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상 - 사진시대총서 1
임응식 지음 / 해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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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삶과 사진꿈 읽기
 [찾아 읽는 사진책 70] 임응식, 《사진사상》(해뜸,1986)



 사진책을 힘껏 펴내려 하던 ‘해뜸’ 출판사가 처음 내놓은 책은 임응식 님이 쓴 글을 엮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해뜸,1986)입니다. 사진쟁이 임응식 님은 머리말에서 “본래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사진학 강의를 하면서 제일 답답하게 느낀 것이 외국 사진가들의 경력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리 나라 말로 소개던 것이 전혀 없다시피 한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쓰게 된 것이다.” 하고 밝힙니다. 2011년이라는 해에 생각한다면, 2011년이라 해서 나라밖 사진쟁이나 사진밭이나 사진책을 알뜰히 들려주는 마땅한 책이 제대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럭저럭 살피거나 돌아보도록 돕는 책은 제법 있어요.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을 그러모은 책이라든지, 매그넘 사진책이라든지, 드문드문 태어나곤 합니다. 나라밖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쓰는 여러 가지 교재가 한국말로 옮겨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직 한국사람 눈썰미로 바라보거나 살피면서 적바림하는 ‘사진으로 세계 흐름을 읽고 세계 문화를 돌아보는 이야기책’은 없어요. 임응식 님이 내놓은 ‘서양 사진쟁이 소개하는 책’은 “사진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 이름 말마따나 ‘사진 넋’이나 ‘사진 생각’이나 ‘사진 얼’을 밝히는 사진비평이나 사진이론을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임응식 님은 《사진사상》에서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서양 사진쟁이를 소개합니다. 얼마 앞서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포토넷,2011)라는 책은 사진쟁이뿐 아니라 사진과 얽힌 688 사람이 사진을 바라보며 들려준 이야기를 담아요. 숫자만 헤아려도 놀랍지만, 숫자에 담은 알맹이를 돌아보면 훨씬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1986년과 2011년 사이에는 새로운 사진쟁이도 많이 태어났고, 자료를 모으기에도 한결 나았을 테며, 인터넷이 있기에 조금 더 널리 돌아볼 만했으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1986년이라는 해, 한국땅 사진밭을 살필 때에, 서양 사진쟁이 쉰 사람 삶과 넋과 사진을 간추려 들려주는 《사진사상》은 한국에서 무척 앞선 책이요 돋보이는 책이며 값진 책입니다. 이 같은 책이 있어 이 나라 사진문화를 북돋우는 밑힘이 더욱 단단해졌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사진사상》은 ‘세계 사진쟁이’를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사상》이 다루는 사진쟁이는 모두 ‘서양 사진쟁이’입니다. 일본 사진쟁이나 아시아 사진쟁이나 중남미 사진쟁이나 아프리카 사진쟁이는 다루지 않습니다. ‘서양에서 엮고 서양에서 내놓는 사진역사책’에 으레 이름이 적히는 서양 사진쟁이만 다룹니다.

 그래도 이만 한 책이 나온 일은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그저 한 가지 토를 단다면, 1986년에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더라도 2011년에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 싶고, ‘온누리를 대표하는 사진쟁이’를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려 할 때에도 ‘서양 사진쟁이’만 살피거나 생각하거나 배우는 틀을 살포시 딛고 서야 한다고 느껴요.

 덧보태자면, ‘세계 사진 넋’이나 ‘세계 사진 흐름’을 읽는 한편, ‘한국 사진 넋’과 ‘한국 사진 흐름’을 나란히 읽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전민조 님이 내놓은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무척 대단하다 싶은 책이기는 한데, 이 책도 일본 사진쟁이를 옳게 다루지는 못합니다. 퍽 많이 다루기는 했으나, 일본이 사진문화와 사진흐름에 이바지한 수많은 열매를 제대로 싣지는 못했어요. 무엇보다 ‘사진길을 걷는 한국 사진쟁이’ 열매는 한 가지조차 싣지 않았어요.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는 ‘세계 편’이고 ‘한국 편’을 따로 내놓을는지 모르지만, 따로 내놓으려 한다면 책이름부터 나중에 따로 나올 ‘한국 편’ 이야기가 묻어나도록 했겠지요. 곧, 예나 이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에서 한국넋을 북돋우는 한겨레 사진길을 예쁘게 돌아보지는 못합니다. 사진기라는 연장이 처음 서양에서 태어났다지만,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에요.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를 서양에서 만들었대서 이 탈거리를 즐기는 사람은 서양 넋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연필을 누가 만들었든, 전깃불을 누가 만들었든, 셈틀을 누가 만들었든, 찬찬히 기릴 수 있는 노릇이지만 대단하거나 대수로이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이 연장을 쓰는 사람이 알뜰히 잘 써야 해요.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맨 처음 누가 만들었는가를 따지며 기릴 수 있을 테지만, 바로 오늘 내가 밭자락에서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옳게 쓰느냐가 훨씬 대단하고 대수롭습니다.

 나는 내 사진길을 처음 걷던 1998년부터 《사진사상》을 읽었습니다. 일찌감치 판이 끊어진 책이니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사상》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읽던 《사진사상》은 겉이 하얀 빛이었는데, 그러께에 겉이 푸르스름한 새로운 판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겉이 푸르스름한 판이 처음 나온 판이더군요. 그래서 헌책방에서 새롭게 장만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찬찬히 되읽습니다. 철지났다든지 해묵었다든지 할 수 있는 《사진사상》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 사진밭을 알뜰히 일구며 한삶을 바친 임응식 님 넋과 숨결과 땀방울’을 느낄 수 있거든요. 참말, 책끝에는 ‘임응식 해적이’와 ‘임응식이 사진과 얽혀 쓴 글 표’가 찬찬히 붙습니다.

 《사진사상》이라는 책은 “대표작으로 보는 세계 사진가들의 사진사상”이라고 합니다만, 책을 몇 차례 찬찬히 읽고 나서 느끼기로는, 아무래도 “임응식이 읽은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이로구나 싶어요. 여러모로 이름난 서양 사진쟁이들 삶과 꿈과 넋과 길을 돌아보는 임응식 님은 당신 사진삶과 사진꿈과 사진넋과 사진길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사랑스러웠는가 돌이킵니다. 오랜 나날 사진과 함께 살아온 당신 삶과 꿈과 넋과 길은 얼마나 즐거웠는가 되뇝니다.

 한국에서 오래도록 사진길을 걸어간 어르신들이 당신 사진삶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느낍니다. “아무개가 좋아하는 사진”이라는 책이름을 붙여도 되겠지요. “아무개가 사랑하는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보고 배운 사진”이라든지 “아무개가 곁에 두는 사진”이라든지, 어느 이름이든 좋습니다. (4344.11.30.물.ㅎㄲㅅㄱ)


― 사진사상 (임응식 글,해뜸 펴냄,1986.5.25./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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