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Frank: Peru (Hardcover)
Frank, Robert / Steidl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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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4]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PERU》(STEIDL,2008)


 페루에는 페루사람이 살아갑니다. 페루사람은 페루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한국에는 한국사람이 살아갑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살아갑니다.

 페루사람보다 한국사람이 낫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보다 페루사람이 나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널따란 아파트에서 자주 씻을 수 있으면 더 낫다 싶은 삶이 될까 궁금합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두 다리로 오래도록 힘겹게 걸어야 하지 않다면,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 짐칸에 짐을 싣고 다닐 수 있으면, 아니 까맣고 커다란 자가용조차 심부름을 해 주는 누군가 몰아 준다면, 이때에 한결 낫다 싶은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PERU》(STEIDL,2008)를 읽습니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님이 1948년에 빚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책은 참 얇습니다. 페루땅에서 살아가는 페루사람 사진을 고작 서른아홉 장 담습니다.

 서른아홉 장이라 한다면 필름 한 통보다 석 장 많습니다. 설마 필름 두 통만 찍었겠느냐만, 또 1948년이면 요즈음 같은 필름이 아닌 다른 필름이라 할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웬만한 여느 사진책을 돌아본다면, 서른아홉 장 사진으로 빚은 《페루》는 참 얄팍한 녀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책을 가만히 되넘깁니다. 사진 서른아홉 장이면 참말 적은 숫자인가 되뇝니다. 서른아홉 장이 아닌 삼백여든 장을 담아야 비로소 잘 엮은 사진책이라 할 만할는지 곱씹습니다. 서른아홉 장조차 아닌 서너 장으로 페루사람들 삶을 보여주려 했다면 바보짓이라 할 만한가 되뇝니다.

 사진을 보고, 다시 생각하며, 사진을 보다가, 또 생각합니다. 사진잔치를 하는 이들은 으레 ‘사진 한 장만 알림쪽지에 넣’곤 합니다.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사진책 앞쪽에 사진 한 장만 넣’기 일쑤입니다. 알림쪽지로든 사진책으로든, ‘사진 한 장’으로 사람들한테 느낌과 이야기를 건네지 못한다면, 사진잔치에 내건 다른 사진들이든 사진책에 담긴 다른 사진들이든 부질없다 할 만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진 백 장이나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사진 백 장이나 사진 천 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사진 한 장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시금 사진책을 들춥니다. 사진책 《페루》에 실린 어느 사진이건 책겉에 넣을 만합니다. 애써 어느 사진 하나를 가려서 겉에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페루땅 페루사람 이야기라면 이 사진이든 저 사진이든 잘 어울리는구나, 잘 드러나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찍는다 할 때에는 어느 사진 하나로 ‘한국땅 한국사람’을 보여준다고 내놓을 만할까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땅인가부터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한국사람 또한 어떠한 몸과 마음으로 어떠한 꿈을 키우면서 어떠한 살림을 일구는 겨레인지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4대강사업을 한다며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자동차나 배를 만드는 공장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다루느라 땀흘리는 사람들 모습이랑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나라밖 노동자가 얼크러진 모습에서 무엇을 한국땅 한국사람 모습이라고 그려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한겨레 어머니와 조선족 어머니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어떤 한국사람 얼굴을 찾아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랑 까맣게 탄 얼굴과 까맣게 얼룩진 손으로 흙을 일구는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한겨레 빛깔을 느껴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피리를 불고, 양을 몰며, 먼지바람이 이는 흙길 뒤로 높디높은 멧자락이 드넓게 펼쳐진 페루땅 한켠 페루사람들 눈빛과 낯빛을 들여다봅니다. 햇살을 듬뿍 받고, 바람을 가득 마시며, 흙하고 한동아리로 뒹구는 페루사람들 몸뚱아리를 바라봅니다.

 사진에 앞서 사람이란 무엇일까 알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삶이란 무엇일까 찾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앞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느껴야겠습니다.

 한국 사진쟁이 가운데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담는다든지, ‘고향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한국사람과 고향사람을 지나 ‘지구별 이웃’이랑 ‘지구별 목숨’을 곰곰이 살피면서 사진으로 싣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리송합니다.

 왜 사진을 찍는가요. 왜 사진에 담는가요. 사진기를 쥐고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사진기를 든 채 어디에 서나요.

 사진을 찍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요. 사진에 담아 무엇을 보여주려 하나요.

 사진기를 든 나하고 사진기를 바라보는 너 사이에는 어떠한 징검돌이나 걸림돌이 있는가요.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하는 몫을 맡은 사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이든 춤이든 만화이든 영화이든 연극이든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아숨쉬도록 할 때에 빛이 나면서 맛이 납니다.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불어넣는 손길로 빚는 사진이요, 살아숨쉬도록 하는 기운을 샘솟게 돕는 눈길로 일구는 사진입니다. (434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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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來ちゃん (單行本)
川島小鳥 지음 / ナナロク社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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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일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3] 카와시마 코토리(川島小鳥), 《未來ちゃん》(ナナロク社,2011)



 어버이가 아이를 찍은 사진을 아이도 함께 즐깁니다. 아이도 사진을 얼마든지 잘 들여다볼 줄 알며, 아이는 아이대로 잘 찍힌 사진을 헤아리며, 더 좋아하는 사진이 따로 있습니다.

 사진찍기를 늘 하면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살아가는 우리 집 네 살배기 아이는 첫 돌이 아직 안 될 무렵부터 사진을 보았습니다. 첫 돌이 아직 안 되었을 때부터 사진기를 만지작거렸고, 디지털사진기 단추를 요모조모 누르며 사진 보기를 즐겼습니다. 이제 네 살이 되면서 사진과 그림과 만화를 찬찬히 가릴 뿐 아니라, 사진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었는가를 환하게 읽습니다.

 아이는 사진을 이론으로나 실천으로나 배우지 않습니다. 딱히 배운 적이 없으며, 굳이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한테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고, 아이한테 책읽기나 영어나 한자를 가르친 적 또한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하루하루 반가이 맞이하며 즐거이 뛰놀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찍기를 늘 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아이 모습을 수없이 찍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날마다 사진으로 담습니다. 어느 날은 백 장 가까이 담고, 어느 날은 아이가 하도 미운 짓을 일삼는다고 여겨 고작 서너 장만 담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다음부터는 집일이 멧더미처럼 쌓이는데다가 몸이 지치는 바람에 사진을 제대로 못 찍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날마다 사진 몇 장씩 꼬박꼬박 찍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다가는 한 주가 흐르며 한 달이 갑니다. 이렇게 흐르거나 가는 날과 달이 모여 해를 이루겠지요. 때때로 몇 달 앞서 사진이나 한두 해 앞서 사진을 들춥니다. 날마다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몇 달 앞서 모습을 들여다보며 깜짝 놀랍니다. 날마다 아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새삼스레 느끼지만, 한꺼번에 여러 달이나 여러 해를 훑으니 이 아이가 이렇게 날마다 클 뿐 아니라 다른 얼굴 다른 모습 다른 이야기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아이를 사진으로 찍는 어버이는,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제 어린 나날 모습을 기쁘게 돌아보거나 돌이키도록 돕는다기보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가 어린 나날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살았는가를 ‘잊거나 놓칠 어버이’를 꾸준히 일깨우면서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단함’을 찬찬히 느끼도록 돕는지 모릅니다. 그렇겠지요. 아무렴.

 카와시마 코토리(川島小鳥) 님이 일군 사진책 《未來ちゃん》(ナナロク社,2011)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일본 사진쟁이 카와시마 코토리 님은 당신 딸아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았고, 이 사진을 그러모아 사진책 하나로 내놓습니다. 카와시마 코토리 님이 사내인지 가시내인지, 또 도시내기인지 시골내기인지 모릅니다. 그저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퍽 외지다 싶은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딸아이가 참 재미나게 놀면서 꽤 예쁘고 씩씩하게 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일본땅에서 태어나 일본사람으로 살아가는 넋을 고이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카와시마 코토리 님 사진책 《未來ちゃん》은 당신 딸아이를 기리면서 내놓았을 뿐 아니라, 당신 딸아이한테 바치는 선물이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 사진책 《未來ちゃん》은 누구보다 딸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느낀 보람과 기쁨과 고됨과 눈물을 알알이 담아 당신한테 스스로 바치는 선물이랄 수 있어요.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인 사진이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한테 바치는 선물인 사진입니다. 아이가 먼 뒷날 즐겁게 돌아볼 선물인 사진이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 먼 뒷날 기쁘게 곱씹을 선물인 사진입니다.

 아이 사진에는 아이가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만 담기지 않습니다. 아이가 나날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곁에서 아끼고 사랑하며 믿는 고운 어버이 모습이 살포시 담기고 나란히 스밉니다.

 다만, 어버이 되는 사람은 사진기를 들었으니 사진에는 안 나와요. 사진에는 오직 아이만 나옵니다. 내가 찍는 내 아이 사진도 똑같습니다. 내가 찍는 내 아이 사진에도 내 모습은 한 번도 비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 아이만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사진에는 어김없이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 눈물과 웃음’이 곳곳에 깃듭니다. 살며시 스밉니다. 아리따이 뱁니다.

 아이가 웃을 때에 어버이도 웃습니다. 아이가 울 때에 어버이도 웁니다. 아이가 넘어질 때에 어버이도 넘어집니다. 아이가 콩콩 뛰며 달리기를 할 때에 어버이도 콩콩 뛰며 달리기를 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고운 목숨을 선물했고, 나는 내 아이한테 고운 목숨을 선물합니다. 내가 먹는 밥은 숱한 알곡이 몸을 바친 목숨이요, 숱한 알곡은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을 머금으며 자랍니다. 돌고 도는 삶이면서, 돌고 도는 사랑이요, 돌고 도는 아름다운 꿈과 이야기입니다. (4344.8.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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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08-1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이 알려주기를,
사진쟁이 딸이 아니라
친구 딸이라고 하네요 @.@

친구 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사진으로 담았다고 한다면
글이 아주 달라야 하는데...

에구구.... ㅠ.ㅜ
이분 다른 사진책도 곧 한 권 사서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쓸 생각이라,
글에서 고치기가 엄두가 안 나네요....
 
레아의 감성사진, 두 번째 이야기 - 따뜻한 나날의 조각들
레아 글.사진 / 한빛미디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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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진은 언제나 마음찍기
 [찾아 읽는 사진책 42] 레아, 《레아의 감성사진 두 번째 이야기》(한빛미디어,2010)



 사진책 《레아의 감성사진 두 번째 이야기》(한빛미디어,2010)는 첫 번째 이야기 다음에 나온 책입니다. ‘감성(感性)사진’이라는 말마디를 쓰는데, ‘감성’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을 뜻한다고 적힙니다. ‘자극(刺戟)’이란 “외부에서 작용을 주어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함”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감성사진’이란 “마음이 움직이도록 건드리는 사진”이거나 “사람들 스스로 느끼도록 이끄는 사진”이라는 뜻입니다.

 《레아의 감성사진 두 번째 이야기》를 내놓은 레아 님은 “책 한 권 읽지 않고 사진을 시작했어요. 누군가의 책을 읽으면 누군가의 사진을 따라하게 될까 봐. 내 사진 속에 내 마음이 담기지 않게 될까 봐(2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다른 이가 걸어간 길을 따르는 일은 그리 마땅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사람인데 굳이 다른 사람 길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아 님이 이렇게 이야기하려 한다면, 레아 님이 내놓은 《레아의 감성사진 두 번째 이야기》 또한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을 까닭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레아 님이 빚어서 나누려 하는 ‘감성사진’은 ‘레아 님 스스로 당신 길을 고이 걸어가려 하는 사진’인 만큼, ‘레아 님 사진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레아 님이 걸어간 길을 따르거나 젖어들거나 길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기를 씁니다. 사진기는 ‘다른 누군가’가 만듭니다. ‘내가 만든 내 사진기’로 ‘나만이 선보이는 사진’을 찍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나만이 보는 빛느낌을 담는 내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입니다. 나 스스로 나만이 보는 빛느낌이란 없습니다. ‘나만 본다고 생각하는 빛느낌’이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사진기를 쓰지 않고, 내가 손수 만든 사진기를 쓰더라도 ‘사진기라는 틀을 만든 사람’이 일군 빛느낌 담는 그릇이라는 테두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우리는 누구나 목숨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고, 우리는 누구나 믿음입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만화를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모두 똑같습니다. 어느 갈래에서든 ‘나만 남달리 하는 길’이란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을 즐겁게 살찌우면서 하는 길’만 있습니다.

 레아 님이 맨 처음에는 다른 사진책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다른 사진책을 찬찬히 살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진책을 잔뜩 들여다보더라도 ‘레아 님 나름대로 걷는 길이 흔들리지 않을 뿐더러, 더 단단해지거나 더 야물어지거나 더 빛나야 옳’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습니다. 느낄 대목은 느끼고, 배울 대목은 배우며, 나눌 대목은 나누면 됩니다.

 나한테 더 있으니 기쁘게 나눕니다. 나한테 모자라니 즐거이 받아들입니다. 나한테 힘이 있으니 예쁘게 씁니다. 나한테 힘이 없으니 반가이 맞아들입니다.

 다른 사람 사진책을 읽지 않는다는 소리란,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소리하고 똑같습니다.

 책이 대수로울 수 없습니다. 책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마디를 담은 종이그릇입니다. 언제라도 다시 되새길 만한 말마디를 엮은 슬기그릇입니다. 따라하거나 배우거나 좇으라고 하는 책이란 없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달리 아름다이 살아내면서 깨우치거나 느낀 좋은 슬기와 넋과 빛느낌을 스스럼없이 나누면서 서로서로 다 다른 사진길을 사랑스레 북돋우자고 해서 태어나는 사진책입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사진에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서입니다 … 설명서 같은 글이 싫어진 나는 갇혀 있던 감정을 사진과 함게 풀어내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30, 229쪽).”라는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까닭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밥을 먹으려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을 자려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밥을 먹고, 살아가기에 잠을 잡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을 나눕니다. 살아가는 내내 웃고 울며 떠듭니다. 누구나 살아숨쉬는 나날 언제나 ‘마음을 보여주고 마음을 읽으며 마음을 어깨동무합’니다. 어쩌면, 레아 님으로서는 “갇혔던 마음을 사진과 함께 풀어낸”다기보다, 이제껏 스스로 제대로 몰랐던 마음을 시나브로 찾아나서는 사진찍기와 사진에 글 붙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진이든 마음이 담기고, 어떠한 글이든 마음이 실리거든요.

 딱딱하다는 신문글이든 논문글이든 평론글이든, 이러한 글 어디에라도 마음이 안 담길 수 없습니다. 적어도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라도 담깁니다. 학문에만 파묻혀 둘레 사람들 따순 손길이나 눈길을 읽지 못하는 딱닥하게 굳은 마음이라도 담겨요.

 착한 마음만 마음일 수 없습니다. 맑은 마음만 마음이지 않습니다. 생채기를 입은 마음도 마음입니다. 다친 마음도 마음일 뿐 아니라, 아픈 마음과 슬픈 마음과 메마른 마음과 기운 꺾인 마음도 모조리 마음이에요. 굳은 마음이든 모진 마음이든 미운 마음이든 한결같이 마음입니다. 그저, 이 숱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어느 마음이 더 좋거나 더 나쁘다고 함부로 자르거나 잴 수 없어요.

 “우리가 걷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훌륭한 피사체가 될 수 있습니다 … 책과 인터넷에서 소개하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를 따라 타인이 걸었던 발자국을 쫓으며 허덕이는 대신 골목과 사람과 빛에 마음을 열어 보세요(167, 201쪽).”와 같은 이야기처럼, 레아 님은 레아 님만이 바라보는 눈길대로 삶을 일구고 사진을 사랑하려 합니다. 앞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진책을 읽건 안 읽건 대단하지 않으면서, 사진책을 읽는대서 이 사진책을 내놓은 사람 틀에 갇힐 까닭이 없듯이, 이름난 관광지를 간대서 내 마음이 따분해지거나 칙칙해지지 않습니다. 사람 발길이 뜸한 데를 찾아간다 해서 내 마음이 촉촉해지거나 해맑아지지 않아요. 언제 어디에 어떻게 누구와 있더라도 내 마음은 늘 내 마음 그대로입니다. 시골자락에서 포근한 마음이 될 때에는 몸 또한 포근한 몸일 텐데, 복닥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포근하지 못한 몸이 되더라도, 마음은 포근하게 살릴 수 있어요. 몸이 힘들면 마음 또한 힘들지만, 몸이 힘들기에 마음은 한결 씩씩하게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살아숨쉬는 고운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살뜰히 살아숨쉬는 고운 목숨이면서 사진기를 손에 쥔 멋진 사진동무입니다.

 이리하여, 레아 님은 어쩔 수 없이 “이럴 때 나는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카메라가 필요해진 거야.’(277쪽)”처럼 이야기하고야 맙니다. 《레아의 감성사진 두 번째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사진마다 아래쪽에 어떤 사진기로 찍었는지 하나하나 밝히는데, 굳이 이렇게 밝힐 까닭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밝히는 뜻은 레아 님 나름대로 좋은 느낌과 넋과 매무새였다고 생각합니다만, 레아 님 사진책을 읽을 여느 사람한테는 ‘아하, 이런 사진을 찍으려면 이런 사진기를 써야 하는가 보구나.’ 하고 여기도록 이끕니다. 사진을 ‘마음’이 아닌 ‘사진기’로 찍도록 내몹니다.

 레아 님 스스로 ‘마음을 찍는 사진’이요 ‘마음을 나누는 사진’이라고 여긴다면, 사진마다 밝히는 ‘어떤 장비를 썼느냐’ 하는 대목을 잘라야 합니다. 아무 사진기를 쓰면 어떻고, 어떤 사진기를 썼다고 밝히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사진은 사진 그대로 바라보면서 즐겨야지요.

 레아 님이 어느 대학교를 다녔는지 알아야 레아 님 사진을 더 잘 헤아리거나 더욱 살가이 느낄 수 있지 않습니다. 레아 님이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 어느 동네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알아야 레아 님 사진을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장비병’이 잘못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장비로 일구지만, 내가 텃밭을 일구며 호미를 쓴다 해서 호미한테 휘둘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내 손에 쥔 호미일 뿐입니다. 할배가 쓰던 호미를 쓴들 내가 저잣거리에서 사온 호미를 쓴들, 풀을 뽑을 때에는 똑같습니다. 내가 쓰든 호미를 내 딸아이가 물려받아서 쓴들, 딸아이가 나중에 커서 스스로 호미를 장만해서 쓴들, 딸아이가 밭에서 무를 캘 때에는 똑같습니다.

 마음으로 주고받는 사진을 이야기하려 한다면, 말 그대로 마음만 보여주셔요. 마음이 아닌 자잘한 부스러기는 사진을 나누거나 사진을 사랑하거나 사진을 꽃피우는 길에 그저 걸림돌입니다. 사진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마음찍기였습니다. 다큐사진도 마음찍기요 상업사진도 마음찍기입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꿈을 꾸며 다 다른 삶을 일구는 마음찍기입니다. (4344.7.30.흙.ㅎㄲㅅㄱ)


― 레아의 감성사진 두 번째 이야기 (레아 글·사진,한빛미디어,2010.8.31./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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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가방 1 - 사진으로 가는 비밀 통로 사진가의 가방 1
강영호 외 지음, 포토넷 편집부 / 포토넷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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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진가방에는 천기저귀와 아이 옷가지
 [찾아 읽는 사진책 41] 포토넷, 《사진가의 가방 1》(포토넷,2011)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깹니다. 오늘은 두 시 사십 분에 일어납니다. 여느 사람들은 모두 곱게 잠들어 느긋하게 쉴 때일 테지만, 두 아이하고 옆지기랑 살아가는 어버이로서는 이때가 느긋하게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글을 쓸 수 있는 때입니다.

 먼저,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가 얼마쯤 되는가를 살핍니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아서 넌 기저귀는 어느 만큼 말랐는가를 헤아립니다. 빨래감이 좀 많이 쌓였으면 빨래부터 합니다. 그닥 안 많으면 한두 시간 즈음 글을 쓰고 나서 기저귀를 빱니다. 시골집은 여름날 밤에도 온도가 퍽 떨어지니까 방에 불을 넣습니다. 방에 불을 넣는 김에 아직 덜 마른 기저귀 빨래를 방바닥에 죽 펼칩니다. 십 분이나 이십 분에 한 번씩 뒤집습니다. 이러고 한두 시간쯤 지나면 덜 마른 기저귀 빨래는 모두 보송보송해집니다.

 “어디든 다녀 보면 작업이 될 만한 것들이 있어요(31쪽/강홍구).”라 이야기합니다만, 따로 어디를 다니지 않더라도 사진으로 찍어 이야기를 담을 삶은 가득합니다. 아니, 나 스스로 내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내 삶을 내 손길로 담을 때에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진이야기가 태어납니다. 굳이 ‘다른 먼 사람’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찾아나서’고, ‘다른 사람은 내 이야기를 찾아나선’다 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찾아나서도록 하기보다, 나 스스로 내 이야기를 제대로 느끼며 깨달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마땅하지만 너무도 마땅히 깨닫지 않고 마는 삶자락이라 할 텐데, 구태여 ‘낯선 다른 아이들을 어여쁘게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낳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을 날마다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때그때 눈부시게 달라지는 온갖 모습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면서 담으려고 할 수 있으’면 됩니다. 더 많은 나라를 누비거나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야 하지 않아요. 더 깊은 두메로 찾아가거나 더 멀디먼 나라까지 돌아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주로 시골에 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살림살이와 내가 들고 다니는 고급 가방 사이에는 이질감이 생기기 마련이죠. 부담 없어 보이는 이 가방은 벌써 10년째 사용하고 있어요. 평범하고 낡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면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웃어요(176쪽/노익상).”라 이야기합니다만, 내 조그마한 살림집에서 내 살가운 살붙이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내 살붙이부터 따사롭게 다가설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좋은 동무부터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즐겁습니다. 내 고마운 이웃부터 포근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기뻐요. 꼭 ‘가난한 시골사람’한테만 살가이 다가서야 하지 않아요. 부자한테든 가난뱅이한테든, 도시사람한테든 시골사람한테든, 자연한테든 사람한테든, 푸나무한테든 잠자리한테든, 모두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이자 넋이라고 느끼면서 예쁘게 바라볼 수 있으면 됩니다.

 둘째를 맞이하고 두 달을 지내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둘째를 맞이하기 앞서부터 옆지기하고 시골집에서만 지내면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가 사랑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는 누구한테 사랑받아야 할 목숨인가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나는 누구를 사랑하며 누구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 즐거울까요. 나는 누구하고 내 사진을 가장 예쁘며 기쁘게 나눌 때에 아름다운가요.

 “새 촬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새들이 경계하면 더는 가까이 가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새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거든요. 새들도 익숙해지면 조금 더 가까이 오는 것을 허용해요. 그리고 둥지 촬영 시 시야 확보를 하겠다고 주위 나뭇가지를 꺾거나 치면 안 돼요. 천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게 되거든요(208쪽/박웅).”라 이야기합니다만, 새한테뿐 아니라 내 보금자리에서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도 ‘사진으로 찍히는 내 아이가 사진찍기 때문에 짜증스럽거나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성가셔서’는 안 됩니다. 이 모습 저 모습 갖은 모습 온갖 모습 들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담기 앞서, 내 아이를 사랑하며 아끼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더 멋져 보이는 사진 한 장 얻는 일은 대단하지 않아요. 더 좋아 보이는 사진 한 장 얻는대서 대수롭지 않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랑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랑 오붓하게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고, 서로서로 살포시 껴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진책 《사진가의 가방 1》(포토넷,2011)를 찬찬히 펼치면서 곱씹습니다. 첫째 권이 먼저 나왔고 곧 둘째 권이 나옵니다. 사진쟁이들이 저마다 당신 사진가방이 어떠한가를 찬찬히 보여주는 책을 펼치면서 이모저모 곱새깁니다. 몇몇 분을 빼고는 하나같이 큼지막한 사진기와 사진가방을 쓰고, 이 사진 장비를 알뜰히 갖추어 돌아다니자면 자가용을 몰아야 하는구나.

 “의뢰받은 일이 아닌 제 작업으로 촬영하는 경우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다녀요(226쪽/백지순).”라 이야기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네 일’과 ‘내 일’이란 따로 없습니다. ‘찍어 달라 하는 사진’이든 ‘나 스스로 찍으려 하는 사진’이든 ‘모두 내 손으로 내가 빚는 사진’입니다. 만들어 달라는 사진이든 찍어 달라는 사진이든, 내가 만들려는 사진이든 내가 찍으려는 사진이든, 그예 내가 이루는 사진이에요.

 내가 이루는 사진은 대형사진기를 손수 만들어 쓰든, 중형사진기를 만만하지 않은 값을 치러 장만해서 쓰든, 작은 필름사진기를 쓰든, 디지털사진기를 쓰든, 로모사진기를 쓰든, 똑딱이를 쓰든, 언제나 내가 이루는 사진일 뿐입니다. 다만, 《사진가의 가방 1》에 나오는 사진쟁이 가운데 ‘똑딱이 디지털사진기’로 사진삶을 이루는 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문 사진쟁이’가 되자면 똑딱이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똑딱이로도 넉넉히 사진삶을 이루거나 사진책을 내놓거나 사진잔치를 베풀 만큼 ‘그림’에 앞서 ‘이야기’에 눈길을 두거나 마음을 쏟는 사진쟁이가 모자란 탓이라 하겠지요.

 책을 덮고 마지막으로 되돌아봅니다. 내 사진가방은 어떠할까. 내 사진가방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아니, 나는 내 사진가방이라 할 가방이 있을까.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사진가방이라는 가방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로는 사진가방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아이를 낳고부터 내 사진기는 목걸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안거나 업어야 하니 사진가방은 몹시 거추장스럽습니다. 아니,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는데 사진가방을 들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진가방도 ‘아이를 안거나 업거나 데리고 다니면서 쓰기에 좋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나는 60리터들이 커다란 멧사람배낭을 멥니다. 이 커다란 멧사람배낭에는 아이 옷가지와 천기저귀를 맨 먼저 담습니다. 아이가 마실 물을 담는 병을 담고, 아이 손닦개와 아이 먹을거리를 담습니다. 아이가 볼 그림책을 담고, 아이 놀잇감이나 인형도 하나쯤 담습니다. 코가 막힐 때에 코를 뚫을 소금물이랑 면봉을 담습니다. 손톱깎이와 귀후비개 들을 천주머니에 담아 배낭주머니에 넣습니다. 몇 가지 응급약품을 천주머니에 담아 배낭주머니에 넣습니다. 60리터들이 내 커다란 가방에 들어가는 내 사진 장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작은 가방을 하나 따로 마련해서 이 작은 가방에 필름사진기 한 대랑 필름 몇 통을 넣습니다. 디지털사진기 하나는 목걸이로 걸칩니다. 메모리카드 몇 장을 또다른 작은 가방 주머니에 넣습니다. 작은 가방에는 아이가 쓸 머리핀과 머리끈이 깃듭니다. 아이 머리를 빗을 빗도 깃들고, 곧바로 꺼내어 쓸 손닦개도 깃듭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늘 걸어서 움직입니다. 걸어서 움직이다가 버스가 있으면 고맙게 버스를 얻어 탑니다. 읍내를 다녀올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아이는 수레에 앉히고 아버지가 자전거를 몹니다. 등에 멘 가방과 수레 뒤쪽에 장날 저잣거리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담습니다. 이때에도 디지털사진기는 목걸이입니다. 자전거를 몰면서 뒷거울로 아이 모습을 살핍니다. 한손으로는 자전거 손잡이를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를 들어 뒷거울에 비치는 아이 모습을 찍습니다. 이러고 보면, 조금 먼 마실이 아닌 가까운 읍내 마실일 때에는 내 사진가방이 ‘집식구 먹을거리’로 가득 찹니다. 둘째가 열 몇 살을 넘을 때까지 내 사진가방에는 한결같이 아이들 옷가지와 아이들이 쓸 물건으로 꽉 차리라 봅니다. (4344.7.26.불.ㅎㄲㅅㄱ)


― 사진가의 가방 1 (포토넷 엮음,포토넷 펴냄,2011.7.14./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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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ocus: August Sander: Photographs from the J. Paul Getty Museum (Paperback) - Photographs from the J. Paul Getty Museum
August Sander / J Paul Getty Museum Pubns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람사진이 아름다운 까닭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1]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



 타셴(Taschen)에서 1999년에 내놓은 《August Sander》를 2006년 7월에 처음 만났습니다. 서울 연남동 골목 안쪽에 자리한 책쉼터에 예쁘게 꽂힌 이 책을 이곳을 찾아갈 때마다 들추곤 했습니다. 빌려서는 읽을 수 없고, 이곳에 찾아올 때에만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곳은 문을 닫았으니 더 찾아 읽을 수 없습니다만, 도서관이나 책쉼터가 왜 있어야 하는가를 새삼 깨닫도록 해 주었습니다.

 2010년 11월, 서울 홍익대 앞에 자리한 책방 〈온고당〉에서 또다른 《August Sander》를 만납니다. 이번에는 포토 포쉐(PHOTO POCHE)에서 1995년에 낸 판입니다. 이곳에서는 구경만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살 수도 있습니다. 기꺼이 장만합니다. 석 달이 지난 2011년 2월, 설마 싶어 누리책방을 뒤적여 봅니다. 사진쟁이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 몇 가지를 집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돈만 있으면 5만 원짜리이든 8만 원짜리이든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내 살림돈은 그리 넉넉하지 않기에 2만 원짜리 작은 사진책을 하나 사기로 합니다. 보름쯤 기다린 끝에 책을 받아듭니다. 2000년에 나온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를 손에 쥐면서 생각합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이 한글판으로 나오기를 바랄 수 없고, 바라기 힘들며, 바란다는 일은 부질없으니, 책을 살 돈을 조금씩 그러모아 이렇게 하나씩 나라밖 책을 사야겠구나.

 내 누리책방 ‘보관함’에는 어느덧 백서른 권이 넘는 나라밖 사진책이 담깁니다. 권마다 줄잡아 사오만 원쯤 되니, 백서른 권만 하더라도 책값으로 오백만 원이 넘습니다. 언제쯤 이 사진책을 다 장만할 수 있겠는가 꿈을 꿉니다. 어쩌면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가 지난 뒤까지 보관함에서 잠을 자다가 그만 판이 끊어져 더는 살 수 없는 책이 있겠지요. 책으로는 만지거나 들추지 못한 채 그저 책이름만 읊으며 그칠 사진책이 퍽 많겠지요. 나는 내 깜냥껏 푼푼이 그러모은 돈으로 겨우겨우 사들인 사진책을 갈무리해서 자그마한 ‘개인 도서관’을 하나 열었지만, 내 적은 살림돈으로는 장만하기 어려운 수많은 사진책이 가득 꽂힌 너른 사진책 도서관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마련한다면, 이리하여 이 나라에 ‘국립 사진책 도서관’이 한 군데쯤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새로운 꿈을 꿉니다.

 그러나, 여권 없고 비행기표 살 틈이 없는 몸으로서는 덧없다 싶은 꿈은 꾸지 말아야지요. 나라밖 사진책을 귓돈 살짝 얹어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오늘날 터전을 생각한다면, 내 책을 내가 건사해서 마련한 도서관으로도 흐뭇하고, 나라밖 사진책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누리책방에서 살펴보며 보관함에 담을 수 있기라도 한 일은 아주 고마우며 반갑고 즐겁습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을 반드시 한글 판으로 읽어야 하지는 않거든요. 영어 판이든 프랑스말 판이든 독일말 판이든 일본말 판이든 괜찮습니다. 사진을 볼 수 있으면 어느 판이든 고맙습니다. 그저, 책 앞이나 뒤에 붙는 풀이말이나 도움말은 한 줄조차 못 읽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책 앞뒤에 붙는 다른 글을 못 읽기 때문에, 더욱더 땀을 쏟거나 마음을 기울여 ‘사진읽기’만 하면 됩니다. 내 깜냥껏 사진을 읽고, 내 슬기를 모두어 사진을 새기며, 내 기운을 들여 사진을 껴안습니다.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를 펼칩니다. 박물관에서 건사한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 사진마다 깃든 이야기를 붙입니다. 책 끝에는 퍽 길게 ‘아우구스트 잔더 사진삶 돌아보기’를 놓고 박물관 사람이랑 사진비평가랑 주고받은 이야기를 싣습니다.

 《August Sander》(PHOTO POCHE,1995)를 펼칩니다. 앞머리에 ‘아우구스트 잔더 사진삶 살피기’를 꽤 길게 붙인 다음, 사진만 죽 보여줍니다.

 두 사진책에는 겹치는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in focus AUGUST SANDER》에 실린 사진은 ‘The J.Paul Getty Museum’이라는 데에서만 책으로 엮어 보여줄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한 장쯤 겹치는 듯한데, 두 사진책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으면서,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을 하나라도 더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사람을 앞에서 가만히 마주 바라보면서 담은 사진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발자취와 굳은살이 살포시 감돕니다. 마주 바라보는 사진은 많고, 마주 바라보는 사진은 누구나 으레 찍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 발자취와 굳은살을 고이 어우르려고 마음을 바치거나 힘을 들이는 사진쟁이는 많지 않아요. 얼굴과 차림새와 눈빛에 사로잡히기 일쑤입니다.

 얼굴이 이루어진 발자취, 차림새에 드러나는 하루하루, 눈빛에 서린 마음결과 생각밭을 고루 헤아리면서 함께 사랑하는 ‘사람사진’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떠한가만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란, 이 한 사람하고 얽힌 사람살이와 마을과 이웃과 동무와 사랑과 꿈이 줄줄이 이어지도록 찍는 사진입니다. 굳이 눈물을 찍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애써 웃음을 찍어야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삶을 찍으면 됩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과 사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서로를 삶으로 마주하면서 함께 손을 맞잡듯 사람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밑바탕을 보여줄 뿐입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매무새를 마무리짓는다든지 빛낸다든지 한껏 끌어올린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밑마음을 들려줄 뿐입니다.

 사진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사진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 삶과 목숨과 죽음과 사랑이 대단합니다. 이 대단한 다 다른 사람들 삶과 목숨과 죽음과 사랑을 사진으로 옮긴대서 사진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 대단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적바림할 수 있으면,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사진은 아름답게 걸어가는 사람들 삶자락을 적바림하는 예쁜 문화이자 예술이요 이야기마당입니다. (4344.7.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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