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상 - 사진시대총서 1
임응식 지음 / 해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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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삶과 사진꿈 읽기
 [찾아 읽는 사진책 70] 임응식, 《사진사상》(해뜸,1986)



 사진책을 힘껏 펴내려 하던 ‘해뜸’ 출판사가 처음 내놓은 책은 임응식 님이 쓴 글을 엮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해뜸,1986)입니다. 사진쟁이 임응식 님은 머리말에서 “본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사진학 강의를 하면서 제일 답답하게 느낀 것이 외국 사진가들의 경력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리 나라 말로 소개던 것이 전혀 없다시피 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쓰게 된 것이다.” 하고 밝힙니다. 2011년이라는 해에 생각한다면, 2011년이라 해서 나라밖 사진쟁이나 사진밭이나 사진책을 알뜰히 들려주는 마땅한 책이 제대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럭저럭 살피거나 돌아보도록 돕는 책은 제법 있어요.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을 그러모은 책이라든지, 매그넘 사진책이라든지, 드문드문 태어나곤 합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쓰는 여러 가지 교재가 한국말로 옮겨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직 한국사람 눈썰미로 바라보거나 살피면서 적바림하는 ‘사진으로 세계 흐름을 읽고 세계 문화를 돌아보는 이야기책’은 없어요. 임응식 님이 내놓은 ‘서양 사진쟁이 소개하는 책’은 “사진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 이름 말마따나 ‘사진 넋’이나 ‘사진 생각’이나 ‘사진 얼’을 밝히는 사진비평이나 사진이론을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임응식 님은 《사진사상》에서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서양 사진쟁이를 소개합니다. 얼마 앞서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라는 책은 사진쟁이뿐 아니라 사진과 얽힌 688 사람이 사진을 바라보며 들려준 이야기를 담아요. 숫자만 헤아려도 놀랍지만, 숫자에 담은 알맹이를 돌아보면 훨씬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1986년과 2011년 사이에는 새로운 사진쟁이도 많이 태어났고, 자료를 모으기에도 한결 나았을 테며, 인터넷이 있기에 조금 더 널리 돌아볼 만했으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1986년이라는 해, 한국땅 사진밭을 살필 때에, 서양 사진쟁이 쉰 사람 삶과 넋과 사진을 간추려 들려주는 《사진사상》은 한국에서 무척 앞선 책이요 돋보이는 책이며 값진 책입니다. 이 같은 책이 있어 이 나라 사진문화를 북돋우는 밑힘이 더욱 단단해졌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사진사상》은 ‘세계 사진쟁이’를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사상》이 다루는 사진쟁이는 모두 ‘서양 사진쟁이’입니다. 일본 사진쟁이나 아시아 사진쟁이나 중남미 사진쟁이나 아프리카 사진쟁이는 다루지 않습니다. ‘서양에서 엮고 서양에서 내놓는 사진역사책’에 으레 이름이 적히는 서양 사진쟁이만 다룹니다.

 그래도 이만 한 책이 나온 일은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그저 한 가지 토를 단다면, 1986년에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더라도 2011년에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 싶고, ‘온누리를 대표하는 사진쟁이’를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려 할 때에도 ‘서양 사진쟁이’만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는 틀을 살포시 딛고 서야 한다고 느껴요.

 덧보태자면, ‘세계 사진 넋’이나 ‘세계 사진 흐름’을 읽는 한편, ‘한국 사진 넋’과 ‘한국 사진 흐름’을 나란히 읽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무척 대단하다 싶은 책이기는 한데, 이 책도 일본 사진쟁이를 옳게 다루지는 못합니다. 퍽 많이 다루기는 했으나, 일본이 사진문화와 사진흐름에 이바지한 수많은 열매를 제대로 싣지는 못했어요. 무엇보다 ‘사진길을 걷는 한국 사진쟁이’ 열매는 한 가지조차 싣지 않았어요.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세계 편’이고 ‘한국 편’을 따로 내놓을는지 모르지만, 따로 내놓으려 한다면 책이름부터 나중에 따로 나올 ‘한국 편’ 이야기가 묻어나도록 했겠지요. 곧, 예나 이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에서 한국넋을 북돋우는 한겨레 사진길을 예쁘게 돌아보지는 못합니다. 사진기라는 연장이 처음 서양에서 태어났다지만,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에요.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를 서양에서 만들었대서 이 탈거리를 즐기는 사람은 서양 넋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연필을 누가 만들었든, 전깃불을 누가 만들었든, 셈틀을 누가 만들었든, 찬찬히 기릴 수 있는 노릇이지만 대단하거나 대수로이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이 알뜰히 잘 써야 해요.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맨 처음 누가 만들었는가를 따지며 기릴 수 있을 테지만, 바로 오늘 내가 밭자락에서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옳게 쓰느냐가 훨씬 대단하고 대수롭습니다.

 나는 내 사진길을 처음 걷던 1998년부터 《사진사상》을 읽었습니다. 일찌감치 판이 끊어진 책이니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사상》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읽던 《사진사상》은 겉이 하얀 빛이었는데, 그러께에 겉이 푸르스름한 새로운 판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겉이 푸르스름한 판이 처음 나온 판이더군요. 그래서 헌책방에서 새롭게 장만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찬찬히 되읽습니다. 철지났다든지 해묵었다든지 할 수 있는 《사진사상》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 사진밭을 알뜰히 일구며 한삶을 바친 임응식 님 넋과 숨결과 땀방울’을 느낄 수 있거든요. 참말, 책끝에는 ‘임응식 해적이’와 ‘임응식이 사진과 얽혀 쓴 글 표’가 찬찬히 붙습니다.

 《사진사상》이라는 책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이라고 합니다만, 책을 몇 차례 찬찬히 읽고 나서 느끼기로는, 아무래도 “임응식이 읽은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이로구나 싶어요. 여러모로 이름난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을 돌아보는 임응식 님은 당신 사진삶과 사진꿈과 사진넋과 사진길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사랑스러웠는가 돌이킵니다. 오랜 나날 사진과 함께 살아온 당신 삶과 꿈과 넋과 길은 얼마나 즐거웠는가 되뇝니다.

 한국에서 오래도록 사진길을 걸어간 어르신들이 당신 사진삶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느낍니다. “아무개가 좋아하는 사진”이라는 책이름을 붙여도 되겠지요. “아무개가 사랑하는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보고 배운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곁에 두는 사진”이라든지, 어느 이름이든 좋습니다. (4344.11.30.물.ㅎㄲㅅㄱ)


― 사진사상 (임응식 글,해뜸 펴냄,1986.5.25./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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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읽는 CEO - 한 장의 사진에서 배우는 통찰의 기술 읽는 CEO 4
최건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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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비평·사진교육·사진책
 [찾아 읽는 사진책 69] 최건수, 《사진 읽는 CEO》(21세기북스,2009)



 사람들은 사진기는 쉽게(라고 말하기는 좀 알맞지 않을 듯하지만, 그래도 쉽게) 장만합니다만, 사진책은 쉽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참말 쉽게) 장만하지 않습니다. 사진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진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기 이야기를 찾아 읽거나 나누거나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사진책 이야기를 찾아 읽거나 나누거나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면서 사진책을 장만하지 않을 때에는 사진을 놓고 할 말이 없습니다. 사진책을 안 읽는대서 사진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진기를 장만하려는 사람은 아주 마땅히 사진책을 장만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책(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을 장만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책(글로 이야기를 빚는 책)을 장만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책(노래가 담긴 이야기보따리, 곧 노래테이프나 노래시디나 노래파일)을 장만합니다. 내가 내 그림을 사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에,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담아 좋아할 만한 다른 그림을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만나요. 내가 내 글을 사랑하면서 글을 쓰기에, 내 마음과 꿈과 사랑을 실어 좋아할 만한 다른 글을 알아채거나 느끼거나 만나요.

 글을 읽듯 그림을 읽습니다. 만화를 읽듯 사진을 읽습니다. 노래를 읽듯 춤을 읽습니다. 사랑을 읽듯 사람을 읽습니다.

 최건수 님이 내놓은 《사진 읽는 CEO》(21세기북스,2009)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 읽는 CEO》는 사진비평과 사진교육 사이에 선 ‘자기계발책’입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을 이루자’고 하는 줄거리로 엮은 책입니다. 사진이야기를 놓고 자기계발책을 쓸 수 있구나 하고 놀랄 만한데, 오늘날 어디에나 사진이 두루 쓰이는 모습을 돌아본다면, 이만 한 사진책은 진작 나왔음직합니다. 좀 늦었달까요. 퍽 더디달까요.

 청소기 광고이든 화장품 광고이든 사진을 씁니다. 이름난 야구선수이든 이름 덜 난 핸드볼 선수이든 사진에 찍혀 신문에 기사로 실립니다. 삼성이라는 회사 이재용이라는 사람이든, 이웃 동네 할아범이든 기자한테든 아들내미한테든 사진으로 찍히기 마련입니다. 찍힌 사진을 읽을 때에 찍는 사진을 읽고, 보이는 사진을 읽을 때에 보는 사진을 읽어요.

 이리하여 “이런 류(더글러스 던컨)의 사진가들은 카메라의 셔터가 고장 날 정도로 많이 찍는다. 이들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살고 있는 사진가들이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카메라가 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 자연히 카메라도 기동성이 좋은 것을 애용한다. 다음으로는 중형부터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서 천천히 느리게 찍는 유섭 카슈 같은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찍기 전에 찍어야 할 셔터 찬스가 이미 마음속에 그려져 있다. 예견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철저히 사전 준비를 하고 한 번의 기회에 결정적으로 셔터를 누른다(301쪽).” 같은 이야기를 알뜰히 싣는 사진책 《사진 읽는 CEO》입니다. 온통 사진에 둘러싸였으면서 사진을 못 느끼거나 못 알아채는 사람들한테 ‘마치 나 스스로 최고경영자인 듯 여기’면서 내 둘레 사진부터 찬찬히 읽어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이 따로 없으니, 작은 곳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바라보든 큰 곳이라 여기는 무언가를 바라보든,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눈길로 곱게 바라보며 느끼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최건수 님은 “윤주영의 경우는 단순히 취미와 도락으로 사진을 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이 넘볼 수 없는 자신의 또 다른 성 하나를 쌓은 것이다(110쪽).” 하고 말합니다. 이는 사진밭에서만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어느 갈래 어느 밭에서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취미와 도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취미와 도락으로 글을 쓰면서 문학상 받거나 문학기금 타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취미와 도락으로 쓴 글은 아름다움이나 즐거움하고는 동떨어져요. 삶을 바쳐 누리는 사진이 될 때에 아름다운 사진이요 즐거운 사진입니다. 삶을 바쳐 누리는 일이 될 적에 아름다운 일이면서 즐거운 일이에요.

 사진은 “빛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사진 찍는 자의 몫이다(228쪽).” 하는 말처럼, 빛을 잘 알고 읽을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그러나, 빛을 잘 안다는 일이란 빛크기나 빛세기나 빛줄기를 읽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빨주노초파남보를 가르거나 존 시스템을 헤아린대서 빛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빛이란 내 삶이면서 목숨이에요. 내 삶과 목숨을 얼마나 옳게 읽느냐에 따라 사진읽기와 사진찍기가 달라져요.

 요즈음 한국땅 사람들은 한여름과 한겨울을 잘 몰라요. 한여름과 한겨울을 잘 모르니 사진 또한 잘 몰라요. 한여름 땡볕이 있어 곡식이 잘 여물어요. 한겨울 강추위가 있어 잔벌레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서 거름이 돼요. 1도만 높아져도 날이 몹시 가물어 곡식이 타들고 말아요. 1도만 낮아져도 날이 몹시 썰렁해 곡식이 얼어죽고 말아요.

 빛이란 온 목숨을 살리는 숨결이에요. 빛이란 내 삶을 가꾸는 따순 손길이에요. 빛 한 줄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나날이고, 빛 한 모금에 기대어 예쁜 꿈을 꾸는 오늘이에요. 사진이란 빛을 사랑하는 이야기이고, 빛을 사랑하는 이야기란 삶을 사랑하는 한길이에요.

 그런데 《사진 읽는 CEO》에서 최건수 님은 “사진 분야에서 제일 접근하기 쉬운 분야가 다큐멘터리 분야라 할 수 있다(110쪽).” 같은 말을 톡톡 내뱉습니다. 이처럼 생각하는 일을 옳다 그르다 할 수 없습니다만, ‘가장 쉬운 사진 갈래’나 ‘가장 어려운 사진 갈래’는 있을 수 없어요. ‘가장 쉬운 글쓰기’나 ‘가장 어려운 글쓰기’는 있을 턱이 없어요.

 동시나 동화가 더 쓰기 쉬운 글이 되지 않아요. 다큐사진이 더 찍기 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글은 모두 같은 글이에요. 사진은 다 같은 사진이에요. 옳고 착하며 예쁘게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길을 못 찾는 오늘날 사람들은, 옳고 착하며 예쁘게 삶을 꾸리는 길을 못 찾는 사람들이에요. 먼저 내 삶부터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때에 사진 또한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수 있어요.

 한국땅 사진비평을 읽으면,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삶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국땅 사진교육을 들여다보면, 옳고 착하며 예쁘게 일굴 삶을 교수나 교사 스스로 일구지 않을 뿐더러, 이러한 삶을 가르치지 않아요. 스스로 살아내지 못하니 스스로 가르칠 수 없고, 스스로 살아내지 않으니 스스로 배울 수 없겠지요.

 하나하나 짚자면, 최고경영자가 되어서야 사진을 읽는다면 참 늦습니다. 아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누구나 내 삶을 일구는(경영) 사람입니다. 누구나 여느 내 삶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안철수 님이 내 수수한 삶을 일구거나 사랑해 주지 않습니다. 박원순 님이나 이명박 님이 내 자그마한 삶을 일구거나 사랑해 주지 않아요.

 지식이나 이름값으로 읽는 사진이 아닙니다. 힘줄이나 돈줄로 읽는 삶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 하나로 이야기를 할 때에 태어날 사진비평이요, 오로지 사랑 하나로 나누려 할 적에 샘솟는 사진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책은 사랑을 사진으로 담아 엮는 책입니다. (4344.11.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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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지음 / 북하우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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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길 사진과 골목건축 기록
 [찾아 읽는 사진책 47] 임석재,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2006)



 대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면서 서울 시내 이곳저곳 다리품을 팔며 사진을 찍어 글을 쓴 다음 책으로 내놓는 임석재 님이 2006년에 선보인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을 읽었습니다. 2006년에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어쩌면 골목길과 골목사람과 골목동네 보는 눈썰미가 이토록 얕을 수 있나 싶어 슬펐습니다. 2010년에 다시금 살피고 올 2011년에 찬찬히 되읽으면서 찬찬히 헤아립니다. 임석재 님 《서울, 골목길 풍경》은 책이름에 ‘골목길 풍경’이라 적었으나, 어느 사진도 ‘골목길 풍경’이 아닙니다. 사진쟁이 김기찬 님이 내놓은 《골목안 풍경》은 책이름 그대로 김기찬 님 사진삶이 ‘골목 안쪽에 깃드는 풍경’을 사랑하는 넋이 고스란히 담겨요. 그러나, 건축쟁이 임석재 님 《서울, 골목길 풍경》은 책이름만 ‘풍경’이자 ‘골목길’일 뿐, 막상 이 책에 실은 이야기는 모조리 ‘골목건축 기록’입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서울, 골목길 풍경》을 쓴 임석재 님은 260쪽에 이르러 비로소 ‘골목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길 사진’ 한 장 보여줍니다. 이때부터 서너 장쯤 ‘골목길 사진’을 보여줘요. 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 사진을 보여주는 자리에서는 글도 남다릅니다. “이 길을 걸으면 기분이 참 좋다(262쪽).” 하고 말해요.

 《서울, 골목길 풍경》은 279쪽으로 끝납니다. 건축쟁이 임석재 님이 겨우 ‘골목길 사진’을 느낀다 싶을 때에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제부터 무언가 이야기가 피어날 만하다 싶더니 그만 끝장입니다.

 임석재 님은 “살아 있는 생명의 아름다운 소리다. 거슬리게 크지도 않고 힘없이 작지도 않은 알맞은 크기의 소리들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길에 듣기 좋게 메아리친다(201쪽).”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골목동네 사람들 소리란 어떤 소리인가를 또렷하게 밝히지는 못해요. 골목건축을 살피러 다리품을 파는 학자답게 바지런히 기록을 합니다. 기록을 하느라 바빠 여느 골목사람처럼 골목동네에서 깃들어 살아가는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아요.

 곧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책은 “이 동네도 언젠가는 불도저로 밀리고 아파트 투기에 휩쓸 것이다. 단순히 내 개인사를 넘어, 기록을 해 두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95∼96쪽).”는 말마따나, ‘골목건축 기록’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임석재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시에 깃든 골목동네 가운데 몇 곳을 골라 ‘건축 기록’을 하자는 틀에서 골목동네를 살핍니다.

 왜 기록을 해야 할까요. 기록은 어떤 값을 하나요.

 두 아이를 낳아 옆지기와 살아가는 나는 네 식구 한삶을 기록해야 하나요. 네 식구 한삶을 사진이나 글로 적바림(기록)하는 일은 얼마나 값이 있나요.

 아니, 나는 내 아이들과 옆지기를 사진이나 글로 적바림해야 한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옆지기이기 때문에 저절로 사진을 찍고 아주 마땅히 글로 써요. 마음으로 새기는 아이들 삶과 옆지기 나날입니다. 마음으로 담는 아이들 목소리와 옆지기 노래예요.

 어느 누구도 이녁 아이들과 옆지기 삶을 적바림해 놓으려고 사진첩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이녁 아이들과 옆지기를 사랑하는 결과 무늬와 빛깔과 내음을 느끼기에 열 일을 젖히면서 사진첩을 마련합니다.

 그러니까, 임석재 님은 《서울, 골목길 풍경》 같은 책을 내놓을 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 “서울, 골목건축 기록”처럼 책이름을 붙여야지요. 골목길 삶과 사람과 이야기를 생각하던 사람이 《서울, 골목길 풍경》이라는 책이름을 보고 이 책을 골라 장만한다면 참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밖에 없습니다. 골목삶과 골목빛은 한 가지도 스미지 못하는걸요. 온통 건축 이야기인데, 책이름 어디에도 ‘건축 연구 보고서’인 줄 밝히지 않아요. ‘건축 논문’인 책인데, 책이름과 머리말과 맺음말에는 마치 논문이 아닌 듯 껍데기를 씌워요.

 이야기 아닌 논문인 《서울, 골목길 풍경》이기 때문에, 건축쟁이 임석재 님은 골목동네 삶자락을 잘못 읽고 맙니다.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온통 ‘골목사람 삶하고 동떨어진 눈길로 내려다보는 슬픈 몸짓’투성이입니다. 몇 가지만 짚습니다.

 ㉠ “골목길이란 무엇인가. 친숙하고 누구나 다 아는 단어인 동시에 아스라한 추억의 단어다 … 물리적 관점에서 ‘아늑함’은 휴먼 스케일의 개념을 내포한다(7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길이 왜 추억이지요? 임석재 님이 다닌 골목동네 사람들한테 골목길은 ‘오늘 삶’, 이른바 ‘현실’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서 추억을 들이밀어서는 어떠한 이야기 하나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골목길이 ‘친숙’하다고 말할 자유는 있습니다만, 무엇이 어떠할 때에 ‘친숙’인지 궁금합니다.

㉡ “우리는 골목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이다(10쪽).” 하고 말하는데, ‘우리’라는 낱말을 덜어 주십시오. ‘우리’가 아니라 ‘나(임석재)’라고 밝혀야 옳습니다. 곰곰이 짚거나 찬찬히 헤아리지 않은 사람은 건축쟁이요 공무원이며 정치꾼이자 개발업자입니다. 골목사람은 늘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골목길은 삶터요 삶입니다.

㉢ “주의하라는 안전신호일 수도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읽히기도 한데, 아마 단순하게 반복되는 지루함을 덜어 주기 위한 배려인 듯하다(25쪽).” 하고 말하는데, 시멘트 계단에 형광페인트를 바른 까닭은 깊은 밤에 등불 빛살이 어둡거나 잘 안 들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이든 젊은 사람이든 시멘트 계단에 무릎이 부딪히거나 넘어지기 쉬워, 부디 잘 다니라는 뜻입니다. 형광페인트를 바르며 숫자를 적는 뜻은 밤에는 집집이 비슷비슷 보이니 숫자를 덧적으면 알아보기 한결 수월합니다. 술 한잔 알딸딸히 마신 분이라면 엉뚱한 집에 잘못 들어갈 수 있으니, 이런 숫자는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 “가게 앞에 평상을 깔아 놓고 테이블도 놓았지만 사람들은 물건만 사서 쌩하니 가 버릴 뿐 모이지 않는다(32쪽).” 하고 말하는데, 바쁜 사람은 그냥 지나칩니다. 아니, 다른 볼일 볼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모든 사람이 평상에 앉지 않아요. 평상에 앉는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임석재 님부터 평상에 앉으면 됩니다. 사람이 모이니 평상이 생기지, 평상이 있는데 사람이 안 모인다는 말은 앞뒤가 어긋날 뿐더러, 밑삶을 등지는 소리입니다.

㉤ “창과 문이 아무렇게나 뚫린 듯하면서도 구성미가 뛰어나다(39쪽).” 하고 말하는데, 사람들 살림집에 창과 문을 아무렇게나 뚫는 일은 없습니다.

㉥ “건축 전공자처럼 골목길의 공간적 우수함을 짚어내지는 못했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 앞에 모여 앉아 담소하는 다정스러운 모습이나 주고받는 이런저런 얘기 속에는 골목길의 의미를 정의해 줄 수 있는 키워드 같은 단서들이 있었다(146쪽).” 하고 말하는데, 학자들은 ‘골목길의 의미를 정의해 줄 수 있는 키워드’를 모르겠지요. 그리고, 이 열쇠말을 모르면서 ‘골목길의 공간적 우수함’을 짚는다고 해 보았자 무슨 훌륭함을 짚으려나요. 집과 삶과 사람과 길을 하나도 모르면서 무슨 건축 연구나 학문을 할 수 있나요.

㉦ “구성미는 문 몇 개가 어우러지면서 종합적 합으로 분할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몬드리안의 구성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문의 숫자는 많지도 않다 … 그러나 이것들이 내놓는 구성미는 절묘하다(184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집을 지은 사람은 몬드리안을 모르며 알 까닭이 없습니다. 몬드리안이 없어도 사람들은 골목집을 지어 골목동네를 이룹니다. 몬드리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예부터 사람들 살림집 나무문살 창호종이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주었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몬드리안이 한국땅 살림집 나무문살을 보고 나서 ‘몬드리안 구성미’를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일, 골목길 사는 사람이 하루를 보내면서 한다고 하는 일은 분명히 시시한 것들이다. 이런 시시한 일 하나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무척 길다. 이러다 보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한두 시간 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다 보니 무료함과 권태에 대한 면역력이 강해지고, 동네 경치를 즐길 여유도 생긴다. 느림의 미학이다(264쪽).” 하고 말하는데, 골목길이 시시한데 뭣 하러 다니는지 아리송합니다. 시시하니 심심하고, 심심하니 게으를까요. 학자들이 골목길 삶터를 가리켜 ‘느림의 미학’ 같은 그럴싸한 이름표를 갖다 붙이는 일은 참말 자유이기는 하나, 참말 골목길을 아름다이 바라보려는 뜻, 그러니까 ‘골목길 풍경’을 들려주고 싶으면, 제발 골목동네에 자그마한 살림집 하나 얻어서 열 해쯤은 살아 보셔요. 몸소 골목동네 사람, 그러니까 골목사람이 된 다음에 천천히 골목이웃으로 녹아들면서 골목길 빛살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셔요.

 학자나 학생 들은 으레 다리품(답사)을 팔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문화유적지를 다니고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다리품을 팝니다. 어떤 이는 한두 번 다리품을 팔고 나서 보고서나 연구서를 내놓습니다. 어떤 이는 수십 수백 차례 다리품을 팔고 나서 보고자료나 연구자료를 내놓아요. 그런데, 어떤 논문이나 책이라 하든 다리품을 천 번 만 번 판다 해서 제대로 바라본 이야기가 되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천 번 다리품을 팔 때보다 한 번 살아갈 때 한결 깊고 넓게 느끼니까요.

 바라본대서 알 수 없습니다. 바라볼 때에는 내 지식에 따라 내가 받아들인 모습만 생각하고 맙니다. 살며 느껴야 비로소 속알맹이를 짚어요.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림을 꾸리면서 사랑하는 나날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알아채려 힘쓰지 않는다면, 임석재 님이 앞으로 내놓을 책이든, 다른 사진쟁이가 골목길을 ‘바라보’거나 ‘들여다보’며 내놓을 책이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그칩니다. 유홍준 교수 답사기하고 다를 구석 없습니다. 답사기는 구경한 이야기로 끝나지, 살아가는 사랑이나 믿음이나 꿈으로 이어지지 못해요.

 잘 생각하고 깨달아 주기 바랍니다. 전쟁터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가 전쟁터를 답사해서 길을 잘 익히면 되겠습니까. 전쟁터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는 목숨을 내놓는 군인하고 똑같이 사진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아가 죽곤 합니다. 죽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건축 기록’이 아닌 ‘골목길 풍경’ 사진이라고 밝히려는 책이라 한다면, 아주 마땅히 골목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다른 아무것도 쓸모없습니다. 학위도 학벌도 돈도 값진 장비도 덧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이라면 똑딱이로 찍든 1회용 필름사진기로 찍든, 그야말로 ‘골목을 말하고 밝히는 참답고 착한 사진’을 이룹니다.

 이 느낌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밝히는데, 2006년 봄에 이 사진책 《서울, 골목길 풍경》을 보고 나서 참말 속에서 불길이 치솟더군요. 이렇게 골목동네 터전을 깡그리 짓밟듯 얕잡을 수 있나 싶어 슬프더군요.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살아가는 인천 골목동네 삶자락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기로 다짐했습니다. 2010년 가을에 시골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는 이제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더는 못 찍습니다만, 2006년 4월부터 2010년 가을까지 날마다 이백 장 남짓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빚었어요. 내 삶터요 내 보금자리이며 내 이야기터이자 내 사랑터를 느끼며 살을 섞은 빛느낌을 지난 2010년 여름에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았습니다. 가만히 돌이키자니, 임석재 님이 《서울, 골목길 풍경》을 내놓지 않았으면 나는 골목길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생각할 일이 없었을 테고, 인천 골목동네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일굴 일 또한 없었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나한테는 고마운 책인 《서울, 골목길 풍경》입니다. (4344.11.25.쇠.ㅎㄲㅅㄱ)


― 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 사진·글,북하우스 펴냄,2006.3.3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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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ルクロ-ドの子どもたち (大型本)
나가쿠라 히로미 / 每日新聞社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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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사람을 사귀는 삶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9] 나가쿠라 히로미(長倉洋海), 《シルクロ-ドの子どもたち》(每日新聞社,2009)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장만합니다. 온누리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한국처럼 사진기 많이 팔리고 사진 많이 찍으며 누리사랑방이나 누리모임 같은 데에 사진 끝없이 올라오는 곳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나라라 할 만한 일본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많고 사진책 많은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사진기 어깨에 걸거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이토록 많을까요. 사진잡지 많고 사진이야기 많은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누리사랑방이나 누리모임에 사진이 철철 흘러넘칠까요.

 사진기 갖춘 사람 많고 사진 찍는 사람 많은 한국이지만, 막상 사진책은 많이 나오지 않으며, 애써 나온 사진책이 두루 팔리는 일은 퍽 드뭅니다. 드문드문 나오는 사진책을 가만히 살피면, 사진책이라기보다 사진수필인 책이 퍽 많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사진책은 얼마 안 됩니다. 사진책 아닌 사진기록이 꽤 많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사진책마저 책값이 지나치게 비싸기 일쑤입니다. 여느 사진 즐김이가 사진책 즐김이로 이어질 만한 고리가 너무 자그맣습니다. 알맞춤한 크기에 알맞춤한 값을 붙여 알맞춤하게 엮는 아름다운 사진책이 좀처럼 태어나지 못해요.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한국땅 사진삶이란 ‘사진장비 갖추는 데에는 돈이 얼마가 되든 바칠 수 있’으나 ‘사진책 건사하는 데에는 돈을 조금이나마 들이지 못’하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사진이 즐거울 때에는 사진책이 함께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사진책을 읽는 즐거움을 나란히 누립니다. 그런데, 사진이 즐거울 수 있자면 삶이 즐거워야 합니다. 삶이 즐거울 때에는 사진이 즐거울 뿐 아니라 글이 즐겁고 그림이 즐겁습니다. 노래와 춤이 모두 즐겁습니다. 밥과 옷과 집이 다 같이 즐거워요.

 사진책이 즐거운 사람은 그림책이 즐겁고, 만화책과 글책 또한 즐겁습니다. 따로 사진책만 즐거울 사람이 있기도 할 테지만, 삶을 담는 책을 즐길 줄 알 때에 사진을 담는 책을 즐길 줄 압니다. 삶을 담는 사진을 누릴 줄 알 때에 삶을 담는 사진책을 누릴 줄 알아요.

 사랑하는 넋으로 삶을 일굽니다. 사랑하는 넋으로 삶을 일구는 몸짓이 사진 하나 찍는 매무새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넋으로 삶을 일구는 몸짓이 사진 하나 찍는 매무새로 이어지면서 사진책 하나 예쁘게 태어납니다.

 일본 사진쟁이 나가쿠라 히로미(長倉洋海) 님이 빚은 《シルクロ-ドの子どもたち》(每日新聞社,2009)를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사진으로 사람을 사귀는 삶을 누리는 나가쿠라 히로미 님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이녁은 사진으로 사랑을 맺고 사진으로 꿈을 이루며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낍니다. 나가쿠라 히로미 님은 당신 삶을 사랑하기에 사진을 사랑할 줄 압니다. 당신 삶을 믿기에 사진을 믿습니다. 당신 온삶과 온넋을 바치는 사진이기에, 바로 이 사진으로 당신이 반가이 여기며 좋아하는 이웃을 사귀고 동무와 어깨동무해요.

 《シルクロ-ドの子どもたち》는 “비단길 어린이”입니다. 비단길 발자취를 ‘비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목’이 되는 나라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이들 길목 나라에서 저마다 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 다른 기쁨과 슬픔과 웃음과 눈물로 곱게 여미는 사람들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서 돌아봅니다.

 예쁜 웃음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지 않습니다. 맑은 낯빛을 사진으로 실으려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이웃을 사진으로 사귑니다. 반가운 동무를 사진으로 만납니다. 그럴싸한 모습을 그럴싸한 사진으로 담아 선보이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작품을 그럴듯한 사진으로 만들어 뽐내지 않습니다.

 얼굴에 흙먼지 가득하대서 슬플 아이들이 아닙니다. 한국 경제높이와 견주어 가난하기에 고단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열 살 남짓 나이에 돈벌이를 해야 하니까 괴로운 아이들이 아니에요. 어린 동생을 업고 돌보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더라도 그늘질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마다 꿈과 사랑과 믿음과 이야기는 사뭇 달라요. 아이들마다 따스함과 넉넉함과 포근함과 살가움은 서로 달라요.

 스스로 오래오래 뿌리내려 아름다운 이야기를 건사하려는 어버이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은 즐겁습니다. 스스로 기쁘게 뿌리내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간직하려는 어버이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은 흐뭇합니다. 어버이가 백만장자여야 하지 않아요. 어버이가 손전화를 선물해 주어야 하지 않아요. 어버이가 높은학교를 다녔거나 아이들이 높은학교로 나아가야 하지 않아요. 손을 따숩게 맞잡는 삶이면 즐겁습니다.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나날이면 기쁩니다. 조촐히 밥을 나누고 넉넉하게 잠자리를 누리면 웃음꽃입니다.

 한국땅에서 곧잘 사진큰마당이 벌어집니다. 한국땅에서 수없이 많은 사진잔치가 열립니다. 지자체나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데에서 뒷배를 하거나 돈을 대어 사진큰마당을 벌인다든지, 이름난 사진쟁이가 서울땅 예쁘장한 자리에서 사진잔치를 연다든지 하는데, 사진작품은 수두룩하게 넘치지만, 사진사랑은 그닥 찾아보지 못합니다. 사진비평은 곧잘 태어나지만 사진삶 드러내는 사진이야기는 좀처럼 만날 수 없습니다.

 나가쿠라 히로미 님 《シルクロ-ドの子どもたち》를 함께 읽어요.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무거운 사진기 내려놓고, 무거운 이름값 내려놓고, 무거운 가방과 옷가지 내려놓고, 무거운 지식과 정보 내려놓고, 무거운 자가용 내려놓고, 무거운 아파트 내려놓으면서 자그마한 사진책 하나 함께 읽어요. 홀가분하게 살아가며, 너그러이 살아내는 하루를 곱씹어요. 곱다시 꿈을 꾸고 포근히 어루만지는 꾸덕살 박힌 야무진 손바닥을 함께 느껴요.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는 결을 살리면서 사진으로 사람을 사귀는 사진쟁이를 기다립니다. (4344.11.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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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건축 1 - 비원
임응식 지음 / 광장 / 197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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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68] 임응식, 《韓國의 古建築 ① 秘苑》(광장,1976)



 1970년대 끝무렵에 커다란 판으로 나온 얇은 사진책 묶음 “韓國의 古建築” 1번은 《秘苑》(광장,1976)입니다. 1970년대 끝무렵이란 새마을운동에 따라 시골마을 옛집이 거의 사라질 즈음입니다.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 커다란 기와집이나 궁궐이나 성곽은 문화재로 삼아 이럭저럭 건사하지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은 깡그리 무너지거나 허물려야 했어요. 대통령이 노랫말까지 붙여 ‘새마을운동’을 널리 퍼뜨리기에, 시골마을 흙길은 시멘트길로 바뀝니다. 소가 일구고 소가 갈던 논밭은 기계가 일구고 기계가 갑니다. 소는 흙에서 난 밥을 먹고 흙으로 거름을 돌려줄 뿐 아니라 제 몸뚱이인 고기까지 내줍니다. 기계는 기름을 먹고 배기가스를 내보낼 뿐 아니라 어느 만큼 나이를 먹으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됩니다. 풀약 없이 흙을 일구고 비료 없이 곡식을 거두던 시골마을은 사라집니다. 참말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풀약이나 비료가 따로 없더라도, 비닐이나 비닐집이 굳이 없더라도, 모두 한 끼니 밥을 먹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나라와 땅임자한테 바치는 세금이 만만하지 않았더라도 그럭저럭 밥술은 들 만했습니다. 이제 이 나라 흙일꾼은 나라와 땅임자한테 세금을 톡톡히 바치면서, 풀약과 비료와 기름과 기계를 대느라 더 많은 품과 겨를과 돈과 땀을 바쳐야 합니다. 이러면서 참다운 밥과 싱그러운 물과 달콤한 바람을 맞아들이지조차 못해요.

 “韓國의 古建築”은 1번부터 7번까지 궁궐이나 성곽을 다룹니다. 이 가운데 꼭 하나, 강운구 님 《내설악 너와집》이 있으나, 이 나라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 이야기는 끼어들지 못합니다. “韓國의 古建築” 9번과 10번 은 제주섬 살림집 이야기라 하는데, 책으로 나왔는지 못 나왔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직 저는 “韓國의 古建築” 9번과 10번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주섬 살림집 또한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테두리에 깃듭니다. 어쩌면, 책이름부터 ‘옛 건축’이라는 낱말이니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은 이 테두리에 낄 수 없다 할 텐데요, ‘건축’이라는 한자말은 ‘짓집기’나 ‘지은 집’을 일컫습니다. 절집도 집이요 살림집도 집입니다. 기와집도 집이며 풀집도 집이에요. 임금님 살던 집도 집이면서 흙일꾼 살던 집도 집이에요.

 곰곰이 살피면,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면서 가장 뿌리깊으면서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가장 살가운 한편 가장 고맙고 거룩한 집이란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입니다. 이를테면, 2010년대에는 크고작은 도시에 가득한 아파트나 빌라가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이 될는지 모릅니다. 1950∼80년대에는 이때에 걸맞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살림집이 있겠지요.

 골목동네 작은 사람들이 작게 일구는 텃밭과 꽃그릇 또한 ‘좋은 건축’입니다. 임금님이 쉬던 뒤뜰에 마련된 연못만 좋은 건축일 수 없습니다. 시골마을 흙일꾼이 알뜰히 일구는 논밭 또한 아름다운 건축입니다. 우람한 성곽이나 산성만 아름다운 건축일 수 없습니다. 바닷가 김밭과 미역밭과 조개밭, 이른바 뻘밭 또한 어여쁜 건축입니다. 멧자락 나물밭과 풀숲 또한 훌륭한 건축입니다. 나무마다 열매를 떨구어 오랜 나날에 걸쳐 이룬 나무숲 또한 거룩한 건축이에요.

 “후원은 창덕궁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궐의 후원을 말하는데, 이곳은 정무에 시달리던 역대 임금들이 생활의 여가를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며 즐기던 곳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 창덕궁 후원이었던 비원은 왕이 생활의 여가를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고 즐기는 곳이었으므로 궁궐의 외전이나 내전과는 기본의장이 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원의 건물들은 지형과 산록의 모양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건립되었고 이에 수반된 연못들도 자연풍경에 따라 만들어져 은근하고 아담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42쪽/김원).” 하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나라일에 바쁘며 지친 임금님이 쉬던 뒤뜰이라는 ‘후원’이자 ‘비원’이라고 하는데, 나라님은 궁궐 한켠에 ‘숲을 따로 만들어서 쉬어야’ 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살아숨쉬는 터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부러 가꾸어 쉬도록 한 터라고 해요.

 자연 그대로 살리면서 풀숲과 나무밭과 연못 한켠에 조그맣게 논이랑 밭을 두었으면 참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먼 옛날 임금님이랑 신하가 아침저녁으로 푸성귀 잎을 솎고 김을 매거나 논물을 살필 줄 알았다면 아주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쪽에는 닭을 치고 소한테 풀을 뜯길 수 있겠지요. 염소를 두어 젖을 짤 수 있으며, 돼지나 개가 다른 한쪽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나부터 내 삶터를 돌아보면, 아직 내 손으로 씨앗을 심어 밭을 돌보거나 나무를 가꾸지는 못합니다. 추위를 앞둔 늦가을에 새 보금자리로 옮겼으니 씨앗을 심기에 너무 늦었달 수 있습니다. 올해를 묵고 이듬해부터 씨앗을 심을 만한지 모르지만, 우리 집 뒷자락 빈터 쓰레기를 고르고 물골을 낸 다음 씨앗을 심으며 가만히 기다려도 좋으리라 꿈을 꿉니다. 바람이 고요히 잠들고 햇살이 따스히 내리쬐는 날, 첫째 아이랑 함께 호미로 땅을 쪼아 씨앗 몇 알 심고 싶습니다.

 나도 옆지기랑 아이하고 우리 집 뒷자락을 뒤뜰이나 뒷밭이나 뒷터로 삼아 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나무를 씨앗으로 심어 천천히 돌보고 싶습니다. 우리 살붙이는 씨앗을 심어 뿌리를 내려 줄기를 올리는 모습을 누리고, 우리 살붙이가 낳아 돌볼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새로 돌볼 아이들은 우리 살붙이가 처음 씨앗을 심은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아름드리가 될 모습을 누리면 돼요.

 사진책 《秘苑》을 다시금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임금님이건 흙일꾼이건 쉬어야 일을 합니다. 일을 한 다음에는 쉬어야 합니다. 오늘날 회사원이건 공무원이건 대통령이건 교사이건 노동자이건 쉬어야 합니다. 기자이건 판사이건 쉬지 않고서는 다시 일하지 못합니다.

 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쉬는 나날인가요. 쉬는 터는 어떻게 마련하거나 찾아야 좋을까요. 어떠한 곳을 찾아가야 비로소 느긋하게 쉴 만한가요.

 극장에서 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놀이공원이나 서울 명동이나 동대문 같은 데에서 쉴 만한지 궁금합니다. 술집이 늘어선 골목이나 여관이 줄지은 골목에서 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찜질방에서 쉬나요. 횟집에서 쉬나요. 포장마차에서 쉬나요. 노인정에서 쉬나요.

 사람이 사진기를 만들어 자연을 사진으로 담는 까닭은, 사람 스스로 빚은 물건과 사람 스스로 빚은 물건을 다루는 사람 모두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영갑 님은 제주섬 오름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쉬었습니다. 안승일 님은 삼각산 한라산 백두산을 오르내리며 쉬었습니다. 전민조 님은 섬을 떠돌면서 쉬었습니다. 강재훈 님은 시골 분교를 찾아다니며 쉬었습니다.

 나는 헌책방 책밭이랑 골목길 텃밭을 찾아다니며 쉬었다든지,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복닥이면서 쉰다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내 옆지기는 이 시골집에서 느긋하게 쉴 만한지 곱씹어 봅니다. 쉬는 사람일 때에 쉬는 자연이며, 쉬는 자연은 쉬엄쉬엄 따사로운 사랑을 쓰다듬습니다.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던 임금님입니다. 억지로 애써 뒤뜰을 만들지 않고서는 버틸 재주가 없습니다.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억지로 애써 4대강을 손질한다며 법석을 떨밖에 없습니다. 자연에서 쉴 수밖에 없는 사진쟁이입니다. 패션사진을 하건 다큐사진을 하건 사진기와 사람이 너그러이 쉴 사진을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빛도 그림자도 꿈도 사랑도 사진이야기로 갈무리하지 못합니다. (4344.11.20.해.ㅎㄲㅅㄱ)


― 韓國의 古建築 ① 秘苑 (임응식 사진,김원 글,광장 펴냄,1976.9.1./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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