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27. 몰록 깨달은 씨앗



  사투리넋


  오늘 우리는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나날을 살아갑니다. 흔히 쓰는 말이든 더러 쓰는 말이든 낡은 틀대로 헤아릴 까닭이 없습니다. 어제까지 쓴 말을 바탕으로 오늘 새롭게 살려서 쓰는 말결을 북돋우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볼 노릇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바라보면서 알맞게 말을 짓고 가다듬으면 되어요. 생각해 봐요. 요새는 사투리가 차츰 잊히거나 사라지지만, 지난날에는 어느 고장이나 고을이나 마을에서는 홀가분하게 사투리를 썼어요. 사투리란, 고장이나 고을이나 마을마다 다 다른 터전하고 살림하고 숲에 맞추어 다 다른 결을 저마다 스스로 슬기롭게 바라보고 알아보고 깨달아서 지은 말입니다. 손수 지은 삶에서 즐겁게 태어난 말이 바로 사투리예요.


  우리 모두한테는 ‘사투리넋’이 있습니다. 사투리넋이란, 살림을 제 터전에 맞게 슬기로이 지을 줄 아는 넋입니다. 바닷마을 살림하고 들마을 살림하고 멧마을 살림이 다르니, 바닷마을이나 들마을이나 멧마을마다 지어서 누리는 살림살이나 세간이 다르겠지요? 이와 맞물려 바닷마을하고 들마을하고 멧마을마다 쓰는 말도 다를 테고요?


  오늘날 우리 스스로 사투리를 잊거나 잃으면서 서울말이나 표준말에 얽매이거나 젖어드는 까닭은, 이제 서울하고 광주하고 대전하고 부산하고 제주가 거의 똑같은 모습이 되어 가기 때문이라 할 만합니다. 삶터가 비슷하고 살림이 비슷하니 말도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서울하고 시골 모두 아파트가 늘어나고 자동차가 퍼지며, 아스팔트길이 뻗고, 방송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보며 즐기니, 참말로 말이 다 어슷비슷해질밖에 없답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보지요. 대전 방송국이 대전말로 방송을 한다면? 울산 신문사가 울산말로 신문을 낸다면? 이때에도 살림살이가 엇비슷할까요? 광주에 있는 방송국하고 신문사가 광주말로 방송을 내보내고 신문을 편다면 어떠할까요? 이때에는 대전은 대전스럽고 울산은 울산스럽고 광주는 광주스러운 길을 걷겠지요. 이러면서 저마다 다른 즐겁고 새로우며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살림꽃, 바로 문화가 피어납니다.


  씨는 씨앗


  저는 누구를 “아무개 씨(氏)”라고 부르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누가 저를 보며 “최종규 씨”라고 불러도 썩 반갑지 않았어요. 그런데 엊그제 우리 아이들을 부르는 제 목소리에 “사름벼리 씨, 산들보라 씨”라는 말마디가 새삼스럽다고 깨달았습니다. 아차차, 스스로 거북하게 여긴 말씨를 아이들한테 불쑥 썼나 싶었는데, 그리 거북하지 않았고, 뭔가 다른 뜻이 가슴으로 찌리리 퍼졌어요.


  흔히들 ‘씨’를 ‘氏’로만 여기지만, 아이들은 이를 아직 모릅니다. 게다가 굳이 안 알아도 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아는 ‘씨’란 ‘씨앗’이나 ‘씨톨’입니다. 흙에 묻으면 무럭무럭 자라는 씨앗을 ‘씨’로 알고, 볍씨 한 톨이나 밤 한 톨이나 복숭아 한 톨처럼 말하는 씨톨인 ‘씨’를 알아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한자를 따서 ‘氏’를 적더라도, 한국에서는 씨앗·씨톨을 바탕으로 사람을 가리킨다는 ‘씨’를 수수하게 써도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한국에서 ‘氏’라는 한자를 ‘씨’로 소리내는 결도 어쩌면 씨앗·씨톨하고 맞물릴는지 몰라요. 모든 사람은 가슴에 씨앗이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씨앗이니까요. 저마다 아름다운 씨앗을 꿈으로 가꿉니다.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씨앗을 뿌리면서 삶을 짓습니다.


  몰록몰록


  1948년에 《선가구감》이란 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요새는 ‘선가귀감’으로 흔히 이야기하는데, 1948년에 나온 이 책은 조선어학회에서 옮김말을 살피면서 ‘해방을 맞이하고 도로 찾은 우리 말을 조금 더 북돋우면서 새로 옮긴다는 넋’을 담았다고 합니다. 한문이 아닌 한글로, 더욱이 불교에서 곧잘 쓰는데 여느 사람한테는 무척 어려운 한자말을 거의 털어낸 책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돈오(頓悟)’하고 ‘점수(漸修)’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나올까요? 바로 ‘몰록깨침’하고 ‘오래닦음’입니다.


  ‘몰록’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안 실렸습니다. 예전 사전에도 요즈음 사전에도 없어요. 그렇다면 1948년에 나온 불교 경전에는 왜 ‘몰록 + 깨침’이라는 말이 나올까요?


  ‘몰록’은 불교에서 자주 쓰는 한자말 ‘찰나(刹那)’를 가리킨다고 해요. 아주 짧은 겨를을 나타내는 ‘몰록’인데, 말밑을 곰곰이 따진다면 ‘몰르다’하고 맞물릴 만하지 싶습니다. 요새는 ‘모르다’를 표준말로 쓰지만, 사투리를 쓰는 분들 가운데 ‘몰르다’라 말하는 분이 꽤 있어요. 그리고 ‘몰라’라는 말씨는 누구나 씁니다.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다” 같은 글월을 헤아린다면 ‘몰록’이란 말이 예전에 낯설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사전에만 안 실렸을 뿐이지요. 눈 깜빡하는 아주 짧은 겨를이라면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몰르는(모르는)’ 채 지나가기 쉽지요. 곧 ‘몰록’은 ‘불쑥·번쩍·문뜩·단박에·대번에·대뜸·갑작(갑자기)’하고 어우러지는 낱말이에요.


  요즈음 말씨로 ‘몰록깨침’이 살짝 낯설다 싶으면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불쑥깨침·번쩍깨침·문뜩깨침·단박깨침·대번깨침·대뜸깨침·갑작깨침’처럼 말이지요. 꼭 한 낱말만 써야 하지 않습니다. 결이 살몃살몃 다른 여러 말을 알맞게 쓰거나 즐겁게 쓸 만하지요.


  결이 다른 낱말을 이렇게 헤아리다 보면 우리 말밭은 푸짐합니다. 비슷한말이란, 알고 보면 다른 말이니,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혀에 가만히 얹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본다면, 말에 깃든 맛을 새로 깨우칠 수 있어요. 이른바 몰록깨침하고 오래닦음이 어우러지는 기쁜 말빛입니다.


  더 헤아리면 ‘몰록질’이나 ‘대뜸질’이나 ‘갑작질’이나 ‘번쩍질’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아주 짧은 겨를에 뭔가 하는 몸짓을 나타내는 말씨예요.


  이런 여러 말씨는 국립국어원이나 국어학자가 알려주는 말이 아닙니다.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스스로 즐겁게 살림을 짓고 삶을 가꾸는 사이에 저절로 피어나는, 문득문득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재미난 말입니다.


  한길하고 외길


  이웃나라에서 새말이 들어오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으레 쓰는 말씨를 받아들일 적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쯤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새말을 짓는 슬기나 재주나 솜씨나 기운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꿈이나 멋이나 손길이나 사랑이 없을까요? 이웃나라 말씨를 모두 끊자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는 왜 우리가 쓸 말조차 이웃나라에서 끌어들여야 할까요?


  언제부터인가 ‘일점돌파’라는 일본말을 글이나 말로 퍼뜨리는 분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일점돌파’는 일본에서, 더구나 칼싸움을 하는 자리에서 쓰던 말입니다. 칼을 쥐고 싸울 적에 한곳만 파고들어 물리치면 길이 열린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한곳을 파고든다면 ‘한곳뚫기’처럼 말할 만합니다. ‘한길뚫기’라 해도 어울리겠지요. 이 얼거리를 생각한다면 ‘옆길뚫기’나 ‘뒷길뚫기’나 ‘왼길뚫기’나 ‘오른길뚫기’처럼 새 쓰임새에 맞는 새말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칼싸움 일본말을 안 써도 됩니다.


  그리고 ‘외길파기·외길뚫기’를 쓸 수 있겠지요. ‘한길’하고 ‘외길’은 길이 똑같이 하나이지만 뜻이나 느낌이 확 다릅니다. 우리는 한길을 걸을 수도, 외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새길을 갈 수도, 샛길을 갈 수도 있어요. 말끝 하나로 확 다르지요? 즐겁게 말길을 트고, 기쁘게 글길을 열며, 새롭게 삶길을 다스리는 하루를 지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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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려는 글쓰기 (옥중편지란다)



얼음판을 지치는 여자 선수를 때리고 괴롭힌 분이 구치소에서 옥중편지를 썼다고 한다. ‘옥중편지’를 이런 때에도 쓰는구나 싶어 놀란다. 옥살이를 한다면 ‘옥중편지’일 텐데 이이는 처음부터 잘잘못을 밝히거나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이가 짓밟은 여자 선수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거나 잘못했다고 빈 적도 없었지 싶다(언론에 나온 이야기로 보자면). 그러나 이이는 스스로 먹고살려고 여자 선수를 때리고 괴롭혔다. 이이는 스스로 먹고살려고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 이이는 스스로 먹고살려고 이제 옥중편지를 쓴다. 남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이는 참으로 한결같다.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얼마든지 남을 때리거나 괴롭힌다. 이러면서 잘잘못을 못 깨닫는다. 이런 허수아비뿐 아니라, 허수아비를 부리는 웃자리 아재도 매한가지이다. 다들 먹고살려고 그런 짓을 일삼는다. 이런 엉터리 실타래를 풀기란 아주 쉽다. 한체대를 없애면 된다. 얼음판을 지치는 ‘엘리트 스포츠’도 그만두면 된다. 겨울올림픽이라는 데에 앞으로 안 나가면 된다. 거짓부렁을 일삼는 이들이 잘잘못을 깨닫거나 털어놓도록 하자면, 그들이 먹고살 길을 송두리째 한꺼번에 박살을 낼 노릇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그이는 참된 문화부장관이자 올바른 대통령이리라 본다. 이런 일을 안 한다면? 그이는 거짓부렁하고 한통속일 테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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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4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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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60


《내 어머니 이야기 4》

 김은성

 애니북스

 2019.1.11.



  만화잡지 〈새만화책〉에 처음 실릴 무렵부터 지켜봤어요. 《내 어머니 이야기》는 어렵게 네걸음으로 마무리되어 2014년에 꽃을 피웠고, 2019년에 새옷을 입습니다. 방송 입김을 타며 한달음에 널리 사랑받기도 합니다. 세걸음을 읽다가 아리송하다 싶은 수수께끼를 네걸음을 읽으며 풉니다. 책이름이 왜 “우리 어머니 이야기”가 아닌가 했더니 “만화를 그린 ‘내’ 이야기”를 그리고픈 마음이 훨씬 컸군요. 어머니가 살아온 길이 바로 내가 태어나서 살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어머니가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받은 길이 바로 내가 언니 오빠 사이에서 어떤 사랑으로 자랄 수 있었나를 돌아보는 길입니다. 예전 판을 되살리는 뜻도 좋습니다만, 그린이 스스로 마음을 더 단단히 다스리면서 “어머니 이야기”하고 “내 이야기”를 떼놓아 주면 더 좋겠다고 느낍니다. 네걸음째는 줄거리가 엉키고 어영부영 끝납니다. 한두 해나 대여섯 해 뒤에는, 어머니 이야기는 어머니 이야기대로,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대로 따로 삶길을 펼쳐 주기를 바랍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연재 만화’하고 ‘낱권책 만화’가 다르기 일쑤예요. 낱권으로 묶을 적에는, 또 새옷을 입을 적에는, 그린이 앙금하고 실타래를 고이 털어내어 다시 새옷을 입히면 좋겠어요. ㅅㄴㄹ



“이런 생각까지 들 때도 있어. 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엄마 얘기를 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 “꼭 그렇진 않지만… 엄마 얘기니까 엄마 이야기가 중요하겠지만, 내 얘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마음이 너무 동요돼.” (106쪽)


“아를 더 버리기 전이 병원이 데려가야 하는데 어쩌겠니!” “엄마! 언니가 스스로 술이 문제인 줄 전혀 모르니까 우리도 방법이 없어. 그냥 우리는 우리 생활을 하자. 나는 만화를 열심히 그리고, 엄마도 엄마 생활을 잘하고 그러자.” (15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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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장수 長壽


 장수 마을 → 오래마을

 장수의 비결 → 오래사는 길

 그 장수 노인은 → 그 오래산 어른은

 장수하는 사람은 → 오래산 사람은

 80세까지는 문제없이 장수하시게 되어 있으니 → 여든까지는 거뜬히 살 수 있으니


  ‘장수(長壽)’는 “오래도록 삶 ≒ 노수(老壽)·대수(大壽)·대춘지수·만수(曼壽)·만수(萬壽)·수령(壽齡)·영수(永壽)·용수(龍壽)·하년(遐年)·호수(胡壽)”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살다”나 “목숨이 길다”로 고쳐쓰면 될 텐데, 사전에 부질없는 한자말이 잔뜩 비슷한말로 달립니다. 모두 털어낼 노릇입니다. 곰곰이 보면 ‘오래살다’를 새로 한 낱말로 삼아서 쓸 수 있습니다. 이밖에 한자말 ‘장수’도 열네 가지 더 나오는데 모두 털어낼 만합니다. ㅅㄴㄹ



장수(杖囚) : = 장지수지

장수(杖首) : [역사] 고려 시대에, 형부에 속하여 곤장 치는 일을 맡아보던 이속

장수(長水) : [지명]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읍

장수(長袖) : 길게 만든 옷소매

장수(長嫂) : = 맏형수

장수(將帥) : 1. [군사] 군사를 거느리는 우두머리 ≒ 군장(軍將)·장(將)·장관(將官)·장령(將領) 2. [북한어] 몸집이 크고 힘이 뛰어나게 센 사람

장수(張宿) : [천문] = 장성(張星)

장수(張數) : 종이나 유리 따위의 수효

장수(章數) : 장(章)의 수효

장수(葬需) : = 장례비

장수(樟樹) : [식물] = 녹나무

장수(漿水) : 1. 오래 흠씬 끓인 좁쌀 미음. 또는 그 웃물. 달고도 새콤한 맛이 있어 목마름을 덜어 주며, 한약을 달이거나 먹을 때 쓴다 2. [북한어] [의학] ‘양수(羊水)’의 북한어

장수(藏守) : 잘 간직하여 지킴

장수(藏修) : 책을 읽고 학문에 힘씀



장수하는 거대한 삼나무가 어떻게 오랫동안 살아올 수 있었을까

→ 커다란 삼나무는 어떻게 오랫동안 살아올 수 있었을까

→ 커다란 삼나무는 어떻게 오래살 수 있었을까

《나무》(고다 아야/차주연 옮김, 달팽이, 2017) 89쪽


생각보다 장수하네

→ 생각보다 오래사네

→ 생각보다 길게 사네

→ 생각보다 목숨이 기네

《코우다이 家 사람들 6》(모리모토 코즈에코/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2018) 120쪽


나중에 장수한다고 해서리

→ 나중에 오래산다고 해서리

→ 나중에 목숨이 길다고 해서리

《내 어머니 이야기 4》(김은성, 애니북스, 2019) 29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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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아수라장 阿修羅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갑자기 싸움판으로 바뀌었다 / 확 싸움마당이 되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 그야말로 북새판이었다 / 그야말로 시끄러웠다


  ‘아수라장(阿修羅場)’은 “= 수라장”을 가리키고, ‘아수라(阿修羅)’는 “[불교] 팔부중의 하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 수라(修羅)”를 가리키며, ‘수라장(修羅場)’은 “1. 싸움이나 그 밖의 다른 일로 큰 혼란에 빠진 곳. 또는 그런 상태 ≒ 아수라장 2. [불교] 아수라왕이 제석천과 싸운 마당”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불교 한자말은 ‘싸움판·싸움터·싸움마당·싸움투성이’나 ‘북새통·북새판·북새마당’이나 ‘시끄럽다·어지럽다’나 ‘시끌마당·어지럼판’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ㅅㄴㄹ



도저히 이 끔찍한 아수라장을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이에요

→ 도무지 이 끔찍한 싸움마당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이에요

→ 도무지 이 끔찍한 북새마당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이에요

→ 도무지 이 끔찍한 어지럼판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이에요

→ 도무지 이 끔찍한 시끌마당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이에요

《음악이 가득한 집》(마르그레트 레티히·프 레티히/이용숙 옮김, 밝은미래, 2009) 25쪽


나, 진부한 아수라장 좀 벌이고 와도 될까

→ 나, 낡은 싸움판 좀 벌이고 와도 될까

→ 나, 따분한 북새판 좀 벌이고 와도 될까

《여자의 식탁 5》(시무라 시호코/김현정 옮김, 대원씨아이, 2009) 75쪽


세상은 아수라장이었다

→ 온누리는 싸움판이었다

→ 이 땅은 싸움투성이였다

→ 온누리는 싸움터였다

→ 이 땅은 북새판이었다

→ 온누리는 시끄러웠다

《내 어머니 이야기 4》(김은성, 애니북스, 2019) 208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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