지내는 듯하지만, 바바파파 식구는 괴롭습니다. 새와 노래할 뜰이나 마당이나 밭도 없으며, 신나게 뒹굴거나 뛰놀 자리가 없는 아파트는 더없이 고단합니다.


  바바파파 식구는 도시를 떠나기로 합니다. 걷고 걷습니다. 한참 걷고 또 걷습니다. 비행기를 타거나 자동차를 달리지 않아요. 천천히 온 식구가 걷고 걸어 조용하고 외진 시골로 갑니다. 새들이 노래하고 꽃이 피어나며 나무가 우거진 옆에 냇물이 흐르는 숲에 집을 짓습니다.


.. 별이 총총, 밤이 되었어요. 바바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답니다 ..  (34쪽)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아갈까요. 우리는 어떤 집에서 살며 어떤 꿈을 키울까요. 우리는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속삭이면서 보금자리를 가꿀까요.


  한국이든 프랑스이든 도시는 커지고 시골은 줄어듭니다. 어느 나라나 도시는 더 커지고 시골은 더 줄어듭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도시에서는 집이 모자라 아우성이고, 시골에서는 사람이 줄어 아우성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 적에 아름다울까요. 우리들은 어떻게 꿈꾸면서 집을 마련하고 이야기꽃을 피울 적에 사랑스러울까요. 4347.3.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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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1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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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9

 


두 다리로 걷는 즐거움
― 버스를 타고
 아라이 료지 글·그림
 김난주 옮김
 보림 펴냄, 2007.6.25.

 


  시골에서 살며 자가용이 없는 집이 드뭅니다. 나이든 할매와 할배가 살아가는 집에는 경운기는 있어도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지만, 젊은 식구가 살아가는 집에는 으레 자가용이나 짐차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시골버스를 타는 젊은이는 거의 없어요. 시골에서 살며 아이를 돌보는 젊은 식구가 아이와 함께 시골버스를 타는 일이란 참말 거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자가용을 굴립니다. 도시에서 살며 자가용을 굴리는 이들은 더러 버스나 전철을 타곤 합니다. 도시에서는 자가용과 버스와 전철 가운데 하나를 퍽 쉽게 고를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찻길도 넓고 차편도 많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5분이나 10분이 걸리곤 하지만, 버스를 한 시간이나 두 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없어요. 더욱이, 밤 늦게까지 버스가 있고 전철이 다녀요.


..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갈 거예요 ..  (2쪽)

 


  시골버스는 한두 시간을 가볍게 기다립니다. 사람이 뜸한 깊은 마을이라면 서너 시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버스가 하루에 한 차례만 지나가는 마을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한 시간에 한 번씩 버스가 다니는 마을은 이럭저럭 손님이 있지만, 두 시간에 한 번 다닌다거나 서너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마을은 손님이 드물어요. 하루에 한 번 버스가 지나가는 마을이라면 손님이 훨씬 드물어요.


  도시에서라면 아마 한 시간쯤 버스를 기다린다든지, 한 시간쯤 두 다리로 걸어서 어딘가를 찾아가는 일이 거의 없지 싶습니다. 한 시간쯤 길을 거니는 도시내기는 얼마나 있을까요. 두 시간쯤 길을 거닐며 이웃한테 찾아가는 도시내기는 몇이나 될까요.


  자전거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달려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도시내기가 있을까요. 동무를 만나거나 이웃과 어울리려고 자전거로 한두 시간을 달리는 도시내기는 얼마쯤 있을까요.


..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이제 밤이에요. 라디오도 잠들었어요. 버스는 안 와요 ..  (14쪽)

 


  길은 자동차가 다니기에 길이 아닙니다. 길은 사람이 다니기에 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한결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모르나, 참말 빨리 달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동차를 얻어서 길을 빨리 지나가면 우리 삶에 더 즐겁거나 좋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다리로 마을을 느끼면서 걸어요. 두 다리로 골목을 느끼면서 걸어요. 두 다리로 들과 숲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을 느끼면서 걸어요. 십 킬로미터쯤이라면 씩씩하게 걸어요. 버스를 십 분 기다리고 십 분쯤 달려 어딘가를 찾아가도 즐거울 테지만, 버스를 안 기다리고 한 시간쯤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도 즐거워요.


  봄에는 봄내음을 맡으면서 걸어요. 여름에는 여름노래를 들으면서 걸어요. 가을에는 가을빛을 누리면서 걸어요. 겨울에는 겨울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어요.


.. 조금 더 기다리다 마음을 바꿨어요. 버스는 안 탈래요 ..  (30쪽)

 


  아라이 료지 님 그림책 《버스를 타고》(보림,2007)를 읽습니다. 너른 사막과 비슷한 곳에서 누군가 버스를 기다립니다. 하루 내내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루 내내 기다려도 버스는 지나가지 않아요. 버스를 기다리는 하루 내내 온갖 사람을 스치듯이 만나고, 밤새 별잔치를 누립니다. 이튿날이 되어 비로소 버스를 만나는데, 버스에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탈 자리가 없습니다. 버스는 스르르 떠납니다. 사막처럼 너른 벌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사람은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다가 씩씩하게 일어서서 두 다리로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거닐면서 노래를 합니다. 들바람을 마시고 들볕을 머금으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마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는 동안 이웃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멧새 노래를 듣고 풀벌레 이야기를 듣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내 몸을 구석구석 새삼스레 느낍니다.


  삼월에는 삼월을 느낍니다. 사월에는 사월을 마주합니다. 오월에는 오월을 헤아립니다. 우리들은 철마다 철을 느끼고 달마다 달을 헤아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숨결입니다. 4347.3.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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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세고! : 수와 양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2
박남일 지음, 문동호 그림 / 길벗어린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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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8

 


시골살이에서 태어난 말입니다
― 재고 세고!, 수와 양
 박남일 글
 문동호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7.8.25.

 


  박남일 님이 쓴 글에 문동호 님이 그림을 붙인 《재고 세고!, 수와 양》(길벗어린이,2007)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을 모둠으로 엮어서 찬찬히 들려주는 책입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르치기보다는 영어와 한자를 지식으로 외우도록 내모는 제도권 학교교육 얼거리를 돌아본다면, 이러한 그림책은 무척 뜻있으며 값있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제대로 못 쓰거나 안 쓰는 하나치(단위)를 잘 묶어서 보여주는 《재고 세고!》라고 봅니다. 길이와 부피와 물건과 나이와 날짜를 세는 낱말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는 어른이 함께 들여다본다면, 어라 이런 말이 있었네, 그동안 잊고 살았구나, 하고 생각할 만하리라 봅니다. 요새는 ‘아름’이나 ‘푼’이라는 낱말조차 들을 일이 드물고, ‘뭇’이나 ‘짐’이나 ‘섬’이나 ‘모숨’ 같은 낱말은 아예 들을 일도 없구나 싶어요.


  ‘열’이나 ‘스물’이라는 낱말도 사람들은 잘 안 씁니다. 한자말로 ‘십’이나 ‘이십’이라 말합니다. ‘하루’나 ‘이틀’ 같은 낱말을 얼마나 쓸까요. ‘일일’이나 ‘이일’이라는 한자말만 쓰지 않나요.


.. 자가 없으면 뼘으로도 길이를 잴 수 있지. 어른 한 뼘은 크고, 아이 한 뼘은 작고. 키가 한 뼘이나 자랐다면 아주 기분 좋은 일이지 ..  (7쪽)


  그런데, 그림책 《재고 세고!》는 큰 틀에서 한국말을 슬기롭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자가 없으면 뼘으로도 길이를 잴 수 있지”라고 말하지만, 예부터 한겨레는 굳이 자를 쓰지 않았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 으레 듣고 쓰곤 했는데, 손뼘으로뿐 아니라, 손가락 마디로 길이를 쟀고, 팔등을 뻗어서 길이를 재곤 했어요. 한 팔을 뻗어서 잰다든지 두 팔을 벌려서 길이를 잽니다. 걸음으로 길이를 재고 다리를 뻗어 길이를 잽니다.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우리들이 언제 ‘자’를 챙기면서 놀겠어요. 맨몸으로 놀아요. 그러니 온몸을 써서 길이를 잽니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길이를 재요.


  다시 말하자면, 어른도 아이도 언제나 맨몸으로 길이를 쟀습니다. 자로 길이를 잰 사람이라면 가겟집 일꾼이라든지 양반집 사람들뿐이었으리라 느껴요. 집을 짓던 옛사람도 자를 쓰지 않았어요.


.. 옛날에는 쌀가게에서 쌀을 한 말씩 사다 먹곤 했지. 한 말씩 열 말이 모이면 두 가마, ‘한 섬’이 되는 거야 ..  (15쪽)


  ‘가마’는 ‘가마니’와 같은 낱말입니다. 이 낱말은 한겨레가 쓰던 낱말이 아닙니다. 1900년대 첫무렵에 일본에서 들어왔습니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던 일본이 쓰던 낱말이 ‘가마니’예요. 그러니, 이 낱말을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가르치려고 다룰 때에는 알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슬픈 발자취가 깃든 낱말이에요.


  열 말이 모이면 두 가마라고 이야기할 까닭이 없습니다. ‘가마’라는 낱말은 일본사람이 쓰는 말이고, 한국사람은 예부터 ‘섬’이라는 낱말을 썼습니다. 아직 곳곳에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찌꺼기 낱말이 있는데, 그림책에서까지 이런 식민지 찌꺼기 낱말을 다루면서 아이들한테 가르쳐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책일수록 더더욱 말뿌리를 슬기롭게 살피고 올바르게 돌아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옛날에는 쌀을 “사다 먹”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누구나 손수 흙을 일구어 나락(벼)을 거두어서, 절구질이나 방아질을 해서 겨를 벗긴 뒤 쌀을 얻어서 먹었습니다.


.. 이제 물건을 세 보자. 재미있게도 물건마다 세는 말이 다 달라 ..  (19쪽)


  물건을 세건 부피를 세건, 모든 낱말은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물고기를 세건 배추나 무를 세건 볏섬을 세건 모두 시골사람이 쓰는 낱말입니다. 물을 길어 동이에 담을 적이든 솥에 불을 지펴 밥을 지을 적이든 언제나 시골사람이 쓰는 낱말입니다.


  물건을 세는 이름은 “재미있게도 다 달라”라고 할 일이 아닙니다. 삶이 늘 다르고, 물건마다 쓰임새가 다른 만큼, 이 자리와 저 자리에서 쓸 적에 다 다르게 말할밖에 없습니다. 쓰임새를 찬찬히 나누고 일머리를 슬기롭게 가르고자 언제나 다 다른 말씨를 빚어서 썼어요.


  논과 밭은 같은 땅이에요. 같은 땅이지만 어떻게 갈아서 쓰느냐에 따라 논이 되고 밭이 되어요. 들과 숲도 같은 땅이에요. 나무가 우거질 적에는 숲이요, 사람들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얻으려고 갈아엎을 적에는 들입니다.


.. 큰 수를 세는 우리말도 있지. 백은 온, 천은 즈믄이야. 온갖 곡식이란 온 가지 곡식, 백 가지 곡식을 말하는 거지. 옛날에 백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백 가지로 모든 것을 나타내기에는 턱도 없지 ..  (31쪽)


  온갖 곡식을 가리키면서 쓴 ‘온’이라는 낱말은 “많다”와 “크다”는 뜻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온통’이라든지 ‘온누리’처럼 써요. “온 나라에 가득하다”라든지 “온 하늘에 넘친다” 같은 자리를 헤아려 보셔요. ‘온’은 그저 숫자 100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림책 《재고 세고!》는 틀림없이 뜻있고 값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백이면 백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니, 이러한 그림책을 어버이와 함께 읽으면서 한국말을 차근차근 배우도록 돕는 좋은 길동무 같은 책으로 삼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뿌리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니 아쉽습니다. 말뿌리와 함께 삶자취를 넓게 돌아보지 못하니 쓸쓸합니다.


  말이 태어난 뿌리를 짚으면서 낱말을 하나하나 다룬다면,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아름다운 삶빛을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말이 쓰인 자리를 헤아리면서 낱말을 차근차근 보듬는다면, 우리 겨레가 이 나라를 이루면서 살아온 발자취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슬기롭게 가꾸는 길에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붙여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이 되지 않아요. 지식과 정보를 더 다루어야 쓸 만한 그림책이 되지 않아요. 말을 말답게 알뜰히 다루고, 삶을 삶답게 슬기롭게 밝힐 적에 아름다운 그림책이 됩니다.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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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숲과 공기 - 우리 모두의 지구 자연과 나 4
몰리 뱅 글.그림, 최순희 옮김 / 마루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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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7

 


지구별을 살리는 세 가지
― 우리 모두의 지구, 물과 숲과 공기
 몰리 뱅 글·그림
 최순희 옮김
 마루벌 펴냄, 2006.10.15.

 


  한겨레는 찻잎을 얼마나 즐겼을까 궁금합니다. 임금님이나 양반을 빼고,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여느 사람들이 찻잎을 얼마나 덖거나 끓여서 마셨을는지 궁금합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굳이 찻물을 마시지 않고 냇물과 우물물과 샘물을 마시지 않았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찻잎을 우려서 마실 적에 몸에 좋다고 하지만, 애써 찻잎까지 마시지 않더라도 풀잎을 알뜰히 먹는 한편, 맑으면서 좋은 냇물과 우물물과 샘물을 마시면서 몸을 살찌우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눈을 녹여서 물을 먹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하늘은 온갖 먼지와 방사능이 날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지난날처럼 빗물을 받아서 쓰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참말 오늘날 하늘은 갖가지 먼지와 매연과 배기가스에다가 방사능까지 골고루 드리우기 때문입니다.


.. 옛날에 풀밭을 빙 돌아 마을이 생겨났어요 ..  (7쪽)

 


  물을 잘 마시기만 해도 몸이 튼튼합니다. 아니, 물을 옳게 잘 마시면 몸이 튼튼합니다. 밥을 잘 먹기만 해도 몸이 튼튼합니다. 아니, 밥을 옳게 잘 먹으면 몸이 튼튼합니다. 바람을 잘 들이켜기만 해도 몸이 튼튼합니다. 아니, 바람을 옳게 잘 들이켜면 몸이 튼튼합니다.


  약이란 따로 없습니다. 약풀이나 약밥이 따로 없습니다. 한방에서건 병원에서건, 약으로 삼는 것은 모두 숲에서 나옵니다. 숲에서 자라는 풀이 여느 밥이 되면서 약 노릇입니다. 숲에서 흐르는 물이 여느 마실거리가 되면서 약 구실입니다.


  환풍기라든지 공기청정기를 쓰는 곳에서 쉬어야 몸이 낫지 않아요. 숲에서 부는 바람을 마실 적에 몸이 나아요. 제아무리 대단한 시설과 설비를 갖춘 병원이라 하더라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있는다고 몸이 낫지 않습니다. 맑은 물을 마시고 좋은 밥을 먹으며 푸른 바람을 마실 적에 몸이 낫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고되다 싶은 일을 하고 풀밥과 샘물만 먹으면서도 다시금 기운을 차린 까닭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몸을 살리는 물과 밥과 바람을 슬기롭게 깨달아, 이 땅에 농약과 비료를 함부로 뿌리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해요. 몸을 살리는 물과 밥과 바람을 올바로 바라보면서, 시골과 도시를 제대로 가꾸도록 힘을 쏟을 수 있어야 해요.


.. 나무를 많이 잘라내고 나면 숲이 점점 줄어들어요. 이것은 숲에도 나무에게도 숲에 사는 생물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  (24∼25쪽)

 


  지구별을 살리는 것은 몸을 살립니다. 몸을 살리는 것은 지구별을 살립니다. 정갈한 물과 좋은 밥과 푸른 바람이 지구별을 살립니다. 정갈한 물과 좋은 밥과 푸른 바람이 우리 몸도 살립니다. 자가용이나 석유나 전기가 지구별을 살리지 않습니다. 자가용이나 석유나 전기뿐 아니라, 물질문명이나 현대문명이 지구별을 살리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야 뭔가 사다 먹는다 하지만, 돈이 지구별을 살리지 않습니다. 시멘트로 집을 짓고 아스팔트로 찻길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지구별을 살리지 않습니다.


  골프장이나 발전소나 공장이 지구별을 살리나요? 관광단지나 대학교나 고속철도가 지구별을 살리나요?


  돈으로 짓는 공원이 아닌 숲이 지구별을 살립니다. 따로 나무심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무씨앗이 스스로 퍼져 찬찬히 자라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4대강사업이 아닌 냇물이 지구별을 살립니다. 멧골서 스스로 솟는 샘물이 흘러 우리 모두 이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공장에서 플라스틱병에 담는 ‘먹는샘물’이 아닌, 멧골서 솟는 ‘샘물’을 마셔야지요. 전기를 써서 돌리는 갖가지 공기청정기 아닌, 철 따라 꽃내음과 풀내음을 싣고 흐르는 바람이 지구별을 살립니다. 별바람을 쐬고 무지개바람을 쐬어야지요. 들바람과 바닷바람과 숲바람을 마셔야지요.


..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해요. 모두 저마다 자원을 최대한 많이 써서 당장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우리가 다 함께 사는 지구는 언젠가 파괴되고 말아요 ..  (35쪽)

 


  몰리 뱅 님이 빚은 그림책 《우리 모두의 지구, 물과 숲과 공기》(마루벌,2006)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몰리 뱅 님은 《물과 숲과 공기》라는 그림책에서 우리한테 묻습니다. 오늘까지 이대로 도시에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이 삶을 똑같이 잇겠느냐고 묻습니다. 오늘까지 온갖 물질문명을 숱하게 누렸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이 삶을 고스란히 잇겠느냐고 묻습니다.


  도시는 없어도 됩니다. 도시가 없어도 지구별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은 없으면 안 됩니다. 시골이 없으면 지구별은 무너집니다.


  손전화나 스마트폰이 없어도 지구별은 안 무너집니다. 자가용과 경운기가 없어도 지구별은 안 무너집니다. 대학교와 청와대가 없어도 지구별은 안 무너집니다. 발전소와 공장이 없어도 지구별은 안 무너집니다. 그렇지만, 시골 들과 숲과 내와 바다와 뻘이 없으면 지구별이 무너집니다. 축구선수나 국회의원이 없어도 지구별은 안 무너지지만, 시골사람이 없으면 지구별은 무너져요. 의사나 판사나 교수가 없어도 지구별은 안 무너지지만 시골 흙일꾼이 없으면 지구별은 무너져요.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나요. 집에서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나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이 지구별에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하면서 꿈꾸어야 사랑스러울까요.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하는 아이들이 즐거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기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푸른 바람을 마시지 못하는 아이들이 튼튼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군대가 아닌 낫과 호미가 있어야 합니다. 평등을 이루려면 학교교육이 아닌 시골밥을 두레와 품앗이로 거두어 도란도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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