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탄카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7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글, 타티야나 코르메르 그림, 이수경 옮김 / 살림어린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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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7



개 한 마리는 ‘새 삶’ 찾는 홀로서기를 할까?

― 카시탄카

 안톤 체호프 글

 타티야나 코르메르 그림

 우시경 옮김

 살림어린이 펴냄. 2015.8.25. 12000원



  안톤 체호프 님이 쓴 글에 타티야나 코르메르 님이 그림을 넣은 《카시탄카》(살림어린이,2015)를 가만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카시탄카’는 개입니다. 꼭 여우를 닮았다고 하는 개예요. 그런데 이 개 카시탄카는 처음 태어나서 자란 집에서 그리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밥을 주는 아저씨도, 그 집 아이도 카시탄카를 아끼거나 따스히 보살피기보다는 함부로 다루고 마구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우를 닮은 개 카시탄카는 그 집에서 떠나지 않아요. 그 집 말고는 다른 보금자리나 삶자리를 그리지 못합니다. 오직 그 집에서만 지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여겨요.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씩씩하게 떠날 줄 모르고, 이래저래 시달리면서도 새로운 길로 나설 줄 모릅니다.


  어쩌면 카시탄카를 낳은 개도 카시탄카와 같은 삶을 보냈을 수 있어요. 카시탄카 어미를 낳은 어미도 모두 똑같은 삶을 보냈을 수 있어요. 사람 눈으로 보자면 ‘사람 곁에 있는 짐승’이지만, 짐승으로서는 집에 얽매인 채 다른 곳으로 씩씩하게 떠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목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긴긴 겨울밤, 예전 주인이 대패질을 하거나 소리 내어 잡지를 읽을 때면 아들 페듀시카와 장난치곤 했던 일을 떠올렸지요. 페듀시카는 카시탄카를 작업대 밑에서 끌어내기 위해 카시탄카의 뒷발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즐겼습니다. 얼마나 힘껏 당겼는지 카시탄카는 눈앞이 노래지고 온몸 마디마디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 또 어떤 때는 종을 치듯이 꼬리를 힘껏 잡아당겨 카시탄카가 비명을 지르게 했고, 담배 냄새도 강제로 맡게 했습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장난은 …… (10쪽)



  그림책이기 앞서 짧은소설로 나온 이야기 ‘카시탄카’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1860년에 태어나 1904년에 숨을 거둔 안톤 체호프 님이 러시아에서 겪은 삶이나 그무렵 러시아에서 마주하던 사람들 삶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사람들을 모질게 다루는 전제 군주와 땅임자를 생각해 봅니다. ‘땅을 짓지 않아’도 계급하고 신분하고 돈을 물려받아서 ‘땅을 짓는 이’를 얼마든지 부리거나 괴롭히던 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림책 《카시탄카》에 나오는 개 한 마리는 그저 개 한 마리를 보여줄 뿐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개 한 마리 이야기를 빌어서 러시아 사회를 이야기하고, 러시아 정치를 다루며, 모진 사회와 정치에 억눌린 채 그만 홀로서기를 잊거나 잃고 만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셈이라고 느껴요.



한 달 뒤에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표도르 티모페이치를 대신할 정도로 잘할 수 있었지요. 아줌마는 열심히 배웠고 스스로도 자신의 능수능란한 동작에 만족했습니다. 훈련용 밧줄에 묶여 혀를 빼고 달리는 것, 둥근 테를 뛰어넘는 것, 나이 든 표도르 티모페이치를 타고 달리는 것은 아줌마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22쪽)



  《카시탄카》에 나오는 카시탄카는 어느 날 길을 잃습니다. 여느 때처럼 ‘주인 아저씨’를 따라서 집 밖으로 나왔다가 군악대 행진을 보고는 그만 넋이 나가라 구경하다가 주인을 잃어요.


  길도 집도 모두 잃은 카시탄카는 그만 떠돌이가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모릅니다. 카시탄카를 부리던 사람도 이 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길조차 두지 않습니다.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보살피지도 않은 채 그저 먹이만 주었을 뿐이니까요.


  어쩌면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가 어디로 사라진지도 모르거나 아예 생각조차 안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고달프거나 힘겹게 살림을 꾸리는지를 모르는 전제 군주나 독재자처럼 말이지요.


  길도 집도 없이 배고픈 카시탄카는 한길에서 어떻게 먹이를 찾아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어디에 깃들어 자야 하는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따스한 손길을 만나요. 예전 주인하고는 너무도 다르게 따스한 손길을 만나지요.


  다만, 새로운 주인은 ‘서커스’를 하는 사람입니다. 서커스를 하는 사람은 카시탄카를 거두어 알뜰히 보살피다가 재주를 가르칩니다. 카시탄카는 예전과 달리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터전에서 즐겁게 재주를 익힙니다. 새로운 동무를 사귀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나날을 누려요. 오직 한 가지가 없다면 ‘스스로 일어서서 스스로 살아가기’를 할 마음이 없다뿐입니다.



카시탄카는 두 사람의 등을 바라봤습니다. 마치 자신이 오래전부터 그들 뒤를 따라가고 있었고, 삶이 단 한순간도 자신을 내버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카시탄카는 그 순간 지저분한 벽지가 있는 방, 거위, 표도르 티모페이치, 맛있는 식사, 훈련, 서커스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마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나긴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39쪽)



  그림책 《카시탄카》는 카시탄카가 서커스를 하는 새로운 주인 곁을 떠나서 예전 주인한테 돌아가는 줄거리로 끝을 맺습니다. 서커스 공연 무대에 옛 주인하고 아들이 보러 왔고, 옛 주인 아들은 카시탄카를 알아봅니다. 카시탄카는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아무 걱정이 없이 살았지만, 걱정도 괴롭힘도 시달림도 없는 새로운 터전을 내버리고 예전 주인한테 달려갑니다.


  카시탄카는 아무래도 예전 주인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는 마음결이었지 싶습니다. 스스로 옭매인 삶인데 옭매인 줄 모르는 마음결이기 때문이겠지요. 스스로 설 줄 모르고 남이 시키는 몸짓만 하면서 밥을 얻어먹는 데에서 삶을 그치는 터라, 새롭게 나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할 만해요.


  그러면, 나는 얼마나 홀로서기를 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나는 굴레나 쳇바퀴에 안 갇힌 삶이라고 할 만한가 하는 대목을 되새깁니다. 내가 걷는 길은 그야말로 스스로 다스리거나 보살피거나 가꾸는 삶길이라고 할 만하느냐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안톤 체호프라는 분이 살던 백 몇 해 앞선 러시아하고 2010년대 오늘날 한국은 얼마나 다르거나 같은가 하고 가늠해 봅니다. 카시탄카 이야기를 읽는 나는 얼마나 ‘나다운 새로운 살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2016.4.1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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