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풀내음
꼭 5분이면 한 끼니 먹을 풀 실컷 뜯는다. 1분 동안 한 가지 풀을 뜯으니, 5분이면 다섯 가지 풀을 뜯는다. 10분 들이면 열 가지 풀을 뜯는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면, 다섯 가지 풀을 뜯더라도 5분 아닌 1분이면 넉넉하달 수 있다. 왜 한 가지 풀 뜯는 데에 1분 들이느냐 하면, 풀을 뜯으며 풀내음 맡고 풀놀이 즐기니까 1분씩 들인다.
미나리 줄기 한 움큼 꺾는 데에는 몇 초면 넉넉하다. 미나리 뜯기 앞서 흙도랑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내음 맡는다. 민들레 잎사귀 몇 뜯는 데에는 참말 몇 초면 넉넉하다. 민들레 잎사귀 뜯기 앞서, 얘야 너희들 하얀 꽃 소담스레 피우는데 이렇게 잎사귀 뜯어서 미안해. 맛있게 먹으며 예쁘게 살아갈게. 이야기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뜯는다. 갈퀴나물 솎으면서 또 말을 건다. 너희들 곧 꽃 피우려고 하는데, 꽃망울까지 자꾸 뜯어서 먹는구나. 너희는 우리 식구들 몸으로 스며들면서 우리 몸속에서 새로운 꽃으로 피어난단다. 쑥잎 뜯는다. 너희 쑥은 몇 천 해 몇 만 해를 살며 또 오늘 좋은 밥거리가 되는지 궁금하구나. 국에도 넣고 풀로도 먹고, 참 고맙다. 별꽃나물 뜯고, 봄까지꽃나물 뜯는다. 싱그러이 잎사귀 통통하게 오르는 정구지를 뜯는다. 꽃마리랑 좀꽃마리 알맞게 뜯는다. 이듬해부터는 제비꽃 잎사귀도 뜯을 생각이다. 올해까지는 제비꽃을 거의 그대로 둔다. 조금 더 퍼지렴. 조금 더 널리 퍼지렴. 이듬해에 널리널리 우리 집 둘레에 잔뜩 퍼지면 그때부터 너희도 맛나게 먹으마.
밥물 올린 냄비 불을 끄고, 국물 올린 냄비 거의 다 끓을 무렵, 꼭 5분 들여 풀을 뜯는다. 국물 끓이는 냄비 불을 끈 뒤 쑥을 헹구어 넣는다. 보글보글 김 나오는 국냄비에서 쑥은 푸른 빛 곱게 살아나며 쑥내음을 국물 깊이 퍼뜨린다.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밥과 멸치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와 함께 씹어서 주는 풀밥을 먹는다. 큰아이는 스스로 씩씩하게 풀을 씹어서 먹는다. 풀물 짜서 먹어도 좋고, 이렇게 날풀 냠냠 씹어서 먹어도 좋지. 풀을 먹는 우리들은 모두 풀사람이다. 4346.4.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