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1.7.

숨은책 615


《살길 찾은 동촌마을》

 소진탁 글

 안신영 엮음

 대한기독교계명협회

 1956.7.25.첫/1958.6.10.두벌



  지난날 나리(양반) 가운데 아주 드물게 호미·낫·쟁기를 쥔 사람이 있습니다만, 거의 모두는 임금바라기를 하며 먹물꾼에 머물렀어요. 임금이나 벼슬아치는 호미·낫·쟁기를 모릅니다. 쥔 적이 없고 볼 일마저 없어요. 오늘날 나라지기(대통령)를 비롯해 벼슬꾼(정치인·공무원)에 글꾼도 호미·낫·쟁기를 안 쥐고 모릅니다. 꽃그릇(화분)하고 땅은 달라요. 꽃그릇을 건사하더라도 해바람비를 맞이하는 땅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꽤 오래도록 ‘어리석은 시골을 일깨우’려는 글바치는 ‘글도 책도 모르는 시골사람’을 내려다보듯 나무라고 이끌려 했어요. 그런데 예부터 흙지기는 밥옷집을 손수 건사했고, 말조차 손수 지은 사투리를 썼어요. 이와 달리 임금·벼슬꾼·글바치는 중국·일본을 섬기며 한문·한자말을 외웠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 똑똑하다는 이들은 서울바라기를 하면서 시골을 떠났고, 시골사람을 바보로 여기면서 새마을바람 따위를 일으켜 비닐에 풀죽임물(농약)을 옴팡 쓰도록 내몰았어요. ‘덧벌레(기생충)’를 다스리는 줄거리인 《살길 찾은 동촌마을》은 시골사람이 배고프다며 아무것이나 주워먹는다고 탓합니다. 흙이나 샘물이나 풀꽃나무가 나쁠 수 있을까요? 나쁘다면 숲을 망가뜨린 서울일 텐데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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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7.

숨은책 766


《즐거운 농촌살림》

 고경숙 글

 국련군사령부 주한경제조정관실·기술협조부 지역사회개발국·백조사

 1958.3.



  지난날에는 서울조차 임금집(궁궐)을 빼면 모두 시골입니다. 오늘날에는 시골조차 읍내는 서울을 닮고 면소재지마저 잿빛집(아파트)이 들어섭니다. 지난날에는 나라님이라 해도 시골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살펴야 했다면, 오늘날에는 나라님도 벼슬아치도 글바치도 시골살림하고는 등집니다. 날마다 숱한 책이 쏟아지지만 이 가운데 시골사람이 시골빛을 가꾸는 어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꾸러미는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숲책(생태환경책)조차 서울사람이 서울(도시)에서 푸른길을 잊지 않도록 다잡는 데에서 그쳐요. 《즐거운 농촌살림》은 ‘국련군사령부’에서 펴낸 책이기에 수수께끼입니다. ‘국련군사령부(1951.2.15.∼1951.5.10.)’는 한겨레가 둘로 갈려 피비린내가 나도록 싸우던 무렵, 북녘에 들어선 ‘유엔(UN)’ 벼슬터입니다. 고작 석 달 동안 북녘에 있던 벼슬터에서 낸 책이라면 1951년판이어야 할 텐데 1958년 3월에 찍었다고 적혀요. 그러나 1951년에 처음 나온 판을 그 뒤에도 꾸준히 새로 찍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살림돈으로는 이만 한 책을 엮어나 내기 벅찼어도 유엔에서 이바지했으면 넉넉히 낼 만했을 테고, 퍽 오래도록 시골살림에 이바지할 수 있겠지요. 즐겁기에 살림이고, 사랑으로 가꾸며 푸른 시골살림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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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5.

숨은책 762


《벼룩의 간》

 위기철 글

 이희재 그림

 세계

 1989.4.25.



  불수레(지옥철)가 괴로워 1995년 4월 5일부터 제금을 났습니다. 인천하고 서울을 오가는 칙폭이(전철)는 한 칸에 1000이 넘는 손님을 태우고, 주안나루부터 미는놈(푸쉬맨)까지 있습니다. 제금나는 살림돈은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벌고, 싸움터(군대)를 다녀오면 열린배움터(대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 틈새일(알바)을 바지런히 했습니다. 한국외대 배움책숲(구내서점)에서도 일했는데, 책집일꾼으로서 책을 사면 책집지기님은 ‘책집에 들어온 값(도매값)’으로 팔아 주었습니다. “여태 일한 사람 가운데 교재 아닌 책을 산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하더군요. ‘마침종이(대학졸업장) 없는 앞날’을 그리자니 5원부터 아낄 노릇입니다. 으레 굶고 책값하고 종이값(1인 소식지 복사하는 값)을 빼고는 아예 안 씁니다. 떨어진 붓(연필·볼펜)을 줍고, 길에 나둥구는 쪽종이(광고지)도 주워 뒤쪽에다가 글을 썼어요. 《벼룩의 간》을 장만해서 읽고는, 싸움터에 끌려가기 앞서 뒷내기(후배)한테 빌려주었더니 글월을 곁들여 돌려주더군요. 삶이란, 일이란, 오늘이란 무엇일까요. 벼룩간을 빼먹는 나라에서 푸른꿈으로 어깨동무할 길은 어떻게 찾을까요. 스물여섯 달 동안 ‘사람을 바보로 밟는 곳’에서 마음을 참하게 건사하자고 다독였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1995년 그때에는 뒷종이(이면지)로 삼으려고

길에서 주워 건사하던 쪽종이(광고지)인데

이제 와 돌아보니

재미난(?) 뒷자취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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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5.

숨은책 761


《詩人의 마을》

 정태춘

 성음사

 1985.3.10.



  인천하고 서울을 오가는 칙폭이(전철)에 미닫이(창문)만 있고 바람이가 없던(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무렵, 이 길을 새벽하고 저녁마다 오가자니 죽을맛이었습니다. 길삯도 많이 들고, 밀리고 밟히고 눌리니 몸마음이 너덜너덜합니다. 1994년은 날마다 불수레(지옥철)에서 납작오징어가 되면서 “나랏놈은 이 불수레를 안 탈 테지? 그놈들이 탄다면 불수레를 그냥 두겠어? 아니, 불수레인 줄 아니까 사람들을 더 옥죄려고 등돌릴까? 길들이려고 말이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은 “아, 이래서 얼른 인부수(인천·부천·수원)를 떠나 서울로 가야 한다고 꿈꾸겠구나. 서울에서 살면 걷거나 자전거로도 일터를 오갈 테니까.” 싶어요. ‘서울로(in Seoul)’를 부추기는 판입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같은 말을 누가 퍼뜨렸는지 괘씸했습니다. 헌책집에서 《詩人의 마을》을 보았습니다.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펴는 그 ‘정태춘’ 노래를 콩나물종이(악보)에까지 얹어서 담은 꾸러미인 줄 알아차리면서 “이분은 시골 평택에서 나고자란 삶을 서울에서도 노랫가락에 담았구나” 싶어 새로웠습니다. 몸이 어디 있더라도 마음을 푸르게 다스릴 노릇이더군요.


내 고향 집 뒷들의 해바라기 울타리에 기대어 자고 / 담 너머 논둑길로 황소 마차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 음, 무너진 장독대 틈 사이로 음, 난장이 채송화 피우려 / 음, 푸석한 슬레트 지붕 위로 햇살이 비쳐 오겠지 / 에헤야, 아침이 올게야 / 에헤야, 내 고향 집 가세 (고향 집 가세/154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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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107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

 김수미 글

 샘터

 1987.10.10.



  군산 말랭이마을 한켠 ‘채만식 글돌(문학비)’하고 언덕받이 마을책집 〈봄날의 산책〉 사이는 ‘김수미 길’입니다. 예나 이제나 새뜸(신문·방송)에서는 시골살이를 거의 안 다루는데, 나라가 온통 서울바라기(도시화·도시집중)이니 눈여겨보는 사람이 드물고, 속깊이 헤아리려는 마음도 줄어요. 이러다 그저 귀퉁이 같은 〈전원일기〉가 태어났고, 여기에서도 귀퉁이 몫이던 ‘일용 엄니’가 빛났습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색시도 아줌마도 아닌 할머니로 꾸며야 하던 김수미 님은 처음에 몹시 뿔난 마음이었다지만 부아를 삭이고서 ‘두고봐, 누구도 생각 못한 연기를 보여주겠어’ 하고 별렸다더군요. 구석자리 작은 할머니 몫을 참말로 어릴 적부터 늘 보던 마을 할매 모습을 떠올려 살려내면서 〈전원일기〉도 김수미 님도 새삼스레 돋보였어요. 이런저런 속내는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에 환히 드러납니다. 바닥을 치는 삶에서 별님을 그리며 걸어온 나날은 응어리를 이슬로 바꾼 손빛 같군요.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군것질할 돈을 조르던 작은아이는 어느새 너털웃음을 짓는, 참말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나는 대본을 받아들면 사랑하는 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곱다랗게 분 단장하는 여인네의 기분을 가져본다. (184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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