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어떻게 먹고사느냐 걱정해 주는 분이 있어 고마운 한편 미안합니다. 책버러지 한 마리가 뜯어먹을 잎사귀 못 찾아 헤매일까 길찾기를 해 주니 고맙고, 아무리 책버러지인들 스스로 제 먹을 잎사귀를 찾아나서서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지 이래서야 되느냐 싶어 미안합니다.

 저를 걱정해 주는 선배 가운데 한 사람을 지난달에 만났습니다. 선배는 ‘아무리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하지만 그걸 다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이 말 저 말 하고 싶어도 꾹 눌러 가면서 사는데’ 하면서, 여러 사람들 보기를 듭니다. 그대로 되치거나 받아치기를 하기보다는 살며시 삭여내면서 ‘반사!’ 하듯이 맞은편으로 건네줄 수 있다고.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옛말처럼 살아가는 저이기에, 개 버릇 남 주냐(그나저나 이 옛말이 맞는지? 알쏭달쏭 헷갈립니다)는 옛말처럼 살아가는 저이기에, 참으로 좋은 말을 받아먹으면서도 좀처럼 제 매무새가 나아지거나 거듭나지 못합니다. 다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저지르는 잘못과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다’고 한다면 눈꼴시어서 보지 못합니다. 이럴 때마다 ‘그래,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니?’ 하고 되뇌입니다. 이러면서 더딘 걸음으로 모자람을 털어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아무리 엉덩이에 뿔나고 못난 버릇을 그냥 껴안고 사는 저입니다만, 얄딱구리한 책을 읽어야 하고, 게다가 그 얄딱구리한 책을 소개하는 글마저 써야 하는 형편에는 아주 기가 질리고 혀가 비죽 나오고 이마에는 밭고랑이 수두룩 쌓입니다.

 선배는 말합니다. ‘최종규 씨가 땅 파먹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닌데, 혼자만 살아가는 살림도 아닌데’ 하고. 맞습니다. 이러하니 볼꼴사나운 곳에서 글 하나 써 달라는 부탁이 들어와도 ‘아이구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받아먹으면서 절을 해야지요. 터무니없이 어설프고 덜 떨어진 책을 던져 주면서 ‘이 가운데 이달 추천책 하나 뽑아 주시오’ 하고 일을 맡겨도 ‘그러믄요 고맙습니다’ 하고 낼름 받아먹으면서 굽신굽신 해야지요.

 허허, 그렇지만, 그러하지만, 이 짓거리는 참 못할 짓거리입니다. 하루 세 끼니 밥먹고 살기가 아무리 고달프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어서. 제가 아직 덜 가난하게 살고, 덜 없이 살아서 배부른 소리를 내뱉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하오나, 온삶을 바쳐서 책 하나 좋아하는 버러지로 살고 있고, 그동안 펴낸 책도 글삯을 안 받으며 출판사돕기를 한다며 살아온 몸으로서, 못 봐줄 책은 참말 못 봐주겠습니다. ‘이건 아니올시오다!’ 하고 외쳐야 할 때는 외쳐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제가 사는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미터에서 70미터에 이르는 찻길을 새로 뚫으려고 인천시장이며 인천시 종합건설본부장이며 또 여기 밑에 있는 도로국장이며 갖은 공무원들이 법석입니다(이 가운데 도시계획국장 ㅅ아무개씨는 건설업체 돈을 몇 억 받아먹은 죄로 엊그제 구속되었는데, 이런 막공사와 막개발 삽날은 멈출 낌새가 없습니다. 공권력을 투입해서 공사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만 울려퍼집니다). 조용하게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인데, 또 이곳 주민들은 이런 찻길을 내지 말라고 반대를 하는데, 시청 공무원들은 “이 길은 주민 뜻에 따라서 낸다”는 말만 여러 해째 되풀이를 합니다. 이런 일도 그저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요.

 오늘저녁, 어느 잡지사에서 ‘글 재촉 인터넷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곳에서 펴내는 잡지에는 ‘이달 우수추천도서’라는 꼭지가 있고, 이 꼭지에서 어린이책 추천하는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제가 끼인 지 어느덧 세 해가 되고 있는데, 지난 세 해 동안 달이면 달마다 추천할 만한 책이 보이지 않아서 애를 먹습니다. 그렇다고 늘 이러하지는 않아서, 미처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훌륭한 책도 꽤 만났습니다. 《장미마을의 초승달 빵집》이라든지, 《숲에서 크는 아이들》이라든지, 《도서관에 간 사자》라든지 《앨피의 다락방》이라든지 《나의 를리외르 선생님》 같은 책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 해 동안 이 몇 가지를 빼놓고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고, 별 다섯을 만점으로 했을 때 별 셋을 주기도 창피하거나 쑥스럽다고 느껴진 책이, 저로서는 4/5가 넘었습니다.

 글 재촉 편지를 더는 미룰 수 없어서, 이달도 허둥지둥 글을 마무리지어서 보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일삯이 없는 글, 자원봉사 글입니다. 돈도 안 되는 일이긴 하나, 심사위원이라는 다섯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무 책이나 함부로 추천을 못하겠습니다’는 말을 하고 싶고, ‘이 잡지사에서는 어떤 어린이책을 후보로 내세우고 어떤 책이 훌륭한 책이라고 소개할 터인가’를 궁금하게 여기어, 아직까지 심사위원이라는 이름을 걸쳐놓고 있습니다.

 ‘이달에도 추천할 만한 책이 한 권도 없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하나를 뽑으라 한다면 이 책을 ……’ 하는 말로 편지를 보내고 나서 길게 한숨을 쉽니다. 어찌해야 좋은가, 앞으로도 이대로 해야 하나, 세상은 뒤죽박죽이니 이런 데까지 마음을 안 기울이는 편이 나은가, 아니면, 아니면, 제가 보는 눈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거나 비뚤어져서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 책’인데 나 혼자서만 ‘그 책 참 구린데?’ 하고 말을 하는 셈인가요?

 그나마, 저한테 고마운 도움말을 건네주는 선배가 얼마 앞서 《88만 원 세대》라는 책에서 무엇이 어떻게 왜 말썽거리인지를 낱낱이 까밝히는 글을 하나 썼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옳거니! 나 혼자만 이 책을 얄딱구리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네!’ 하면서 손뼉을 쳤습니다. 한 달 벌이가 30만 원도 채 안 되는 가운데, 달마다 도서관 달삯 40만 원을 내야 하지, 틈틈이 책 사 읽어야지, 밥먹고 살아야지, 또 헌책방 사진 찍어야지, …… 돈 들어올 구석은 없이 돈 나갈 구석만 있이 사노라면, ‘한 달 88만 원 버는 일도 기쁨 아닌가?’ 싶어서, 무엇보다도 그 책이름이 영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또한, ‘짱돌을 던지라’는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문제를 푸는 법이 그 하나뿐인가 싶은데, 글쓴이로서는 빗대는 말로 그렇게 꺼냈을지 모릅니다만, 글쎄요, 빗대는 말을 그만큼밖에 못한다면, 글쎄요. 지금 우리 나라에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 거의 없지만, 중고등학교를 벗어난 아이들, 나아가 중고등학교만 마친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 노동자가 몇 천만이라고들 말합니다만, 이 노동자 몇 천만이 손쉽게 읽고 받아들이며 새길 만한 책은 얼마쯤 될까요? 참말로 노동자들 눈높이를 헤아리는 책은 얼마나 되지요? 얼마 앞서 전희식 님이 《똥꽃》(그물코)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우리 나라에 동화는 있어도 노화는 없다’는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어린이책은 돈이 된다고 하니 너도나도 나서서 펴냅니다. ‘아이들 책은 수준 낮아서 안 낸다’고 하던 그 이름난 인문학 출판사들도 슬그머니 어린이책을 펴냅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이 옛날에 하던 말을 뉘우치거나 바로잡지는 않아요. 바로 이들, 돈이 되니까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마다 돈이 안 되는 책, 바로 적게 배운 사람들이 읽을 책과 노동자가 읽을 책과 농사꾼이 읽을 책은 죽어도 안 펴냅니다. 여기에다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읽을 책도 죽어라 안 냅니다. 돌아가신 권정생 할아버지가 《몽실 언니》며 《초가집이 있던 마을》이며 어린이책으로 써 냈지만, 가만히 읽어 보면 아이들보다는 당신 권정생 할아버지가 살던 마을에 있는 이웃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들려주려고 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러나 골칫거리는 바로 저한테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말 그대로 ‘남들은 다 좋다고 별 다섯을 꾹꾹 눌러서 주는 책’을, 저는 ‘별 하나 주기도 아깝지만 겨우 하나를 달아놓는 책’으로 받아들인다면, 서로가 너무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거나, 제 눈이 삔 셈이지 싶거든요.

 조금 더 생각해 봅니다. 제가 별 다섯을 주는 책들, 더없이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섬기며 좋아하는 책들치고, 둘레에 두루 읽히는 책이 드뭅니다. 《숲을 지켜낸 사람들》이 얼마나 읽히며, 《숲속의 꼬마 인디언》이 몇 사람한테 읽히며, 《수달 타카의 일생》이 읽히기나 하고 있으며, 《나의 수채화 인생》을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쯤이며, 《한국의 일상 이야기》는 팔리기나 했으며,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몇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까요. 저는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백 권 사서 선물했고, 《똥꽃》은 쉰 권을 사서 선물할 생각이며,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고 쉰 권 사서 선물하고 있습니다. 돈이 닿으면 《슬픈 미나마타》라는 책도 쉰 권 사서 선물하고 싶은데, 이제는 은행돈도 바닥이 났습니다. 제가 쓴 어느 글 하나를 놓고 ㅈ일보 기자가 명예훼손 고발을 하는 바람에 벌금 200만 원마저 물어야 해서 빚을 져야 할 판입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콕 박히는 책들을 사는 데에는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주머니가 털털 털려서 눈물이 날 판이지만,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를 사서 읽습니다. 만화책 《소년 탐구생활》을 사서 넘깁니다. 《주식회사 물》을 사 놓고 읽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소비사회의 탐색》이라는 책도 사서 옆지기한테 선물합니다.

 한 번 더 헤아려 보면, 누구보다도 저는 세상을 ‘다 다름’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더 나은 자리에 서 있는 듯’ 엉뚱하게 바라보면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이들은 ‘이 책 참으로 좋아서 별을 다섯 매기’는데, 저는 ‘고 책은 어디로 보아도 형편없어서 별 하나 주기도 아까운데’ 하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부디 이렇다면 반갑겠습니다. 제 눈이 비뚤어졌다면, 제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면, 제 매무새가 뒤뚱거린다면, 제 삶이 엉망진창이라면, 이리하여 저만 골치아픈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즐겁고 신나고 멋진 책을 알아차리는 마음그릇이 없는 책버러지가 깝죽을 떨고 있었다면 그지없이 좋겠습니다. (4341.3.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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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 보림문학선 5
채인선 지음, 이혜리 그림 / 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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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해 2월, 어느 잡지사에서 책추천 글을 부탁해 와서 거의 억지처럼 써서 보낸 글... 씁쓸한 마음은 그때나 이제나 마찬가지라서 걸쳐놓는다.)

 

네 가지 책 모두 그다지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기가 참 고달팠습니다. 그래도, 이 책들 모두 출판사에서는 정성을 들여 엮었을 텐데, 이 책을 손에 쥘 아이들이 어떻게 읽을지까지는 좀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땀방울을 헛되이 써 버렸다고 할까요. 이 가운데 하나 가까스로 골라서 추천하는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확 눈에 뜨이는 책이 있다면, 선정기도 마감에 늦지 않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오늘날 삶으로 녹여내지 못한 아쉬움


 설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올해에는 쉬는날이 짧아서 길이 많이 막힐까 걱정들을 했다지만, 정작 명절 동안 길은 거의 안 막혔다고 느낍니다. 저는 서울부터 자전거를 타고 음성에 계신 부모님 댁으로 갔는데, 여느 때보다 조금 늘었을 뿐, 딱히 명절 느낌이 나지 않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은 명절이라고 해서 길이 더 막힐 만하지 않을 만큼 전국 구석구석에 넓은 길이 많이 뚫렸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고속도로가 많이 늘었고 고속국도도 많이 늘었으며 일반국도도 참 많이 늘었습니다.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노라면 웬만한 시골길(지방도로)은 차가 아주 뜸합니다. 일반국도와 고속국도도 차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새길을 놓는 공사는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굳이 고속철도를 놓지 않아도 서울과 부산 사이를 빠르게 오갈 수 있는 좁은 땅인데, 고속철도까지 놓았습니다. 이런 판이니 명절이라고 길이 막힐 일이 없어요. 한편, 이렇게 길막힘 없이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 둘레에 자연 삶터가 그만큼 무너지거나 사라졌다는 소리요, 우리 둘레 자연 삶터가 이토록 무너지고 사라졌다는 소리는, ‘으레 떠올리는 시골집 모습과 산골짜기 경치’는 국립공원에서조차 자취를 감춘다는 뜻입니다.

 동화책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글쓴이한테는 어머니이고, 글쓴이 아이한테는 할머니가 될 분한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요즘 아이들한테 우리 삶과 문화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도깨비’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도시고 시골이고 도깨비를 볼 만한 깊은 산골이 없기 때문에, 또 무시무시한 귀신 타령도 아이들한테는 씨나락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옛날이야기가 얼마나 살가이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도깨비란 먼 하늘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에 늘 있던 님이고, 우리 삶을 차분히 다스리도록 이끄는 벗이기도 한 만큼, 도시문명 사회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도깨비 이야기를 빚어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억지스레 도깨비를 꾸며 보이지 않습니다. 도깨비를 그린 그림도 아이들한테는 앙증맞거나 깜찍하다고 느껴지겠구나 싶습니다. 서양 아이들한테는 요정일 테지만, 동양, 더욱이 한국 아이들한테는 도깨비입니다. 이런 도깨비 문화와 느낌을 살뜰히 받아들이도록 하면서, 어린 날 상상력과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싶어요.

 한편,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은 옛이야기도 아니고, 또 오늘날에 맞추어 새로 꾸민 이야기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에이, 다 지어낸 이야기잖아.’ 하면서 피식 웃을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요? 그저 할머니한테 듣는 꿈 같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참말로 자기가 사는 도시 아파트에서도 ‘옷장에 도깨비가 있지 않을까?’, ‘책상 밑에서 도깨비가 올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창문 밖에서 몰래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느끼도록 해 줄 장치나 이음고리 몇 가지쯤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도깨비 일곱 동무 이름을 성격에 맞게 재미나게, 그러면서도 퍽 알뜰히 붙인 대목이 반갑고, 도깨비들이 자기 이름에 걸맞게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놀랍기도 하면서 어울리는 모습은 아이들한테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이 서로서로 소중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겠지요. 다만, 말놀이를 느끼게 해 주려고 쓴 꾸밈말이나 시늉말은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걸맞지 않거나 얄궂은 말투나 낱말, 어렵게 쓴 낱말은 덜어내거나 다듬으면 좋겠어요. 말놀이란, 한낱 재미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거든요. 알맞는 말만 쓴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올바른 말을 쓰는 바탕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별 다섯 만점에서 별 둘을 주겠습니다. 다른 책 세 가지는 너무 볼품없어서 말할 값어치를 못 느낍니다. (4340.2.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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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인선 작가의 <시카고에 간 김파리>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파란놀 2008-07-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1
노경실 외 지음, 윤종태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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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고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 또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150km 남짓 되는 거리라 조금 멀다고도 할 수 있지만, 거리가 먼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멀면 시간이 좀더 걸릴 뿐이니까요. 이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자동차들이 너무 위험하게 내달릴 뿐 아니라, 좁은 지방도로와 네찻길 국도에서 규정속도를 훨씬 벗어난 빠르기로 씽씽 달리면서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로 접어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택시, 버스, 짐차, 자가용, 오토바이 할 것 없이 자전거를 깔보고 밀어내고 덮칠 듯이 으르렁거립니다.

 한미FTA라든지,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라든지,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할 만큼, 이런 이야기들이 신문-방송-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힘없고 짓눌리는 편’에서 나아지거나 고쳐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장애인을 따돌리는 일, 여성이 괴롭힘받는 일은 예전에 견주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봉건계급 시대와 요즘 형편을 견줄 수는 없는 노릇. 더욱이 어른들이 아이들을 힘겹게 하고 못살게 구는 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학원이며 시험공부며 숙제며 영어며 한자며, 아이들은 어마어마하게 짓눌리고 있고, 책읽기도 거의 짐처럼 주어지는 일덩이입니다.

 어른들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 평화로이 어울리며 평등하게 부대끼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보고 배울 것이란 차별-따돌림-괴롭힘-푸대접 따위입니다. 어린아이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서양 공주님 같은 옷을 입히며 피자와 콜라를 즐겨 사먹이는 가운데 아이들 가치관과 생각과 마음은 어떻게 자리잡을까요. ‘아름다움을 보는 눈’, ‘여성과 남성은 어떠한 사람인가’, ‘사회 차별’을 얼마나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는지요.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는 서양과 우리 이야기를 세 꼭지씩 골라서 ‘따돌림받고 괴롭힘받는 사람(거의 여성 눈높이에서)들 삶을 요즘 모습에 맞게 고쳐서 다시 쓴 역설 동화입니다. 군데군데 잘못 쓰거나 어렵게 쓴 말(검은 머리칼을 지닌/미소를 지었다/흑설공주에게로/점점 마음이 동하더니/하여/심해)이 보이고, 굳이 안 써도 좋을 말(가시랭이/가살맞은/고바우/관차/벼룻길/성현/묘책/만세복록)을 쓴 뒤 아래에 각주를 붙인 대목은 아쉽습니다. 이야기에 군살이 많이 붙었고, 마무리로 나아가는 단계에서 억지스러움이 엿보이지만, 속없이 그저 웃기려고만 하는 동화가 너무 판치며 오히려 아이들한테 비뚤어지거나 치우친 생각을 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반가운 작품입니다. 앞으로는 ‘역설 동화’를 넘어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이웃을 차별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얄궂은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창작동화로도 나아간다면 더 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4339.8.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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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에서 보림어린이문고
이영득 지음, 김동수 그림 / 보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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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은 어른들이 그리고 책으로 묶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글책(동화책이나 동시책이나 여러 이야기책)도 어른들이 글을 쓰고 책으로 묶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손에 쥐는 책에는 작게든 크게든 어른들 생각과 마음과 뜻이 담기기 마련이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펼쳐지곤 합니다. 어른들이 어릴 적에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적은 책이 있는 한편, 아이들이 지금 나이에 알아두면 좋을 것을 적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책 역사가 짧지만, 우리 글 문화는 지배계급 글 문화였기 때문에 종이에 적힌 이야기책이 드물었을 뿐, 전국 곳곳에는 그곳 나름대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입말,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져 왔습니다. 노래와 놀이도 그렇고요. 이런 이야기와 노래와 놀이는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인 한편 어른도 함께 즐기는 문화였고,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말하는 어른 또한 즐거운 문화였다고 느낍니다.

 예부터 이제까지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즐기는 이야기 문화를 가만히 보면, 중심 이야깃감은 자연에 있구나 싶습니다. 그림이야기책 《할머니 집에서》(보림,2006)도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칩니다. 자연을 모르면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솔이가,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던 아버지 고향(할머니가 계신 곳)에 찾아가 자연을 하나둘 느끼면서 가까이 동무로 삼게 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고 우유를 마시고 고기를 먹어도, 이 모든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누가 기르거나 잡아서 얻는지 모르는 도시 아이들에게 《할머니 집에서》는 자연을 가까운 동무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좋은 길잡이책이자 놀이책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솔이뿐 아니라 솔이 엄마도 자연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가릴 줄 모르니까요(책을 보면, 이 대목에서 솔이라는 아이가 처음에는 감자와 고구마를 가릴 줄 모르다가 몇 줄 뒤에 곧바로 둘을 아주 잘 가려내는 것으로 나와 모순이 되는 잘못이 있습니다). 그래, 《할머니 집에서》처럼 자연을 이야깃감으로 삼는 책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삶을 꾸리는 이 나라 아이들한테 우리한테 무엇이 중요한가를 가르치는 한편, 이 책을 보는 어른들도 말이나 책으로만 아이한테 설교하지 말고, 어른부터 스스로 우리한테 소중한 값어치를 찾아보자고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투나 흐름도 부드럽고 살갑습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띕니다. 《할머니 집에서》는 아이들 그림을 흉내내어 그리면서 일부러 단출하고 가볍게 그림을 그렸는데요, 7쪽에 처음 나오는 할머니 그림에서 손이 뒤집혔고, 주인공 솔이는 오른손잡이로 보이나 책을 보면 왼손잡이처럼 물건을 잡거나 던지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인사를 할 때 왼손을 흔듭니다. 49쪽에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다리가 이상하게 되었는데 54쪽에는 다리를 제대로 그립니다. 알 낳는 닭을 흰닭으로 그렸는데 이 흰닭은 서양에서 들여와 양계장에서 키우는 닭이지, 시골집에서 키우는 닭이 아닙니다. 시골집 닭은 지난날 똥개(누렁이)와 마찬가지로 누런닭이거나 검누런닭입니다. 아이들 그림을 흉내낸다고 해도 사실을 비틀거나 모순되게 그려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 그림이 삐뚤빼뚤이라고 하지만 사실을 비틀거나 모순되게 그리지 않습니다. 제도권 교육에 물들어 판에 박히게 그리는 아이들 그림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기가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리는 아이들 그림을 좀더 눈여겨보아야 더 낫고 살뜰하게 그림책을 엮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10쪽에 시골집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아름드리나무도 많았어요”라고 나오는데, 우리 나라 어느 시골에도 아름드리나무가 많은 곳은 없습니다. 어른이 두 팔을 벌려서 꼭 안을 만큼 줄기가 굵은 나무가 아름드리입니다. 이런 나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과 들 온갖 나무가 거의 다 죽어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 아름드리나무는 마을에 한두 그루만 남았어도 다행이라 할 만하거든요. 지리산이나 한라산이나 설악산도 마찬가지예요. ‘아름드리나무’가 아니라 ‘나무’라고만 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4339.9.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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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돌보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5
재클린 윌슨 지음, 지혜연 옮김, 닉 샤랫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 돌보기》(시공주니어)를 읽는 아이들은 자기들을 돌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지금 어떠한 형편인지, 몸은 어떻고 마음은 어떠한지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이를 거의 하나만 낳아서 어린 나이부터 일찍일찍 여러 가지를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 하나를 금이야 옥이야 기르기 마련이고, 지나치게 보호한다면서 아이가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가 되어 버리게 한달까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부모와 자식 사이인데도, 서로를 깊이 살피지 못하고 겉스침으로만, 그저 바라기만 하는 대상으로만 느낀달까요.

 글쓴이 재클린 윌슨 님은 이런 현실을 잘 잡아채었고, 누구보다 아이들한테, 또 아버지와 어머니 들한테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살아가면 즐거울까, 더 나을까, 재미와 보람이 있을까를 생각하도록 이끄는구나 싶습니다. 여기에다가 결혼만큼 쉽게 이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가운데 한쪽이 없이 지내는 아이들 마음도 더 찬찬히 살피도록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책을 읽으며 좀 거리끼는 대목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좋지만, 이런 줄거리에 나오는 여러 상황이라든지, 집안살림 모습이라든지, 어른들 일 세계나 둘레 마을 모습은 우리 사회하고 많이 다르지 않느냐는 것. 요즘 우리 사회는 서양 문화나 문물이 많이 들어와서 이런 이야기도 그다지 거리낄 만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아파트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는 자연스러운 삶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어쩐지 거리끼게 됩니다. 너무 도시 중심으로, 서양 이야기 판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냐 싶어서. 그리고, 이만한 줄거리라면 굳이 번역을 해서 내기보다는, 우리 나라 동화작가들이 얼마든지 창작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출판사에서 우리 나라 동화작가들한테 창작의욕을 불태워 주거나 창작동화를 부탁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려는 마음을 차근차근 북돋우고 일구어 간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4339.11.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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