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천상병 지음 / 영언문화사 / 1994년 5월
평점 :
절판


헌책방에서 자그마한 책 하나 찾아 읽기
― 천상병,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 책이름 :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 글 : 천상병
- 펴낸곳 : 영언문화사 (1994.4.28.)


 시쓰는 천상병 님 책은 새책방에도 있고 헌책방에도 있습니다. 저는 천상병 님 시모음을 1991년에 인천 인현동에 있는 새책방 〈대한서림〉애서 ‘미래사’에서 나온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로 처음 마주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니면서 퍽 묵은 천상병 님 글과 시를 곧잘 만났습니다. 한 해가 흐르고 열 해가 지나면서 천상병 님 책들도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추며 헌책방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새책방에서 새책으로 팔리면 천상병 님한테나 출판사한테나 한 푼 두 푼 돈이 되겠지요. 헌책방에서는 제아무리 많이 팔리더라도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널리 읽힐 때에도 돈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책이 읽히고 시가 읽힌다면, 새책방하고는 또다른 결과 느낌과 빛깔과 내음입니다. 헌책방과 도서관도 사뭇 다른 맛입니다.

 새책방에서는 누구나 얼마든지 같은 책을 즐겁게 읽습니다. 도서관에서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맛보기는 힘들지만, 차례를 기다려 천천히 책을 맛봅니다. 헌책방에서는 이 책 하나 알아보는 꼭 한 사람만 책을 맛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책을 살 수 있는 새책방이요, 요사이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으면 택배삯마저 안 받으며 날아옵니다. 도서관에서는 기다리기만 하면 책을 빌려 읽습니다. 헌책방에서는 기다린다 할지라도 못 만나기 일쑤입니다. 찾아다니고 다리품을 오래 팔아도 못 보기 마련입니다.


..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을 살펴 어머니를 찾았으나 눈에 띄지는 않고 부엌 쪽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웬일인가 하고 부엌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니께서 무엇인가 태우고 계셨다. 나는 무엇인가 하고 내려다보았더니 이게 웬일인가!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책들을 모두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 한 권 한 권 태우고 계시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어머니께 매달리며 “어머니, 왜 책을 불에 태우세요.”라고 다급하게 물었더니 어머니 말씀이 “상병아! 너는 몸도 약한데 책만 읽고 있으니 눈도 나빠질 것이고 이러다가는 너의 건강도 말이 아닐 것 아니겠느냐. 그래서 책이 없으면 읽지 않을 것이니 태워 버리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책을 빼앗아 울며 매달려 조금씩만 읽겠다고 애원했다. 내 생명과 같은 귀중한 내 재산은 바로 돈이 아닌 책이었으니 내 어찌 가만히 있었겠는가 ..  (46∼47쪽)


 천상병 님은 당신 어머님 마음과 사랑을 알았을까요. 옆지기와 아이가 함께 자는 방에서 소리내어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을 떠올립니다. 우리 어머니가 당신 아들 만화책이며 놀잇감을 몽땅 긁어모아 내다 버린 일은 어떤 마음과 사랑이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어머니들한테는, 또 아버지들한테는, 그러니까 어버이들한테는 돈이나 책이나 집이나 자동차나 보배덩어리는 하잘것없습니다.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어버이 누구한테든 당신 살붙이하고 아이가 가장 아름다우며 빛납니다. 돈이랑 바꿀 수 없는 짝꿍입니다. 집이랑 바꾸지 않는 아이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지, 돈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 담긴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지, 돈으로 사들인 밥으로 끼니를 채운다고 배부르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헌책방마실을 하며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를 읽으며 이 대목에 오래도록 눈길을 멎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지는 못할 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속속들이 파헤치거나 꿰뚫어보지 못할지라도, 여리고 작은 가슴에 조용히 촉촉하게 스며들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헌책방 책시렁 헌책 하나 따순 손길로 어루만질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4343.12.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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