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친구 웅진 우리그림책 1
한태희 지음 / 웅진주니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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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0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 로봇 친구

 한태희 글·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2005.10.20.



  어른들이 죽음수렁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살짝 벗어나 배를 타고 나들이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배에 갇힌 채 그대로 바닷속에 잠겼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배에서 빠져나와 살아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고운 숨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바닷속에 가라앉아 죽은 아이들이 죽지 않았다면,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렸을까요. 바닷속에 가라앉지 않고 살아난 아이들 앞에는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릴까요.



.. 나에게는 로봇 친구가 있습니다 ..  (2쪽)



  아이들은 며칠쯤 학교를 벗어나 뛰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작 며칠을 뛰놀 뿐, 다시 학교에 갇힌 채 입시지옥에 허덕여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기 앞서도 어머니 뱃속에서 영어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서 뒤집고 볼볼 길 적에 영어 노래를 다시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두 발로 서서 뛰놀 무렵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들어가서 또 영어 노래를 부르면서 영어 낱말을 배워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뛰놀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빈터를 모두 주차장이 빼앗습니다. 시골에서는 빈터 하나 없이 모조리 논이나 밭으로 일구는데, 빈터, 그러니까 수풀이 있으면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또는 비닐쓰레기를 태우는 자리로 빈터를 삼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신나게 뛰놀지 못합니다. 그나마 시골 아이는 웬만하면 한층집에서 살지만 도시 아이는 층집에서 살아요. 층을 이룬 아파트에서는 뛰지도 달리지도 구르지도 노래하지도 못합니다. 피아노를 신나게 칠 수 없고 피리를 마음껏 불 수 없어요.


  바다에 빠졌다가 살아난 아이들을 기다리는 한 가지는 입시지옥입니다. 입시지옥을 빠져나오면 취업지옥이 기다립니다. 취업지옥을 빠져나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 앞에는 온통 지옥입니다. 하늘나라 아닌 지옥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 지옥만 만들어 놓고는 밀어넣습니다. 아이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외롭습니다. 쓸쓸합니다.



.. 목요일, 나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큰고시로 말했습니다. “로봇, 꼭꼭 같이 놀자.” 하지만 로봇은 피자를 엄청나게 많이 만드느라 바빴습니다 ..  (18∼21쪽)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모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콧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마에 땟국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손톱 밑에 때가 끼지 않습니다. 놀지 못하니까요. 놀 수 없으니까요.


  어릴 적에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푸른 나날 누리는 때에도 놀지 못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들 놀지 못합니다. 대학교까지 마쳤어도 놀 겨를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놀이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얼싸안고 춤추거나 노래할 줄 모릅니다. 배운 적이 없거든요. 아이들은 어른들마냥 담배를 태우고 술을 마십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내를 내느라 바빠 일찌감치 입술을 박고 살갗을 부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꽁무니를 좇느라 동무를 주먹으로 괴롭히고 등수와 서열과 계급과 신분과 재산으로 가릅니다.



.. 로봇은 한참을 자고, 자고, 또 잤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늦게서야 일어났습니다. “우리, 같이 놀자.” 로봇은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  (30쪽)



  한태희 님이 빚은 그림책 《로봇 친구》(웅진주니어,2005)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림책 《로봇 친구》에는 ‘로봇 친구’가 나옵니다. 그런데, 로봇은 ‘친구’라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놀지 못합니다. 놀 겨를이 없습니다. 로봇을 친구로 둔 ‘아이’도 놀 겨를이 없습니다. 이 공부를 하고 저 숙제를 하며 그 유치원(또는 학교)에 가야 합니다. 이레 가운데 일요일 늦은낮에야 비로소 같이 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와 로봇은 무엇을 하며 놀까요. 무엇을 하며 놀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한테 어떤 놀이를 물려주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서로 동무 삼아 즐겁게 놀도록 맑고 밝으며 너른 빈터를 내주는가요. 아이들이 흙과 모래와 돌을 만지도록 해 주는가요. 아이들이 냇가에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할 수 있는가요.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놀이를 잊거나 잃으면서 아이한테 아무런 놀이를 안 물려주거나 못 이어주지 않나요. 오직 입시지옥으로 내몰고, 그예 취업지옥에 디밀면서 아이들을 들볶거나 괴롭히지 않나요.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같이 웃고 노래할 때에 즐겁습니다. 레크레이션이 아닌 놀이입니다. 여가나 취미가 아닌 놀이입니다. 여행이나 관광이 아닌 놀이입니다. 온몸으로 놀고 온마음으로 놉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기쁘게 손을 잡습니다.


  길거리를 보셔요. 도시에도 시골에도 놀이터란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는 잔디밭이 있는 공원이 있을는지 모르고, 어르신 운동기구를 몇 놓은 손바닥만 한 쉼터는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신나게 땀흘리며 뛰놀 빈터는 이 나라 어디에도 없습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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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단 찔레꽃 울타리
질 바클렘 지음, 강경혜 옮김 / 마루벌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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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9



​이야기가 샘솟는 흙

― 비밀의 계단

 질 바클렘 글·그림

 강경혜 옮김

 마루벌 펴냄, 1997.5.1.



  오늘날에는 풀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풀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만 사람들이 풀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풀과 사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풀이 자라는 데에서 살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일하고 놀고 어울리는 곳에는 풀이 돋지 않습니다. 늘 풀을 안 보고 살다 보니, 상추를 먹으면서 상추가 풀인 줄 느끼지 못하고, 민들레가 풀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풀을 풀로 여기지 못하는 삶이기에, 골목길뿐 아니라 아스팔트길 사이사이에 풀이 돋아도 풀인 줄 느끼지 않아요. 도시 한복판 길거리에 심은 나무 둘레에 풀이 자라도 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다 들여다보는 이가 있어도 ‘잡초’라 말할 뿐입니다.



..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찔레꽃울타리 마을의 들쥐들은 부지런히 일하며 삽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덤불 속과 주변 들판에서 꽃, 열매, 과일, 견과 들을 모아 말리거나 맛있는 잼, 절임 등을 만들어 다가올 추운 겨울을 위해 저장 창고에 잘 간직해 둡니다 ..  (1쪽)



  이 지구별에는 잡풀이 없습니다. 모두 그저 풀입니다. 쓸모가 없는 풀은 없습니다. 쓸모없이 태어나는 풀은 없습니다. 너무 마땅한 일이에요. 쓸모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쓸모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쓸모가 있고 빛과 값과 넋과 사랑이 있어요. 이를 알아채거나 느끼는 사람이 있고, 이를 안 알아채거나 못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풀마다 자라는 땅이 다릅니다.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오르는 풀이 있습니다. 풀을 잊거나 모르는 사람은 망초나 쇠비름이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뻗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다 합니다. 그러나 그뿐이에요. 망초나 쇠비름은 메마른 땅에서 기운차게 뻗은 뒤 이듬해에 다시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망초나 쇠비름은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스스로 쓰러지고 나서 봄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느새 망초잎이나 쇠비름잎은 자취조차 없습니다. 모두 흙이 됩니다. 망초잎과 쇠비름잎이 흙으로 돌아가면서, 메마르던 땅이 조금 나아지고, 조금 나아진 땅에서는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새로운 풀은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말라죽으면서 흙으로 돌아가 봄부터 또 다른 새 풀이 돋을 흙이 되어 줍니다. 해마다 땅은 천천히 기름진 흙으로 바뀝니다. 기름진 흙으로 바뀌면서, 이런 땅에 나무씨앗이 드리워 천천히 나무가 자라면서, 어느새 숲이 이루어지지요.




  흙이 되살아난 곳이 숲이 되기까지 제법 기나긴 해가 걸립니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은 풀과 흙이 서로 어떤 사이인지 모르기 일쑤요, 생각조차 않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큰나무를 베어 장작이나 기둥이나 종이로 만들어 쓸 생각은 하지만, 이 나무가 다시 자라기까지 숲에 어떤 일이 있어야 하는가를 헤아리지 못해요.


  다만, 이렇게 해마다 차츰 나아지는 흙인데, 농약을 함부로 뿌리거나 비료를 마구 치면 흙은 죽고 맙니다. 흙은 풀을 받아들여 흙이 되지, 농약이나 비료를 받아들이면 사막이 됩니다. 농약이나 비료는 흙을 죽음터로 바꾸어 놓습니다.



.. 앵초와 머위는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둘만이 아는 비밀의 계단을 올라가서 재미있게 놀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곧 두 아이는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고 그러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  (30쪽)



  질 바클렘 님이 빚은 그림책 《비밀의 계단》(마루벌,1997)을 읽습니다. 들쥐를 사람에 빗대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목숨은 모두 들쥐이지만, 이 들쥐가 살아가는 모습은 사람들 하루입니다. 겉모습만 들쥐요, 모두 사람살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을 숲에서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숲에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숲에서 얻으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며 잔치를 자주 열어요. 언제나 기쁨이요 사랑이니 언제나 잔치입니다. 흥청망청 노닥거리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노래하면서 웃음꽃으로 춤추는 잔치입니다. 술에 저는 잔치가 아니라, 삶을 즐기면서 어깨동무하는 잔치입니다.


  어른은 삶을 물려줍니다. 아이는 삶을 물려받습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아름답다고 여긴 삶을 누리면서 물려줍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른한테서 아름답구나 싶은 삶을 가려서 물려받습니다.


  어떤 삶을 물려주고 싶은가요. 어떤 삶을 물려받고 싶은가요. 어떤 땅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름다운가요. 어떤 흙을 우리 곁에 두어 어떤 풀이 돋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고 싶은가요. 흙을 알 때에 풀을 알고, 풀을 알 때에 나무를 알며, 나무를 알 때에 숲을 알아, 숲을 알 때에 삶을 압니다. 삶을 알아야 사랑을 알고, 사랑을 알아야 사람을 알며, 사람을 알 때에 마음을 아는데, 마음을 알면서 비로소 이야기를 알고, 이야기를 아는 사이에 시나브로 흙을 깨닫습니다. 이야기가 샘솟는 흙을 깨닫지요.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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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 소년한길 그림책 3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원작, 이지연 옮김 / 한길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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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8



살아남은 이와 살지 못한 이

― 빨간 구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이지연 옮김

 소년한길 펴냄, 2002.4.10.



  서울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때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1995년 여름이던 그무렵,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밤 한 시에 지국으로 신문 뭉치가 텅텅 떨어집니다. 부시시한 눈으로 일어나 신문을 지국 안으로 들입니다. 바깥에 그대로 두면 누군가 신문 뭉치를 훔쳐 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에 들고는 한 시간쯤 달게 자고서 두 시에 일어납니다. 나는 밤 두 시부터 신문을 돌려 새벽 네 시 반에 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내가 돌리는 신문에는 아픈 사람들 죽은 사람들 슬픈 사람들 얼굴이 신문에 가득했습니다. 이날부터 여러 날 같은 이야기가 신문을 그득 채웠습니다. 새벽에 두어 시간 신문을 돌리면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알리려고 신문을 돌려 하느냐 싶어서 힘들었습니다. 아마, 새벽에 신문을 받는 분들도 이런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어야 하느냐 싶어서 가슴이 아팠겠지요.


  기쁜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새벽을 열 텐데, 슬프거나 궂긴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 슬프게 울면서 새벽을 열었습니다.



.. 카렌이 빨간 구두를 받은 건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어요. 빨간 구두는 장례식에 어울리는 신발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카렌은 다른 구두가 없어서 맨발에 빨간 구두를 신고 엄마의 관을 뒤따라갔어요 ..  (2쪽)





  2014년 4월 어느 날, 인천 앞바다를 떠난 배가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습니다. 배에 탄 사람 가운데 백일흔 사람 즈음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삼백에 가까운 사람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빠져나온 사람은 가까스로 살아났다 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은 남이 아닙니다. 동무요 이웃입니다. 한식구요 교사이며 제자입니다.


  이들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할까요. 이들은 왜 이처럼 아픈 일을 치러야 할까요. 빠져나온 이들은 빠져나와서 살았어도 살았다고 말할 만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빠져나온 이들 어버이는 한숨을 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겠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 어버이는 한숨을 쉬면서 가슴을 치겠지요. 다른 두 어버이는 서로 어떻게 얼굴을 마주해야 할까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지는 생채기를 오래오래 씻을 수 없겠지요.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깔려죽은 사람은 왜 깔려죽어야 했을까요. 성수다리가 무너지고, 충주 유람선이 불에 타며, 대구 지하철이 터졌어요. 서울 아현동에서는 가스가 터지며 수많은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이 생길까요. 전쟁터에서 군인이 쏜 총에 맞아서 죽는 민간인은, 전쟁통에 비행기가 떨구는 폭탄이 터져서 죽는 민간인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애꿎게 원자폭탄에 맞아 죽어야 했던 징용 조선사람은, 일본에서 땅이 갈라졌을 때 어처구니없게 죽어야 했던 조선사람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 카렌은 춤을 추었어요. 아니 춤을 추어야만 했어요. 빨간 구두는 카렌을 가시덤불로, 나무 그루터기로 이끌었어요. 카렌은 다쳐서 발에 피가 났지만 계속 춤을 추며 황량한 들판을 지나 어느 외딴 집에 이르렀어요 ..  (22쪽)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님이 쓴 글에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그림을 붙인 《빨간 구두》(소년한길,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이 동화를 읽을 적에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어른이 되어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참으로 믿기지 않습니다.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이라는 아이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너무 가난한 집에서 맨발로 살다가 겨울에는 커다란 나막신을 신었다는데, 나막신을 신으면 나무에 살이 쓸려 작은 발이 온통 빨갛게 헐었다는데, 이 아이를 가엾게 여긴 이웃 구두장이 아주머니가 빨간 구두를 한 켤레 지어서 선물했다는데, 아이가 구두를 선물받은 때가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치르는 장례식 날이었다는데, 장례식 날에 맨발로 있을 수 없어 이 구두를 신었다는데, 홀로 남은 아이를 안쓰럽게 여긴 어떤 이가 아이를 거두어 돌보았다는데, 아이는 왜 ‘슬프고 아픈 삶’을 보내야 했을까요.


  아이로서는 빨간 구두가 ‘어머니를 그리거나 떠올리는 하나 있는 유품’일 수 있습니다. 아이로서는 다른 어느 구두보다 이 구두를 신고 싶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 구두를 품에 안고 싶을 수 있어요.



.. 오르간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찬송 소리가 맑고 사랑스럽게 울려퍼졌어요. 햇살이 카렌이 앉아 있는 의자를 환히 비추었어요. 카렌의 마음도 환한 햇살로 가득 찼지요. 깨어졌던 평화와 기쁨이 돌아왔어요. 카렌의 영혼은 햇살을 따라 하늘에 가 닿았어요. 그곳에서는 카란에게 빨간 구두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  (32쪽)




  빨간 구두만 신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춤만 추어야 합니다. 멈출 수 없는 춤을 구두에 따라 춥니다. 깊은 숲으로 춤을 추며 들어간 아이는 끝내 다리를 자릅니다. 다리를 잘랐으나 구두는 잘린 다리와 함께 혼자 춤추며 떠돕니다.


  다리를 스스로 자른 아이는 더 춤을 추지 못합니다. 춤을 추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는 삶’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환한 햇살을 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림책 《빨간 구두》에서 어떤 삶과 사랑을 읽을 수 있을까요. 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 그림책에서 어떤 넋과 숨결을 읽을 수 있을까요. 카렌이라는 아이를 빌어 내 마음속에서 깨뜨리거나 열어젖힐 어떤 이야기가 있는 셈일까요.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어야 한 수많은 동무와 이웃과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선 이곳에서 내 삶을 바꾸도록 깨우치는 슬기를 붙잡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살아남은 사람은 배 바깥에도 있지만, 이곳에도 있습니다. 배에서 빠져나온 사람만 살아남은 이가 아니라, 배를 타지 않은 이들도, 배하고는 동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들도 모두 살아남은 이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어떤 하루를 일굴 때에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웁거나 즐거울까요. 우리들은 어떤 길을 걸어가면서 하루를 밝히거나 빛낼 숨결일까요. 4347.4.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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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곡예사 분도그림우화 33
바바라 쿠니 / 분도출판사 / 198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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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7



누가 누구를 섬기는가

― 꼬마 곡예사

 바바라 쿠니 글·그림

 김구인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1987.4.1.



  우리 집 큰아이는 여섯 살까지 자전거수레에 앉았습니다. 요즈음은 샛자전거에 탑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올해에 네 살이니 앞으로 두 해 더 자전거수레에 앉으리라 생각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곧 네발자전거로 싱싱 달릴 수 있을 텐데,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면 두발자전거로 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열 살이 되어서야 두발자전거를 달릴는지 모릅니다. 이때에는 샛자전거를 동생한테 물려주겠지요.


  아이는 아이 몸에 맞게 자전거를 탑니다. 어른은 어른 몸에 맞게 자전거를 탑니다. 아이더러 어른 자전거를 타라 할 수 없고, 어른한테 아이 자전거를 타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 밥그릇에 어른이 먹는 부피로 밥을 떠 줄 수 없고, 어른 밥그릇에 아이가 먹는 부피로 밥을 떠 주면 배고프겠지요.



.. 바나비는 공 여러 개로 재주를 부리고, 공중제비를 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렇게 해서 먹고살았습니다. 높이 뛰어오르고, 공중에서 공놀이를 하고 물건으로 균형을 잡는 것, 이런 것들은 잘 알았지만 그밖의 것은 거의 몰랐습니다.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것밖에는 몰랐습니다. 아버지도 곡예사이셨으니까요 ..  (8쪽)





  아이는 아이답게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어른스러운 그림을 바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글을 씁니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글을 또박또박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한테 어른스러운 글씨를 바랄 수 없습니다.


  어른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 ‘천재’일는지 모르지만, 이런 아이는 아이도 어른도 천재도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는 왜 어른스럽게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아이는 왜 천재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일곱 살 아이가 바둑 천재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여덟 살 아이가 골프 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열 살 아이가 피아노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아이는 아이답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춤출 적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어른도 어떤 천재나 박사나 교수 같은 이름보다는 그저 어른으로서 삶을 즐기고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잔치를 나눌 적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 몸이 꽁꽁 어는 듯한 어느 날, 의지할 곳 없는 바나비는 깔개 위에 서서 인사를 했습니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구경꾼이라고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24쪽)



  사월에 사월꽃이 핍니다. 삼월에는 삼월꽃이 피었습니다. 오월에는 오월꽃이 핍니다. 꽃은 봄 가운데 한 달만 피지 않습니다. 꽃은 봄에만 피지 않습니다. 여름꽃과 가을꽃이 있고, 겨울꽃이 있습니다. 꽃은 철마다 다른 빛이며, 달마다 다른 내음입니다.


  마당에 서서 후박꽃을 바라봅니다. 평상에 올라서서 후박꽃하고 키높이에 섭니다. 코를 대고 얼굴을 대면서 후박내음을 듬뿍 들이켭니다. 자그마한 꽃망울마다 벌나비가 모여들 테고, 벌나비는 꽃가루받이를 거들 테지요. 꽃가루받이를 마친 꽃송이는 천천히 지면서 빨갛고 예쁜 열매를 맺겠지요.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 가지가 쏴아쏴아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두 팔을 벌려 나무노래를 듣습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나뭇잎과 꽃잎이 함께 흔들립니다. 나뭇잎과 꽃잎이 흔들리면서 후박내음은 더 짙게 퍼지고, 겨우내 푸르게 매달렸던 잎은 노랗게 물든 채 톡톡 소리를 내며 마당으로 떨어집니다.





.. 어느 날 바나비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거룩하신 마리아님, 제가 어떻게 마리아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 그러고는 절망하여 흐느꼈습니다. 바나비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었기를 바랐습니다.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 바나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깡총 뛰었습니다. “그걸 할까? 그래. 할 수 있어. 꼭 할 테야. 내가 배운 것을 할 테야. 그래서 내 나름으로 성모님의 작은 성당에서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섬길 테야. 다른 수사님들은 성가와 기도로 그분들을 공경하시겠지. 난 재주넘기로 그분들을 예배할 테야.” ..  (32쪽)



  봄에 노랗게 물든 채 떨어지는 후박잎을 줍습니다. 밥상에 올리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말없이 크레파스와 종이를 꺼냅니다. 후박잎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립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종이를 달라 하면서 함께 후박잎을 그립니다.


  누가 그림을 그리라 시키지 않았습니다. 후박잎을 그리기에 어디 공모전에 내지 않습니다. 우리 집을 포근하게 감싸며 고운 냄새를 나누어 주는 후박나무를 떠올리며 보드라운 잎사귀를 쓰다듬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책 《꼬마 곡예사》(분도출판사,1987)를 펼칩니다. 프랑스에서 먼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바라 쿠니 님이 손질해서 새로운 그림책으로 엮었습니다. 바바라 쿠니 님은 ‘꼬마 곡예사’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여겨 이녁 아이한테 ‘바나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그러니까, ‘꼬마 곡예사’는 바바라 쿠니 아들한테 새롭게 선물하는 책이요 이야기이며 그림이고 이름으로 거듭난 셈입니다.





.. 예수 아기님의 생일인 이날 밤에 바나비는 일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더 기술적으로 재주를 부렸습니다. 재주 부리기가 끝나자, 바나비는 너무나 지쳐서 그만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누워 있었습니다. 아빠스님과 호기심 많은 수사님이 바나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성상을 모신 벽감에서 한 부인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찍이 어느 누가 본 부인보다 더 영광스런 모습에 보배스런 관을 쓴 아름다운 부인이었습니다 ..  (41∼42쪽)



  옛이야기 ‘꼬마 곡예사’에 나오는 아이 ‘바나비’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도 여의었어요. 어머니를 여읜 뒤 아버지와 곡예사 노릇을 하며 살았으나, 아버지마저 떠나면서 혼자 곡예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을까지는 이럭저럭 벌이가 되어 밥을 먹을 수 있었으나, 겨울이 찾아오니 곡예를 보려는 사람이 없어 굶고 추운 하루를 보내야 했다고 해요. 이런 바나비를 길에서 문득 마주친 성당 수사님이 바나비를 거두어 성당에서 지내도록 해 줍니다.


  바나비는 성당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잊은 채 지냅니다. 처음에는 고맙고 즐거웠으나 차츰 시무룩하고 슬픕니다. 왜냐하면, 성당에 있는 어른들은 예수님나신날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선물을 마련합니다. 어떤 어른은 멋진 글씨로 성경을 새로 옮기고, 어떤 어른은 멋진 그림을 그리며, 어떤 어른은 멋진 노래를 짓습니다. 어린 바나비는 어릴 적부터 배운 ‘재주’가 곡예 한 가지뿐입니다. 다들 무언가 멋진 선물을 바친다는 생각에 들뜨고 기쁘며 설레지만, 바나비 혼자 외롭고 서글프며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다 바나비는 다짐을 해요. 바나비 스스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을 걷자고 다짐합니다. 성모님한테 ‘바나비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곡예’를 바치자고 다짐해요.


  돈이 있는 어른이라면 돈을 바치겠지요. 글재주 있는 어른이라면 아름다운 글을 바치겠지요. 그러면, 돈이 없거나 글재주가 없는 어른은? 몸이 아파 몸져누운 채 살아온 어른은? 아이들은? 늙은 할매와 할배는? 온삶을 바쳐 흙을 일군 사람은? 건물 청소 일꾼은? 버스나 택시를 모는 일꾼은? 공장 일꾼은? 구멍가게 일꾼이나 대형할인마트 일꾼은?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푸름이는?




.. 마리아님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어 당신의 곡예사 얼굴에 부채질을 해 주셨습니다 ..  (42쪽)



  성모 마리아님은 어떤 숨결일까요. 바나비라는 아이는 어떤 숨결일까요. 그림책 《꼬마 곡예사》를 빚은 바바라 쿠니 님은 어떤 숨결일까요. 이 그림책을 읽으며 눈물젖거나 웃음짓는 우리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젖을 먹는 아기와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는 어떤 숨결일까요. 개구리 한 마리와 제비 한 마리는 어떤 숨결일까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목숨은 저마다 어떤 숨결일까요.


  누가 누구를 섬기는지 헤아려 봅니다. 누구 누구한테서 섬김을 받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름다운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곱씹어 봅니다. 사랑스러운 하루는 누가 어떻게 가꾸는지 되새겨 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 다르면서 다 같은 빛이 환하게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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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 2015 오픈키드 좋은어린이책 목록 추천도서 바람그림책 19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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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6



무엇이 궁금한가요

― 첫 번째 질문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천개의바람 펴냄, 2014.2.22.



  아침밥을 먹던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이거 뭐야? 까만 이거?” “간장.” “간장? 내 머리도 까만데.” 종지에 담은 까만 물이 간장이라고 그동안 늘 말했지만 큰아이한테는 늘 새로울 수 있습니다. 간장 말고 다른 까만 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까만 간장이 무엇인지 물으면서 “간장이구나.”라든지 “간장이라고 하는구나.”처럼 말했다면, 이제는 아이가 제 머리카락 빛깔과 같은 까만 물이라고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닐 적에 큰아이가 곧잘 ‘수레’ 이름을 묻곤 했습니다. “아버지, 여기 뒤에 붙인 거 뭐야?” 하고. “수레.” “수레? 으응, 수레.” 이제 큰아이가 일곱 살이니, 가끔 아이가 묻는 말에 곧바로 안 알려주기도 합니다. “여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음, 이름이 뭘까?” “글쎄.” “꽃을 보고 뭐 생각나지 않아? 꽃을 바라보는 느낌대로 벼리가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 돼. 온누리에 있는 모든 꽃은 사람들이 그 꽃을 바라보면서 받은 느낌으로 붙였거든.”


  하늘에 뜬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새털구름이라느니 뭉게구름이라느니 매지구름이라느니 먹구름이라느니 실구름이라느니 하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아이한테 “우와 구름 예쁘다. 저 구름은 어떤 구름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구름이 봉우리에 걸릴 적에 “구름이 봉우리에서 쉬나?” 하고 묻기도 합니다.


  저녁이나 밤에 달을 보면서 자전거를 달리거나 자동차를 얻어 타서 달리면, 달이 마치 따라오는 듯합니다. 큰아이는 달을 보면서 “달이 우리를 따라와요!” 하고 소리칩니다. 동생은 누나 말을 받아 “달이 우리를 따라와요!” 하고 소리칩니다. 큰아이는 “우리가 달을 이겼다!”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달리던 길을 꺾으면 달이 뒤에 처지는 듯 보이거든요.





..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하늘은 멀었나요, 가까웠나요 ..  (3쪽)



  맛있게 먹자고 생각하며 밥을 차립니다. 맛있게 먹습니다. 맛있게 먹으니 이로 씹으면서 즐겁습니다. 즐겁게 씹어서 삼키니 뱃속에서 반깁니다. 뱃속에서 반기니 온몸에 새 기운이 돕니다. 온몸에 새 기운이 도니 오늘 하루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풀을 먹으면 풀내음 나는 몸이 되면서 풀똥을 누고 풀오줌을 눕니다. 빵을 먹으면 빵내음 나는 몸이 되면서 빵똥을 누고 빵오줌을 누어요. 고기를 먹은 날에는 고기내음 나는 몸이 되면서 고기똥을 누고 고기오줌을 누겠지요.





.. 좋은 하루란 어떤 하루인가요?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  (6쪽)



  먼먼 옛날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 고울 적에 아이가 어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 곱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 고울 적에 아이가 이웃이나 동무하고 놀면서 사랑스레 웃고 뛰며 달립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하는 까닭은, 말을 하는 나 스스로 고운 말로 고운 넋이 되고 고운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고운 빛이 환하면, 내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고운 기운을 받아서 저절로 고운 웃음과 고운 몸짓이 될 수 있어요.


  가는 말이 거칠거나 밉다면? 거칠거나 미운 말을 듣고도 고운 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참말 마음이 넓고 깊은 이웃입니다. 거친 말을 들었대서 거친 말을 맞받으면 거친 말은 더욱 커집니다. 거친 말을 들었어도 살살 다독이거나 달래면서 보드랍게 보내면, 말빛은 새삼스레 따스하면서 아름답습니다.




..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꽃 일곱 가지를 꼽을 수 있나요? 나에게 ‘우리’는 누구인가요 ..  (15쪽)



  오사다 히로시 님이 쓴 글에 이세 히데코 님이 그림을 그린 《첫 번째 질문》(천개의바람,2014)을 읽습니다. ‘첫 물음’을 묻는 그림책입니다. 아이한테 묻고 싶은 첫 이야기를 밝히는 그림책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묻는 첫 궁금함을 살피는 그림책입니다.



.. 나에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  (26쪽)





  우리는 아이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빚을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웃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에 사랑스러울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동무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속삭일 때에 즐거울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한테 무엇이 궁금한가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궁금한가요? 꽃 한 송이를 마주하면서 무엇이 궁금한가요? 숲에 깃들어 나무내음을 맡는 동안 무엇이 궁금한가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무엇이 궁금한가요? 무럭무럭 자라며 뛰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무엇이 궁금한가요? 어느덧 어버이 키만큼 자란 아이와 마주하면서 무엇이 궁금한가요?


  궁금한 이야기란 저마다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모습입니다. 궁금해서 묻는 이야기란 저마다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 길입니다. 그림책 《첫 번째 질문》을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을 찾아 햇볕처럼 포근하며 바람처럼 싱그럽고 빗물처럼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서로 묻고 알려주면서 삶꽃을 피울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4347.4.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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