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6.


《산골 총각》

 백석 글·오치근 그림, 산하, 2004.3.10.



임금님 귀를 외치는 옛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에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귀가 긴들 뭐가 대수롭다고?’ 하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달리 생각한다. ‘고작 귀 이야기 하나조차 말을 못하도록 꽁꽁 틀어막는 무시무시한 짓’이라고. 말길을 틀어막는 우두머리인 셈이랄까. 고흥군수는 이녁이 말잘못을 한 일을 바깥에 알린 공무원을 ‘손전화 빼앗기’까지 시켜서 찾아내려 한 다음, 이 공무원을 고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신안군 외딴섬 홍도로 보냈다지. 게다가 고흥군수는 한 해 사이에 2억 원이 넘는 돈을 더 벌었단다. 예전 고흥군수도 요즘 고흥군수보다 더하면 더한 잘못을 일삼았는데, 이들은 작은 시골 지자체 우두머리로 온갖 주먹힘을 휘두른다. ‘당나귀 귀 임금님’처럼 말길을 틀어막으면서 돈바라기로 달리는 꼴이다. 그림책 《산골 총각》을 오랜만에 되읽는다. 그린님 오치근 님은 지리산 자락에서 이녁 아이들하고 그림살림을 즐겁게 꾸리시겠지. 백석 님 밑글을 바탕으로 엮은 이 그림책은 멧골 사내가 우락부락 괘씸한 도깨비를 거꾸러뜨리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이야기를 애틋하게 다룬다. 그렇지. 촛불이든 밀물결이든 아주 조그마한 힘이다. 우두머리는 이녁 주머니를 챙기느라 바쁘시겠지만 그렇게 가는 앞길이란 뻔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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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5.


《골목 하나를 사이로》

 최영숙 글, 창작과비평사, 1996.6.25.



바람이 슬슬 바뀐다. 며칠 앞서 작은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할 적에도 느꼈고, 오늘 새삼스레 느낀다. 이 바람은 퍽 포근하다. 머잖아 온누리가 촉촉하면서 보드랍게 풀어지도록 바꾸는 바람이 훅 끼치겠구나 싶다. 달력으로는 1월 한복판이어도 남녘마을 바람결이 다르며, 이 바람결은 골골샅샅 퍼지겠지. 모쪼록 이 고장 저 마을에 두루 퍼지면서 삶터이며 마음이며 모두 따사롭게 어루만져 주면 좋겠다. 《골목 하나를 사이로》를 읽었다. 읍내 다녀오는 길에 시골버스에서 읽었다. 이런 시를 쓰는 분이 다 있네 하고 놀란다. 그렇지만 요새는 이분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고 느껴 살펴보니 퍽 이른 나이에 이승을 떠나셨구나. 이승에 발 딛고 사는 동안 시집을 꼭 한 자락 남기셨네. 이만 하게 시를 쓰는 분이 꾸준하게 글길을 걸었다면 말치레나 겉치레로 가득한 오늘날 시밭에 겨울을 녹이는 새봄바람 같은 이야기를 지피지 않았을까. 글 한 줄이란 언제나 바람결 같다. 대수롭잖은 한 줄이란 없다. 마음을 포근히 녹이는 바람이 있고, 마음을 차갑게 얼리는 바람이 있으며, 마음에 겉멋을 부리도록 이끄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무슨 바람이 있을까? 아마 남을 좇는 바람이나, 눈치를 보는 바람이 있겠지. 바람을 읽어야 시를 쓸 수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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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 쪽빛문고 8
가도노 에이코 지음, 시모다 도모미 그림, 서혜영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00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

 가도노 에이코 글

 시모다 도모미 그림

 서혜영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11.26.



“그래서 건강한 숲의 나무와 풀에게 빌었어. ‘겨울 동안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들은 봄이 되면 되살아나잖아요. 그 힘을 나눠 주세요’라고. 그리고 숲의 나무를 부드럽고 따뜻한 눈길로 조용히 바라봤어.” (16쪽)


“숲 속의 나무와 풀과 동물들이 좋은 향기가 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풀이랑 잎사귀랑 열매를 가르쳐 줬어. 먹어 보라고. 여자들이 온화한 마음을 보여주니 숲도 따라서 온화한 표정을 지어 준 거지. 이렇게 해서 여자들은 건강해지는 먹을거리를 숲에서 배웠어.” (17쪽)


“여자끼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통하는 거 아니겠어? 여잔 늘 행복을 빌거든. 언제 어디서나 말이야 … 옛날에는 걱정거리가 많았으니 마녀도 바빴을 거야. 빗자루라도 타고 날지 않으면 시간 맞춰 갈 수도 없었을걸. 히히히, 우후후, 우히히.” (26쪽)


“마녀는 여러 가지 것들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거든. 예를 들어 나무 속이나 꽃 속에도 신이 있다고 말이지. 그런데 신은 단 하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52쪽)



  어릴 적부터 매우 아리송하게 생각한 여러 가지 가운데 ‘마녀사냥’이 있어요. 왜 숱한 사내랑 교회랑 정치권력은 ‘마녀’란 이름으로 ‘똑똑하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거나 상냥하거나 뛰어난 가시내’를 골라서 불로 활활 태워 죽였을까 하고요.


  바로 그 똑똑한 가시내가, 슬기로운 가시내가, 아름다운 가시내가, 상냥한 가시내가, 뛰어난 가시내가, 이 땅을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터전으로 바꾸어 내는 새로운 길을 가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똑똑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이웃을 틀에 가두려 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상냥한 사람은 돈이나 주먹이나 이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뛰어날 뿐 아니라 착한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롭게 노래하는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마녀란 이름을 얻거나 듣는 이라면 으레 마음눈을 틔운 사람이지 싶습니다. 풀벌레하고 속삭일 줄 알기에 마녀일 테지요. 바람을 타고다닐 줄 아니 마녀일 테지요. 별을 읽고 흙을 읽으며 나무를 돌보고 숲을 사랑할 줄 알기에 마녀일 테고요.


  어린이책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가도노 에이코·시모다 도모미/서혜영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는 어느 날 문득 ‘마녀란 뭘까?’ 하고 궁금한 아이가 얼결에 마녀나라로 ‘몸을 옮겨 찾아가’고는 마녀 할머니한테서 마녀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루를 짓는가 하는 여러 이야기를 듣는 줄거리로 마녀 삶자취를 다룹니다.


  그래요, 마녀란 놀랍고 아름다우며 상냥하고 뛰어나고 사랑스러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마녀(魔女)’를 찾아보면 “1. 유럽 등지의 민간 전설에 나오는 요녀(妖女). 주문(呪文)과 마술을 써서 사람에게 불행이나 해악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2. 악마처럼 성질이 악한 여자”처럼 풀이합니다. 참으로 얼빠진 뜻풀이입니다. 사전 뜻풀이부터 마녀를 그저 나쁘게만 다루니 몹시 얄궂습니다.


  바람을 타고 바람을 읽으며 바람을 다룰 줄 안다면 ‘바람아씨’입니다. ‘바람순이’일 테지요. 사내로서 바람을 알고 읽고 다룬다면 ‘바람사내·바람돌이’가 되겠지요. 바람아씨나 바람돌이는 서울이나 저잣판에서 살지 않아요. 숲에 깃들지요. 왜냐하면 숲이야말로 모든 목숨을 깨우고 살리며 돌보는 빛이 흐르는 터전이거든요. 바람아씨는 숲아씨이자 숲순이입니다. 바람사내란 숲사내이면서 숲돌이예요.


  ‘魔’라는 한자를 억지로 붙일 사람이 아닌 ‘바람·숲·빛’ 같은 이름을 새롭게 붙일 사람이라고 느껴요. 이러한 얼거리를 진작부터 읽은 가도노 에이코 님은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뿐 아니라 《마녀 배달부 키키》 같은 이야기를 엮어내었습니다.


  바람아씨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숲아씨는 모든 목숨을 보살핍니다. 빛아씨는 이 별에 새롭고 따스한 기운이 흘러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꿈꿉니다. 우리 모두 바람하고 숲하고 빛이 하나로 모으는 눈길하고 손길을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나 곱다시 흐르는 노래하고 춤으로 즐거운 살림터를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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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 작다! 알쏭달쏭 이분법 세상 3
장성익 지음, 이윤미 그림 / 분홍고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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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19


《크다! 작다!》

 장성익 글

 이윤미 그림

 분홍고래

 2018.11.16.



곡물 기업과 농약 기업과 종자 기업 등이 서로 힘을 모으는 식이지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종자에서 식탁에 이르기까지 먹거리의 모든 과정을 더욱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함입니다. (43쪽)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지표에는 전체 생산 활동에서 자연이 담당하는 몫이 빠져 있습니다. 또 청소·빨래 등과 같은 가사 노동,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과 같은 이른바 돌봄 노동, 농업이나 수공업 등에서 더러 보듯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자급 노동 ……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69쪽)


엘살바도르는 가난합니다. 성장주의 경제 논리에 따르자면 외국 자본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투자는 필요없다고 선언했습니다. (73쪽)


한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주류 집단일수록 소수자와 약자들을 뭔가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사람, 잠재적으로 위험하거나 불순한 집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쌓아 놓은 기득권 체제에 위협이나 걸림돌이 되리라고 판단해서지요. 하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변화는 소수자나 약자들이 기존의 주류 질서와 가치에 의문을 던지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108쪽)



  온누리에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좋은 길도 나쁜 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누리는 모두 다르면서 하나인 빛이거든요.


  곰곰이 보면 옳은 길이나 그른 길이란 없습니다. 무엇이든 배우는 길입니다. 이 길로 가면서 이 삶을 배우고, 저 길을 가면서 저 삶을 배워요. 다만, 어느 길을 가든 그 길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되어요. 어느 한켠으로만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넋으로 저마다 다른 삶을 짓기에 어깨동무를 하는 슬기로운 마음을 찾을 노릇입니다.


  키가 크대서 힘이 더 세야 할까요? 나이가 많대서 말을 더 많이 해야 할까요? 《크다! 작다!》(장성익, 분홍고래, 2018)는 우리 삶터에 감도는 틀에 박힌 눈길이 무엇인가를 짚으려 합니다. 그래요, 틀에 박힌 눈길이지요. 틀에 박혀서는 배우지 못합니다. 틀에 박히니 쳇바퀴는 돌 줄 알지만 새로운 일이나 놀이로는 다가서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쉽게 알 만해요. 쳇바퀴로도 달삯을 받고, 쳇바퀴로도 먹을거리를 얻어요. 그러나 쳇바퀴를 돌면서 스스로 짓는 삶은 없어요. 늘 똑같지요. 이러다 보니 쳇바퀴질을 끝내야 하는 때인 정년퇴직을 앞두고 다들 돈을 그러모으려고 용쓰더군요. 쳇바퀴질 말고는 스스로 할 줄 아는 재주가 없으니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으려고 하면서 꿍셈을 키우고 뒷돈을 주고받는구나 싶어요.


  왜 서울이든 시골이든 막삽질이 안 끊어질까요? 쳇바퀴질 벼슬아치가 조금이라도 더 뒷돈을 챙기려는 뜻이잖아요. 왜 거님돌을 끝없이 갈아치울까요? 그런 짓을 해서 나라돈을 써야 벼슬아치 주머니에 뒷돈을 챙기니까요.


  모든 자리에서 틀을 깨지 않고서야 즐거울 수 없습니다.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여느 어버이도 어린이도, 그리고 이러한 책을 쓰는 분도 틀을 깨야지요. 《크다! 작다!》에서 한 가지 아쉽다면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딱딱하고 어려운 말씨가 너무 많아요. 한결 부드럽게, 쉬운 말씨로, 스스로 어린이 자리에 서면서 이야기를 여미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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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잖아요? 함께하는이야기 2
김혜온 지음, 홍기한 그림 / 마음이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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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1


《학교잖아요?》

 김혜온 글

 홍기한 그림

 마음이음

 2019.1.5.



“할아버지, 왜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거예요?” “왜라니?” “학교잖아요?” (29쪽)


“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넌 장애를 가진 동생이 없잖아.” (52쪽)


“어른들이 알아서 할 거야.” 엄마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어른들이라고 잘 아는 건 아니던데 뭐.” (70쪽)


“엄마는 맨날 나한테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 생각해야 된다고 그랬으면서! 특수학교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교육 받을 권리래. 선생님이 그랬어.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거랑 똑같은 권리라고.” (86쪽)


“또 아파트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위험하대요. 제 동생은 위험하지 않아요. 가끔 떼도 쓰고 화나면 울고 소리도 지르지만 그건 누구나 그렇잖아요?” (94쪽)



  날이 갈수록 학교가 작아집니다. 한때 커다란 학교가 바람처럼 일었으나, 서울이건 시골이건 작은 학교로 달라집니다. 학급이 줄고, 학급마다 받는 사람도 줄어듭니다. 학교를 들여다보면 교과서도 예전하고 다릅니다. 예전 교과서는 작으면서 두꺼웠다면, 요즘 교과서는 크고 얇습니다. 그런데 예전 교과서는 흙종이(만화종이)였다면, 요즘 교과서는 형광물질하고 표백제를 넣어 새하얗고 무거운 종이입니다.


  그림이며 사진이 많이 담긴 요즘 교과서인데, 얼핏 보자면 교과서 안 같구나 싶으나, 곰곰이 보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썰미는 흐르지 않는구나 싶어 교과서는 아직 교과서로구나 싶어요. 무엇보다도 건물이나 교과서가 껍데기는 바뀌되 속살이 바뀌지는 않아요. 네모난 틀에 갇힌 학교이면서, 이곳을 다닐 사람도 네모난 틀에 맞추어야 하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그런 네모난 틀인 학교조차 다니기 어려운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이른바 ‘장애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학교잖아요?》(김혜온, 마음이음, 2019)는 서울 한켠에 세우려고 하는 장애인 학교를 둘러싸고 ‘집값이 떨어진다’느니 ‘장애 어린이가 거칠거나 사납다’느니 ‘장애인 학교 말고 대형마트를 세우라’느니 하는 목소리가 불거지는 오늘날 모습을 그립니다.


  머리띠를 질끈 두르고서 장애인 학교는 안 된다고 외치는 할아버지 앞에 선 아이가 묻습니다. “학교잖아요?” 할아버지는 대꾸를 하지 못합니다. 학교인걸요.


  재산으로 삼는 땅하고 집이 있는 어른들은 장애인 학교이건 다른 학교이건 그리 내키지 않는 눈치입니다. 이 학교이건 저 학교이건 집값이나 땅값에 이바지한다고 여기지 않거든요. 대형마트가 들어서야 껑충껑충 올라 그 땅이나 집을 팔고 나가기에 좋다고 여기지요.


  배우려 하지 않으니 배움자리를 마련하지 않아요. 배울 뜻이 없으니 껍데기는 바꾸어도 속살을 바꾸지 않아요. 배울 마음이 없으니 큰돈을 들여 건물이며 교과서 틀을 살짝 손보기는 하지만, 어린이하고 푸름이사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슬기롭게 배우는 판은 아직 마련하지 않아요. 이제는 새로운 학교가 들어서야지 싶어요. 일반 학교도 장애인 학교도 아닌, 모든 사람이 늘 드나드는 배움터가 있어야지 싶어요. 여섯 해나 세 해만 다니고 그치는 학교가 아닌, 늘 오가면서 누구나 배우는 터전으로 열린판을 닦아야지 싶어요. 스스로 배우지 않을 적에는 스스로 바보가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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