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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Hardcover)
Steve McCurry / Phaidon Inc Ltd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사진은 따로 없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1]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Portrait》(Phaidon,1999)



 사진을 잘 찍는다 할 만한 사진쟁이는 따로 없습니다. 사진을 못 찍는다 할 만한 사진쟁이 또한 따로 없습니다. 사진쟁이는 저마다 다 다르게 사진을 찍기 때문에, 누가 더 잘 찍거나 누가 더 못 찍는다 이야기하거나 가르지 못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찍는 사진이기 때문에 ‘이 사진이 참 좋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이 사진쟁이가 살아가는 결이 참 좋다’고 느낀 셈입니다. ‘이 사진은 그닥 좋지 않다’고 느끼면, 나로서는 ‘이 사진쟁이가 나아가는 삶이 그닥 좋지 않다’고 느낀 셈이에요.

 사진쟁이는 누구나 사진쟁이 나름대로 선 자리에 알맞게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즐김이는 누구나 사진즐김이 나름대로 선 자리에 걸맞게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읽는 사람이든, 서로서로 선 자리에 따라 사진을 마주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제 삶자리를 고이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껴안습니다.

 책을 읽든 일을 하든 말을 하든 글을 쓰든 똑같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만큼 책을 읽거나 일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아는 만큼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사는 만큼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아는 만큼 일을 하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만큼 일을 해요. 아는 만큼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아요. 이제껏 살아온 만큼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살아가는 눈이 사진하는 눈입니다. 살아가는 손길이 사진하는 손길입니다. 온누리를 따숩게 껴안고픈 꿈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온누리를 따숩게 껴안고픈 꿈이 사진으로 녹아듭니다. 다만, 사진길을 걸은 지 아직 얼마 안 된 이라면, 온누리를 따숩게 껴안고픈 꿈이 사진으로 깊이 녹아들지는 못합니다. 조금 어리숙하겠지요. 어느 모로 보면 좀 지나치거나 넘칠 수 있고, 때로는 모자라거나 엇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삶길에 따라 내 사진길인 만큼, 사진으로 담는 솜씨가 모자라더라도 사진을 이루는 넋은 처음이나 끝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살아가는 매무새 그대로 사진을 합니다. 살아가며 사람을 사귀는 매무새 그대로 사진을 하면서 사람을 만납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뭇목숨이든 사진으로 예쁘게 담으려는 꿈을 품으면, 언제나 예쁘게 담습니다. 다만, 이때에도 처음에는 손재주는 좀 어설프겠지요. 차근차근 손재주를 가다듬으면서 내 사진을 빛냅니다.

 먼저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가 하고 내 삶을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사진을 하지 못합니다. 먼저 내 삶을 어떻게 일구려 하는가 하고 내 다짐을 굳세게 다스리지 않고서는 사진뿐 아니라 자전거라든지 달리기라든지 살림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배움이라든지,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좋은 사진이 따로 없듯이 좋은 삶은 따로 없습니다. 좋은 사진이 따로 없는 만큼 좋은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좋은 사진을 생각할 수 없듯이 좋은 사랑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더 돋보이는 사람을 찍었기 때문에 사진이 더 돋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더 이름난 사람을 찍었으니까 사진이 더 이름날 까닭이 없습니다. 더 예쁘장한 사람을 찍었다 해서 더 예쁘장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진은 그예 사진이고, 사람은 그예 사람이며, 사랑은 그예 사랑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진을 맞아들이지 않는다면, 나한테든 남한테든 사진이란 사진이 아니라 껍데기이거나 겉치레에 그칩니다. 있는 그대로 사진을 가슴으로 삭여 내 삶 한 자락으로 살포시 녹일 때에 바야흐로 나한테든 남한테든 살가이 사진으로 젖어듭니다.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님이 일군 사진책 《Portrait》(Phaidon,1999)를 들여다봅니다. 사진책 《Portrait》에 담긴 사람들 가운데 돋보인다거나 이름났다거나 한 사람도 틀림없이 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진책으로 담긴 사람들 바로 옆에 있었을 다른 사람을 사진으로 담았어도 《Portrait》는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누구를 찍었기에 《Portrait》가 되거나 누구를 못 찍거나 안 찍었대서 《Portrait》가 안 되지 않습니다.

 영어사전에서 ‘Portrait’를 찾아보면 ‘초상화’나 ‘인물 사진’이라고 풀이합니다. 아마 그림만 있던 지난날에는 ‘얼굴그림’을 ‘Portrait’라 했겠지요. 우리는 말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며 살아가는데, ‘肖像畵’란 “초상 그림”이고, “초상 그림”에서 ‘肖像’이란 “얼굴을 그리는 일”입니다. 아득히 먼 옛날 이 나라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쉽거나 바른 한국말을 하기보다는 중국사람을 섬기며 중국말을 하거나 중국글을 쓰기를 즐겼습니다. 이러다 보니, 여느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肖像’ 같은 한자말을 중국에서 받아들였으며, 이 중국말은 아직까지 이 땅에서 버젓이 살아숨쉽니다. 이제 우리 한국사람은 중국사람 중국말이 아닌 한국사람 한국말을 해야 할 테니, ‘초상화’가 아닌 ‘얼굴그림’이라 말해야 하며, ‘인물 사진’ 또한 아닌 ‘얼굴사진’이라 일컬어야 제대로 쓰는 말이 됩니다.

 곧, 《Portrait》는 ‘얼굴사진’이란 소리입니다. 그러나,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얼굴사진》처럼 쓰는 사람은 없으니, 그냥 《얼굴》이라 하겠지요. 또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맥커리 님은 영어로 ‘human’이라 하지 않고 ‘portrait’라 했습니다. ‘사람’이라 할 때에는 사람 모습이나 얼굴 모습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터’까지 두루 담는 사진이요, ‘얼굴’이라 할 때에는 얼굴 모습이나 얼굴이 드러나는 사람 모습을 담는 사진이지,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이나 보금자리까지 넓게 살피는’ 사진이 아닙니다. 애써 ‘사람’으로 하지 않고 ‘얼굴’로 하더라도 ‘사람삶’을 담을 수 있다는 뜻으로 《Portrait》이고, 이에 걸맞게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사진을 책 하나로 도톰하게 엮습니다.

 《Portrait》에 담긴 얼굴사진을 살피면, 어린이 얼굴사진이 어른 얼굴사진보다 조금 많고, 계집아이 얼굴사진이 사내아이 얼굴사진보다 살짝 많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와 버마 사진이 거의 모두를 차지합니다. 사이사이 티벳과 미국 사진이 깃듭니다. 니제르나 말리나 인도네시아나 유고슬라비아나 네팔 사진도 드문드문 섞입니다.

 사진을 찍는 스티브 맥커리 님을 가만히 바라보는 눈빛이든,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는 줄 모르는 사이 찍힌 사람들 눈빛이든, 이 나라 사람들 눈빛이든 저 나라 사람들 눈빛이든, 《Portrait》에 얼굴이 실린 사람들 눈빛은 무척 말갛습니다. 미국사람이라서 게슴츠레하지 않습니다. 배고픈 어린이라서 뿌옇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서 슬프지 않습니다. 돈있는 사람이라서 기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삶 그대로 보여주는 눈빛입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두 손을 곱게 모아 무슨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줍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이렇게 두 손을 곱게 모을 수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닫습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을 잘 찍었으니 이와 같은 모습을 얻기도 할 테지만,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마음을 한껏 열어 ‘아무쪼록 사랑과 기쁨이 찾아드소서’ 하는 비손이 담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여러 나라 여러 겨레 사람들을 이처럼 한 자리에 모아서 두루 돌아보면서 생각합니다. 몸피와 얼굴과 살결이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같은 겨레 사람일지라도 옷차림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이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아 바느질을 하여 얻은 옷일지라도 두 사람이 입으면 두 가지 옷이 다릅니다. 얼핏 보면 똑같다 생각하겠으나, 다른 두 사람이 입은 옷인 만큼 다른 두 가지 옷입니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 몸에 흐르는 기운과 넋이란 한동아리로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 모두 따순 피가 흐르며 따순 사랑이 감돕니다.

 흙땅을 맨발로 뒹굴든, 아스팔트바닥을 구두를 신으며 자가용을 모느라 밟을 일조차 없든, 두 사람 모두 몸에는 따순 피가 흐릅니다. 차가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더 거룩해 보이는 얼굴을 찾으려고 티벳이나 인도나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더 슬퍼 보이거나 가녀리다 싶은 얼굴을 찾으려고 미국이나 프랑스를 떠돌 까닭이 없습니다. 저마다 선 자리에서 돌보는 삶을 느끼면서 손을 잡을 수 있으면 됩니다. 누구나 제 나라 제 겨레 터전에 걸맞게 살아가는 결을 사랑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이기 때문에 글이나 그림이 이루지 못하는 이야기를 빚습니다. 글이나 그림으로는 온누리 여러 나라와 겨레 삶자락을 두루 찾아다니며 마주하는 동안 이렇게 숱한 빛깔 숱한 얼굴 이야기를 낳지 못합니다.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 다 다른 얼굴빛과 ‘얼굴에 서린 이야기’를 두루 느끼도록 돕습니다.

 좋은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좋은 삶이라고 느끼며 즐거이 꾸리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삶이요, 이 좋은 사람 좋은 삶을 어깨동무하는 사진쟁이는 전문작가이든 다큐작가이든 풋내기이든 새내기이든 아무것 아닌 사람이라 하든, 사진기를 들 때에 누구나 다 다르게 좋은 사진을 얻습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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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건축 7 - 수원성
주명덕 사진 / 광장 / 198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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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찍는 발자국인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8] 주명덕, 《수원성》(광장,1981)



 수원에는 수원성이 있습니다. 수원성은 자그마한 성입니다. 자그맣지만 야무지고, 한국전쟁 때에도 씩씩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수원성은 수원시내 한복판에 자리합니다.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고, 수원성을 따라 버스며 자동차며 수없이 오고갑니다.

 우리 나라에 사진이 들어온 첫무렵부터 수원성은 으레 좋은 사진감이 되었습니다. 한국사람이건 일본사람이건 서양사람이건 수원성을 즐겨찍습니다. 한국전쟁 무렵 사진 가운데에도 수원성 둘레 모습을 담은 사진을 어렵잖이 찾아봅니다. 꽤 예전 사진을 찾아보면, ‘오늘날 보기에 수원성이 몹시 작아 보이’지만, 지난날 수원성 둘레 풀집들이 지붕 낮은 채 빙 두른 모습을 볼 때면, 이 수원성은 ‘하나도 안 작은 성’이었구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고 찾아서 살피면 수원성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원사람 가운데 수원성을 뒤로 하며 사진 한 번 안 찍은 사람은 드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수원성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구석구석 낱낱이 사진으로 담아내어 사진책으로 일구는 일 또한 드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성곽을 사진으로 담는 분이 꽤 있기는 하지만, 우리네 성곽을 담은 사진이 사진책으로 나오는 일도 퍽 드물기는 합니다. 더욱 깊이 담아내지 못한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책이 못 나온다 할 만합니다. 애써 사진책을 내놓지만 즐거이 장만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는 책 만드는 돈을 거둘 수 없으니 선뜻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 할 만합니다. ‘기록’으로 찍거나 ‘예술’로 담기는 하지만, 정작 성곽을 성곽답게 바라보거나 껴안으며 사진으로 빛내기까지는 못하는 탓인지 모릅니다.

 중국 만리장성을 사진으로 일구는 모습을 보면 무척 남다릅니다. 만 리라는 길이가 되는 기나길고 크디큰 성이기 때문에 만리장성을 사진으로 일굴 때에 무척 남다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큰 성이건 작은 성이건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 마음이 대수롭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조금 더 깊이 보듬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성이든 큰 성이든, 모습이 알뜰히 남아 사람들 삶터에 절로 녹아든 성이든 산속 깊이 파묻힌 성이든, 사진으로나 그림으로나 글로나 알뜰살뜰 실어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주명덕 님이 담은 《수원성》(광장,1981)을 봅니다. 이 사진책이 처음 나오던 때에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저로서는 이 사진책이 새책방에서 자취를 감춘 지 서른 해가 지나고서야 헌책방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저, 한 가지는 생각합니다. 누군가 이 사진책을 그무렵에 새책으로 한 권 사 준 분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사진책을 1981년부터 서른 해가 지난 어느 날 헌책방에서 몹시 고맙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책 《수원성》은, 수원에 깃든 수원성을 차분히 돌아봅니다. 멀고 가까이, 코앞에서 밀찍이서, 겨울날 여름날, 온갖 얼굴 온갖 느낌이 감도는 수원성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다만, 1981년에 나온 사진책 《수원성》은 수원성을 ‘건축 테두리’에서만 살핍니다. 건축 테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수원성이 깃든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까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마흔여덟 쪽짜리 얇은(그렇지만 판짜임은 큰) 사진책에서 풀이말을 뺀 마흔두 쪽으로만 사진을 담으니까, 건축 출판사에서 내놓은 이 사진책이 건축 테두리 아닌 사람 테두리에서 수원성을 담기란 어렵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사람 테두리를 살피지 않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사람 테두리에서 수원성을 다룰 사람은 나중에 누구라도 하면 될 노릇이고, 으레 수원성을 ‘한국 건축 발자취’에서 놀랍고 빼어난 예술이라고 일컫지만, 막상 얼마나 놀랍거나 빼어난 예술인가를 드러내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은 많지 않습니다. 참 드물다고 해야 옳습니다.

 수원성 둘레에서 살아가며 수원성을 마주하고 지낸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길어내는 수원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수원 가까이에서 사는 터라 수원마실을 즐기면서 수원성 이야기를 적바림해 내는 이들은 그다지 안 보입니다. 다 안다 할 만하고, 이름이야 흔히 듣는다지만, 수원성을 가까이와 멀리에서 곰곰이 되새기면서 사진꽃으로 피우는 손길이 아주 드물어요.

 사진책 《수원성》은 이 한 권으로 수원성에 깃든 모든 이야기 실타래를 풀지 않습니다. 48쪽짜리 얇은 책에 걸맞게 이야기를 보듬습니다. 1981년까지 우리 스스로 일군 땀방울 값만큼 알뜰히 엮습니다.

 서른 해가 지난 오늘날 이 자리에서 생각합니다. 사진책 《수원성》 이야기를 이때 1981년부터 새삼스레 꾸준하게 더 이었으면 2011년에는 어떠한 사진이야기가 꽃을 피울 만할까 하고.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사진으로 읽는 수원성 이야기’를 누군가 바지런히 적바림했으면, 수원성을 말하는 사진으로뿐 아니라, 한국 성곽을 말하는 사진으로도, 또 한국 성곽뿐 아니라 세계 성곽을 말하는 사진으로도, 더욱이 성곽뿐 아니라 건축 사진으로도, 이리하여 사람들 살림터를 말하는 사진으로도, 마침내 사람을 말하는 사진으로도 참으로 돋보이면서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새로운 사진삶을 이룩했겠지 하고 느낍니다.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어제를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앞날도 찍지 못합니다. 사진은 오로지 오늘만 찍습니다. 사진은 오늘 하루 내가 살아가는 발자국을 가만가만 찍습니다. 오늘을 찍어 하루가 흐르고 나면 오늘 찍은 이야기는 어느 누구도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는 삶자국입니다. 잘난 기록이나 못난 기록이 아닙니다. 그저, 나 스스로 살아가며 남기는 사진이요 발자국입니다.

 사진이 사진으로 되는 까닭은 돋보이거나 밉보이는 모습을 찍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수수하게 내 삶을 사랑하는 결을 고스란히 담아서 엮기 때문에 사진이 사진으로 됩니다. 누군가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수원성을 알차게 사진으로 담았다면, 이 사진은 틀림없이 훌륭하며 멋진 사진책으로 태어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오늘 2011년부터 2041년까지 누군가 차근차근 새롭게 사진길을 걸어가려 한다면, 이러한 사진은 또 이러한 사진대로 2011년부터 2041년까지 아름다운 발자국와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사진책으로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찍어야 하거나 저렇게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2011년에 수원에서 태어난 아이를 안고 수원성 앞에서 한 장 찍고,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식구들이 모여서 사진을 한 장씩 찍기를 서른 해쯤 하기만 해도 멋진 ‘수원성 이야기 감도는 사진’입니다. 이러한 사진찍기를 꾸준히 잇는다면, 한 집안 사람들 살아낸 발자국이 사진책에 알알이 스미겠지요. 2011년부터 2111년까지 이와 같이 사진찍기를 한다면, ‘수원성은 그대로이지만 수원사람은 늘 달라지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사진은 사진이기에 사진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사진은 만들지 못합니다. 사진은 꾸미지 못합니다. 사진은 치레하지 못합니다. 사진은 그저 찍을 뿐이고, 사진은 그예 찍기만 하며, 사진은 그대로 찍으며 이야기가 됩니다. (4344.3.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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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의 비밀 정원
박지윤 사진.글 / 엘컴퍼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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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가 될 수 없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20] 박지윤, 《박지윤의 비밀정원》(엘컴퍼니,2007)



 예쁘다 싶은 모습을 보는 눈이 참말로 내가 보는 눈인지, 누군가한테서 듣거나 본 다음 ‘남들이 예쁘다 말하니’까 나도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따라서 보는 눈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남한테 내보이면서 ‘예쁘게 봐 주셔요’ 하고 바라는 마음인지, 나 스스로 내 삶을 예쁘게 일구면서 나부터 참으로 예쁘구나 하고 느껴 절로 웃음이나 눈물이 흐르는 사진을 찍는 마음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진은 취미가 될 수 없습니다.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삶’이 될 뿐입니다. 사진은 취미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죽이기를 하듯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취미가 되지 않기 때문에, 멋을 낸다거나 겉치레를 하듯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취미하고 동떨어지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돋보이도록 치레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내가 좋아해서 내 모든 마음과 몸을 바치며 즐기는 삶’이 될 뿐입니다.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취미로 여기듯’ 보내지 않습니다. 내가 보내는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은 ‘취미로 삼으며’ 보내지 못합니다.

 내가 보내는 스물한 살 적 1월 15일은 이날 하루뿐입니다. 내가 맞이하는 서른두 살 적 2월 23일은 이날 하루뿐입니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뿐더러, 언제라도 돌이킬 수 없는 나날입니다. 그냥 좋아서 한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냥 좋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냥 좋기 때문에, 이 좋은 느낌을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늘 곁에 둡니다.

 늘 곁에 두기에 삶입니다. 늘 곁에 두면서 생각하거나 보듬기에 삶이에요. ‘삶’이라 해서 무겁지 않습니다. ‘삶’이기에 더 가볍지 않습니다. 삶은 그예 삶입니다. 사진을 하는 삶이란 한결같이 똑같은 삶입니다. 프로사진가라 해서 더 돋보이거나 놀라운 삶이 아닙니다. 아마사진가라 해서 더 어설프거나 모자란 삶이 아니에요. 사진기를 쥐었으면 누구나 사진삶을 보냅니다. 이 사진삶은 그냥 재미 삼거나 장난 삼아서 보내지 못합니다. 누구한테나 더없이 거룩하면서 기쁜 하루 한때를 즐기면서 보내는 사진삶이에요.

 아직 서투르기 짝이 없어 엉성하게 사진을 찍더라도 좋은 사진삶입니다. 오래도록 가다듬었기에 익숙하게 사진을 찍어도 좋은 사진입니다.

 사진찍기는 틀이 없습니다. 어떻게 찍어야 좋은 사진이 된다거나 어떻게 찍으면 나쁜 사진이 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대로 찍는 사진이요, 내가 살아가는 대로 담는 사진입니다.

 그래서, 사진기를 들기 앞서, 나 스스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 삶에 따라 찍는 사진이지, 손놀림이나 손재주에 따라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내가 무엇을 하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에 따라서 ‘내가 사진기를 쥐어 사진기를 들여다볼 때’에 ‘사진기를 거쳐 내 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은 사진기를 쥐어 들여다볼 때에 ‘내 눈에 아름답다 느껴지는 모습’이 가득합니다. 나 스스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은 사진기를 쥐어 들여다볼 때에 ‘내 눈에 힘들다 느껴지는 모습’이 넘칩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를 찍든 무엇을 찍든 사랑이 어립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물건을 찍든 믿음이 서립니다.

 몸이 홀가분한 사람은 홀가분하게 일합니다. 몸이 무거운 사람은 무겁게 일합니다. 몸이 홀가분할 때에 사진기를 들면 홀가분한 넋이 사진으로 스밉니다. 몸이 무거울 때에 사진기를 쥐면 무거운 얼이 사진으로 파고듭니다.

 저는 집에서 아이를 날마다 수십 장쯤 사진으로 담는데, 때때로 아이 모습을 안 찍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지나치게 땡깡을 부리거나 고달프도록 말을 안 들을 때에는 아이가 미운 나머지 사진기를 들지 않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를 미워한다니 말이 안 된다 할 테지만, ‘너 말야, 참말 엄마랑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맞니?’ 하고 묻고플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버이로서 아이를 참다이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니까, 그만 아이 마음을 더 살피지 못하고, 아이 마음을 더 살피지 못하면서 더 따사로이 보듬거나 놀지 못했기에, 아이는 아이로서 골을 부리거나 딴청만 피울 수 있습니다. 밑뿌리를 따지면 아이 탓이라기보다 어버이 탓입니다. 저 스스로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이가 밉게 보일 때에는 내 마음밭이 엉망진창이라는 소리인 만큼 사진기를 들지 못해요.

 운동선수는 몸이 흐트러지면서 마음 또한 흐트러지는 때를 맞이하곤 합니다. 영어로 ‘슬럼프’라 하는데, 이때에는 무엇을 해도 다 안 됩니다. 이때에는 아예 운동이나 연습을 안 해야 합니다. 그저 푹 쉬면서 몸과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전문가일 수 있고 풋내기일 수 있습니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흐트러진 때에도 놀랍다 싶은 사진을 찍어낸다 할 만한지 모릅니다. 사진기자 일을 하는 사람은 집에 무슨 일이 터졌든 어떤 아픈 일을 맞이했든, 사진기자한테 주어진 몫을 사진기자로서 빈틈없이 해내야 합니다. 일은 일대로 마친 뒤에 눈물을 흘리든 웃음을 터뜨리든 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지친 채 사진을 찍으면 어찌 되려나요. 이냥저냥 볼 만한 사진이 나오려나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싶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가요. 보도사진에는 사진기자 넋이, 아니 사진을 찍는 내 마음이 깃들지 않을까요.

 보도사진일지라도 사진을 찍은 사람이 어떠한 마음이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살포시 묻어납니다. 만듦사진이라 해서 사진을 만든 사람 손길과 마음길이 안 묻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사진에는 모든 사람들 하루하루 이야기가 스며듭니다.

 사진을 바라볼 때에 좀 따분하다 싶다면,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좀 따분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바라보면서 ‘이 사진은 영 재미없는데’ 하고 느낀다면, 참말로 이 사진을 찍은 사람부터 삶을 재미없게 꾸리기 때문입니다.

 박지윤 님 사진이야기를 담은 《박지윤의 비밀정원》(엘컴퍼니,2007)을 읽습니다. 박지윤 님은 사진을 무척 좋아하고 사진기를 여럿 모은다고 합니다. 일하는 틈틈이 사진기를 만지며, 사진기 다루는 솜씨가 꽤 뛰어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박지윤 님이 낸 《박지윤의 비밀정원》이라는 사진책에서 박지윤 님이 ‘사진으로 살아가는 내 넋’으로 무엇을 나누거나 보여주려 하는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란 겉멋이 아닌데, 박지윤 님은 이 사진책 하나로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가요.

 “살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중 얼마만큼 진심이었을까. 얼마만큼 진실이었을까. ‘사랑해’ 하고 수천 번 내뱉는 동안 나는 정말 얼마만큼의 진짜 사랑을 했던 것일까(51쪽).” 하는 이야기는 박지윤 님이 겪은 사랑을 놓고만 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박지윤 님 스스로 찍는 사진을 놓고도 똑같습니다. ‘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 얼마만큼 내 마음을 담았을까? 나는 얼마만큼 참다이 사진을 찍었을까?’ 하고 스스로 묻는 소리입니다.

 “진심은 진실한 마음을 통해 전해진다 믿었는데 그 진심마저 거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211쪽).”고 생각한다면, ‘내가 찍은 사진은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고 믿었는데, 내가 찍은 사진마저 참말 내 마음을 담은 예쁜 사진이 아닌 듯하다.’고 느낀다고 스스로 뉘우치는 셈입니다.

 박지윤 님은 책끝에 “나는 이 사진들이 단순히 내가 주인공인 것에 대해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나 스스로를 다시 깨닫게 하고 떠오르게 하고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는 온전한 마음이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또 “처음 사진을 시작하면서는 주로 멋진 풍경이나 세팅된 사물들을 찍었는데, 언젠가부터 아무런 의미 없는 시멘트 바닥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생명체가 하나 들어 있는 것만으로 사진이 숨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사진은 ‘다시 보여주기’일 수 없습니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담깁니다. 사람을 찍는다 해서 살아숨쉬는 목숨을 찍었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찍은 사진이라지만 메마르거나 차갑거나 뻣뻣한 기운만 느낄 수 있습니다. 나무를 찍은 사진이라지만 따뜻하거나 보드랍거나 살가운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찍더라도 내 마음과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벽돌 한 장을 찍는대서 정물사진이 아닙니다. 사람을 찍어도 정물사진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찍으나 풍경사진일 수 있고, 너른 들판을 찍었는데 사람사진일 수 있어요.

 바라보는 눈에 따라 사진이 달라지고, 바라보는 눈이란 바로 내가 일구는 하루하루가 그러모이는 삶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은 취미가 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오직 내 삶이 될 뿐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가 내가 찍는 사진 곳곳에 차곡차곡 담깁니다.

 내 삶을 사랑해 주소서. 내 삶을 사랑해야 내 사진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하루를 사랑하여 보살펴 주소서. 내 하루를 사랑하여 보살필 때에, 내가 찍은 사진을 나부터 좋아하면서 나한테 새힘을 북돋우는 기쁜 이야기보따리로 꽃피웁니다. (4344.3.3.나무.ㅎㄲㅅㄱ)


― 박지윤의 비밀정원 (박지윤 사진·글,엘컴퍼니 펴냄,2007.10.15./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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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 한국의 사찰 14
한국불교연구원 엮음 / 일지사 / 1978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문화를 사진으로 담는 외국사람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6] 에드워드 B.아담스, 《한국의 사찰 (1∼18)》(일지사,1974∼1979)



 한동안 한국 사진밭에서 ‘장승’이나 ‘절’이나 ‘시골 농삿집’이 사진감으로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요즈음은 장승이나 절이나 시골 농삿집을 사진감으로 삼는다든지 아끼려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몹시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2010년대로 접어든 요즈음으로서는 장승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몇 군데 안 남은 장승마저 목아지가 잘리거나 기둥이 뽑히곤 합니다. 절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제법 많기는 하지만, 이 나라 크고작은 절을 두루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어떻게 다르면서 아름답고, 이 절마다 어떠한 삶하고 사람하고 사랑이 눈물과 웃음으로 어우러졌는가를 깊이 톺아보는 눈썰미까지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시골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뿐 아니라, 시골마다 다 다르던 시골말은 텔레비전이라는 엄청난 대중매체에 힘입어 거의 사라집니다. 시골마을을 시골마을답게 하던 두레와 품앗이는 자취를 감춥니다. 도시사람은 국산 쌀이니 콩이니 보리이니를 따지지만, 정작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든지, 똥거름을 내어 흙을 일군 곡식을 제값을 치르며 장만하여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삶자락으로 시골로 찾아가는 도시내기 사진쟁이는 시골 농삿집을 꾸밈없이 바라보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 껴안지 못해요. 시골이 왜 시골이요, 농삿집이란 무엇을 하는 집인가를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한국 삶이라 할 만한 사진이란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한국에서 한국 삶과 사람을 어깨동무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엮는 사진쟁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도시 골목동네 사람들 살림집이나마 살가이 들여다보며 이웃하는 사진쟁이는 몇 사람쯤 될까요. 스스로 가난한 도시 골목동네 사람으로 살아가며 ‘내 삶’인 ‘가난한 도시 골목사람’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사진쟁이는 한두 사람이나마 있기는 있을는지요.

 도시에 밀릴 뿐더러 도시한테 빼앗기거나 짓눌리는 시골마을 작은 집에서 흙을 일구면서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는 얼마나 될까요. 시골집을 전원주택처럼 꾸미는 사진쟁이가 아니라, 집은 시골이지만 대학교에 강의하러 다니거나 서울 같은 큰도시로 쏘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참말 시골자락에 마음과 몸을 깃들이고는 시골사람으로 지내며 시골마을을 수수하게 사랑하며 사진으로 만나는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요.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땅 곳곳에 풀집이 가득가득 하던 때에도 풀집 사진을 잘 안 찍었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한국땅 어디에나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던 때에도 슬레이트지붕 사진을 잘 안 찍었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도시마다 달동네 꽃동네 판잣집이건 성냥갑집이건 들어서며 올망졸망 복닥이던 때에도 이러한 삶자락을 잘 안 찍었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아파트한테 밀리는 골목집 삶자락 또한 잘 안 찍습니다. 때때로 ‘출사’라는 이름으로 사진놀이를 다니는 사람들은 더러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진쟁이는 다큐사진을 하든 상업사진을 하든 영업사진을 하든 예술사진을 하든 순수사진을 하든 보도사진을 하든 무슨무슨 만듦사진을 하든, 정작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내 땅 내 터 내 마을 내 동네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사진기를 들 뿐입니다. 이러다가 일본이니 중국이니 미국이니 프랑스이니 독일이니 영국이니 티벳이니 인도이니 네팔이니 태평양이니 아프리카이니 쿠바이니 하고 나라밖으로 떠돌기만 합니다.

 어느덧 새책방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던 얄팍한 책 “한국의 사찰”을 생각합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다 보면 드문드문 한 권쯤 보이는 “한국의 사찰”입니다. 1974년에 1권이 나왔고, 1979년에 18권이 나왔습니다. “한국의 사찰”을 펴낸 ‘일지사’는 100쪽이 채 안 되는, 말 그대로 ‘얄팍한’ 책을 꿋꿋하게 엮었습니다. 《불국사》(1번,1974)부터 《범어사》(18번,1979)까지, 여섯 해에 걸쳐 남녘땅 절과 북녘땅 절을 샅샅이 누비면서 ‘제대로 남아나지 못한 자료’를 뒤지거나 갈무리하면서 작은 책을 한 땀 두 땀 일구었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한국의 사찰”을 차곡차곡 모으는 동안, 이 작은 책에 사진을 넣은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책을 쓴 사람은 따로 밝히지 않고 ‘한국불교연구원’이라고만 되었습니다. 그러려니 하며 이 책들을 어느덧 열 권 모았는데, 열 권째로 《낙산사》(14번,1978)를 사서 읽던 2010년 9월, 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이 놀랍니다. 책 안쪽에 “한국의 사찰”을 엮은 사람들 이름이 줄줄이 적혔기 때문인데, 맨 끝에 적힌 사진쟁이 이름은 외국사람이었습니다. 글을 쓴 사람은 때때로 바뀌기는 하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은 오직 하나, ‘에드워드 B.아담스’라고 하는 분입니다.

 사진쟁이 이름 옆에는 묶음표를 치고 “Principal of Seoul International School”이라 적히고, “한국불교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이름도 적힙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서울국제학교’는 1973년에 문을 열었고, 에드워드 B.아담스라는 분은 이때에 서울국제학교를 함께 연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B.아담스라는 사람에 얽힌 자료나 이야기는 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한국의 사찰” 열여덟 권에 실린 사진을 이분이 홀로 맡아서 찍었을 뿐이라고만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사진사 1631∼1945》(눈빛,1999) 같은 책을 뒤적이지만, 1945년까지만 다룬 《한국사진사》에서 에드워드 B.아담스 님 발자취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1945년 뒤에는 우리네 사진밭이 어떻게 나아갔는가를 다루는 책이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중에 ‘현대 한국 사진 발자취’를 다루는 책이 나온다 한다면, 이러한 책에 에드워드 B.아담스라는 외국사람이 한국땅 절집을 담은 사진을 놓고도 한두 줄이나마 짤막히 다룰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돌아본다면, 에드워드 B.아담스 님은 1970년대에 이 나라 절집을 두루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우리네 절집이 1970년대에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10년대인 오늘날 더듬어도 자그마치 마흔 해 앞선 때 모습이니, 오늘날보다 한결 잘 살아남은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에드워드 B.아담스 님이 찍은 사진들 필름을 건사해 준다면 한결 빛나는 사진으로 나중에라도 다시 마주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1970년대에 이분이 절집 사진을 남겼기 때문에 뜻있거나 뜻깊지 않습니다. 절집을 두루 사랑하거나 아끼면서 차근차근 사진으로 찍었기 때문에 값있으며 아름답습니다. 어떤 멋이라든지 이러저러한 예술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절집이니 절집을 고스란히 찍는다’는 매무새로 “한국의 사찰” 열여덟 권이 태어나도록 밑거름 노릇을 했기 때문에 알차고 훌륭합니다.

 내가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사람을 사진으로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한겨레붙이라서 한겨레붙이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며 사진으로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불교를 믿으니 절집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내가 천주교나 개신교를 믿으니까 절집 사진은 안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발을 디딘 터전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사진기를 들어야 합니다. 바쁜 틈을 쪼개면서 사진기를 들어야 하고, 바쁘니까 바쁜 삶을 즐기면서 사진을 즐겨야 합니다.

 하루이틀 찍고 그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한두 해 찍어서 되는 사진이 아닙니다. 열 해나 스무 해를 찍었으니 뭔가 그럴듯하게 태어나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겠다 마음먹었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진감을 온삶을 들여 차근차근 사랑하며 찍어야 비로소 사진쟁이 이름을 얻습니다. (4344.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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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f Koudelka: Koudelka (Hardcover)
Robert Delpire / Aperture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가난뱅이 집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은 안 들어간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0] 요제프 쿠델카(Josef Koudelka), 《Koudelka》(Delpire,2006)


 다큐사진을 하거나 다큐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요즈음 ‘요제프 쿠델카’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용히 듣다가 ‘그 사람 사진이 그렇게 좋은가?’ 하고 혼자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제프 쿠델카라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 좋다고 하든 이이를 좋아한다고 하든, 요제프 쿠델카를 말하는 사람들치고 막상 요제프 쿠델카가 찍은 사진을 담은 책을 사서 읽었으며, 이 사진책을 읽을 때에 어떠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 혼자서 생각합니다. ‘뭐야, 쿠델카 사진책을 사서 읽지 않고 쿠델카를 말할 수 있는가? 어디에선가 쿠델카 사진책을 빌리거나 얻어서 몇 번 읽을 수는 있겠지. 그런데 쿠델카 사진책을 사서 내 곁에 놓으며 수없이 되읽지 않는다면 쿠델카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쿠델카 사진이 어떻고 저떻고 하다며 이러쿵저러쿵 말밥으로 삼을 수 있는가?’

 두 해쯤 ‘쿠델카 사진책’을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속으로 생각한달지라도 ‘나부터 쿠델카 사진책을 어디에서 사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진책을 즐겨 사던 책방은 장사가 힘들어 ‘그동안 애써 갖추던 사진책을 모조리 처분’했습니다. 한 달에 한 권씩 나라밖 비싼 사진책을 사자고 하던 그 책방이 나라밖 사진책을 다루지 않으니, 인터넷에서는 책을 안 사던 저로서는 쿠델카 사진책이 헌책방으로 흘러들기만을 손가락 쪽쪽 빨며 기다릴밖에 없습니다.

 이러던 지난겨울, 서울에서 서울사진축전을 한다며 저한테서 사진책 300권 남짓을 빌려갔고, 이 사진책으로 서울시립미술관 한켠에서 ‘사진책 도서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 찾아가서 내 사진책들이 어떻게 놓였는가 살피려고 서울마실을 합니다. 서울마실을 한 김에 서울 홍대 앞 만화가게에 들러 시골에서 지내며 못 산 만화책을 잔뜩 삽니다. 이런 다음 이제 시골집으로 돌아갈 차를 타야지 생각하며 전철역으로 가는데, 골목 한켠에 사진책과 디자인책과 일본만화책을 유리 진열장에 가득 놓은 책방이 한 군데 보입니다. 이 책방 유리 진열장에서 ‘Koudelka’라는 알파벳을 만납니다.

 걸음을 우뚝 멈춥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노래하며 걷던 아이도 발걸음을 멈춥니다. 아버지는 아이한테 “벼리야, 여기 한번 들렀다 가자!” 하고 말하며 문을 밀치고 들어섭니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는 동안 아이는 책방 골마루를 요리 뛰고 저리 뜁니다. 책방 아주머니는 아이가 귀엽다며 고맙게 놀아 주십니다. 아이를 귀여워 하는 아주머님한테 여쭙니다. “저기, 바깥에 있는 쿠델카를 볼 수 있을까요?”

 비닐에 싸인 사진책인데, 아주머니는 “네, 그럼요.” 하면서 선선히 비닐을 뜯어 줍니다. 아, 나는 비닐을 뜯어 달라는 뜻이 아니라, 겉만 보자는 뜻이었는데.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만 보아도 웬만큼은 내가 살 만한가 살 만하지 않은가를 알 수 있어서, 책 생김새를 보여 달라고 했던 소리인데.

 책방 아주머니는 당신 책방에 있는 ‘또다른 쿠델카’ 한 권도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이하고 함께 놉니다. 갑작스레 마주한 쿠델카를 더없이 고맙게 펼쳐서 읽습니다. 두 가지 쿠델카 사진책은 똑같은 쿠델카 사진을 그러모았지만 엮음새와 ‘인화 느낌’은 똑같지 않습니다. 사진을 엮은 매무새가 달라, 쿠델카 사진이 사람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건네려 하는지 ‘조금은 다르게’ 느끼겠구나 싶습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쟁이대로 사진을 찍으나, 이 사진을 읽는 사람들은 ‘사진을 읽는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으로 삶을 일구느냐’에 따라 사진읽기가 달라집니다. 사진책을 내는 편집자가 ‘사진을 어떠한 눈길과 마음과 손길로 엮어서 꾸미느냐’에 따라, 사진책이 들려주는 목소리와 이야기가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두 가지 사진책을 함께 보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테지만, 으레 어느 한쪽 사진책으로 쿠델카를 만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한참 두 가지를 견주다가, 11만 원이라 하는 쿠델카하고 7만 원이라 하는 쿠델카를 놓고 망설인 끝에 11만 원짜리 쿠델카를 사기로 합니다. 책에 실린 사진이 어슷비슷하다면 7만 원짜리 쿠델카로도 넉넉하지만, 쿠델카를 잘 모르거나 쿠델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처음 마주할 쿠델카’라 한다면, 11만 원짜리를 먼저 보고 나서 7만 원짜리를 보아야 ‘사진책 편집자에 따라 사진 느낌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흔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쿠델카를 알자면 11만 원짜리를 고를 수밖에 없습니다.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Koudelka》를 여러 달 책상맡에 놓습니다. 꽤 비싸다 싶은 값을 치르고 장만했으니 여러 번 수십 차례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읽고 싶기도 하지만, 사진에 깃든 마음과 손길을 찬찬히 읽고 싶으니 오래도록 곁에 놓습니다. 한참 마음껏 즐긴 다음 내 도서관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야지요. 쿠델카 사진책은 살가도 사진책 옆에 꽂을 수 있지만, 브레송 사진책 옆에 꽂을 수 있고, 김보섭이나 주명덕 사진책 곁에 꽂을 수 있습니다. 성남훈이나 한금선 사진책 둘레에 꽂을 수 있어요.

 꽤 예전에 사들여서 읽던 책 《요제프 쿠델카》(열화당,1987)를 들춥니다. 1984년에 ‘Photo Poche’에서 펴낸 책을 저작권 삯을 안 치르며 내놓은 사진책입니다. 이 사진문고를 내놓은 출판사는 저작권 삯을 안 치렀으니 이 멋진 책을 우리들이 구경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이무렵 저작권 삯을 치르며 이만 한 사진책을 내놓아야 했다면, 아마 우리들은 이 사진책을 구경하지 못했겠지요. 한글로 된 아주 드문 쿠델카 사진책인 터라, 쿠델카 사진을 비평한 ‘베르나르 뀌오’ 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베르나르 뀌오 님은 쿠델카 사진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말합니다. “나는, 피해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가에 의해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뀌오 님은 덧붙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은 들어가지 않는다.”

 다큐사진을 찍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를 자주 찾아옵니다. 자연사진이든 풍경사진을 찍는 이들은 시골이나 멧골을 흔히 찾아옵니다. 다큐사진을 찍는 이들은 가난한 동네에서 똑같이 가난하게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자연사진이나 풍경사진을 찍는 이들은 시골이나 멧골에서 시골사람이나 멧골사람하고 함께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쿠델카 님은 체코슬로바키아 한복판에서 살았기에 체코슬로바키아 꿈틀거림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쿠델카 님은 숨을 거둔 집시 한 사람을 흙으로 떠나 보내는 자리라든지 손에 수갑을 차고 마을에서 떠나야 하는 사람하고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참말로, “가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은 들어가지 않”을 뿐더러 쳐다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알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다큐사진을 찍는 이들은 으레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로 찾아올 뿐, 정작 다큐사진을 찍는 이가 몸을 담거나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동네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이야기로 갈무리하거나 그러모으지는 않습니다.

 《요제프 쿠델카》는 1984년 사진책입니다. 《Koudelka》는 2006년 사진책입니다. 요제프 쿠델카 님은 1950년대부터 사진을 찍어 2000년대까지도 사진을 찍습니다. 1984년에 나온 《요제프 쿠델카》는 스무 해 남짓 사진길을 걸어온 발자국을 담습니다. 2006년에 나온 《Koudelka》는 거의 쉰 해에 가까운 사진길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요제프 쿠델카》에서 《Koudelka》로 오는 동안, 쿠델카 님 사진에서 ‘사람 그림자’가 자꾸 사라집니다. 2006년에 나온 《Koudelka》로 가까워지는 만큼 쿠델카 님 사진에서 ‘사람들 살림살이’는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빛이랑 그늘이 어우러지는 흐름이라든지, 빛줄기 내려앉은 멧마루나 길바닥이나 동상이나 정물 사진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무지개빛 사진 아닌 흑백사진으로도 얼마든지 예술이요 문화임을 보여주는 사진이 늘어납니다. 아기자기한 멋이 있고 우락부락한 멋이 있는 또다른 사진삶이 드러납니다.

 빛깔 아닌 흑백으로 찍으면서 사진쟁이 나름대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깔 아닌 흑백으로 찍는 바람에 놓치거나 잃거나 버려야 하는 숱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와 이웃’을 사진으로 담을 때하고,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서 ‘주변인’을 사진으로 담을 때란 똑같지 않습니다.

 어떻게 일하거나 놀며 살아가는가를 찍기 앞서, 함께 부대끼지 못한 채 가만히 벽이나 방에 세워 놓고 찍으면, 무슨 ‘사람(인물) 사진’이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쿠델카 님 《요제프 쿠델카》도 좋고 《Koudelka》도 좋습니다. 사진으로 담을 사람삶이란 무엇이요 사진기를 쥐고 걷는 사진길이란 무엇인가를 잘 밝힙니다.

 1984년 《요제프 쿠델카》에 비평을 넣은 베르나르 뀌오 님은 첫머리에서 “이 책을 볼 때에는 언제나 마지막 페이지부터 보아야 한다. 첫 번째 사진, 즉 풀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계를 차고 있는 주먹 사진은 아직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전해 줄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2006년 《Koudelka》에서 ‘풀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계를 차고 있는 주먹 사진’은 사진책 깊숙한 자리에 숨었습니다. 시계 찬 사진이 두 장 나오기는 하나, 어디메에 숨었는지 찾기란 참 힘듭니다. 스물두 해라는 나날을 건너뛰는 동안 우리들은 ‘어떠한 뜻을 건네받을 수 있’도록 사진이 달라지거나 쿠델카 님 사진밭이 거듭났다는 소리가 될까요. 아니면, 이제는 쿠델카 님이 사진을 찍을 때에 사진마다 ‘우리한테 무슨 이야기와 뜻을 건네려 하는지 또렷이 아로새기게 되었다’는 소리가 되려나요.

 요제프 쿠델카 님 다큐사진은 틀림없이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선 사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집에 성큼성큼 발을 들여놓은 사진입니다. 죽은 사람을 기리는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럼없이 찍은 사진입니다.

 그래요, 찍었습니다. 찍어서 보여줄 모습을 찍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 어떤 마음 어떤 삶을 찍은 사진이 될까요. 찍어야 할 모습을 찍었기에 다큐사진이라 할 만하거나 좋은 다큐사진이라 하면 될는지요.

 쿠델카 님 집시 사진에는 쿠델카 님 삶과 넋과 말이 깃듭니다. 한국땅 적잖은 다큐사진쟁이는 쿠델카 님 사진이 보여주는 ‘빛살과 느낌과 그늘과 감도와 흑백’과 같은 모양새로 또다른 ‘다큐 집시 사진’이라든지 ‘다큐 무슨무슨 사진’을 선보입니다. 그렇지만, 다큐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이기는 하되, ‘무슨 이야기’를 담아 누구하고 도란도란 말꽃을 피우려 하는지는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이기 앞서, 먼저 사진부터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다큐사진이란 고발사진이 아닙니다. 다큐사진은 현장사진이 아닙니다. 다큐사진은 이야기사진입니다. 이야기를 꽃피우며 이야기를 흐드러지게 나누지 않을 때에는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다큐사진쟁이로 살아가려는 분들이나, 다큐사진을 좋아한다는 분들이나, 다달이 만 원씩 모아서 한 해가 저물 즈음 쿠델카 님 11만 원짜리 사진책 《Koudelka》를 즐거이 장만해서 두고두고 보살피면서 읽어 주면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4344.2.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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