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을 조용히 돌아본다
[헌책방에서 만난 책 3] 강수지,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켠 이름 하나》
헌책방에서 책 하나를 만납니다. 책 안쪽에는 알파벳으로 큼직하게 적바림한 글월이 하나 있습니다. 뭔 글월을 이렇게 책 한쪽 가득히 적었나 싶어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Sujee Kang 91.10.”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수지 강”일 테고, 이 책을 쓴 분 이름 “강수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 뒤쪽을 살핍니다. 간기 날짜를 들여다봅니다. 1991년 10월 5일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1991년 10월 어느 날 강수지 님이 책 하나 내놓으면서 출판기념잔치 비슷하게 사인해 주는 마당을 마련하지 않았나 싶고, 이 자리에서 노래꾼 강수지 님을 좋아하는 어느 분이 1991년 10월에 3500원 하던 이 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사인까지 받았으리라 봅니다. 제가 헌책방에서 만난 책은 1991년 11월 5일에 2쇄를 찍었습니다.
1991년이면 스물둘 나이였을 강수지 님은, 이 조그마한 책 하나에 무슨 이야기와 어떤 삶을 적바림했으려나요. 1991년에 이 책을 장만하던 사람들은 강수지 님 이야기와 삶을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였으려나요.
.. 우리들의 표정은 딱딱하다. 검은 빵의 딱딱한 껍질같이 굳어 있다.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표정은 없는 것일까. 꼭 이제 막 싸움을 하고 나온 듯한 표정으로 일터에 나가고 동료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는 우리들. 우리의 표정은 어디로 갔을까. 마음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따뜻한 표정들은 어디로 갔을까 … 화려한 나도 좋다. 박수를 받는 나도 좋다. 유명해진 나도 좋다. 그러나 조용히 한 남자의 착한 아내가 되어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며 예쁘게 늙어가고 싶다. 한 남자를 아주 편안하게 나에게 어깨를 빌려준 사람으로 여기며 조용히 조용히 사람들 틈에 섞여 예쁘게 살고 싶다 .. (76, 82쪽)
어느덧 해는 흐르고 달은 기울어 스무 해가 지납니다. 2011년이 코앞인 2010년 12월 26일 막바지입니다. 1991년에 스물둘이던 강수지 님은 어느새 마흔둘 나이요, 1991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던 저는 바야흐로 딸 하나를 둔 서른여섯 나이입니다. 스물둘 나이에 “한 남자를 아주 편안하게 나에게 어깨를 빌려준 사람으로 여기며 조용히 조용히 사람들 틈에 섞여 예쁘게 살고 싶”다 바란 강수지 님 오늘 삶은 어떤 빛깔 어떤 내음 어떤 살결이려나요. ‘조용히’를 두 번 잇달아 적을 만큼 조용하면서 예쁘게 살고프다던 강수지 님 오늘 삶은 어느 만큼 예쁜 빛깔 예쁜 옷 예쁜 목소리일까요.
밤 두 시 넘도록 잠들지 못하면서 칭얼대던 아이가 아침 아홉 시 사십 분 즈음 깨어납니다. 기저귀를 안 차겠다 해서 풀었더니 웃옷이며 아랫도리며 온통 오줌으로 젖었습니다. 아이는 누워서 “젖었어.” 하고 말합니다. “그래, 젖었어. 누워 봐. 새옷 가지고 올게.” 하고 말하는 아빠는 바지랑 웃도리를 벗겨 새옷으로 갈아입힙니다. 어차피 오늘 다 빨고 아이를 씻길 생각이었지만, 오줌 젖은 옷이 되는군요.
아이보고 “늦게까지 안 잤으니까 조금 더 누워 있어.” 하고 말하며 어머니 곁에 눕도록 이불을 덮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조잘조잘 웃으며 떠듭니다. 간밤에 칭얼대던 모습은 잊었으려나요. 벌써 훌렁 지나간 아스라한 옛일인가요.
아무렴, 옛일이어야지요. 오늘은 오늘대로 오늘 하루 새롭고 기쁘게 살아야지요. 다시 얼어붙은 시골집 물꼭지가 다시금 녹아 주기를 기다리고, 날이 또 한 번 포근히 풀리기를 바라야지요. 겨울다운 추위를 새삼 느끼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아이한테 “이제 벼리는 세 살에서 네 살이 되었어요.” 하고 새말을 가르쳐야지요. 아빠 나이도 한 살을 붙이고, 한 살 더 붙인 나이만큼 어떠한 나잇살이 붙는가 헤아려야지요.
.. 나는 미국 생활에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으나, 이 일을 계기로 심한 회의를 느꼈다. 어느 날,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 구내로 내려갔다. 역 구내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역 한쪽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미국애들 서넛이 어느 동양인 아이를 놀리고 있었다.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욕설을 하면서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니네들은 왜 여기에서 사니? 니네 나라를 놔두고. 병신들?” … 그 광경을 보고 난 후 나는 우울증과 함께 식사를 거부하는 거식증에 걸렸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게 부끄러웠고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웠다. 우리는 미국에 와서도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 그러나 그런 위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 (134∼136쪽)
글은 짧게 싣고 두 쪽에 한 번씩 흑백사진을 넣은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켠 이름 하나》를 넘깁니다. 노래꾼 강수지 님을 좋아하던 1991년 무렵 사람들한테 이 책은 얼마나 애틋하거나 사랑스럽거나 반가웠을까 떠올려 봅니다. 음반처럼, 또는 음반만큼 사랑받은 책이었겠지요. 가방에 늘 넣어 다니거나 책꽂이 잘 보이는 자리에 얌전히 꽂아 놓은 책이었겠지요.
앞으로 스무 해가 더 지나면 강수지 님도 예순 고개에 접어듭니다. 예순 고개에 당신 스물두 살 적 사진과 글을 돌아본다면 어떠한 느낌일까 헤아려 봅니다. 대중노래를 부르며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은 만큼 젊은 나날 사진이 많은 강수지 님인데, 강수지 님은 예순이나 일흔이나 여든에 당신 젊은 나날 삶을 어떻게 아로새기려나 되짚어 봅니다.
스물에도 예쁜 삶, 마흔에도 예쁜 삶, 예순에도 예쁜 삶, 여든에도 예쁜 삶을 고이 이어가겠지요. 예쁘게 예쁘게 바라며 꿈꾸는 삶이니까요.
.. 내가 집을 떠나올 때 식구들은 내가 집을 떠나 서울로 가는 줄 몰랐었다. 친구 집에 잠시 다니러 간 줄 알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약해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래층에서 무료하게 신문을 읽고 계셨다. “아버지, 저 갔다올게요.” “응.” 아버지는 계속 신문을 뒤적이시며 건성으로 대답하셨다. 내가 간단한 외출을 하는 줄 아셨던 모양이었다. 친구와 몰래 짐을 옮기며 나는 집의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길게 그리고 둔중하게 났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돌아올 때는 더 강한 딸이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빠, 동생 친구들. 안녕, 안녕 .. (154쪽)
어버이 함께 살던 집을 떠나 혼자 살림을 꾸리던 지난날은 까마득하기도 하지만, 바로 엊그제 일 같기도 합니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서던 고갯마루에서 어버이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떠나 지하방 신문사지국으로 들어가 새벽을 일찍일찍 열면서 보내던 나날은 아득하기도 하지만, 그냥 어제그제 일 같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세 살 딸아이랑 복닥이는 나날 또한 스무 해쯤 지나 딸아이가 스물세 살 나이가 된 다음에 돌이킬 때에는 더없이 아련하면서 그지없이 똑똑히 되새기는 하루하루일까 궁금합니다. 첫딸이 스물셋일 때 아빠는 쉰여섯, 둘째가 스물셋이 될 때에는 아빠가 쉰아홉, 아, 나한테도 예순 고개가 찾아오겠지요. 아직은 꿈꾸기 어려운 나이요 밥그릇인데, 예순 고개란 또 어떠한 삶·맛·꿈으로 찾아오려나요.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그예 곱게 살아가고픕니다. 이제 셈틀을 끄고 아침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4343.12.26.해.ㅎㄲㅅㄱ)
―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켠 이름 하나 (강수지,들꽃세상 펴냄/199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