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쏜살 문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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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만 ‘페미’? 아버지도 함께 ‘평등’으로
―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글/황가한 옮김
 민음사 펴냄, 2017.8.18. 9800원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선물이지만 엄마라는 말로만 자신을 정의해서는 안 돼. 충만한 사람이 되도록 해. (17쪽)


  아이를 낳아 ‘아버지’라는 이름을 비로소 받는 사람은 어떤 말을 들을까요? 우리 삶자리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까요? 사회나 마을이나 학교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어버이’로서 무엇을 새롭게 익혀서 아이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주기를 바랄까요?

  더 나아가서 사내랑 가시내가 짝을 지어 보금자리를 일굴 적에 두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어떤 살림을 어떻게 가꿀 수 있어야 한다고 알려줄까요? 어쩌면 우리는 새로 보금자리를 일구는 두 사람한테 ‘돈을 잘 벌어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아이를 여러 학원에 보낼 수 있도록 하고 …… 같은 말만 들려주지는 않을까요?


‘도움’이라는 표현은 거부해. (남편) 추디가 자기 아이를 돌보는 건 네 일을 ‘돕는’ 것이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아빠들이 ‘돕고 있다’고 표현하면 육아는 엄마의 영역이고 아빠는 거기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거라고 암시하는 것과 같아. (23쪽)


  《엄마는 페미니스트》(민음사, 2017)를 읽습니다. 104쪽짜리 얇은 이 책은 나이지리아사람이 썼습니다. 이 책을 읽기 앞서 나이지리아라는 나라는 성평등을 얼마나 이룬 곳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나이지리아라는 곳도 성평등이 그리 안 아름답구나 하고요.

  그렇다면 한국은? 남녘뿐 아니라 북녘은? 우리 겨레는 얼마나 성평등을 이루는 나라일까요? 경제나 정치나 문화 못지않게 평등이라는 대목을 살필 수 있어야 삶이 넉넉하거나 즐거울 만하지 싶어요. 평등한 자리를 이루지 못하고서는 평화를 이루기 어렵고, 평등하고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민주나 자유도 제대로 못 서지 않나 싶습니다.


‘성 중립’은 바보 같아.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성 중립’은 별도의 범주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잖아. 왜 아기 옷을 그냥 나이로만 구분하고 모든 색깔로 만들지 않지? (29쪽)


  《엄마는 페미니스트》에서 살짝 우습다 싶게 다루기도 합니다만, 분홍이라는 배롱꽃빛은 남녀 모두 얼마든지 좋아하거나 즐길 만합니다. 장미빛이나 앵두빛이라 할 만한 빨강도 여남 누구나 얼마든지 사랑하거나 누릴 만하지요.

  제 어릴 적을 돌아보면, 사내가 빨강이나 풀빛이나 분홍 같은 빛깔이 섞인 옷을 입으면 동무들이 놀렸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적이었는데, 같은 사내끼리만 놀리지 않고, 가시내도 놀려요. 옷 빛깔을 두고 ‘성별 가르기’는 남녀 모두한테, 어른뿐 아니라 아이한테까지 깊게 물들었다고 할 만합니다.

  머리카락 길이도 그렇지요. 때로는 반바지 길이를 놓고서도 말이 많습니다. 아주 더디게 달라지는구나 싶으나, 사내는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눈길도 있어요.


네가 아이한테 쓰지 않을 표현들을 정해. 네가 아이한테 하는 말은 중요하니까. 치잘룸이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거든. (47쪽)


  사람한테는 성별이 있습니다. 새나 벌레나 짐승이나 물고기한테도 성별이 있지요. 성별에 따라 다른 모습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성별에 따라 생김새는 안 같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성별이 다르기는 하되,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언제나 같습니다.

  사람으로서 말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놀이를 하고, 웃고 노래하고, 떠들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람으로서 걷고,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몰고, 책을 읽고, 학교를 다니고, 배우고 가르치고,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저는 두 아이를 건사하는 살림을 열 해 남짓 가꾸는데, 저한테 부엌칼이나 도마나 행주를 선물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사내·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한테 옷을 사 준다 할 적에도 분홍이나 풀빛이나 빨강이나 노랑처럼, 환하거나 이쁜 빛깔이랑 무늬를 살피는 일도 없다시피 합니다.


아이가 존경했으면 하는 자질을 가진 여자들, 즉 이모들에게 치잘룸이 둘러싸여 자라게 해. 네가 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얘기해 줘. (77쪽)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이들한테 말을 합니다. 아이들에 앞서 저부터 스스로 참다우면서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어버지·나’로 살려고 합니다. 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밥살림을 지을 줄 알고, 옷을 입는 사람으로서 옷살림을 가꿀 줄 알며, 집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 집살림을 건사할 줄 알려고 합니다. 딸아들인 두 아이한테 모두 밥·옷·집을 고루 다스릴 줄 알도록 이끌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성평등·페미니즘’ 같은 말은 안 씁니다. ‘즐거운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어깨동무하는 사람’ 같은 말을 써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모습을 아이들이 차근차근 배울 수 있기를 바라요.

  새롭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된 이웃이 있다면, 진작 아이를 낳아 어느새 스물이나 서른이 넘은 아이를 지켜보는 이웃이 있다면, 저는 이분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다 같이 살림지기가 되어 봐요, 하고. 서로 아끼면서 살림을 짓는 즐거운 사람으로 거듭나 봐요, 하고. 기저귀를 빨고 밥을 짓고 아이를 가르치면서, 어버이일 뿐 아니라 슬기로운 어른인 사람으로서, 보금자리에 평화로운 너른 바람이 불도록 꾀하는 길을 함께 걸어요, 하고. 2017.1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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