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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2


《삶의 노래》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열아홉 사람

 피천득 옮김

 동학사

 1994.12.20.



  2019년 어느 날 광주 어느 헌책집에 들러서 책을 돌아보다가 《삶의 노래》를 만났습니다. 1994년에 나온 책이지만 그무렵에는 이런 갈래 책을 안 들췄습니다. 스물 몇 해 만에 새삼스레 눈에 뜨여 집어들어 펴자니 안쪽에 ‘도서 열독허가증’이란 누런종이가 붙습니다. 뭔 종이인가 하고 살피니 ‘교무과장’이란 이름이 보이고, ‘1995.2.13. 반납’이란 글씨가 찍힙니다. 아, 사슬터(감옥)에서 읽힌 책이로군요. 어떤 잘못으로 사슬살이를 하는 이들도 책을 만나도록 꽤 애쓴다고 들었는데, 나라(교도소)에서 들여보낸 책 가운데 하나였지 싶어요. 사슬터에서는 부드럽고 곱고 착한 이야기를 담은 책만 들인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깃든 사람이 마음으로 부드럽고 고우며 착한 길을 가기를 바라는 뜻일 테지요. 2000년 언저리에 《교정》이란 달책에 우리말 이야기를 이태 남짓 실은 적이 있습니다. 사슬터에 깃든 분한테 ‘우리말을 부드러이 쓰면서 마음을 달래는 길’을 밝혀 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 기꺼이 썼는데요, 마음을 부드러이 달래는 말길은 어디에서나 활짝 열면 좋겠어요. 배움터도 사슬터도, 여느 보금자리나 일터도, 어렵거나 딱딱한 말씨가 아닌 삶에서 짓는 사랑스러운 말꽃으로 마주한다면 이 별은 참말 아름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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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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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6


《버림받은 사람들》

 표문태 엮음

 중원문화

 1987.12.30. 



  어느덧 제 나이는 ‘출판사 편집장’도 아닌 ‘출판사 대표’쯤 되는 자리예요. 적잖은 또래나 동생은 ‘대학 교수’도 하고, 여느 배움터라면 ‘교감’에 가까운 나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나이를 굳이 빗대었는데, ‘장·대표·교수·교감·교징’ 같은 자리에 다가서기 앞서까지는 이래저래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 이런 자리에 가까이 이르거나 이 자리에 앉고 난 뒤에는 어느새 입을 싹 씻어요. 암말을 안 해요. 아무 목소리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숱하게 치르면서 “무슨 박사”나 “무슨 교수”나 “무슨 사장”이란 이름을 밝히는 이를 아예 안 믿는 나날입니다. 쇠밥그릇을 붙드는 사람한테는 이웃이나 동무가 없거든요. 《버림받은 사람들》은 ‘징용 한국인 원폭 피해자 수기’를 그러모읍니다. 2010년이나 2020년이 아닌 1987년에 이런 책을 묶었습니다. 엮은이 표문태 님은 나라나 들꽃모임(시민단체) 도움손이나 도움돈 없이 오롯이 홀로 피땀을 바쳐 이런 일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표문태 님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버림받은 글님”입니다. 일찍부터 ‘가난하고 따돌림받고 아프고 억눌리고 짓밝히고 슬프고 목소리를 못 내는 사람’을 이웃이며 동무로 삼아서 붓으로 옮겼거든요. 앞으로는 “사랑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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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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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4


《朝鮮時調集》

 최영해 엮음

 정음사

 1946.



  스스로 노는 어린이는 놀이노래를 스스로 짓습니다. 가락도 말도 스스로 붙여요. 지난날 ‘오락실’이나 오늘날 ‘인터넷게임’을 하고 만화영화를 보는 어린이는 놀이노래를 스스로 안 짓습니다. 가락도 말도 ‘오락실이나 인터넷게임이나 만화영화를 만든 어른이 지은’ 대로 따라서 부르며 길듭니다. 제가 마을이며 골목에서 동무들하고 얼크러지며 뛰놀던 1980년대 끝자락까지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어린이 스스로 지은 놀이노래를 들었으나, 어느새 이 놀이노래는 ‘골목놀이가 감쪽같이 사라져야 하’면서 나란히 사라졌습니다. 누가 가르쳐야 노는 아이가 아닌, 누가 알려줘야 노래하는 아이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날갯짓하는 아이예요. 《朝鮮時調集》은 총칼에 짓밟히던 굴레에서 벗어나며 비로소 태어난 책입니다. 값지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꾸러미에 담은 노래(시조)를 읽다 보면 어쩐지 삶하고 너무 동떨어져요. 아무래도 ‘시조’는 흙을 짓거나 삶을 짓거나 사랑을 짓는 수수한 자리가 아닌, 벼슬이나 임금 곁에서 맴도는 글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총칼굴레에서 벗어난 뒤 ‘시골노래 모으기(농요·민요 채록)’나 ‘어린이 놀이노래 갈무리’를 안 했습니다. 더러 모으더라도 책으로는 거의 안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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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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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58


《韓國의 軍事革命, 5·16이 이르기까지》

 지헌모 엮음

 대양출판사

 1961.7.5.



  총칼을 앞세운 이들은 스스로 ‘혁명’이란 이름을 내걸고, 사람들이 ‘혁명정부’란 말을 쓰도록 재갈을 물렸습니다. 들꽃사람은 참 오래도록 이 말을 듣거나 이 글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러다가 2000년으로 접어들 무렵 달종이에서 ‘5·16’이 빠져나가고 ‘군사쿠테타’란 이름이 자리잡는데요, 쉰 해란 나날이 걸린 셈입니다. 2020년에 남녘나라는 ‘조국백서·조국흑서’처럼 둘로 갈렸습니다. 어쩐 일인지 여러 목소리가 고루 퍼지면서 얼크러지거나 어깨동무하는 길이 아니라 ‘이쪽으로 안 오면 네 밥그릇은 걷어차겠다’는 무시무시한 으름장만 판칩니다. 우리는 아직 들꽃나라(민주정치)가 아니지 싶습니다. 위아래·밥그릇·떡고물·막삽질·벼슬질·재갈질·마침종이·배움수렁 따위를 모두 걷어내야 비로소 아름살림이 될 테지요. 《韓國의 軍事革命》은 띄어쓰기조차 엉망인 채 서둘러 찍어 뿌렸더군요.


“정부는 이러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결의하였으며 군사혁명이 성취된후 불과 八주밖에 안되는 이순간까지 이미 현저한 진척을 이룩하여 놓았다. 가능한 한의 단시일내에 정권을 민간인에게 이양하기 위하여 혁명과업을 가장신속하게 완수하려는 것은 현정부의 열망인 동시에 확고부동하 결의이기도 한것이다.”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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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54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장정일 글

 청하

 1988.8.30.



  우리가 말을 한다면, 우리가 나고자란 터전에서 마주한 어른이며 또래한테서 들은 말이 바탕입니다. 우리가 글을 쓴다면, 우리가 어릴 적부터 곁에 둔 글이며 책에 흐르는 글이 바탕이에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말씨가 다르고, 어떤 글이며 책을 얼마나 읽느냐에 맞추어 글씨가 다릅니다. 《서울에서 보낸 3주일》 같은 노래책을 쓴 장정일 님은 ‘스스로 책을 숱하게 찾아헤매며 읽’기도 했다지만, ‘고등학교·대학교’라는 배움수렁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마침종이(졸업장)를 앞세운 끼리질하고 동떨어졌습니다. 이렇다 보니 장정일 님 글은 홀가분합니다. 홀로 가볍게 날아오릅니다. 멋스러이 보이려고 꾸미지 않고, 누구 눈치를 안 보고서 스스로 마음에 흐르는 생각을 고스란히 폅니다. 1988년에 나온 장정일 노래책을 2020년에 읽다 보니, 요즈막 적잖은 글꾼이 ‘장정일 흉내’를 내는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장정일 님은 배움책이나 마침종이나 끼리질이나 스승좇기를 잘라낸, 스스로 일구는 삶에서 피어나는 글입니다. ‘장정일 흉내’는 ‘희번덕거려 보이려고 꾸민 얼렁뚱땅 포스트모던’에 그칩니다. 두 손으로 살림을 하고, 아기를 돌보고, 숲을 품고, 사랑을 꿈꾸면 글빛이 흐드러져요. 모든 글은 늘 삶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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