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우리말 생각 ㉠ 우리말과 우리 말
우리 겨레는 다른 겨레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말이랑 글을 씁니다. 이를 가리켜 손쉽게 ‘우리말’이라 하는데, 이 낱말부터 ‘우리말’로 써야 하느냐 ‘우리 말’로 띄어야 하느냐를 놓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답니다. 저는 ‘우리 말’로 띄어서 적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말’로 붙여서 적겠어요.
궁금한가요? 제 잣대로는 ‘우리 말’로 띄면서 이 책에서는 ‘우리말’로 붙이는 까닭이.
머리말에서 따로 밝히지 않았는데, 시골 아저씨는 이 책을 쓰면서 책이름이 영 못마땅했답니다. ‘아니,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을 다루는 이야기책인데, 이런 책에 ‘通하다’처럼 얼토당토않게 얄궂은 외마디 한자말을 버젓이 집어넣을 수 있담?’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굳이 드러내지 않았어요. 이 책을 내놓아 준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책들이 하나같이 “10대와 통하는 ……”으로 책이름을 삼았거든요. 이런 흐름에 아저씨 혼자 팔뚝질을 하면서 모난 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책이름은 못마땅한 그대로 두되, 왜 못마땅해 하는가를 찬찬히 다루고 싶었어요.
10대와 만나는 우리말
10대와 어깨동무하는 우리말
10대와 어우러지는 우리말
10대와 마음 나누는 우리말
10대와 나누는 우리말
10대와 이야기하는 우리말
10대와 이어지는 우리말
10대와 사이좋은 우리말
10대와 사랑하는 우리말
……
좋거나 잘 어울리는 이름은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어요. 생각할 때에 얻는 좋은 이름이에요. 생각하며 사랑할 때에 비로소 깨닫는 좋은 이름이고요. ‘通하다’는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 낱낱이 따지자면 일본 한자말이지만, 이런 말마디를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너무 함부로 써 버릇해요. 우리 어른들부터 이런 말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부터 이런 말버릇을 못 고치고 말아요. 익숙하다는 대로 그냥 쓰고, 젖어든 대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씁니다.
어찌 보면 자잘한 말버릇이겠지요. 그런데 자잘한 말버릇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뒤틀린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을 바로잡을 수는 없겠지요. 노상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작다 할 만한 말투 하나 살가이 추스르지 못하’며 살아가잖아요.
우리들이 옳고 바른 삶터를 꿈꾼다면, 우리가 늘 쓰는 말부터 옳고 바른 말이 되도록 땀흘려야 한다고 느껴요. 가장 낮고 가장 초라하며 가장 구석진 자리부터 차근차근 가누면서 아름다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우리 어른들은 이처럼 말과 삶이 어긋나 있답니다. 말과 삶이 어긋난 바람에 착한 말이나 참다운 말이나 고운 말을, 다른 누구보다 어른들이 가장 못 써요. 우리 말사랑벗들이 ‘외계어’나 ‘통신체’를 쓴다고 나무라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이 어른들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스며들거나 퍼진 일본 제국주의 말마디’를 말끔히 털어낸 분은 거의 없어요. 쓰지 말아야 할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나 서양 번역투나 영어 따위를 멋대로 뇌까리는 사람은 바로 어른이에요. 푸름이가 아닙니다. 어린이 또한 아니고요. 어른이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말을 듣거나 읽어야 하는 푸름이랑 어린이가 똑같이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고 맙니다. 푸름이와 어린이 가운데 ‘우리말’로 적어야 옳으냐 ‘우리 말’로 적어야 옳으냐를 제대로 가눌 벗은 거의 없으리라 보는데, 어른도 매한가지예요. 아니, 어른부터 제대로 가누지 못해요.
우리말 / 우리글 / 우리나라
우리 옷 / 우리 집 / 우리 겨레 / 우리 춤 / 우리 노래
낱말책을 살피면 꼭 세 낱말, ‘우리말’이랑 ‘우리글’이랑 ‘우리나라’는 붙여서 씁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만 쓰는 말과 글이라 해서 ‘우리말’이랑 ‘우리글’을 붙이도록 하고, 덩달아 ‘우리나라’를 붙이도록 해요.
‘우리나라’를 붙이도록 한 까닭은, 사람들이 이 낱말을 자주 쓰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자주 안 썼다면 안 붙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자주 쓰는 ‘신나다’ 같은 낱말은 여태껏 한 낱말이 못 된답니다. 자주 쓰기는 하지만 ‘문학책이나 신문이나 논문에 이 낱말(신나다)이 자주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보기글이 모자라’서 붙일 수 없다고 해요.
나쁜 법도 법이라서 지켜야 한다 이야기하고, 알맞지 않아도 이렇게 하기로 다짐했으면 서로 지켜야 한다 이야기하합니다. 말사랑벗 또한 이 나라 어른들이 마련한 말법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라든지, 책방에 가득한 책을 들여다보면, 모두들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표준말을 다루는 이야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푸른 벗님들이 푸른 꿈과 넋과 슬기를 꽃피우도록 이끄는 이야기로 거듭나는 책은 쉬 만날 수 없어요.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놓을 수는 없고, 또 ‘우리말’하고 ‘우리 말’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느냐는 이야기만 놓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기까지 해요. 이 작은 책에서 이 이야기를 모두 다룰 수는 없어요. 구태여 다루어야 하지는 않지요. 다만, 한 가지는 밝힐게요. ‘우리말-우리글-우리나라’처럼 새 낱말을 빚어서 쓰는 틀이 마련되었다면, 말사랑벗들은 ‘우리책-우리꿈-우리학교-우리겨레-우리민족-우리영화-우리땅-우리바다-우리하늘-우리산’ 같은 말도 나중에는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2011년 오늘은 못 쓸 테지만, 2050년이라든지 2111년에는 누구나 이렇게 쓸 수 있답니다. 말법은 삶터와 사람에 따라 달라지거나 거듭납니다. 우리말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끼고 우리 삶을 사랑하며 우리 삶을 살찌우는 결대로 새로워지거나 다시금 태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