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은 사진기. 필름사진기인데, 이 눈으로 들여다보면 꽤 괜찮다. 값싼 필름 하나 사서 넣어 찍어 보고프다. 

- 2010.12.21.  

  

 아이 발과 아빠 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0-12-27 18:00   좋아요 0 | URL
ㅎㅎ 이젠 필림 카메라는 사라지는 추세죠.필림도 사라지고 필림 인화하는 곳도 사라지는 추세죠.이제 돼지털이 대세...
저도 니코매타란 60년대 나온 카메라가 있는데 망치마냥 튼튼하자만 이른바 모든것을 수동(거리,노출 모두)하는 기기라 이젠 웬만해서 어디 가지고 다니기가 힘드네요^^;;;

파란놀 2010-12-27 21:06   좋아요 0 | URL
90년대에 나온 '자동카메라'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이 나와요.
이 값싼 자동카메라로 아이하고 즐겁게 사진을 찍어 볼까 싶어요.
뭐랄까... 로모사진기하고 자동카메라하고
화각이 비슷해 보이더군요 ^^
 


 김치와 글쓰기


 아침밥을 차리면서 김치를 옮겨 담는다. 옆지기 어머님이 마련해 주신 김치가 담긴 큰 통에서 밥자리에서 쓰는 작은 통으로 옮긴다. 바깥에 내놓는 김치는 꽁꽁 얼어붙는다. 가위로 폭 찍어서 옮긴다. 열무김치는 한손으로 하나씩 집어 먹기 좋도록 자른다. 이 김치나 저 김치나 꽁꽁 얼어붙었기에 김치를 쥐는 한손 또한 얼어붙는다. 세 가지 김치를 통 하나에 1/3씩 나누어 담는다. 김치를 옮겨 담는 내내 얼은 손가락은 꽤 오래도록 녹지 않는다. 얼어붙는 겨우내 먹는 김치는 얼어붙는 채 겨울을 함께 나는 셈일까. 김치를 쥐기만 해도 손이 얼어붙는다면 겨울 동안 김치를 담글 수 없겠지. 미리미리 김치를 비롯한 다른 먹을거리를 알뜰히 마련해 놓아야 할 테지.

 소복소복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쓴다. 눈을 쓰는 동안 손가락은 다시 얼어붙는다. 군대에서는 겨울이면 하루 몇 시간씩 눈을 쓸었는데, 그때에도 손가락은 꽁꽁 얼어붙었다. 그무렵 그 겨울을 어떻게 보냈으려나. 앞으로 또 눈이 오면 또 눈을 쓸면서 또 손가락이 얼어붙겠지. 나는 바보처럼 손가락 얼어붙으면서 살아간다. (4343.12.26.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걸어온 길을 조용히 돌아본다
 [헌책방에서 만난 책 3] 강수지,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켠 이름 하나》



 헌책방에서 책 하나를 만납니다. 책 안쪽에는 알파벳으로 큼직하게 적바림한 글월이 하나 있습니다. 뭔 글월을 이렇게 책 한쪽 가득히 적었나 싶어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Sujee Kang 91.10.”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수지 강”일 테고, 이 책을 쓴 분 이름 “강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 뒤쪽을 살핍니다. 간기 날짜를 들여다봅니다. 1991년 10월 5일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1991년 10월 어느 날 강수지 님이 책 하나 내놓으면서 출판기념잔치 비슷하게 사인해 주는 마당을 마련하지 않았나 싶고, 이 자리에서 노래꾼 강수지 님을 좋아하는 어느 분이 1991년 10월에 3500원 하던 이 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사인까지 받았으리라 봅니다. 제가 헌책방에서 만난 책은 1991년 11월 5일에 2쇄를 찍었습니다.

 1991년이면 스물둘 나이였을 강수지 님은, 이 조그마한 책 하나에 무슨 이야기와 어떤 삶을 적바림했으려나요. 1991년에 이 책을 장만하던 사람들은 강수지 님 이야기와 삶을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였으려나요.


.. 우리들의 표정은 딱딱하다. 검은 빵의 딱딱한 껍질같이 굳어 있다.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표정은 없는 것일까. 꼭 이제 막 싸움을 하고 나온 듯한 표정으로 일터에 나가고 동료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는 우리들. 우리의 표정은 어디로 갔을까. 마음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따뜻한 표정들은 어디로 갔을까 … 화려한 나도 좋다. 박수를 받는 나도 좋다. 유명해진 나도 좋다. 그러나 조용히 한 남자의 착한 아내가 되어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며 예쁘게 늙어가고 싶다. 한 남자를 아주 편안하게 나에게 어깨를 빌려준 사람으로 여기며 조용히 조용히 사람들 틈에 섞여 예쁘게 살고 싶다 ..  (76, 82쪽)


 어느덧 해는 흐르고 달은 기울어 스무 해가 지납니다. 2011년이 코앞인 2010년 12월 26일 막바지입니다. 1991년에 스물둘이던 강수지 님은 어느새 마흔둘 나이요, 1991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던 저는 바야흐로 딸 하나를 둔 서른여섯 나이입니다. 스물둘 나이에 “한 남자를 아주 편안하게 나에게 어깨를 빌려준 사람으로 여기며 조용히 조용히 사람들 틈에 섞여 예쁘게 살고 싶”다 바란 강수지 님 오늘 삶은 어떤 빛깔 어떤 내음 어떤 살결이려나요. ‘조용히’를 두 번 잇달아 적을 만큼 조용하면서 예쁘게 살고프다던 강수지 님 오늘 삶은 어느 만큼 예쁜 빛깔 예쁜 옷 예쁜 목소리일까요.

 밤 두 시 넘도록 잠들지 못하면서 칭얼대던 아이가 아침 아홉 시 사십 분 즈음 깨어납니다. 기저귀를 안 차겠다 해서 풀었더니 웃옷이며 아랫도리며 온통 오줌으로 젖었습니다. 아이는 누워서 “젖었어.” 하고 말합니다. “그래, 젖었어. 누워 봐. 새옷 가지고 올게.” 하고 말하는 아빠는 바지랑 웃도리를 벗겨 새옷으로 갈아입힙니다. 어차피 오늘 다 빨고 아이를 씻길 생각이었지만, 오줌 젖은 옷이 되는군요.

 아이보고 “늦게까지 안 잤으니까 조금 더 누워 있어.” 하고 말하며 어머니 곁에 눕도록 이불을 덮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조잘조잘 웃으며 떠듭니다. 간밤에 칭얼대던 모습은 잊었으려나요. 벌써 훌렁 지나간 아스라한 옛일인가요.

 아무렴, 옛일이어야지요. 오늘은 오늘대로 오늘 하루 새롭고 기쁘게 살아야지요. 다시 얼어붙은 시골집 물꼭지가 다시금 녹아 주기를 기다리고, 날이 또 한 번 포근히 풀리기를 바라야지요. 겨울다운 추위를 새삼 느끼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아이한테 “이제 벼리는 세 살에서 네 살이 되었어요.” 하고 새말을 가르쳐야지요. 아빠 나이도 한 살을 붙이고, 한 살 더 붙인 나이만큼 어떠한 나잇살이 붙는가 헤아려야지요.


.. 나는 미국 생활에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으나, 이 일을 계기로 심한 회의를 느꼈다. 어느 날,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 구내로 내려갔다. 역 구내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역 한쪽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미국애들 서넛이 어느 동양인 아이를 놀리고 있었다.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욕설을 하면서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니네들은 왜 여기에서 사니? 니네 나라를 놔두고. 병신들?” … 그 광경을 보고 난 후 나는 우울증과 함께 식사를 거부하는 거식증에 걸렸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게 부끄러웠고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웠다. 우리는 미국에 와서도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 그러나 그런 위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  (134∼136쪽)


 글은 짧게 싣고 두 쪽에 한 번씩 흑백사진을 넣은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켠 이름 하나》를 넘깁니다. 노래꾼 강수지 님을 좋아하던 1991년 무렵 사람들한테 이 책은 얼마나 애틋하거나 사랑스럽거나 반가웠을까 떠올려 봅니다. 음반처럼, 또는 음반만큼 사랑받은 책이었겠지요. 가방에 늘 넣어 다니거나 책꽂이 잘 보이는 자리에 얌전히 꽂아 놓은 책이었겠지요.

 앞으로 스무 해가 더 지나면 강수지 님도 예순 고개에 접어듭니다. 예순 고개에 당신 스물두 살 적 사진과 글을 돌아본다면 어떠한 느낌일까 헤아려 봅니다. 대중노래를 부르며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은 만큼 젊은 나날 사진이 많은 강수지 님인데, 강수지 님은 예순이나 일흔이나 여든에 당신 젊은 나날 삶을 어떻게 아로새기려나 되짚어 봅니다.

 스물에도 예쁜 삶, 마흔에도 예쁜 삶, 예순에도 예쁜 삶, 여든에도 예쁜 삶을 고이 이어가겠지요. 예쁘게 예쁘게 바라며 꿈꾸는 삶이니까요.


.. 내가 집을 떠나올 때 식구들은 내가 집을 떠나 서울로 가는 줄 몰랐었다. 친구 집에 잠시 다니러 간 줄 알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약해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래층에서 무료하게 신문을 읽고 계셨다. “아버지, 저 갔다올게요.” “응.” 아버지는 계속 신문을 뒤적이시며 건성으로 대답하셨다. 내가 간단한 외출을 하는 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친구와 몰래 짐을 옮기며 나는 집의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길게 그리고 둔중하게 났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돌아올 때는 더 강한 딸이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빠, 동생 친구들. 안녕, 안녕 ..  (154쪽)


 어버이 함께 살던 집을 떠나 혼자 살림을 꾸리던 지난날은 까마득하기도 하지만, 바로 엊그제 일 같기도 합니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서던 고갯마루에서 어버이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떠나 지하방 신문사지국으로 들어가 새벽을 일찍일찍 열면서 보내던 나날은 아득하기도 하지만, 그냥 어제그제 일 같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세 살 딸아이랑 복닥이는 나날 또한 스무 해쯤 지나 딸아이가 스물세 살 나이가 된 다음에 돌이킬 때에는 더없이 아련하면서 그지없이 똑똑히 되새기는 하루하루일까 궁금합니다. 첫딸이 스물셋일 때 아빠는 쉰여섯, 둘째가 스물셋이 될 때에는 아빠가 쉰아홉, 아, 나한테도 예순 고개가 찾아오겠지요. 아직은 꿈꾸기 어려운 나이요 밥그릇인데, 예순 고개란 또 어떠한 삶·맛·꿈으로 찾아오려나요.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그예 곱게 살아가고픕니다. 이제 셈틀을 끄고 아침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4343.12.26.해.ㅎㄲㅅㄱ)


―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켠 이름 하나 (강수지,들꽃세상 펴냄/1991.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천상병 지음 / 영언문화사 / 1994년 5월
평점 :
절판


헌책방에서 자그마한 책 하나 찾아 읽기
― 천상병,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 책이름 :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 글 : 천상병
- 펴낸곳 : 영언문화사 (1994.4.28.)


 시쓰는 천상병 님 책은 새책방에도 있고 헌책방에도 있습니다. 저는 천상병 님 시모음을 1991년에 인천 인현동에 있는 새책방 〈대한서림〉애서 ‘미래사’에서 나온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로 처음 마주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니면서 퍽 묵은 천상병 님 글과 시를 곧잘 만났습니다. 한 해가 흐르고 열 해가 지나면서 천상병 님 책들도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추며 헌책방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새책방에서 새책으로 팔리면 천상병 님한테나 출판사한테나 한 푼 두 푼 돈이 되겠지요. 헌책방에서는 제아무리 많이 팔리더라도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널리 읽힐 때에도 돈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책이 읽히고 시가 읽힌다면, 새책방하고는 또다른 결과 느낌과 빛깔과 내음입니다. 헌책방과 도서관도 사뭇 다른 맛입니다.

 새책방에서는 누구나 얼마든지 같은 책을 즐겁게 읽습니다. 도서관에서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맛보기는 힘들지만, 차례를 기다려 천천히 책을 맛봅니다. 헌책방에서는 이 책 하나 알아보는 꼭 한 사람만 책을 맛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책을 살 수 있는 새책방이요, 요사이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으면 택배삯마저 안 받으며 날아옵니다. 도서관에서는 기다리기만 하면 책을 빌려 읽습니다. 헌책방에서는 기다린다 할지라도 못 만나기 일쑤입니다. 찾아다니고 다리품을 오래 팔아도 못 보기 마련입니다.


..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을 살펴 어머니를 찾았으나 눈에 띄지는 않고 부엌 쪽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웬일인가 하고 부엌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니께서 무엇인가 태우고 계셨다. 나는 무엇인가 하고 내려다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책들을 모두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 한 권 한 권 태우고 계시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어머니께 매달리며 “어머니, 왜 책을 불에 태우세요.”라고 다급하게 물었더니 어머니 말씀이 “상병아! 너는 몸도 약한데 책만 읽고 있으니 눈도 나빠질 것이고 이러다가는 너의 건강도 말이 아닐 것 아니겠느냐. 그래서 책이 없으면 읽지 않을 것이니 태워 버리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책을 빼앗아 울며 매달려 조금씩만 읽겠다고 애원했다. 내 생명과 같은 귀중한 내 재산은 바로 돈이 아닌 책이었으니 내 어찌 가만히 있었겠는가 ..  (46∼47쪽)


 천상병 님은 당신 어머님 마음과 사랑을 알았을까요. 옆지기와 아이가 함께 자는 방에서 소리내어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을 떠올립니다. 우리 어머니가 당신 아들 만화책이며 놀잇감을 몽땅 긁어모아 내다 버린 일은 어떤 마음과 사랑이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어머니들한테는, 또 아버지들한테는, 그러니까 어버이들한테는 돈이나 책이나 집이나 자동차나 보배덩어리는 하잘것없습니다.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어버이 누구한테든 당신 살붙이하고 아이가 가장 아름다우며 빛납니다. 돈이랑 바꿀 수 없는 짝꿍입니다. 집이랑 바꾸지 않는 아이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지, 돈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 담긴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지, 돈으로 사들인 밥으로 끼니를 채운다고 배부르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헌책방마실을 하며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를 읽으며 이 대목에 오래도록 눈길을 멎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지는 못할 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속속들이 파헤치거나 꿰뚫어보지 못할지라도, 여리고 작은 가슴에 조용히 촉촉하게 스며들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헌책방 책시렁 헌책 하나 따순 손길로 어루만질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4343.12.26.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 우리말 생각 ㉠ 우리말과 우리 말


 우리 겨레는 다른 겨레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말이랑 글을 씁니다. 이를 가리켜 손쉽게 ‘우리말’이라 하는데, 이 낱말부터 ‘우리말’로 써야 하느냐 ‘우리 말’로 띄어야 하느냐를 놓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답니다. 저는 ‘우리 말’로 띄어서 적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말’로 붙여서 적겠어요.

 궁금한가요? 제 잣대로는 ‘우리 말’로 띄면서 이 책에서는 ‘우리말’로 붙이는 까닭이.

 머리말에서 따로 밝히지 않았는데, 시골 아저씨는 이 책을 쓰면서 책이름이 영 못마땅했답니다. ‘아니,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을 다루는 이야기책인데, 이런 책에 ‘通하다’처럼 얼토당토않게 얄궂은 외마디 한자말을 버젓이 집어넣을 수 있담?’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굳이 드러내지 않았어요. 이 책을 내놓아 준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책들이 하나같이 “10대와 통하는 ……”으로 책이름을 삼았거든요. 이런 흐름에 아저씨 혼자 팔뚝질을 하면서 모난 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책이름은 못마땅한 그대로 두되, 왜 못마땅해 하는가를 찬찬히 다루고 싶었어요.


 10대와 만나는 우리말
 10대와 어깨동무하는 우리말
 10대와 어우러지는 우리말
 10대와 마음 나누는 우리말
 10대와 나누는 우리말
 10대와 이야기하는 우리말
 10대와 이어지는 우리말
 10대와 사이좋은 우리말
 10대와 사랑하는 우리말
 ……


 좋거나 잘 어울리는 이름은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어요. 생각할 때에 얻는 좋은 이름이에요. 생각하며 사랑할 때에 비로소 깨닫는 좋은 이름이고요. ‘通하다’는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 낱낱이 따지자면 일본 한자말이지만, 이런 말마디를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너무 함부로 써 버릇해요. 우리 어른들부터 이런 말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부터 이런 말버릇을 못 고치고 말아요. 익숙하다는 대로 그냥 쓰고, 젖어든 대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씁니다.

 어찌 보면 자잘한 말버릇이겠지요. 그런데 자잘한 말버릇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뒤틀린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을 바로잡을 수는 없겠지요. 노상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작다 할 만한 말투 하나 살가이 추스르지 못하’며 살아가잖아요.

 우리들이 옳고 바른 삶터를 꿈꾼다면, 우리가 늘 쓰는 말부터 옳고 바른 말이 되도록 땀흘려야 한다고 느껴요. 가장 낮고 가장 초라하며 가장 구석진 자리부터 차근차근 가누면서 아름다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우리 어른들은 이처럼 말과 삶이 어긋나 있답니다. 말과 삶이 어긋난 바람에 착한 말이나 참다운 말이나 고운 말을, 다른 누구보다 어른들이 가장 못 써요. 우리 말사랑벗들이 ‘외계어’나 ‘통신체’를 쓴다고 나무라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이 어른들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스며들거나 퍼진 일본 제국주의 말마디’를 말끔히 털어낸 분은 거의 없어요. 쓰지 말아야 할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나 서양 번역투나 영어 따위를 멋대로 뇌까리는 사람은 바로 어른이에요. 푸름이가 아닙니다. 어린이 또한 아니고요. 어른이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말을 듣거나 읽어야 하는 푸름이랑 어린이가 똑같이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고 맙니다. 푸름이와 어린이 가운데 ‘우리말’로 적어야 옳으냐 ‘우리 말’로 적어야 옳으냐를 제대로 가눌 벗은 거의 없으리라 보는데, 어른도 매한가지예요. 아니, 어른부터 제대로 가누지 못해요.


 우리말 / 우리글 / 우리나라
 우리 옷 / 우리 집 / 우리 겨레 / 우리 춤 / 우리 노래


 낱말책을 살피면 꼭 세 낱말, ‘우리말’이랑 ‘우리글’이랑 ‘우리나라’는 붙여서 씁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만 쓰는 말과 글이라 해서 ‘우리말’이랑 ‘우리글’을 붙이도록 하고, 덩달아 ‘우리나라’를 붙이도록 해요.

 ‘우리나라’를 붙이도록 한 까닭은, 사람들이 이 낱말을 자주 쓰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자주 안 썼다면 안 붙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자주 쓰는 ‘신나다’ 같은 낱말은 여태껏 한 낱말이 못 된답니다. 자주 쓰기는 하지만 ‘문학책이나 신문이나 논문에 이 낱말(신나다)이 자주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보기글이 모자라’서 붙일 수 없다고 해요.

 나쁜 법도 법이라서 지켜야 한다 이야기하고, 알맞지 않아도 이렇게 하기로 다짐했으면 서로 지켜야 한다 이야기하합니다. 말사랑벗 또한 이 나라 어른들이 마련한 말법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라든지, 책방에 가득한 책을 들여다보면, 모두들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표준말을 다루는 이야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푸른 벗님들이 푸른 꿈과 넋과 슬기를 꽃피우도록 이끄는 이야기로 거듭나는 책은 쉬 만날 수 없어요.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놓을 수는 없고, 또 ‘우리말’하고 ‘우리 말’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느냐는 이야기만 놓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기까지 해요. 이 작은 책에서 이 이야기를 모두 다룰 수는 없어요. 구태여 다루어야 하지는 않지요. 다만, 한 가지는 밝힐게요. ‘우리말-우리글-우리나라’처럼 새 낱말을 빚어서 쓰는 틀이 마련되었다면, 말사랑벗들은 ‘우리책-우리꿈-우리학교-우리겨레-우리민족-우리영화-우리땅-우리바다-우리하늘-우리산’ 같은 말도 나중에는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2011년 오늘은 못 쓸 테지만, 2050년이라든지 2111년에는 누구나 이렇게 쓸 수 있답니다. 말법은 삶터와 사람에 따라 달라지거나 거듭납니다. 우리말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끼고 우리 삶을 사랑하며 우리 삶을 살찌우는 결대로 새로워지거나 다시금 태어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