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와 오토바이
케이트 호플러 지음, 사라 저코비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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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149


《토토와 오토바이》

 케이트 호플러 글

 사라 저코비 그림

 이순영 옮김

 북극곰

 2019.10.28.



  무엇을 타고 어디를 달려도 멀리 가는 길이 됩니다. 스스로 무엇을 몰면서 멀리 갈 수 있고, 누가 모는 탈거리를 함께 타고서 멀리멀리 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멀리 간 김에 그곳에 눌러앉습니다. 때로는 멀리 간 길만큼 오래도록 돌아서 집으로 옵니다. 집은 여기에 있기도 하고, 저 먼 데에 새로 짓기도 합니다. 스스로 마음에 들어 궁둥이를 붙이면서 고요히 눈을 감고 별빛꿈을 누리는 데가 집이 되겠지요. 《토토와 오토바이》에 나오는 토토라는 아이는 멀리 길을 나서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참 오래도록 먼길을 달린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이었다고 합니다. 토토는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오토바이를 몰고 멀디먼 길을 달려 보고, 이윽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을 누린대요. 참으로 투박하다 싶은 줄거리를 조곤조곤 다루는 이야기를 읽다가 생각에 잠깁니다. 얼마나 멀리 가 보아야 나들이가 될까요? 두 다리로 걸어서 마을 한 바퀴를 돌거나 멧자락을 오르내리는 길이란 어떤 나들이일까요? 마음에 드는 보금자리에서 가을볕이나 봄바람을 즐기면서 하늘바라기를 할 수 있어요. 밤마다 별바라기를 하며 마음으로 나들이를 다닐 수 있습니다. 탈거리는 몸으로 마실하는 길이요, 눈을 뜨거나 감으면 마음으로 마실을 다닙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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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통 곁에 고요한 이곳 2000.7.29.

― 서울 신촌 〈원천서점〉



  어떤 사람과 신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분은 일터에서 좀 늦게 나온답니다. 자그마치 한 시간이 남습니다. 어쩔까 하다가 발길을 〈숨어있는 책〉으로 돌리려던 때, 언젠가 이야기를 들은 〈원천서점〉을 찾아가 보기로 합니다. 신촌 전철역(2호선)에서 〈숨어있는 책〉으로 나가는 ‘르 메이에르(그랜드마트)’ 건물 쪽 나들목에서 ‘이랜드 회사’ 건물이 있는 데로 돌립니다. 나중에 가고 보니 이랜드가 나오기까지는 15분은 넉넉히 걸어가야 하더군요. 신촌이나 이대에서는 마을버스 7, 11-1, 13-1 이렇게 석 대와 시내버스가 안양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사이에 다니는 703번이 있네요. 걸어 보았기에 걸으면 좀 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걸어 이랜드 회사를 지나가 한갓진 마을이 나올 때까지 〈원천서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뻘뻘 흘리는 땀을 닦으며 뒤돌아갑니다. 입맛을 다시며 나중에 다시 찾지 뭐 하며 창전동 세거리 앞에 섭니다. 길 건너 저 앞쪽만 가 보자고 생각하며 목마른데 뭐라도 사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헉! 바로 뒤 구멍가게인 ‘연백수퍼’ 옆에 같은 간판으로 죽 이어서 〈원천서점〉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그러니까 저는 헌책집 앞을 한참 지나쳐서 땀을 뺀 셈입니다. 〈원천서점〉 곁을 멀쩡히 지나갔으면서도 그곳이 책집인 줄 몰랐던 셈이에요. 어쩌면 다른 분도 이곳 곁을 지나가면서 그러겠구나 싶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지나치느냐고도 하겠지만,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네요.


  자물쇠는 잠겼고 앞에는 큰 책수레가 하나 있습니다. 겉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거니 낮밥을 드신답니다. 연백수퍼에 들어가서 마실거리 하나를 사서 마시고 그곳 아줌마하고 〈원천서점〉 이야기를 몇 마디 여쭙고 듣습니다. 연백수퍼 앞에 말리는 고추 옆에 놓은 큰 쓰레기통에는 종이 쓰레기와 나란히 낡은 책 꾸러미도 있어요. 이 꾸러미에 어떤 책이 있는가도 들여다봅니다.


  헌책집 할아버지는 오래지 않아 자전거를 몰고 오십니다. 와서 문을 따시더니 곧바로 책수레를 천으로 꽁꽁 묶습니다. 그 수레에서 《바보새 이야기》(이상수, 길, 1998)가 얼핏 눈에 뜨이고, 진순신이란 분이 쓴 중국 역사 이야기도 눈에 뜨입니다. 이밖에 눈에 뜨이는 책이 꽤 있으나 다 읽은 책이라 그러려니 하고 여깁니다.


  이러다가 미 공보부에서 낸 《미국 대통령들》이란 낡은 책을 집어드는데 꽤 재밌습니다. 눈빛 출판사에서 낸 사진책이 겉그림이 없는 채 여러 가지 보입니다. 아무래도 반품 폐기로 버려진 책이지 싶습니다. 이런 책은 종이쓰레기를 모으는 곳에 잔뜩 쌓이기 마련인데, 비록 겉그림이 없더라도 알맹이를 눈여겨보고 찾을 손님이 있으랴 싶어서 건져내곤 하신다지요. 그도 그럴 까닭이, 헌책집을 찾는 이라면 깔끔한 새책이 아닌, 속이 알찬 이야기꽃을 바라니까요.


  “거기서 보고 볼 만한 게 없으면 얘기해. 뒤에도 책이 많아.” 하시는 말씀에 책집으로 들어섭니다. 책집에 들어서니 새로운 별나라 같습니다. 이렇게 알짜배기 책집이 서울 한복판, 게다가 북새통 신촌 곁에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다만 오늘은 이따 만날 분이 있으니 얼마 머물 수 없는데, 이따 만날 분이 늦는 김에 더 늦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책시렁을 살핍니다.


  먼지가 퍽 쌓여 겉그림 빛깔을 다 앗아갔으나 속은 깨끗한 《이오덕 교육일기》(이오덕, 한길사, 1989) 1·2권이 끈으로 묶인 채 있군요. 저는 1권만 있기에 꾸러미를 어쩌다 하고 생각하다가 둘 다 골라야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 창비, 1977) 오래된 판도 보입니다. 예전에 사서 읽었으나 새삼스레 눈에 뜨입니다.


  1980년 5월 18일 이야기를 영화로 담은 대본을 엮은 《부활의 노래》(이정국, 눈빛, 1990) 《제7의 인간》(존 버거·장 모르/차미례 옮김, 눈빛, 1992) 《시대》(고헌, 눈빛, 1996) 같은 사진책 세 권, 4286(1953)년에 나온 겉그림이 떨어져 나간 낡은 시조모음 한 자락과 백범사상연구소에서 ‘앎과 함 문고’로 냈던 《혁명적 인간상》(에리히 프롬, 백범사상연구소)을 쥡니다.


  꼬마 니콜라(니꼴라) 이야기는 언제부터 한국말로 나왔을까요? 《꼬마 니꼴라의 암호 놀이》(르네 고시니/김혜련 옮김, 태멘, 1982)를 보는데 껍데기가 있네요. 짙은 나무빛 껍데기가 있는 이 책은 겉껍데기가 있었기에 속이 아주 깨끗합니다. 가만 생각하니, 1980년에 둥지 출판사에서 나왔던 《빠빠라기》나 1970년대에 세 권으로 나온 《뿌리》도 이렇게 두꺼운종이로 껍데기를 싸서 속을 덮었습니다.


  〈원천〉 할아버지는 책값을 100원 하나치로 셈합니다. 《꼬마 니꼴라》는 1300원으로 셈하셨어요. 책값은 책 앞자락이나 뒷자락에 연필로 적어두셨군요. 책값을 적어 두지 않은 책은 “얼마지? 왜 안 적었지?” 하시며 한참 뒤적이다가 끝내 찾아내지 못하시면 입맛을 다시며 “그냥 얼마를 주지!” 하십니다. “원래 책값은 꽤 비싸니 자네는 싸게 사가는 거야.” 하는 말을 잊지 않으십니다.


  〈원천서점〉에서 나와 신촌으로 가려면 삼성아파트와 기업은행 건물을 지나 건널목을 건너면 됩니다. 그러면 곧바로 앞에 굴다리저자가 넓게 보여요. 바로 이 굴다리저자를 조금 지나면 왼쪽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입니다. 이리로 가면 신촌역을 오가는 철길 쪽으로 갑니다. 〈원천서점〉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헌책집 〈숨어있는 책〉하고 아주 가깝에 이어주는 샛길인 셈이에요.


  〈숨어있는 책〉에서 〈원천서점〉으로 가자면 산울림 소극장 쪽으로 나아가는 조금 비탈진 길로 갑니다. 그러면 철길이 나오고 철길 바로 앞에 ‘정지’라는 푯말하고 오른쪽에 ‘우서방 각시고기집’이 보입니다. 이때 왼켠에 있는 ‘정지’ 푯말이 있는 데로 들어가면 바로 7m 즈음 앞에 작은 골목이 보입니다. 이 골목으로 들어가 왼쪽에서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앞서 말했던 굴다리저자하고 이어지는 지름길이자 샛길이랍니다.


  이 길을 미리 알았더라면 저도 찾아가기 좋았겠지요. 굳이 마을버스로를 타지 않아도 되고 큰길을 따로 제법 멀리 빙 돌아서 가지 않아도 될 테고요. 그래도 신촌 북새통을 벗어나면 이쪽은 큰길도 나름대로 걸어다닐 만했습니다. 차도 뜸하고 조용하기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걷거나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걷기엔 맞춤하더군요. ㅅㄴㄹ


(뒷말 : 아주 마땅하겠지만, 〈원천〉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 〈원천〉 할아버지도 아마 별나라에 계시리라 본다. 부디 어디에서도 느긋하게 삶을 가꾸는 하루를 누리시면 좋겠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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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들 꿈길 1999.11.25.

― 경기 과천 〈한라에서 백두〉



  경기 광주에는 ‘나눔의 집’이 있고, 경기 과천에는 ‘한백의 집’이 있습니다. ‘한백의 집’에 모여서 살아가는 할아버지는 사슬터에서 준법서약서도 감찰보호법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기나긴 해를 살았다지요. 만델라보다 훨씬 오랫동안 조그마한 사슬칸에서 지내다가 아주 늘그막에 비로소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지요. 이들 사슬터 할아버지는 사슬 바깥으로 나가서 무엇을 하며 마지막 삶을 갈무리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헌책집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온누리에 새로운 책이 넘치고 가득하지만, 그 새로운 책은 젊은이 몫이요, 늙은자리에서는 오래된 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려 젊은이한테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노릇을 얼마쯤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러면서 바깥바람도 바깥사람도 가만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여겼답니다.


  할아버지 네 분 이름을 적어 봅니다. 김은완, 안영기, 장호, 홍문기. 네 할아버지는 사슬터에서 나온 지 이제 아홉 달이라는데, 짧다면 짧을 이 아홉 달이 오히려 여태 살아온 나날보다 훨씬 깊고 넓게 ‘사람 사는 길’을 일깨운다고 이야기합니다.


  네 할아버지는 헌책집 이름을 〈한라에서 백두〉로 짓습니다. 한라부터 백두까지 줄기차게 이어지는 새롭고 슬기로우며 사랑스러운 길을 꿈꿉니다. 한라부터 백두까지 어떤 쇠가시그물도 없이 맨발하고 맨손하고 맨몸으로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길을 꿈꿉니다. 한라부터 백두까지 사람을 비롯해 뭇숨결이 홀가분하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꿈꿉니다.


  두레집 ‘한백의 집’ 가까이, 과천 정부종합청사역(4호선)에서 내려 언저리에 있는 ‘서울 호프 호텔’이란 곳으로 가서 2층으로 올라서면 이곳 〈한라에서 백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네 할아버지는 헌책집 자리도 참 재미난 곳에 얻으셨네 하고 느끼며 찾아갑니다. 네 할아버지가 헌책집을 열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제가 일하는 출판사 일터 한켠에 책짐을 잔뜩 꾸려 놓았어요. 제가 사서 읽은 책도, 출판사에서 새책으로 팔 수 없는 ‘다친 책(겉에 흉이 생기거나 손때가 묻거나 반품 도장이 찍힌 책)’이며, 이웃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이며 400자락쯤 모았습니다.


  이 책꾸러미를 등짐으로도 지고 끈이며 상자로도 담아 지하철에 실어 신나게 땀흘리며 찾아갑니다.


  〈한백〉 할아버지는 “뭘 이런 걸 가져오셨소? 책방에 책을 사러 오기만 해도 반가운데 선물을 가져오셨네?” 하시더니, 얼마 앞서 찾아온 공안검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아버지를 찾아온 공안검사는 “당신은 공산주의가 좋소 자본주의가 좋소?” 하고 물었다지요. 이러면서 “공산주의 통일을 바라오 자본주의 통일을 바라오?” 하고 더 물었다는데, 사슬터에서 나온 지 아홉 달인 할아버지들한테 굳이 이렇게 물어봐야 했을까요?


  할아버지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다가 억센 목소리로 “우리에겐 이제 사상 논쟁은 없애기로 했소. 당신은 내게 사상 논쟁을 하자고 그러는 셈이오?” 하고 되물었대요. “우리에게 있어 온 것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였고 일제 때부터 통일 운동을 하고 독립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반공법으로 공산주의로 몰아넣었듯 해방 뒤에도 통일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라느니 ‘빨갱이’라느니 하며 ‘무슨 주의자’를 만들지 않았소. 이제 그런 얘기는 그만합시다. 이제 우리 통일 이야기를 합시다. 공산주의 통일도 자본주의 통일도 아닌 오직 평화 통일을 이루는 이야기라면 하고, 아니면 돌아가 주시오.” 하고 덧붙이니 공안검사는 입을 다물었대요. 그리고 “우리는 7·4 공동성명 때 했던 말처럼 자주·평화·민족대단결 통일을 말하고 싶을 뿐이오,” 하고 덧붙인 뒤에, “준법서약서를 쓰고 감찰보호를 하겠다면 그냥 감옥에 있겠다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들을 풀어 주었소. 우리들을 풀어주고 이제 와서 또 이렇게 묻는 까닭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니 공안검사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책시렁을 살핍니다. 귀로는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책을 헤아립니다. 두 손에는 새로 마주하는 책을 쥡니다. 《우리교육》 92년 12월호에 93년 2월호를 고릅니다. 《함께여는 국어교육》 14호에 16호를 고릅니다. 《골리앗 상공에서 쓴 비밀일기》(김현종, 노동문학사, 1990)를 보고, 《식민지 밤노래》(심산, 세계, 1989)를 보며 《폴란드 민족시집》(김정환 옮김, 실천문학사, 1982)하고 《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김시천, 온누리, 1993)를 봅니다.


  신나게 짊어지고 온 책꾸러미를 내려놓은 몸에 가벼운 책을 아름아름 꾸립니다. 그리고 《쌀밥의 힘》(고재종, 푸른나무, 1991)을 집어서 읽습니다.


땅은 그 위에 씨가 뿌려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땅이 된다. 씨뿌려지지 않는 땅엔 곧장 쇳덩어리나 가시덩굴이 들어차게 되어 그야말로 이름만의 땅이 되고 만다. (17쪽)


  책에 흐르는 빛이란, 땅에 씨를 뿌리며 가꾸고 거두는 손길이리라 느낍니다. 땅에 씨를 뿌린다면, 종이에 이야기를 뿌려서 가꾸고 거둡니다. 흙을 짓는 손길로 새롭게 거두는 기쁨이 있듯이, 종이에 짓는 마음길로 새롭게 나누는 보람이 있습니다.


  〈한백〉 할아버지는 헌책 곁에 헌옷하고 헌신을 같이 놓습니다. 헌책을 모으거나 주으러 다니노라면 버려진 헌옷이며 헌신이 참 많더랍니다. 더 쓸 수 있을 텐데 버려지는 헌옷하고 헌신이 애틋하다며, 차곡차곡 거두어 손질한 뒤에 가지런히 같이 놓는다는군요. 임자가 있으면 책도 옷도 신도 제자리로 가겠거니 여긴다고 합니다.


  하나되는 길이라는 통일이란 무엇일까요. 정치나 경제란 무엇일까요. 꼭두지기가 나서야 이루는 한덩어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먼저 이 마을에서, 이 자리에서, 이 터전에서 우리가 스스로 따사로운 눈빛으로 어우러지는 길에 선다면, 차근차근 어깨동무를 하리라 여깁니다. 너는 나요 나는 나이기에, 서로 손을 잡아 우리가 되어요. 뭉뚱그리는 우리가 아닌, 너랑 내가 다 다른 삶이며 사랑으로 살림하다가 만나서 손을 잡는 우리입니다.


  “여, 젊은이 책짐도 무겁게 선물로 가져왔는데 사진기 있으면 사진도 좀 찍고 그러지?” “아니요. 다음에 와서 찍을게요. 꼭 오늘 찍어야 하지는 않는걸요. 다만, 할아버지가 쓴 저 붓글씨는 찍어도 될까요?” “붓글씨? 아 저 글씨? 저 글씨는 습작이라 부끄러운데. 그래도 찍고 싶으시다면 찍으시게.”


 (뒷말 : 그런데 이 말을 남기고 다음에 찾아오려고 할 무렵에 〈한백의 집〉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이곳 사진을 따로 남기지 못했다. 사슬터에서 나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문을 연 가게를 잇는 달삯을 치르는 일이 만만하지 않기도 했고, 몸이 힘들거나 아파 문을 날마다 열기 벅차기도 했겠지. 이제 할아버지들은 모두 별나라에 계시리라. 굵고 짧게 문을 열고 자취를 감춘 〈한백〉 할아버지가 남긴 이야기를 새삼스레 돌아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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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책과 몸 : “책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려면 이제는 책을 그만 보기로 하자.” 말을 바꿔 본다. “책은 네 몸하고 똑같아. 네 몸을 다루듯 책을 다루면 좋겠어.” 더 생각해 본다. “네 몸을 가장 즐겁고 곱게 돌보는 마음이자 손길이 되어 책을 마주하기를 바란다.” 더 돌아본다. “네가 너를 스스로 사랑하거나 아낄 줄 알면, 책을 어떻게 쥐어서 펼 적에 네 눈앞에 꿈나라가 피어나는가를 알 수 있어.” 책을 꾹꾹 눌러 펴며 읽으려 한다든지, 과자나 기름이나 밥풀 묻은 손으로 책을 쥐려 한다든지, 책을 팔랑팔랑 소리가 나도록 넘기면서 읽는다든지, 그러면 책이 얼마나 아파하고 싫어하는지를 부디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를 ……. 2007.7.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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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편집자 : ‘엮는’ 사람은 엮는 ‘일꾼’일 뿐, 쥐락펴락을 하는, 이른바 ‘힘센이(권력자)’가 아니다. 그러나 힘센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에다가 ‘좋은일’을 한다는 보람을 너무 내세우고 보면, 사람들한테 ‘좋은글을 알리는 좋은일’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보면, ‘엮는’ 사람이 ‘짓는’ 사람을 타고 앉아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기도 한다. 마치 농협하고 비슷한 얼개이다. 농협은 잇는 구실은 징검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흙을 짓는 이들을 타고 앉아서 샛돈을 거머쥐고 떵떵거리잖은가? 편집자는 자칫 농협 벼슬아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엮는 일꾼으로서 징검다리 몫을 즐겁게 할 때에 빛난다. ‘지어서 보내는’ 사람이 있기에 농협이 징검다리 노릇을 하고, 편집자도 독자 사이에서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지어서 보내는 사람한테서 ‘받아서 엮을’ 수 있는 그 일을, 편집자 스스로 ‘심판자’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만 모두 힘들다. 편집자여, 심판자 아닌 일꾼으로 있어 주게나. 이녁한테 글을 지어서 보내는 우리는 이녁이나 우리도 똑같이 ‘일꾼’으로 어깨동무하고픈 마음이지, 이쪽도 저쪽도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네. 2015.7.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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