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달팽이의 집 과학 그림동화 36
이토 세츠코 글, 시마즈 카즈코 그림, 권남희 옮김 / 비룡소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6



네가 자란 만큼 집도 커졌구나

― 아기 달팽이의 집

 이토 세츠코 글

 시마즈 카즈코 그림

 권남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12.5.15. 8500원



  시골살이 여섯 해째가 되는 올해에 집 안팎을 이모저모 많이 손질합니다. 지난 다섯 해는 이 시골마을에 터를 잡는 나날로 ‘집 손질’을 할 겨를이 없도록 살았다면, 올해에는 다른 어느 일보다 집을 손질해서 한결 살기 좋도록 가꾸는 일에 품을 들이는 하루입니다.


  처마 밑에 평상을 새로 짜서 놓고, 마당에 자질구레한 것이 놓이지 않도록 하나하나 치웁니다. 흙을 제대로 만지고, 나무도 함께 만지면서 아이들하고 함께 짓는 살림을 헤아립니다. 어제는 하루 내내 방 한 칸을 새로 꾸미면서 보냈습니다. 책상하고 책꽂이 자리를 바꾸고 묵은 먼지를 훔쳤어요.


  책상하고 책꽂이 자리를 바꾸면서 청소를 하다가 문득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내가 어버이 아닌 아이로 살던 서른 몇 해 앞서에 어머니는 거의 해마다 책상이나 옷장 자리를 바꾸라고 하셨어요. 그때에는 왜 바꾸어야 하는가 하고 그저 성가시거나 힘들다고만 여겼지만, 막상 책상이나 옷장 자리를 바꾸고 보면, 책상이나 옷장 밑이나 뒤에 쌓인 먼지하고 거미줄을 보고 깜짝 놀라요. 예전에 어머니는 해마다 벽종이까지 새로 바르셨는데, 이러면서 묵은 먼지를 털고 새로운 마음이 되도록 이끄셨구나 하고 이제서야 살갗으로 깨닫습니다.



파삭 파삭 파사삭, 어느 날 흙 속에 묻혀 있던 귀여운 알이 깨졌어요. 알에서 나온 건 작고 작은 집을 진 아기 달팽이. (3쪽)



  《아기 달팽이의 집》(비룡소,2012)이라는 그림책을 새삼스레 들여다봅니다. 이토 세츠코 님이 글을 쓰고, 시마즈 카즈코 님이 그림을 그렸어요. 한국에서는 요 열 해 사이에 이르러서야 이 같은 ‘생태 자연 그림책’을 그릴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생태 자연 그림책을 1950년대에도 그렸고,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라고 하던 무렵에도 그렸어요. 그래서 오랜 땀과 품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척 멋진 그림책을 선보여요. 《아기 달팽이의 집》이라는 그림책은 ‘생태 자연 그림책을 빚은 오랜 발자국’에 걸맞을 만큼 무척 매끄럽고 보드라우면서 살가운 손길로 ‘달팽이’랑 ‘흙’이랑 ‘풀벌레’랑 ‘사람이 사는 지구라는 별’을 아늑하게 보여줍니다.



아기 달팽이는 배가 고팠어요. 얼른 흙 밖으로 기어 나와 초록색 나뭇잎을 냠냠 먹었지요. 그런데 어어, 목 뒤에 난 구멍으로 찍 하고 응가가 나오더니 또 배가 꼬르륵꼬르륵. (5쪽)



  마침 삼사월 봄은 달팽이가 깨어나는 철입니다. 다른 풀벌레도 깨어나고, 나비랑 나방도 깨어나며, 먼먼 따스한 곳에서 살던 철새가 바다를 가로질러서 찾아오는 봄이에요. 밭을 갈거나 씨앗을 심으려고 호미질을 하다 보면,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아주 조그마한 달팽이를 볼 수 있어요. 갓 깨어나서 아직 둘레로 퍼지지 않은 채 한자리에 잔뜩 모인 새끼 달팽이 무리를 보면 깜짝 놀라요.


  이런 달팽이 무리를 볼 적에 “얘들아, 우리도 이 밭을 갈아서 씨앗을 심을 테니, 너희는 너희대로 다른 풀을 먹으면서 살렴.” 하고 속삭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달팽이는 남새 잎사귀를 갉아먹는 성가신 아이일 수 있어요. 그러나 달팽이는 남새 잎사귀도 다른 풀 잎사귀도 모두 갉지요. 더욱이, 밥찌꺼기도 달팽이가 남김없이 먹어치워요. 이를테면 당근이나 무 꽁당이도 달팽이가 아주 잘 먹어요. 지렁이에 달팽이에 풀벌레에 나비에 애벌레에 파리에 …… 이 모든 아이들이 밭자락에 함께 어우러져서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베풀어 주어요.



아기 달팽이는 달개비꽃도 잔뜩 먹었어요. 그랬더니 점박이 무당벌레가 다가와 말했어요. “아유, 배가 볼록 나왔네. 그렇게 먹다간 집에 못 들어갈지도 몰라.” (9쪽)



  그림책에 나온 달개비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달개비라, 이 풀은 여름이 되어야 꽃을 피울 텐데? 하기는. 달팽이는 봄에만 깨어나지 않지요. 꾸준히 새로운 아기들이 깨어나지요.


  달개비는 달팽이도 맛나게 먹는 풀일 텐데, 사람한테도 무척 맛나요. 어제 흙을 만지며 살피니 모시 옆에 쇠비름이 함께 올라와요. 떡잎이 돋은 쇠비름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떡잎이 하나같이 이쁘장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쇠비름이나 모시는 날로 즐기는 나물인데, 달개비는 파란 꽃까지 싱그러운 맛이 감도는 나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도 달개비잎이나 달개비꽃을 혀에 얹고 냄새를 맡다가 살살 씹으면 “우와, 달개비 맛이다!” 하면서 맛있다고 해요. 그렇지요, 달개비이니 달개비 맛입니다만, 텃밭에서 얻는 나물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씹을라치면, 하늘이 베풀고 빗물하고 바람이 나누어 주는 선물을 받는구나 하고 느껴요.



어느 날, 점박이 무당벌레와 팔랑팔랑 나비가 찾아왔어요. “우아, 멋진 집이다!” “근사하다! 네가 자란 만큼 집도 커졌구나!” (19쪽)



  그림책 《아기 달팽이의 집》에 나오는 아기 달팽이는 등에 진 집이 차츰 커진다고 합니다. 아기 달팽이는 ‘자꾸 먹느라 몸이 커지’면 집이 작아서 못 들어가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는데, 달팽이를 둘러싼 풀밭 동무들이 “멋진 집!”이라고 외치면서 반겼다고 해요. 바지런히 풀을 갉으며 몸이 자라는 동안 집도 함께 자라는 달팽이라고 해요.


  우리는 어떤 살림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나도 우리 보금자리에서 해마다 차츰차츰 씩씩하게 자라는 어버이나 어른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마음이 자라는 만큼 살림도 자라고, 살림이 자라는 만큼 한결 살가우며 멋진 시골집을 이루는가 하고 되새겨 봅니다. 사월비 소리에 섞이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아침밥을 짓습니다. 2016.4.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