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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 작은 아름책집 (2017.11.24.)

― 경남 진주 〈형설서점(즐겨찾기)〉

경남 진주시 진주대로 1149-1

055.748.4785.



  경상도 진주라는 고장은 남다릅니다. 진주 남강 때문에 남다르다고 여기기도 할 테지만, 진주에는 교육대학교가 있고, 작은 도시인데에도 헌책집이 무척 많았습니다. 요즈음에도 헌책집이 여럿 그대로 있어요. 작은 도시 가운데 헌책집이 그대로 살림을 잇는 고장은 드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책을 덜 읽는다고 여길 만하지만, 이보다는 너무 바쁘거나 힘들거나 팍팍하다는 생각에 젖었다고 여길 만하지 싶습니다. 요즈음 새책 하나가 15000∼20000원이라면, 이 책은 헌책집에서 6000∼8000원에 장만할 수 있습니다. 책을 아주 많이 빨리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 한 자락을 장만해서 사나흘이나 이레나 열흘이나 보름에 걸쳐서 읽겠지요. 때로는 한 달 동안 책 한 자락을 읽기도 할 테고요. 새책으로 쳐도 15000∼20000원이요, 헌책으로 쳐도 6000∼8000원 즈음 되는 돈을 이레나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벌 종이책에 들이지 못한다면, ‘책을 안 읽는다’가 아닌 ‘스스로 짬을 내어 느긋하게 새로 이웃 삶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는 길’에 설 마음을 내지 못한다고 보아야지 싶어요.


  굳이 책이 아니어도 즐길거리나 읽을거리나 볼거리는 많습니다. 어느 것을 즐겨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찬찬히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영화나 방송이나 유튜브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다. 저쪽에서 보여주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와 달리 책은 언제나 스스로 읽어내야 하지요. 저쪽에서 어떤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펴서 책으로 묶었든, 이 책에 흐르는 알맹이나 줄거리나 사랑을 우리 스스로 알아내고 느껴내며 생각해서 삭이고 받아들여야 하지요.


  책읽기가 남다르다면, 스스로 나서야 하는 일이요, 스스로 배워야 하는 일이며, 스스로 배운 것을 우리 삶에서 다시 스스로 삭여서 우리 것으로 녹이는 살림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하거든요. 책을 고르는 일, 책을 알아보는 일, 알아본 책을 사는 일, 산 책을 집으로 들고 오는 일, 들고 온 책을 읽으려고 짬을 내는 일, 짬을 내어 읽는 동안 머리를 바지런히 움직여 생각을 꽃피우는 일, 생각을 꽃피워서 알아낸 이야기를 삶으로 녹이는 일, 삶으로 녹인 이야기를 새롭게 가꾸어서 즐겁게 하루를 맞이하는 일 …… 이 모두 남이 해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책읽기나 책숲마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새롭게 살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작은 몸짓이 됩니다. 남한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배우면서, 손수 익혀서 살려낸 새로운 사랑을 스스럼없이 이웃한테 새삼스레 펼치는 길이 바로 책읽기요 책숲마실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진주 〈형설서점(즐겨찾기)〉은 진주에 있는 그야말로 빛나는 책집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진주라는 고장에 산다면 이틀이나 사흘마다 걸음을 하리라고 여기는 곳입니다. 그러나 제 삶자리하고 진주가 썩 가깝지 않으니 한 해에 한 걸음을 하곤 하는데, 때로는 여러 해 만에 한 걸음을 합니다.


  이 자그마한 헌책집에 들어서기 앞서 언제나 숨을 고릅니다. 주머니를 들여다보며 살림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펴요. 오늘 어떤 책을 얼마나 만날는지 하나도 모릅니다만 ‘이 값을 넘어설 만큼 책을 쳐다보지 않기로 하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합니다.


  자, 문을 엽니다. 책집지기 아재한테 꾸벅 절을 합니다. “어? 이게 누구야? 종규 씨 아냐?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진주에 볼일이 있어서 왔나? 반갑네? 밥은 드셨소? 커피 한 잘 줄까?”


  책집에 들어서자마자 책집지기 아재가 진주말로 이모저모 물어보십니다. 저도 반가이 이모저모 이야기를 합니다. 오랜만에 찾아왔기에 책시렁부터 돌아보며 이 책 저 책 들여다볼라치면 “책은 늘 보실 텐데, 오랜만에 왔으면 이야기라도 좀 하고 책을 보시지?” 하는 핀잔도 한 마디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눈치라고는 없이 책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자그마한 헌책집이기에 더 많은 책을 건사할 수 없습니다. 자그마한 헌책집이기에 더 알뜰히 책을 살펴서 건사하기 마련입니다. 이 대목을 헤아려 본다면 ‘왜 저 조그마한 책집이 그대 아름책집이 되는가?’ 하는 물음을 쉽게 풀 수 있어요. 커다란 책집은 더 많은 책을 더 넉넉히 둔다면, 조그마한 책집은 더 알찬 책을 더 살뜰히 두거든요. 《집안에 감춰진 수수께끼》(M. 일리인/박미옥 옮김, 연구사, 1990)이며 《근원이 깊은 나무례 마을의 천년역사 1》(김상조, 경상남도사편찬위원회, 1986)이며 《모택동의 바둑 병법》(스코트 부어만/김수배 옮김, 기획출판 김데스크, 1975)이라는 책을 손에 쥡니다. 1975년 저때에 중국 모택동이 바둑을 어떻게 두느냐 하는 책까지 한국말로 옮긴 적이 있군요. 저때에 저런 책이 나올 수도 있었네요. 바둑책이었기 때문일까요.


  국민학교(서울 남산국민학교) 교장이던 분이 미국을 한동안 돌아보고 나서 느낀 바가 있기에 《어린이를 위한 미국 여행기》(김기서, 학문사, 1957)라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없지만 앞으로 한국에 이런저런 것이 생기기 바란다는 뜻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여성, 최후의 식민지》(C.v.벨로프 외/강정숙 외 옮김, 한마당, 1987)를 손에 쥡니다.


  예전에 읽었는지 가물거리는, 가물거리니까 다시 살피자는 마음으로 《너무 순한 아이》(김경동, 심설당, 1987)를 손에 쥡니다. 이미 읽은 시집이지만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백창우, 신어림, 1996)를 집습니다. 노래가 된 시를, 노래가 될 시를 조용히 혀에 얹습니다. 다른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강미정, 문학의전당, 2008)하고 《취객의 꿈》(김영승, 청하, 1988)도 손에 쥡니다.


상차림도 없이 서서 / 싱크대 커다란 입을 들여다보며 / 밥을 먹는다, 물에 말은 한 그릇 밥 / 자정의 시간으로 날이 쏟기고 / 기다림을 쏟으며 식구들은 자고 (강미정, 지독한 냄새/21쪽)


  밥하고 살림하는 아주머니란 자리에서 고스란히 옮긴 노랫가락입니다. 이 마음하고 삶을 읽을 줄 안다면, 아니 이 마음하고 삶을 우리가 나눌 수 있다면, 이 삶터는 사뭇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눈앞에 《만주어 음운론 연구》(성백인, 명지대학 출판부, 1981)란 책이 보입니다. 만주말을 살핀 책이 있군요. 만주라고 하는 땅은 한겨레가 살던 터전하고 맞물립니다. 북녘뿐 아니라 남녘 곳곳에도 만주말 자취가 어느 만큼 흐르지 않을까요? 《B급 좌파, 세 번째 이야기》(김규항, 리더스하우스, 2010)를 보고 살짝 놀랍니다. 김규항 님이 이녁 ‘비급 좌파’ 이야기를 석 자락째 써낸 줄을 이제서야 압니다. 2010년이란 해에 큰아이를 돌보며 집살림을 하느라 매우 부산했기에 그때에는 이런 책이 나온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비록 그때에는 몰랐어도 이렇게 헌책집 책시렁 한켠에 놓이니, 뒤늦게라도 알아보면서 반가이 맞이합니다.


문자 기록에만 의지해야 되는 언어사의 연구는 어느 나라 말의 연구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만 만주어의 연구는 유달리 극복하기 어려운 여건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만주어가 오늘날 사어가 되어버려서 만주어 문어를 잇는 현대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정통을 잇는 현대 구어를 알고 있기만 한다면 불과 400년도 못 되는 옛날인 17세기 만주어의 연구가 이렇게 막막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주어 음운론 연구, 2쪽)


  낯익은 책 《어린이 동시짓기》(이준범, 명문당, 1978)를 바라봅니다. 이 책은 우리 아버지 책시렁에 있었기에 낯익습니다. 초등교사로 일한 우리 아버지도 이 책을 곁에 두고서 수업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요새는 이 책을 들출 사람이 없을 테지만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닌 저로서는, 바로 이런 책에 나오듯 ‘말을 억지로 꾸미고 이쁘장하게 보이는 시늉질’을 하는 동시쓰기를 해야 했습니다. 지난날 참으로 이 책에 나온 그대로 억지스러운 거짓 동시를 잔뜩 써야만 했던 끔찍한 일이 확확 떠오릅니다.


  조용히 새책집에서 자취를 감춘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장승욱, 하늘연못, 2010)을 만납니다. 고맙게 장만하기로 합니다. 묵은 교과서 여럿이 곁에 나란히 있습니다. 오랜 말결을 살피면서 새롭게 살릴 만한 말길을 엿보고자 이 묵은 교과서도 하나하나 고르기로 합니다. 《생물 상》(남태경, 장왕사, 1952), 《국사지도》(편집부, 홍지사, 1965), 《일반 과학 물상편 2》(신효선·이종서》(을유문화사, 1947), 《사회교육문고 성인교육교재 16 겨레의 발자취 하 (우리 생활과 과학)》(문교부, 1962)까지 꾸러미로 챙깁니다.


  그런데 이 묵은 교과서까지 챙기기로 하면서 슬몃 걱정스럽습니다. 이러다가 이달 살림돈을 모조리 책에 쏟아붓는 셈은 아닐는지?


  책시렁을 더 둘러볼는지, 이제 그만 책값을 셈해야 할는지 망설입니다. 주머니를 다시 뒤적입니다. 오늘 온 이곳에 아마 이듬해쯤 다시 올 텐데, 한 해 사이에 다른 아름다운 책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주머니가 헐거워 장만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구경은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힙니다. 《새땅을 밟으며, 만화로 보는 농업·농민 문제》(이재웅, 도서출판 알, 1991)란 만화책을 봅니다. 대구에서 나온 ‘만화 학습 교재’라고 하며, 그무렵 우르과이라운드를 비롯한 농업정책을 나무라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허웅아기》(편집부 구성·김윤식 그림, 조약돌, 1984)라는 만화책은 제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투박하지만 멋스러운 그림결이 좋습니다.


  묵은 잡지 《주간경향》 583호(1979.11.4.)에는 박정희 사진이 큼직하게 실립니다. 총에 맞아 죽고 나서 나온 잡지입니다. 죽은 대통령을 기리는 잡지에는 “농촌의 아들, 꾸밈없이 소박, 먹걸리 즐기고”라든지 “자상한 인간미 서민적 체취 물씬 풍기며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언제나 솔선수범” 같은 말이 끝없이 흐릅니다. 퍽 낯부끄럽습니다. 《남강다목적댐 공사지》(건설부, 1970)는 진주 남강에 세웠다는 댐하고 얽힌 자료를 그러모았습니다. 아직 댐이 서기 앞서, 한창 댐을 지을 무렵, 댐을 다 짓고 나서, 이런 얼거리로 남강 언저리 모습을 사진으로 빼곡하게 담았습니다. 건설부는 진주 남강 둘레에서 찍은 사진을 필름으로 잘 건사해 놓았을까요? 그 사진은 모두 우리 자취를 돌아보도록 이끄는 알뜰한 자료일 텐데요.


  이제 손바닥책을 살핍니다. 《바람》(김석중, 상성미술문화재단, 1982)을, 《역옹패설》(이제현/남만성 옮김, 을유문화사, 1971)을, 《취락지리학》(이영택, 대한교육연합회, 1972)을, 《니일의 사상과 교육》(霜田靜志/김은산 옮김, 대한교육연합회, 1972)을 차근차근 고릅니다.


필자는 ‘聲也’라는 말을 발음한다는 말로 풀이한다. 그래서 ‘낙옹비설’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또 많은 인사들이 ‘역옹패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역옹패설, 6쪽)


  우리한테는 한국말이 있습니다만,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 나왔습니다만, 지난날 글님은 으레 중국 한문을 썼어요. 《역옹패설》이란 책은 고려 무렵에 나왔다고 하니 훈민정음하고는 동떨어집니다만, 이 나라에 살림꽃이 제대로 섰다면 훈민정음이 태어난 뒤 이 한문책을 훈민정음으로 옮기는 일을 했겠지요. 그때 제대로 훈민정음으로 이 한문책을 옮겼다면, 책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또 우리가 오래도록 쓰던 말씨가 어떤 글씨로 나타나는가를 또렷이 아로새길 만했으리라 봅니다.


  가만 보면 우리는 다른 나라 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에 앞서, 아직 우리 글씨가 없던 무렵 한문으로 쓴 책을 오늘날 우리 글씨로 알맞게 옮기는 일이 매우 서툴거나 늦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삶자리에서 삶말이 되도록, 너나없이 쉽게 읽고 쉽게 익혀서 쉽게 나누는 길로 이어가도록 종이책을 가꾸는 살림이 매우 모자랐어요.


  손수 시를 옮겨적은 《無名詩集 1》(조성래 엮음, 1977)는 이 글꾸러미를 묶은 분이 무척 좋아하던 시를 또박또박 옮겨서 엮은 꼭 하나만 있는 책입니다. 이 《무명시집》을 묶은 분은 벗님하고 주고받은 글월도 《강변에서 1 (편지 모음집)》(김선아·하계남·최명자, 1975)하고 《강변에서 2 (편지 모음집)》(손정혜·고순남, 1975) 같은 이름을 붙여서 알뜰히 여미었습니다. 지난날 손글월 자취를 고이 엿봅니다.


  겉그림이 조금 뜯겼으나 《고어독본》(정태진, 연학사, 1947)을 손에 쥐면서 후끈후끈합니다. 이 오랜 책을 살뜰히 읽은 분 손길을 느끼고, 여러 손길을 거치고 돌면서 오늘까지 잘 살아남아서 제 눈앞에 놓인 숨결을 마십니다.


  마지막으로 잡지 《朝鮮》(朝鮮總督府 文書課長) 351호(1944.8.)를 고르기로 합니다. 잡지 《朝鮮》은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을 짓밟은 다음 조선총독부를 세우자마자 바로 펴냈다고 합니다.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선보인 홍보잡지인 셈입니다. 이 잡지에 실은 글이나 사진이란 바로 ‘친일부역’이지요.


  한국으로서는 온통 친일부역으로 가득한 이 잡지는 기나긴 날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제가 만난 이 잡지는 ‘동경 한국연구원 도서관 1976.8.4.’라는 도장이 찍혔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나왔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온 셈입니다.


  쓸쓸한 뒷그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잡지를 쥔 손을 파르르 떱니다. 갓 식민지가 되던 이 땅에서 이 잡지 첫 호가 나오고, 100호가 넘고 200호가 넘고 300호가 넘도록 나오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어쩔 수 없으니 그저 친일부역으로 먹고살자고 여겼을까요, 이 잡지가 다달이 새로 나올 적마다 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을까요? 잡지 《朝鮮》을 가만가만 넘기다가 불쑥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해방이 되기 무섭게 나라 곳곳 도서관이며 시청이며 군청이며 면사무소이며 동사무소이며, 바로 이 《朝鮮》이란 잡지를 비롯한 친일부역 자료를 낱낱이 뒤져서 불쏘시개로 삼거나 불살랐을 수 있겠다고. 뒷그늘 자국을 누가 알까 두려워 꽁꽁 숨기려고 이런 잡지나 책을 없애려고 바빴으리라고.


  고른 책을 다 들고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밖에도 많습니다. 숨을 가늘게 쉽니다. 책값을 셈하고 보니, 이달치 살림돈뿐 아니라 다음달치 살림돈까지 한몫에 나갑니다.


  바보짓을 한 하루일는지, 참짓을 한 오늘일는지, 사라질 수 있는 책을 건사한 날인지,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를 만난 자리인지, 어느 한 가지로만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디 이 온갖 책이 징검다리가 되어 새로운 삶길로 가는 씨앗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 곁에서도, 이 땅 곳곳에서도, 아름책집 한 곳에서 깨어난 책이 아름노래로 술술 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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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이메일 보내기) l 2019-11-02 00:07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31.


《메종 일각 1》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9.30.



새로 나온 《메종 일각》 첫걸음을 야금야금 읽는다. 책날개를 보니 모두 열다섯걸음으로 나온다고 한다. “도레미 하우스”란 이름이던 만화책을 열 해 남짓 앞서 읽고는, 언젠가 장만할 수 있겠거니 여겼으나 이제서야 새옷으로 하나씩 만나네. 뭔가 튀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막상 우리 곁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이야기이다. 만화책에서만 볼 수 있을까 싶다가도, 우리 둘레에서 바로 나나 너라는 모습으로 툭탁거리는 이야기이다. 무엇을 볼까? 무엇이 좋을까? 무엇이 섭섭할까? 마음을 어떻게 드러낼까? 겉모습인가? 속마음인가? 손에 쥐고 싶은가? 따스하게 흐르는 사랑이 되고 싶은가? 같이하고 싶은가? 혼자 있고 싶은가? 재미있는가? 따분한가? 누가 동무이고 이웃인가? 낮나절에 작은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에 다녀온다. 며칠 앞서 붕어빵장수를 면소재지에서 보았다. 와, 이 깊은 시골자락 면소재지에서 붕어빵을? 다만, 가는 날이 저잣날이라고, 작은아이하고 붕어빵을 장만하러 나가 보았으나 가게를 안 여셨다.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을 보았다. 바람도 없다시피 한 늦가을 어귀를 느꼈다. 뭐, 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한 하루로도 넉넉히 즐겁다. 저녁에 〈Kubo and the Two Strings〉를 모처럼 다시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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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30.


《마야 인의 성서 포폴 부》

 고혜선 편역, 여름언덕, 2005.4.20.



날마다 어느 만큼 하면 일거리를 마칠 수 있으려나 하고 어림해 보면 딱히 길이 안 보인다. 일거리를 마치려는 생각보다는 날마다 꾸준히 이 일거리를 다스릴 뿐이지 싶다. 많이 할 수도, 쉬잖고 할 수도, 끝없이 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인데, 지며리 하는 길이라고 느낀다. 마치 별 같다고 할까. 가만히 돌고도는 별. 스스로 돌면서 해를 복판에 두고서 찬찬히 도는 별. 어느 별이든 스스럼없이 차분하게 돈다. 해와 같은 별이라면 그 별은 꾸준하게 빛이며 볕이며 살을 내놓는다. 삶이라고 하는 길도 이러하리라. 《마야 인의 성서 포폴 부》에 흐르는 이야기는 알쏭한 듯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이 책을 열 몇 살이나 스물 몇 살 무렵에 읽었다면 알아들었을까? 그때에는 그때만큼 알아들었겠지. 오늘은 오늘만큼 알아듣는다. 앞으로 예순이나 여든이란 나이를 지나가면 그때에는 또 그때만큼 알아들으리라. 책이름은 “마야사람 성서”로 옮겼다만, 마야겨레한테 거룩한 책으로,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는 이야기로, 아이들이 배우고 어른들이 되새기는 살림꽃으로 하나씩 품은 발자취이지 싶다. 그러면 이 땅에는 어떤 거룩책이 있을까? 이 겨레한테는 어떤 살림꽃이나 삶책이 흐르고 흐르는 나날일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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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이메일 보내기) l 2019-11-01 15:27


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특수 학급’은 뭘까요



[물어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다양성’과 ‘평등’을 얼마나 살리는 길로 가야 하느냐가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란 서로 다른 길일 뿐, 틀린 길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이 다양성을 살릴 수 있을 때에 진정한 평등이 될 테고요. 샘님이 들려주는 우리말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말을 안 쓰고 자꾸 어려운 말을 쓰거나 멋을 부리는 말을 쓰려고 하면, 말 사이에서도 계급이 생기면서 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이는 다양성을 해치고 평등에도 어긋나는 일이 되겠다고 느껴요. ‘말의 다양성과 평등’ 문제를 조금 더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사회나 학교에서는 ‘다양성’이나 ‘평등’이란 이름을 쓰지 싶고, 푸름이 여러분도 이 낱말에 푸름이 여러분 생가글 담으리라 느껴요. 그런데 저한테 물어보면서 한 말 사이에 ‘다양성·서로 다른’이란 대목이 있어요. 한자말로 하자면 ‘다양성’이요, 한국말로 하자면 ‘서로 다른’이나 ‘다르다’입니다. 먼저 말씀하셨듯, 우리는 서로 다를 뿐, 누가 맞거나 틀리지 않습니다.


  푸름이 여러분이라면 ‘다양성’이나 ‘평등’이란 낱말을 그냥 쓸 텐데, 이 말씨를 놓고서 여덟 살 어린이나 다섯 살 어린이하고 나란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한테 어린 동생이 있을 적에 이런 한자말을 그냥 쓸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테지요?


  다 다른 길을 살피는 눈이란, 더 많이 알거나 잘 알거나 똑똑하다는 쪽 눈길에 그치지 않겠다는 마음이에요. 우리가 더 많이 안다면 더 많이 알기에 더 쉽고 부드럽게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평등도 이렇게 볼 만하지요. 한자말로는 ‘평등’이요, 한국말로는 ‘나란히’나 ‘어깨동무’입니다. 자, 생각해 봐요. 키도 작고 걸음도 느린 어린 동생하고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평등이라고 하는 첫걸음이랍니다. 어린 동생하고 눈높이를 맞추려고 푸름이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는 몸짓은 평등이라고 하는 두걸음이에요.


  저는 이 자리에서 ‘다양성·평등’ 두 한자말을 푸름이 여러분보다 훨씬 어린 동생 눈높이에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했어요. 다 다른 길을 한결 널리 살피고, 더 너른 마음으로 나란히 갈 수 있는 어깨동무를 하자는 마음이 바로 말을 말답게 가꾸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아주 쉬워요. 무엇이 쉬운가 하면, 쉽게 말하면 모든 일이 쉽답니다. 쉽게 말을 하지 않으니 모든 일이 쉽지 않아요. 이 이야기가 오히려 어려울까요? 말부터 쉽게 하면 일도 쉽게 풀 수 있는데, 말부터 어렵게 하면 일도 어렵게 꼬이기 마련이랍니다.


  푸름이 여러분이 빵을 반죽하거나 김치를 담그거나 밥을 짓는 자리에서, 여러분이 알아듣기 어렵거나 낯선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말이나 영어를 섞는다면 얼마나 알아들으면서 함께하거나 따라할 수 있을까요? 어린 동생하고 함께 빵반죽을 하거나 밥짓기를 할 적에도 매한가지예요. 같이 즐겁게 일을 하자면 말부터 쉽게 해야겠지요? 한국이 낯선 이주노동자하고 함께 일한다고 생각해 봐요. 한국도 한국말도 낯선 이주노동자한테 어려운 말을 쓰면 일을 함께 할 만할까요?


  우리가 쓸 모든 말은 다 다른 길을 살필 뿐 아니라, 더 너른 길을 나란히 갈 수 있도록 헤아리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추스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쓰는 말이란 쉬울 뿐 아니라 곱고, 고울 뿐 아니라 참하고, 참할 뿐 아니라 상냥하며, 상냥할 뿐 아니라 부드럽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어질거나 슬기롭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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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빛사람(별빛님) ← 장애인

 별빛아이(별아이) ← 장애아, 장애 어린이

 별빛칸 ← 특수 학급, 특수반, 장애아 학급


  슬쩍 다른 이야기를 곁들여 볼까 합니다. ‘별빛’이란 낱말을 들었어요. 왜 별빛이란 낱말인가 하면, ‘특수’란 한자말 때문입니다. 사전에서 ‘특수’란 한자말을 찾아보면 “특별히 다름”으로 풀이하고, ‘특별’은 ‘다름’으로 풀이합니다. 곧 ‘특수 = 다르게 다름’이란 셈인데요, 사전은 ‘다르다 = 같지 아니하다’로, ‘같다 = 다르지 아니하다’로 풀이합니다. 매우 뒤죽박죽이에요.


특수(特殊) : 1. 특별히 다름 2. 어떤 종류 전체에 걸치지 아니하고 부분에 한정됨 3. 평균적인 것을 넘음

특별(特別) :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 ≒ 특단

다르다 : 1.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2.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

같다 :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이다 ≒ 여하다

보통(普通) : 1.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2. 일반적으로. 또는 흔히


  오늘은 이 엉성한 겹말풀이나 돌림풀이 사전을 다루지 않겠습니다. 오늘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특수반·특수 학급’입니다. 푸름이 여러분이 저한테 다양성하고 평등 이야기를 물으셨는데요, 어느 학교에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특수반’이란 이름으로 두 가지 학급이 있어요.


  첫째 특수반은 시험성적이 잘 나오기에 더 시험성적이 나오도록 북돋우려고 하는 곳입니다. 둘째 특수반은 장애가 있다는 어린이나 푸름이를 모두 몰아넣고서 가르치는 곳입니다.


  다른 길이란 틀린 길이 아니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그저 다르게 다루곤 합니다. 왜 시험성적으로 누구는 첫째 특수반에 들어가고 누구는 그냥 학급에 있을까요? 왜 장애로 갈라서 누구는 둘째 특수반에 있고 누구는 그냥 학급에 있을까요? 다름하고 같음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장애자’라 하다가 ‘장애인’으로 바꾸다가 ‘장애우’라고도 합니다. 말끝을 ‘자(者)’에서 ‘인(人)’을 거쳐 ‘우(友)’처럼 한자만 바꾼 꼴이에요. 우리 삶터는 이렇게 말끝만 바꾸는 시늉을 했어요. 이러면서 더 생각을 못하기도 했는데요, ‘놈(者)’을 ‘사람(人)’으로 바꾸다가 ‘벗·동무(友)’로 고치는 길인데요, 처음부터 ‘사람’으로, 또 ‘벗’으로, 또 ‘님’으로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더 생각해서 ‘장애’라고 하는 이름부터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여느 삶터에서 바라보기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지만, 다른 별에서 보기에는 그야말로 다른 삶을 짓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별아이·별빛아이’나 ‘별사람·별빛사람’ 같은 새 이름을 떠올렸어요. 둘째 특수반을 놓고도 ‘별빛칸(별빛반·별빛학급)’ 같은 새 이름을 그려 봅니다.


  우리 곁에 있는 다 다른 이웃하고 동무한테서 흘러나오는 고운 별빛을 마음으로 느끼고 나누자는 뜻으로 이런 새 이름을 생각해요. ‘차별·차이’나 ‘특별·특수’로 가르지 말고 서로 마음으로 별빛 같은 눈빛이 되자는 뜻으로 이렇게 새 이름을 헤아립니다.


  별빛하고 꽃빛이 어깨동무하면 좋겠어요. 별빛하고 풀빛이 손을 잡으면 좋겠어요. 별빛하고 물빛이, 별빛하고 흙빛이, 별빛하고 잎빛이, 별빛하고 불빛이, 별빛하고 바람빛이, 서로서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한마당이 되면 좋겠어요.


  여느 사람을 흔히 풀에 빗대곤 합니다. 한자말로 ‘민초’를 쓰기도 하는데요, ‘일반인·보통 사람’을 ‘풀사람’이란 새 이름으로 나타내 보아도 어울립니다. 다 다른 우리는 풀사람·풀빛사람으로, 또 별사람·별빛사람으로 어우러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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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이메일 보내기) l 2019-11-01 15:23


나무를 그리는 사람 신나는 새싹 1
프레데릭 망소 글.그림,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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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38

《나무를 그리는 사람》
 프레데릭 망소
 권지현 옮김
 씨드북
 2014.5.26.


  나무를 지켜보지 않고서는 나무를 그리지 못합니다. 제비꽃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제비꽃을 그리지 못합니다. 자동차를 곰곰이 보지 않고서는 자동차를 못 그릴 테지요. 동무 얼굴을 가만히 마주보지 않는다면 동무 얼굴을 그림으로 담지 못해요.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는 모습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그림으로 담기 앞서는 마음으로 담아요. 마음으로 담으면서 생각으로 키우고, 생각으로 키우기에 즐겁게 이야기로 톡톡 꺼내고요. 《나무를 그리는 사람》은 나무를 그리는 사람을 보여줘요. 네, 그렇습니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보여줍니다. 자, 누가 나무를 그릴까요? 나무를 그리려고 이분은 무엇을 할까요? 아주 마땅히 나무 곁에 다가서겠지요? 아주 부드럽게 나무하고 속삭이겠지요? 아주 즐겁게 나무를 보듬거나 보살피려 하겠지요? 아주 상냥히 나무 품에 안겨서 낮꿈도 밤꿈도 누리겠지요? 무엇을 그림으로 담든 우리 마음은 사랑이 바탕이어야지 싶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든 우리 하루는 기쁜 노래가 흘러야지 싶습니다. 사랑이기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요. 노래이기에 하루를 살고 살림을 가꾸어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란 없답니다. 사랑으로 지켜보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이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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