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집의 리사벳 동화는 내 친구 3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43

 


놀면서 아름답게 자라는 아이들
―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3.10.15.

 


  오늘 아침에 마을회관에서 한 해를 갈무리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마을 할매는 회관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시고, 마을 할배는 회관 마루에 앉아서 밥상을 기다리십니다. 이동안 우리 집 두 아이는 회관 마루와 부엌 사이를 쉴새없이 오갑니다.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마을회관 할배들은 아이들이 어지럽게 뛰논다며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웃고, 그저 달리며, 그저 뒹굽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 아이들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누가 무어라 하건 말건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아요.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할매나 할배가 말리든 안 말리든 신나게 달리고 뒹굴면서 노래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뛰놀지 못한다면 아이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뛰놀도록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공부를 시킨다면서 조용히 하라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도록 하더라도 공부하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마음껏 뛰놀도록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래야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랄 테니까요. 아이들은 아이답게 꿈꾸고 노래하면서 뒹굴어야 아이다우니까요.


.. 재미있는 집에서는 목요일마다 완두콩 수프를 먹어요. 그렇다고 리사벳이 목요일마다 완두콩을 콧구멍에 쑤셔넣는 건 아니에요. 사실은 딱 한 번 그래 봤을 뿐이에요 … 누군가를 골탕먹이려는 마음은 없었어요. 넣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을 뿐이에요 … 사실 엄마는 오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용히 누워 쉬고 싶었어요. 리사벳의 콧구멍을 후벼파고 싶지 않았다고요..  (5, 6, 10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놀 만한 곳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하루 내내 신나게 뛰놀면서 자라는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어떤 데에서 일하거나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놀기 어려운 곳을 집으로 삼지는 않는가요. 아이들이 놀 수 없는 데에서 일하지 않는가요. 아이들이 놀기 어려운 곳에서 살며 아이들을 묶어 놓지 않는가요.


  놀지 못한 채 자라는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놀이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아이는 어떤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어른으로 살아갈까요.


  아이한테는 이것을 가르치거나 저것을 가르치기보다는, 아이 나름대로 이렇게 놀거나 저렇게 놀도록 해야지 싶어요.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은 아이들이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놀도록 즐겁고 따사로우며 포근한 놀이마당을 마련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 장롱 옆에는 리나스 이다 아주머니의 기타가 세워져 있어요. 마디켄이 줄을 퉁기자, 마음을 적시는 듯한 고운 소리가 났어요. 어떻게 하면 아주머니처럼 기타를 잘 칠 수 있을까요 ..  (22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글을 쓰고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재미있는 집의 리사벳》(논장,2003)을 읽습니다. 리사벳은 언제나 즐겁게 놀고 싶은 아이입니다. 리사벳네 언니 마디켄도 늘 기쁘게 놀고 싶은 아이입니다. 둘은 한결같이 놀이에 살고 놀이로 하루를 누립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요.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지으면서 새로운 사랑을 이 땅에 드리울까요.


  어찌 보면 말썽꾸러기이고, 어느모로 보면 말괄량이입니다. 언니 마디켄은 여기에 싸움꾼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마음은 착해요. 착하면서 참답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동무를 아끼고 싶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동무와 예쁘게 어울리고 싶으며, 날마다 새롭게 놀이를 찾고 싶어요.


.. 마디켄은 리사벳의 손을 꼭 쥐었어요. 동생이랑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틀림없이 기뻐하겠죠 … 마디켄은 꼭 중요할 때는 엄마 말을 까맣게 잊어버려요. 늘 싸우고 난 뒤에야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죠. 하지만 지금은 리사벳을 도와줘야 하니까 이야기가 달라요.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  (12, 35쪽)


  리사벳은 콩알을 콧구멍에 넣으며 놀아요. 우리 집 두 아이도 콧구멍에 무언가 넣기를 즐깁니다. 길다란 과자도 콧구멍에 넣고, 까마중 까만 열매도 콧구멍에 넣습니다. 그리고, 콧구멍에 넣은 것을 도로 빼서 입에 넣고 아주 맛나게 먹어요.


  재미있지요. 재미나지요. 오이 한 조각이나 무 한 조각도 그냥 먹지 않아요. 두 손으로 살며시 휘면서 무지개라 말하고, 둥그런 오이 조각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보름달로 바뀌었느니 반달이 되었느니 초승달이라느니 하면서 놀아요.


  나무막대기는 긴칼이 되기도 하지만, 하늘 나는 빗자루가 되기도 합니다. 바닥에 내려놓고는 냇물 건너는 다리로 삼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거나 커다란 울타리라 여기며 껑충껑충 뛰어넘기도 해요. 맨손 맨몸으로 마당을 휘휘 달리면서 어마어마한 모험을 한다고 여겨 까르르 웃기도 합니다.


  옆에서 아이들 놀이를 지켜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섞여 함께 놀아도 즐겁습니다. 장난감이 따로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꼭 놀이터까지 가야 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들길을 걸어도 놀이가 됩니다. 자전거를 달려 이웃마을 찬찬히 지나다녀도 놀이가 되어요.


.. “자, 꼬마 아가씨들, 뽀뽀를 받고 나서 엉덩이를 좀 맞아야겠어. 그런 다음, 자는 거다.” 아빠는 딱 이 말만 했고요. 하지만 둘은 뽀뽀는 받았지만 엉덩이는 맞지 않았을뿐더러, 아직 자지도 않았어요. 어린이 방 불은 꺼진 지 오래였지만. 리사벳이 물었어요. “언니 침대에 가도 돼?” “응, 와도 돼. 그 대신 내 코에 손대지 않도록 조심해.” 리사벳은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마디켄의 침대에 올라갔어요. 그리고 “언니, 팔베개 해 줘.” 하고 말하며 마디켄의 팔에 머리를 괴고 누웠어요. 마디켄은 팔베개를 해 주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면 자기가 훨씬 나이 많은 언니 같아, 리사벳이 귀엽게 느껴졌죠 ..  (54∼55쪽)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마냥 혼자서 놀이를 생각해 내면서 놀았습니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면서 혼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신나게 즐겼어요. 종이 한 장에 이 그림 저 그림을 그리면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까맣게 잊으면서 놀았어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얼굴은 칠판을 쳐다보지만 마음속으로는 ‘노는 꿈’을 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빙긋빙긋 웃곤 했어요. 이러다가 교사한테 들켜 얻어맞는다든지 꿀밤을 맞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 그리는 ‘노는 꿈’을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업 진도는 따분하고, 교과서 지식도 재미없지만, 머리로 하나하나 그리는 노는 꿈은 언제나 새롭고 즐거워요. 하늘을 날기도 하고 바닷속을 가르기도 합니다. 먼 우주를 날기도 하며 지구별 맞은편에 있는 이웃나라 아이하고 어깨동무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 바라볼 적마다 어린 날을 떠올립니다. 나는 언제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랐습니다. 이렇게 즐거우면서 고맙게 받아먹은 사랑을 아이들도 함께 누리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든 기쁘게 맞이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즐기는 눈빛을 따사롭게 얼싸안고 싶어요. 이러는 동안 저도 새롭게 일하는 기운을 얻고, 이러는 사이 아이들은 씩씩하면서 튼튼한 마음이 되어요.


  놀면서 아름답게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놀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어른들입니다. 놀면서 웃습니다. 놀면서 노래합니다. 놀면서 아름답게 일합니다.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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