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는 참 좋다! 물들숲 그림책 1
이성실 글, 권정선 그림 / 비룡소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9



참나무숲이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며

― 참나무는 참 좋다!

 이성실 글

 권정선 그림

 비룡소 펴냄, 2012.9.28. 13000원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다가 “아버지, 쇠뜨기가 어떻게 생겼어?” 하고 물어봅니다. 얼마 앞서 논둑에서 쇠뜨기를 뜯어서 먹기도 했는데 그새 잊은 듯합니다. 그림책에 멀쩡하게 나온 쇠뜨기이지만, 틀림없이 이 쇠뜨기를 얼마 앞서 보기는 했는데 다시 보고 싶다는 뜻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손으로 만지면서 놀고 싶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쇠뜨기 얼마 앞서 먹었는데, 생각 안 나?” “잘 모르겠어.” 저녁에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한 바퀴를 휘 돌아보다가 쇠뜨기를 만납니다. 논둑 한쪽에는 꽃이 지고 짙푸른 빛깔로 바뀐 쇠뜨기가 가득하고, 논둑 다른 쪽에는 이제 막 돋은 쇠뜨기가 꽃을 피운 모습입니다. “자, 여기에 쇠뜨기 잔뜩 있네. 잘 보렴.” “아하, 얘가 쇠뜨기였구나.”


  작은아이는 저녁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푸른 쇠뜨기’를 한 아름 뜯습니다. 빙그레 웃는 작은아이는 “크리스마스 나무 만들려고.” 하고 말합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성탄절에 흔히 세우는 나무하고 ‘푸르게 자란 쇠뜨기 풀’이 비슷하게 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큰아이도 으레 마당에서 가랑잎을 잔뜩 그러모아서 잎놀이를 하고, 숲마실을 다녀올 적에는 주머니에 가득 솔방울이나 나뭇잎을 주워서 담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고 있어. 얼었던 땅이 녹고 흙은 폭신폭신 촉촉하니 부드러워져. 도토리는 물기를 빨아들이고 부풀어 올라. (5쪽)



  이성실 님이 글을 쓰고 권정선 님이 그림을 그린 《참나무는 참 좋다!》(비룡소,2012)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숲마실을 갈 적마다 솔방울이나 오리방울을 줍기에 바쁜 아이들로서는 숲에서 보는 나무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도록 돕는 그림책이 요즈음 들어 몹시 재미난 듯합니다.


  숲길을 걷다가 큰아이가 불쑥 ‘그림책에서 읽은 줄거리’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아이로서는 잊지 않으려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들려줄 테고, 또 아이로서는 아버지도 더 잘 알라는 뜻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요. 그림으로 보던 떡갈나무나 굴참나무를 코앞에서 두 눈으로 볼 적에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 하는 대목을 알아보려고 요모조모 살피고 만지느라 바빠요.



참나무는 참 달콤해. 여름밤이면 장수풍뎅이도 사슴벌레도 참나무 나무즙을 먹으러 찾아와. 으라차차!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사슴벌레 수컷 두 마리가 뿔을 들이밀며 싸우기도 해. (13쪽)



  그림책 《참나무는 참 좋다!》는 ‘참’이라는 이름을 얻은 나무 한 그루가 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떻게 ‘참’ 좋은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풀어냅니다. 참 힘이 세고, 참 똑똑하고, 참 잘 자라고, 참 키가 크고, 참 넓고, 참 좋은 집이고, 참 달콤하고 …… 이리하여 숲짐승은 모두 참나무를 참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끌어내요.


  그리고 《참나무는 참 좋다!》는 사이사이 ‘넉 장 그림’을 보여줍니다. 안으로 포갠 종이를 펼치면 참나무가 있는 숲을 한결 큼지막하게 느낄 수 있도록 책을 엮었어요. 그림책 사이에 숨은 멋진 큰 그림이 깃들었습니다.



겨울 동안 참나무는 참 따뜻해. 나비 번데기가 참나무 가지에 고치를 틀었어. 나비는 고치 속에서 참나무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참나무 밑 굴에서는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기도 해. (20쪽)



  숲짐승이 좋아하고, 숲짐승한테 보금자리와 먹이를 주며, 사람한테도 맑은 바람하고 도토리라는 열매를 베푸는 참나무입니다. 이뿐 아니라 빗물을 뿌리하고 줄기에 가득 품는 참나무예요. 참나무를 비롯한 온갖 나무가 숲에 골고루 어우러지기 때문에 우리 살림터는 푸르고 정갈하며 아름다울 만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사회에서 참나무는 그리 좋게 대접을 받지 못해요. 어른들은 참나무숲을 쉽게 베어요. 길을 내거나 관광지나 골프장을 짓거나 뭔가를 할 적마다 참나무숲은 맨 먼저 밀려납니다. 참나무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여기기 일쑤예요. 우리 집 아이들이 늘 마실을 다니는 뒷산 참나무숲도 자꾸만 깎이고 밀리면서 사라집니다. 다른 고장에서도 참나무숲은 좀처럼 느긋하지 못해요. 다들 조마조마하리라 느낍니다.



참나무는 참 예쁜 소리를 내. 가을이 오면 참나무는 다시 겨울을 준비해. 반들반들 단단하게 익은 도토리를 떨구고 곱게 물든 잎도 떨어져. 후드득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휘리릭 나무 사이로 바람 부는 소리, 사락사락 낙엽이 서로 맞닿으며 떨어지는 소리가 나. (27쪽)



  새 가운데 참새가 있고, 나무 가운데 참나무가 있으며, 꽃 가운데 참꽃이 있습니다. ‘참’이라는 낱말은 ‘참다움 착함 고움’ 세 가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참말 거짓말’에서도 참은 우리 삶과 넋과 말이 나아갈 길을 밝게 보여줍니다.


  나무에 참나무가 있으면 사람 가운데에도 ‘참사람’이 있겠지요? ‘참어른’이 있을 테며, ‘참길’을 걸어서 ‘참삶’을 가꾸는 ‘참사랑’이 있을 테고요?


  ‘참살이’라는 새로운 살림이 태어나듯이, 참다운 나라와 참다운 마을과 참다운 꿈이 서로 어우러질 수 있기를 빌어요. 그저 흔한 참나무숲이 아니라, 사람과 숲짐승과 푸나무 모두 즐거이 어우러지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참나무숲이 아름드리숲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빌어요. 참나무는 참으로 좋은 나무요, 온누리 뭇나무도 더없이 좋은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2016.4.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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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보물이야! 푸른숲 그림책 8
사사키 마사미 글, 이은경 옮김, 사타케 미호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8



걸레를 빨아 줄 만큼 대견하게 자란 아이들

― 너는 나의 보물이야!

 사사키 마사미 글

 사타케 미호 그림

 이은경 옮김

 푸른숲주니어 펴냄, 2012.3.5. 9800원



  누군가 나한테 한 마디를 묻는다면, 이를테면 ‘아이들이 언제 이쁜가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들고 가만히 그분을 바라보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따로 이쁜 때란 없고, 따로 안 이쁜 때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더 이쁘다 싶은 때가 없고, 따로 안 이쁘다고 할 만한 때도 없구나 하고 느껴요.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들입니다. 어른은 언제나 어른입니다. 이러면서 둘은 함께 살림을 짓는 사이좋은 삶벗이나 길벗이나 사랑벗이리라 느껴요. 사랑을 받으면서 즐거운 아이들이요, 사랑을 주면서 기쁜 어른이라고 느껴요.


  먹이고 입히고 재우면서 서로 즐겁고 기쁩니다. 함께 놀고 일하고 쉬고 마실하면서 함께 즐겁고 기뻐요. 아이들은 내 곁에서 배우고, 나는 아이들 곁에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나한테 수수께끼를 물으면서 가르침을 베풀고, 나는 내 나름대로 수수께끼를 풀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길을 이끕니다.



작은 입을 벌리고 네가 하품하는 것만 봐도 엄마 아빠는 행복했단다. (4쪽)


네가 조용할 때는 무언가 일을 저지르고 있었지. (10쪽)



  사사키 마사미 님이 글을 쓰고, 사타케 미호 님이 그림을 빚은 《너는 나의 보물이야!》(푸른숲주니어,2012)라는 그림책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한 번 스윽 보더니 딱히 더 들여다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너무 마땅한 이야기라서 그러할 수 있고,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 여겨서 그리 재미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즐거울 만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스스로 기운을 내면서 아이들을 더욱 따스한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북돋우는 ‘어른 그림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돌보다가 몹시 고단하거나 힘든 날, ‘그래, 이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 보물이지!’ 하는 마음을 되새겨 주는 그림책이라고 할 만해요. 아이들이 골을 부리거나 떼를 쓴다고 느낄 적에, ‘아니야, 차분히 생각해 봐. 이 아이가 왜 골을 부릴까? 이 아이가 왜 떼를 쓸까? 이 아이는 나(어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려고 이런 모습을 보일까?’ 하고 가르치는 길을 되새기라고 이끄는 그림책이라고 할 만해요.



네가 단추를 하나씩 스스로 채우더니, (20쪽)



  작은아이가 밤에 혼자 씩씩하게 일어나서 혼자 불도 안 켜고 씩씩하게 쉬를 눕니다. 그러고는 다시 혼자 씩씩하게 잠자리에 눕습니다. 작은아이가 이렇게 혼자 씩씩하게 시골집에서 밤오줌을 가리기까지 여섯 해가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다섯 해 동안 작은아이가 밤오줌을 잘 눌 수 있도록 언제나 밤마다 깨어서 쉬를 봐주었다는 뜻입니다. 작은아이에 앞서 큰아이한테도 이렇게 했고요.


  이제 두 아이는 저희 옷을 저희 스스로 챙겨서 입을 만큼 자랐습니다. 아직 작은아이는 많이 서툴지만, 내가 옷을 다 빨아서 말려서 방으로 들이면, 큰아이는 손수 옷을 개어 손수 제자리에 갖다 놓을 줄 압니다. 이럴 때면 참으로 대견하구나 하고 느낄 만한데, 가끔 설거지를 거든다든지, 밥을 하다가 “누구 솔(부추)을 마당에서 뜯어 줄 사람?” 하고 부를 수 있다든지, 방을 훔치다가 “누구 걸레를 빨아 줄 사람?” 하고 부를 수 있을 적에도 몹시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새봄에 밭을 일구면서 “새로 심은 씨앗에 누가 물을 길어서 부어 줄래?” 하고 물어요. “여기에 심으려고 미리 꺼내 놓은 씨앗 좀 가져다줄래?” 하고도 묻지요. 밭일에 쓰는 연장을 갖다 달라고 시키고, 큰 나무를 옮겨심을 적에 붙잡아 달라고 맡기기도 해요. 씨앗심기를 하고 나면, 두 아이는 서로 꽃삽을 들고 뒤꼍 빈터를 마음대로 파고 쌓고 하면서 놀아요. 아직은 흙놀이요 소꿉놀이인데, 머잖아 이 아이들은 손수 집을 짓고 살림을 지을 씩씩한 숨결로 거듭나리라 하고 느껴요.



벌써 이만큼 자라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구나! 엄마 아빠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그리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32쪽)



  아이들이 스스로 배웁니다. 궁금한 것을 물으면서 스스로 배웁니다. 어버이도 언제나 함께 스스로 배웁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하루를 지으면서 이때에는 이렇고 저때에는 저렇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면서 하나하나 새롭게 배웁니다.


  곁에 있는 보배는 사랑스러운 보배일 뿐 아니라, 배움동무이고 삶동무입니다. 나는 아이들 곁에서 보배로운 어버이가 되면서 슬기로운 배움동무하고 삶동무로서 더욱 씩씩하게 웃자고 다짐합니다. 내가 아이들을 자랑스레 여길 수 있는 마음이라면, 아이들도 저희 어버이를 자랑스레 여길 수 있어야겠지요.


  잠자리 이불깃을 여미고,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리고, 함께 밭을 짓고, 함께 나무를 심고, 함께 들길하고 숲길을 걷고, 또 함께 자전거를 달려서 골짜기로 마실을 가면서, 우리는 서로서로 더없이 고운 보배라는 대목을 싱그러이 깨닫습니다. 2016.4.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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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탄카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7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글, 타티야나 코르메르 그림, 이수경 옮김 / 살림어린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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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7



개 한 마리는 ‘새 삶’ 찾는 홀로서기를 할까?

― 카시탄카

 안톤 체호프 글

 타티야나 코르메르 그림

 우시경 옮김

 살림어린이 펴냄. 2015.8.25. 12000원



  안톤 체호프 님이 쓴 글에 타티야나 코르메르 님이 그림을 넣은 《카시탄카》(살림어린이,2015)를 가만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카시탄카’는 개입니다. 꼭 여우를 닮았다고 하는 개예요. 그런데 이 개 카시탄카는 처음 태어나서 자란 집에서 그리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밥을 주는 아저씨도, 그 집 아이도 카시탄카를 아끼거나 따스히 보살피기보다는 함부로 다루고 마구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우를 닮은 개 카시탄카는 그 집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 집 말고는 다른 보금자리나 삶자리를 그리지 못합니다. 오직 그 집에서만 지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여겨요.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씩씩하게 떠날 줄 모르고, 이래저래 시달리면서도 새로운 길로 나설 줄 모릅니다.


  어쩌면 카시탄카를 낳은 개도 카시탄카와 같은 삶을 보냈을 수 있어요. 카시탄카 어미를 낳은 어미도 모두 똑같은 삶을 보냈을 수 있어요. 사람 눈으로 보자면 ‘사람 곁에 있는 짐승’이지만, 짐승으로서는 집에 얽매인 채 다른 곳으로 씩씩하게 떠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목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긴긴 겨울밤, 예전 주인이 대패질을 하거나 소리 내어 잡지를 읽을 때면 아들 페듀시카와 장난치곤 했던 일을 떠올렸지요. 페듀시카는 카시탄카를 작업대 밑에서 끌어내기 위해 카시탄카의 뒷발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즐겼습니다. 얼마나 힘껏 당겼는지 카시탄카는 눈앞이 노래지고 온몸 마디마디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 또 어떤 때는 종을 치듯이 꼬리를 힘껏 잡아당겨 카시탄카가 비명을 지르게 했고, 담배 냄새도 강제로 맡게 했습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장난은 …… (10쪽)



  그림책이기 앞서 짧은소설로 나온 이야기 ‘카시탄카’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1860년에 태어나 1904년에 숨을 거둔 안톤 체호프 님이 러시아에서 겪은 삶이나 그무렵 러시아에서 마주하던 사람들 삶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사람들을 모질게 다루는 전제 군주와 땅임자를 생각해 봅니다. ‘땅을 짓지 않아’도 계급하고 신분하고 돈을 물려받아서 ‘땅을 짓는 이’를 얼마든지 부리거나 괴롭히던 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림책 《카시탄카》에 나오는 개 한 마리는 그저 개 한 마리를 보여줄 뿐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개 한 마리 이야기를 빌어서 러시아 사회를 이야기하고, 러시아 정치를 다루며, 모진 사회와 정치에 억눌린 채 그만 홀로서기를 잊거나 잃고 만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셈이라고 느껴요.



한 달 뒤에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표도르 티모페이치를 대신할 정도로 잘할 수 있었지요. 아줌마는 열심히 배웠고 스스로도 자신의 능수능란한 동작에 만족했습니다. 훈련용 밧줄에 묶여 혀를 빼고 달리는 것, 둥근 테를 뛰어넘는 것, 나이 든 표도르 티모페이치를 타고 달리는 것은 아줌마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22쪽)



  《카시탄카》에 나오는 카시탄카는 어느 날 길을 잃습니다. 여느 때처럼 ‘주인 아저씨’를 따라서 집 밖으로 나왔다가 군악대 행진을 보고는 그만 넋이 나가라 구경하다가 주인을 잃어요.


  길도 집도 모두 잃은 카시탄카는 그만 떠돌이가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모릅니다. 카시탄카를 부리던 사람도 이 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길조차 두지 않습니다.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은 채 그저 먹이만 주었을 뿐이니까요.


  어쩌면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가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르거나 아예 생각조차 안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고달프거나 힘겹게 살림을 꾸리는지를 모르는 전제 군주나 독재자처럼 말이지요.


  길도 집도 없이 배고픈 카시탄카는 한길에서 어떻게 먹이를 찾아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어디에 깃들어 자야 하는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따스한 손길을 만나요. 예전 주인하고는 너무도 다르게 따스한 손길을 만나지요.


  다만, 새로운 주인은 ‘서커스’를 하는 사람입니다. 서커스를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를 거두어 알뜰히 보살피다가 재주를 가르칩니다. 카시탄카는 예전과 달리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터전에서 즐겁게 재주를 익힙니다. 새로운 동무를 사귀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나날을 누려요. 오직 한 가지가 없다면 ‘스스로 일어서서 스스로 살아가기’를 할 마음이 없다뿐입니다.



카시탄카는 두 사람의 등을 바라봤습니다. 마치 자신이 오래전부터 그들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삶이 단 한순간도 자신을 내버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카시탄카는 그 순간 지저분한 벽지가 있는 방, 거위, 표도르 티모페이치, 맛있는 식사, 훈련, 서커스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마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나긴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39쪽)



  그림책 《카시탄카》는 카시탄카가 서커스를 하는 새로운 주인 곁을 떠나서 예전 주인한테 돌아가는 줄거리로 끝을 맺습니다. 서커스 공연 무대에 옛 주인하고 아들이 보러 왔고, 옛 주인 아들은 카시탄카를 알아봅니다. 카시탄카는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아무 걱정이 없이 살았지만, 걱정도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새로운 터전을 내버리고 예전 주인한테 달려갑니다.


  카시탄카는 아무래도 예전 주인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는 마음결이었지 싶습니다. 스스로 옭매인 삶인데 옭매인 줄 모르는 마음결이기 때문이겠지요. 스스로 설 줄 모르고 남이 시키는 몸짓만 하면서 밥을 얻어먹는 데에서 삶을 그치는 터라, 새롭게 나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할 만해요.


  그러면, 나는 얼마나 홀로서기를 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나는 굴레나 쳇바퀴에 안 갇힌 삶이라고 할 만한가 하는 대목을 되새깁니다. 내가 걷는 길은 그야말로 스스로 다스리거나 보살피거나 가꾸는 삶길이라고 할 만하느냐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안톤 체호프라는 분이 살던 백 몇 해 앞선 러시아하고 2010년대 오늘날 한국은 얼마나 다르거나 같은가 하고 가늠해 봅니다. 카시탄카 이야기를 읽는 나는 얼마나 ‘나다운 새로운 살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2016.4.1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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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달팽이의 집 과학 그림동화 36
이토 세츠코 글, 시마즈 카즈코 그림, 권남희 옮김 / 비룡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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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6



네가 자란 만큼 집도 커졌구나

― 아기 달팽이의 집

 이토 세츠코 글

 시마즈 카즈코 그림

 권남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12.5.15. 8500원



  시골살이 여섯 해째가 되는 올해에 집 안팎을 이모저모 많이 손질합니다. 지난 다섯 해는 이 시골마을에 터를 잡는 나날로 ‘집 손질’을 할 겨를이 없도록 살았다면, 올해에는 다른 어느 일보다 집을 손질해서 한결 살기 좋도록 가꾸는 일에 품을 들이는 하루입니다.


  처마 밑에 평상을 새로 짜서 놓고, 마당에 자질구레한 것이 놓이지 않도록 하나하나 치웁니다. 흙을 제대로 만지고, 나무도 함께 만지면서 아이들하고 함께 짓는 살림을 헤아립니다. 어제는 하루 내내 방 한 칸을 새로 꾸미면서 보냈습니다. 책상하고 책꽂이 자리를 바꾸고 묵은 먼지를 훔쳤어요.


  책상하고 책꽂이 자리를 바꾸면서 청소를 하다가 문득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내가 어버이 아닌 아이로 살던 서른 몇 해 앞서에 어머니는 거의 해마다 책상이나 옷장 자리를 바꾸라고 하셨어요. 그때에는 왜 바꾸어야 하는가 하고 그저 성가시거나 힘들다고만 여겼지만, 막상 책상이나 옷장 자리를 바꾸고 보면, 책상이나 옷장 밑이나 뒤에 쌓인 먼지하고 거미줄을 보고 깜짝 놀라요. 예전에 어머니는 해마다 벽종이까지 새로 바르셨는데, 이러면서 묵은 먼지를 털고 새로운 마음이 되도록 이끄셨구나 하고 이제서야 살갗으로 깨닫습니다.



파삭 파삭 파사삭, 어느 날 흙 속에 묻혀 있던 귀여운 알이 깨졌어요. 알에서 나온 건 작고 작은 집을 진 아기 달팽이. (3쪽)



  《아기 달팽이의 집》(비룡소,2012)이라는 그림책을 새삼스레 들여다봅니다. 이토 세츠코 님이 글을 쓰고, 시마즈 카즈코 님이 그림을 그렸어요. 한국에서는 요 열 해 사이에 이르러서야 이 같은 ‘생태 자연 그림책’을 그릴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생태 자연 그림책을 1950년대에도 그렸고,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라고 하던 무렵에도 그렸어요. 그래서 오랜 땀과 품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척 멋진 그림책을 선보여요. 《아기 달팽이의 집》이라는 그림책은 ‘생태 자연 그림책을 빚은 오랜 발자국’에 걸맞을 만큼 무척 매끄럽고 보드라우면서 살가운 손길로 ‘달팽이’랑 ‘흙’이랑 ‘풀벌레’랑 ‘사람이 사는 지구라는 별’을 아늑하게 보여줍니다.



아기 달팽이는 배가 고팠어요. 얼른 흙 밖으로 기어 나와 초록색 나뭇잎을 냠냠 먹었지요. 그런데 어어, 목 뒤에 난 구멍으로 찍 하고 응가가 나오더니 또 배가 꼬르륵꼬르륵. (5쪽)



  마침 삼사월 봄은 달팽이가 깨어나는 철입니다. 다른 풀벌레도 깨어나고, 나비랑 나방도 깨어나며, 먼먼 따스한 곳에서 살던 철새가 바다를 가로질러서 찾아오는 봄이에요. 밭을 갈거나 씨앗을 심으려고 호미질을 하다 보면,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아주 조그마한 달팽이를 볼 수 있어요. 갓 깨어나서 아직 둘레로 퍼지지 않은 채 한자리에 잔뜩 모인 새끼 달팽이 무리를 보면 깜짝 놀라요.


  이런 달팽이 무리를 볼 적에 “얘들아, 우리도 이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을 테니, 너희는 너희대로 다른 풀을 먹으면서 살렴.” 하고 속삭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달팽이는 남새 잎사귀를 갉아먹는 성가신 아이일 수 있어요. 그러나 달팽이는 남새 잎사귀도 다른 풀 잎사귀도 모두 갉지요. 더욱이, 밥찌꺼기도 달팽이가 남김없이 먹어치워요. 이를테면 당근이나 무 꽁당이도 달팽이가 아주 잘 먹어요. 지렁이에 달팽이에 풀벌레에 나비에 애벌레에 파리에 …… 이 모든 아이들이 밭자락에 함께 어우러져서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베풀어 주어요.



아기 달팽이는 달개비꽃도 잔뜩 먹었어요. 그랬더니 점박이 무당벌레가 다가와 말했어요. “아유, 배가 볼록 나왔네. 그렇게 먹다간 집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 (9쪽)



  그림책에 나온 달개비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달개비라, 이 풀은 여름이 되어야 꽃을 피울 텐데? 하기는. 달팽이는 봄에만 깨어나지 않지요. 꾸준히 새로운 아기들이 깨어나지요.


  달개비는 달팽이도 맛나게 먹는 풀일 텐데, 사람한테도 무척 맛나요. 어제 흙을 만지며 살피니 모시 옆에 쇠비름이 함께 올라와요. 떡잎이 돋은 쇠비름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떡잎이 하나같이 이쁘장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쇠비름이나 모시는 날로 즐기는 나물인데, 달개비는 파란 꽃까지 싱그러운 맛이 감도는 나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도 달개비잎이나 달개비꽃을 혀에 얹고 냄새를 맡다가 살살 씹으면 “우와, 달개비 맛이다!” 하면서 맛있다고 해요. 그렇지요, 달개비이니 달개비 맛입니다만, 텃밭에서 얻는 나물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씹을라치면, 하늘이 베풀고 빗물하고 바람이 나누어 주는 선물을 받는구나 하고 느껴요.



어느 날, 점박이 무당벌레와 팔랑팔랑 나비가 찾아왔어요. “우아, 멋진 집이다!” “근사하다! 네가 자란 만큼 집도 커졌구나!” (19쪽)



  그림책 《아기 달팽이의 집》에 나오는 아기 달팽이는 등에 진 집이 차츰 커진다고 합니다. 아기 달팽이는 ‘자꾸 먹느라 몸이 커지’면 집이 작아서 못 들어가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는데, 달팽이를 둘러싼 풀밭 동무들이 “멋진 집!”이라고 외치면서 반겼다고 해요. 바지런히 풀을 갉으며 몸이 자라는 동안 집도 함께 자라는 달팽이라고 해요.


  우리는 어떤 살림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나도 우리 보금자리에서 해마다 차츰차츰 씩씩하게 자라는 어버이나 어른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마음이 자라는 만큼 살림도 자라고, 살림이 자라는 만큼 한결 살가우며 멋진 시골집을 이루는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사월비 소리에 섞이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아침밥을 짓습니다. 2016.4.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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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훔친 꼬마 악마 - 리투아니아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44
고향옥 옮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우치다 리사코 글 / 비룡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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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5



가난한 이웃한테 ‘귀한 것’은 훔치지 않아

― 빵을 훔친 꼬마 악마

 우치다 리사코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고향옥 옮김

 비룡소 펴냄, 2014.10.17. 9000원



  읍내마실을 아이들하고 나간 다음에 집으로 돌아올 적에 두 군데에서 군내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한 곳은 읍내 시외버스역이고, 다른 한 곳은 읍내이면서도 읍내 거의 끝자락입니다. 읍내 시외버스역은 늘 사람이 붐비고 차가 많을 뿐 아니라, 우리가 쉬거나 앉을 만한 자리도 없습니다. 읍내에서 끝자락에 있는 버스역은 자동차가 그리 많이 오가지는 않으면서 읍내 초등학교 옆에 있습니다.


  우리는 으레 읍내 끝자락 버스역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곳에는 둘레에 냇물이 흐르고 풀밭이 있는데, 요즈막 새봄에 큰아이는 이 풀밭에서 ‘네잎토끼풀’을 찾느라 바쁩니다. 잎이 넷인 토끼풀을 찾아서 기쁨을 한가득 누리려는 마음으로 버스가 들어오기 앞서까지 풀밭에 쪼그려앉아서 눈알을 굴려요.


  지난주에 큰아이가 찾은 네잎토끼풀은 큰아이가 내내 손에 쥐고 놀다가 어느새 시들더니 잎이 톡 끊어졌습니다. 오늘 큰아이가 찾은 네잎토끼풀은 큰아이가 더 손에 안 쥐고 아버지한테 건넵니다. 지난주에 큰아이한테 “그 네잎토끼풀을 책 사이에 끼우고 잘 누르면 오래도록 예쁜 모습을 이을 수 있단다.” 하고 말해 주었을 적에는 안 들었지만, 오늘 큰아이는 지난주 일을 겪은 뒤 ‘또 이 네잎토끼풀을 그냥 버리지 않아야겠다’고 느끼면서 바로 아버지한테 주는구나 싶어요.



“야호, 야호! 이것 좀 보세요. 멍청한 나무꾼의 빵을 슬쩍 가져왔어요!” 꼬마 악마는 자랑스럽게 말했어. 그러자 큰 악마들이 불같이 화를 냈지. “네 요놈, 무슨 짓을 한 게냐! 가난한 나무꾼의 귀한 빵을 훔치다니! 당장 가서 잘못을 빌지 못할까!” (6쪽)



  우치다 리사코 님이 글을 쓰고, 호리우치 세이치 님이 그림을 빚은 《빵을 훔친 꼬마 악마》(비룡소,2014)라는 대단히 멋진 그림책을 읽습니다. 일본에서 1979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4년에 나온 그림책인데, 나는 이 그림책이 대단히 멋지다고 느낍니다. 일본사람이 담은 리투아니아 옛이야기 그림책인데, 이 그림책을 보면 ‘일본스러움’뿐 아니라 ‘리투아니아스러움’이 함께 흘러요. 참 마땅한 일일 테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빚은 사람은 일본사람이요, 이야기 바탕은 리투아니아이니까요.


  그나저나 이 그림책이 왜 대단히 멋진 그림책인가 하고 느끼느냐 하면, 나는 이 그림책 겉그림만 보고도 아주 재미나겠구나 하고 느꼈고, 책을 장만해서 처음 받아서 펼칠 적에도 이야 참 재미있네 하고 느꼈으며, 우리 집 두 아이 모두 날마다 한두 차례씩 이 그림책을 펼치면서 깔깔거리며 읽는 모습에서도 참말로 재미있네 하고 생각했어요. 더욱이, 그림책에 나오는 ‘꼬마 악마’는 아주 조그마한 몸집이지만 꾀도 바르고 힘도 세며 슬기로울 뿐 아니라, 아주 착한 마음이에요. 이야기에서는 ‘악마’로 나오지만 더없이 착한 마음이랍니다.



나무꾼이 웃으며 말했어. “빵을 가져왔으니 됐다. 어서 돌아가거라.” “무슨 일이든지 할게요. 시켜만 주세요.” 꼬마 악마가 울음을 터뜨렸어. 나무꾼은 깜짝 놀라 골똘히 생각하더니, 꼬마 악마에게 말했지. “그럼, 나를 따라오너라.” (9쪽)



  그러고 보니까, 리투아니아 옛이야기에 나오는 ‘꼬마 악마’는 참말 ‘악마’입니다. 그런데, 이 꼬마 악마는 마음이 착해요. 개구쟁이에 장난꾸러기라서 ‘멍청한 나무꾼 도시락’인 빵 한 조각을 훔치기는 했는데, ‘수많은 어른 악마’는 이 개구진 장난꾸러기 꼬마 악마를 아주 무시무시하도록 나무랍니다. 얼른 그 빵을 돌려주고 잘못을 뉘우칠 뿐 아니라 나무꾼을 도운 다음에야 ‘악마네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해요.


  이렇게 놓고 보면 악마는 ‘나쁜 짓’을 일삼는 넋이 아니라, ‘바탕은 착한 마음’이면서 ‘나쁘게 사는 사람’한테 그 나쁜 짓 좀 그만하라고 일깨우는 ‘착한 숨결’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악마’라는 이름은 ‘악마가 아닌 악마’한테서 ‘무시무시하게 꾸지람을 들은 사람’이 심통이 나서 붙인 이름일는지 모르지요.



나무꾼이 땅 주인의 허락을 받고 돌아오자마다 꼬마 악마는 서둘러 일을 했어. 커다란 나무들을 모조리 뽑아내고, 물을 단숨에 쭈욱 들이마셨지. 그런 다음, 땅을 평평하게 갈았어. 꼬마 악마는 땅에 보리 씨앗을 골고루 뿌렸어. 나무꾼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지켜보다가 함께 씨앗을 뿌렸지. (14∼15쪽)



  그림책 《빵을 훔친 꼬마 악마》에 나오는 나무꾼 아저씨는 착하고 수더분합니다. 꼬마 악마가 빵을 훔치든 말든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빵이 사라졌어도 그저 한 끼니를 굶고서 조용히 지나갈 만한 마음결입니다. 꼬마 악마가 나무꾼 아저씨한테 꿈을 하나 들어 주겠다고, 무엇이든 시키라고 할 적에도 이 나무꾼 아저씨는 돈을 달라거나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못 쓸 땅’으로 여기는 자리를 꼬마 악마한테 가리키면서 이 자리에 보리를 심는 보리밭으로 가꾸고 싶다고 말할 뿐이에요.


  아이들 사이에서 그림책을 얼핏설핏 보다가, 아이들이 잠든 뒤에 혼자서 가만히 그림책을 더 들여다보다가, 나중에 큰아이가 동생한테 그림책을 읽어 줄 적에 나도 곁에 함께 앉아서 큰아이 목소리로 이 그림책을 새삼스레 자꾸자꾸 다시 들여다보다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꼬마 악마가 내 둘레에서 나한테 해코지를 했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찾아오면 나는 꼬마 악마한테 무엇을 바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여러 날, 여러 달 생각해 보았는데, 나도 이 그림책에 나오는 나무꾼 아저씨하고 비슷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만, 나는 보리밭보다는 숲을 가꾸고 싶다는 말을 했으리라 생각해요. 큰길마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고, 골짜기마다 짙푸른 숲으로 아름다워서 시골사람뿐 아니라 도시 이웃도 숲바람을 즐겁게 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뜻밖에 부자가 된 나무꾼은 눈물 흘리며 기뻐했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꼬마 악마가 말했어. “나무꾼 님, 그런 말 마세요. 이제 나무꾼 님의 귀한 빵을 훔친 저를 용서해 주시는 거죠?” (30쪽)



  가난한 이웃한테 ‘귀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금은보화일까요? 아니지요. 엄청난 보배일까요? 아니지요. 자가용이나 아파트일까요? 아니지요. 은행계좌일까요? 이도 아니지요. 가난한 이웃한테 ‘귀한 것’이란 수수한 아침저녁 한 끼니 밥입니다. 그리고, 수수한 옷 한 벌입니다. 그리고, 이 수수한 밥을 차리는 사랑스러운 손길이요, 이 수수한 옷을 짓는 따사로운 손매예요.


  우리 집 큰아이가 풀밭에 한참 쪼그려앉아서 찾아내는 네잎토끼풀이 대수롭다고 느낍니다. 네잎토끼풀이 아니어도, 아이들이 새봄을 맞이해서 거의 날마다 한 줌 가득 훑어서 까르르 웃고 즐기는 들꽃이 더없이 대수롭다고 느낍니다. 우리 집 마당에 떨어지는 곱고 빨간 동백꽃잎을 아이들이 머리에 얹고서 그야말로 맑게 웃으면서 노는데, 이 동백꽃잎이 참으로 대수롭다고 느낍니다.


  리투아니아라고 하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이야기에 나오는 ‘꼬마 악마’ 이야기란 바로 이 대목을 조용히 밝히지 싶습니다. 우리가 이웃하고 동무 사이에서 아끼면서 보듬을 자리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옛이야기요, 어른이자 어버이라는 나 스스로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살뜰히 보살피면서 하루 살림을 지을 때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밝히는 옛이야기이지 싶어요. 사월을 맞이해서 내린 비가 논을 흠뻑 적시니 해가 떨어질 무렵부터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찹니다. 2016.4.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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