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대문 앞 흰민들레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이들이 아버지 따라 쭐래쭐래 대문 앞으로 온다. 그런데 두 아이 모두 맨발이다. 어라? 얘들아, 신 좀 꿰고 놀면 안 되겠니?


  맨발이 그리 좋은가. 맨발일 때에 한결 즐거우며 홀가분한가? 그래, 흙땅 디디며 놀 때에는 맨발이 참 좋겠지. 그렇지만, 마당이건 고샅이건 오늘날에는 몽땅 시멘트바닥이잖니. 너희들 발 디딜 자리가 모두 고운 흙밭 풀밭이기를 꿈꾼다. 4346.4.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4-26 23:27   좋아요 0 | URL
아기들의 발,은 어쩜 이렇게 이쁠까요~~^^
근데 발마다 사름벼리와 산들보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숲노래 2013-04-27 06:14   좋아요 0 | URL
발이 참 어여쁘지요.
어른도 예쁜걸요~~
 

집꽃 기다리기

 


  마당이 있고, 꽃밭이 있으며, 텃밭이랑 뒷밭이 있으니, 집안에 꽃그릇 따로 없어도 눈이 환하고 즐겁다. 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면 온통 푸른 물결이요, 사이사이 꽃봄이 무르익는다. 새봄에는 새봄대로 새 꽃송이 펼쳐지고, 한봄 무르익으면서 한봄에 피어나는 꽃나무 꽃망울 한껏 터질락 말락 한다.


  흙 밟는 마당이 있어, 흙에서 풀이 자란다. 풀 자라는 밭자락 있어, 밭 둘레로 열매나무 쑥쑥 크며 새잎과 새꽃 베푼다. 꽃이 피어나는 시골집에서 꽃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봉오리와 꽃망울 찬찬히 지켜보는 맛 남다르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꽃몽우리 시나브로 터지려는 모습을 바라본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였다가 천천히 겨울눈 맺더니, 이윽고 겨울눈 열리고 푸른 잎사귀 돋으면서, 마알간 꽃잎 벌어진다. 하루하루 아주 더디 이루어지는 꽃잔치이다.


  시골집은 풀집이면서 꽃집이다. 시골집에서 피어나는 꽃은 시골꽃이면서 집꽃이다. 시골마을은 풀마을이면서 꽃마을이다. 시골마을에서 흐드러지는 꽃은 마을꽃이면서 또 무슨 꽃일까. 우리 집 밭자락에서 자라는 모과나무에 바야흐로 발그락발그락 새 꽃송이 벌어진다. 하루쯤 있으면 활짝 터질까. 이틀쯤 있으면 한꺼번에 꽃잔치일까. 사흘쯤 있으면 우리 집에 모과꽃내음 물씬 감돌까.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4-22 02:09   좋아요 0 | URL
아 모과꽃 몽우리가 이렇게 생겼군요.
어서 활짝 핀 모과꽃을 보고 싶네요. ^^

숲노래 2013-04-22 02:35   좋아요 0 | URL
활짝 핀 데는 사진 찍기 힘든 데만 있어요 ㅠ.ㅜ
하루나 이틀 뒤에는 사진 찍기 좋은 자리에도
활짝 피리라 생각해요!
 

큰큰아이

 


  머리카락 좀 짧게 깎은 옆지기를 데리고 아이들과 다니노라면, 가끔 ‘애 엄마’ 어디 있느냐 묻는 소리를 듣는다. 옆지기가 옆지기 아닌 ‘큰아이’처럼 보이기도 하는가 보다. 참 딱하구려, 하고 대꾸할 수는 없어, 그저 빙그레 웃고 만다. 집으로 돌아와 이런 집일 저런 집살림 꾸리노라면, 옆지기는 옆지기이면서 우리 집 큰큰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곧, 이 집 아버지는 아이 둘 아닌 아이 셋 거느리면서 살아간달까. 이 집 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돈을 벌러 바깥일을 한다며 먼 마실 다녀올라치면, 옆지기가 아이들 보살피도록 맡긴다기보다, 큰큰아이한테 아이들 맡기는 셈이라고 할까.


  큰큰아이인 터라 이모저모 맡기기 어려울 수 있다. 큰큰아이라서 이모저모 알뜰살뜰 하라 이를 수 없다. 한편, 큰큰아이라니까 작은 일 하나 하더라도 어여쁘고 반갑다. 큰큰아이인 만큼 아이들하고 한결 가까우면서 살가이 삶을 누리고 환하게 빛나기도 한다고 느낀다.


  큰큰아이가 미국으로 람타 공부를 하러 스물이틀 다녀오고 나서 스무 시간 즈음 고요히 잔다. 아무렴, 잠을 거의 못 자며 공부를 하고 돌아왔으니 이만큼 잘 만하다. 이듬날에도 또 이렇게 잘는지 모른다. 큰아이가 저녁밥 먹으며 아버지한테 여쭌다. “왜 어머니는 잠만 자? 같이 안 놀고?” 큰아이야, 네 큰큰언니는 많이 힘들어서 그런단다. 그래서 저녁도 못 먹고 저렇게 드러누워 몸을 쉰단다. 밥 잘 먹고 조금 더 논 다음, 우리 같이 즐겁게 자자꾸나. 4346.4.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5분 풀내음

 


  꼭 5분이면 한 끼니 먹을 풀 실컷 뜯는다. 1분 동안 한 가지 풀을 뜯으니, 5분이면 다섯 가지 풀을 뜯는다. 10분 들이면 열 가지 풀을 뜯는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면, 다섯 가지 풀을 뜯더라도 5분 아닌 1분이면 넉넉하달 수 있다. 왜 한 가지 풀 뜯는 데에 1분 들이느냐 하면, 풀을 뜯으며 풀내음 맡고 풀놀이 즐기니까 1분씩 들인다.


  미나리 줄기 한 움큼 꺾는 데에는 몇 초면 넉넉하다. 미나리 뜯기 앞서 흙도랑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내음 맡는다. 민들레 잎사귀 몇 뜯는 데에는 참말 몇 초면 넉넉하다. 민들레 잎사귀 뜯기 앞서, 얘야 너희들 하얀 꽃 소담스레 피우는데 이렇게 잎사귀 뜯어서 미안해. 맛있게 먹으며 예쁘게 살아갈게. 이야기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뜯는다. 갈퀴나물 솎으면서 또 말을 건다. 너희들 곧 꽃 피우려고 하는데, 꽃망울까지 자꾸 뜯어서 먹는구나. 너희는 우리 식구들 몸으로 스며들면서 우리 몸속에서 새로운 꽃으로 피어난단다. 쑥잎 뜯는다. 너희 쑥은 몇 천 해 몇 만 해를 살며 또 오늘 좋은 밥거리가 되는지 궁금하구나. 국에도 넣고 풀로도 먹고, 참 고맙다. 별꽃나물 뜯고, 봄까지꽃나물 뜯는다. 싱그러이 잎사귀 통통하게 오르는 정구지를 뜯는다. 꽃마리랑 좀꽃마리 알맞게 뜯는다. 이듬해부터는 제비꽃 잎사귀도 뜯을 생각이다. 올해까지는 제비꽃을 거의 그대로 둔다. 조금 더 퍼지렴. 조금 더 널리 퍼지렴. 이듬해에 널리널리 우리 집 둘레에 잔뜩 퍼지면 그때부터 너희도 맛나게 먹으마.


  밥물 올린 냄비 불을 끄고, 국물 올린 냄비 거의 다 끓을 무렵, 꼭 5분 들여 풀을 뜯는다. 국물 끓이는 냄비 불을 끈 뒤 쑥을 헹구어 넣는다. 보글보글 김 나오는 국냄비에서 쑥은 푸른 빛 곱게 살아나며 쑥내음을 국물 깊이 퍼뜨린다.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밥과 멸치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와 함께 씹어서 주는 풀밥을 먹는다. 큰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게 풀을 씹어서 먹는다. 풀물 짜서 먹어도 좋고, 이렇게 날풀 냠냠 씹어서 먹어도 좋지. 풀을 먹는 우리들은 모두 풀사람이다. 4346.4.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4-15 11:20   좋아요 0 | URL
쑥국, 참으로 향긋하니 참 맛있겠습니다.
저도 먹고 싶네요~^^

숲노래 2013-04-15 16:59   좋아요 0 | URL
네, 시장에서 즐겁게 쑥 장만해서 드셔 보셔요.
쑥내음 피어나는 쑥국으로 몸 따뜻해집니다~ ^^
 

무릎글

 


  큰아이 갓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나는 늘 큰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면서 글을 썼다. 큰아이 제법 크면서도 아버지 무릎에 드러누워 놀거나 자기를 좋아한다. 작은아이 태어나니 아버지 무릎은 으레 작은아이 차지 된다. 큰아이는 좀처럼 아버지 무릎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작은아이가 어디 다른 데에서 놀거나 낮잠을 잘라치면, 살그마니 아버지 무릎으로 꼬물꼬물 기어든다. 이러면서 빙그레 웃는다. 그래, 아버지 무릎은 네 잠자리이지. 오랜만에 너도 아버지 무릎을 차지하렴.


  여섯 살까지 먹은 큰아이는 밤에 잠을 안 깬다. 얼마나 고마운지. 세 살까지만 하더라도 밤잠 제대로 들지 못해 자꾸자꾸 깨서 밤새 달래며 토닥였으나, 이제 아주 씩씩하고 다부진 큰아이는 밤에 새근새근 잘 잔다. 큰아이 달래느라 새벽동 훤하게 트던 날 하루이틀 아닌 한 해 내내였는데.


  많이 어린 작은아이는 밤에 곧잘 깬다. 그러면, 아버지는 깊은 밤이 아니고서야 글을 쓸 겨를이 없으니, 작은아이를 무릎에 누여 토닥토닥 재우면서 글을 쓴다. 이동안 큰아이가 깨지 않으니 아주아주 고맙다. 두 아이 모두 밤잠을 깨서 칭얼거리면 둘 다 무릎잠 재워야 하는데, 두 아이를 무릎잠 재우기에 아버지 무릎은 살짝 좁다.


  아이들 무릎잠 재우면서 쓰는 글이니 무릎글 될까. 나는 언제까지 무릎글 써야 할까. 작은아이가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자라면 이제 무릎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아버지 무릎에서 벗어나 저희 두 다리로 힘차게 이 땅 디디며 뛰놀 때에는 나는 어떤 글 쓰는 아버지 삶 누리려나. 4346.4.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