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21. 모든 하루



  오늘쯤 읍내로 저잣마실을 다녀올 노릇이라고 느낀다. 집에 쌓은 책더미를 조금 치운 듯하면서도 썩 티는 안 난다. 느긋하되 미루지 않는 길로 여미자고 생각한다. 시골버스에서는 하루글을 쓰고서 눈을 붙인다. 집부터 읍내까지 15㎞이니 조금은 쉴 만하다. 이제 읍내에서 시골버스를 내린다. 숨을 돌린다. 《모퉁이 책 읽기》(안미선, 이매진, 2016)를 읽으면서 걷는데, 글님 눈금이 어쩐지 여러모로 좁다고 느낀다. 글님은 ‘여자들의 책읽기’를 내건다. 이 이름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페미니즘 책읽기’를 하면서 엮는 줄거리는 자꾸자꾸 ‘가시내인 나만 괴롭’고 ‘가시내인 이웃만 괴롭’다는 쪽으로 흐른다.


  이 나라는 아름답지 않다. ‘나라(정부)’라는 틀을 세운 모든 곳은 하나같이 안 아름답다. ‘나라’일 적에는 나라지기라는 벼슬자리를 놓고서 힘꾼(권력자)이 있고, 돈꾼과 이름꾼이 판친다. 이들은 으레 수수한 살림꾼을 억누르며 괴롭히는데, ‘수수한 살림꾼’은 ‘수수한 순이 + 수수한 돌이’이다. 수수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순이돌이가 나란히 억눌리면서 괴로운 얼거리인 ‘나라(정부)’이다.


  모퉁이에 서거나 모퉁이를 돌아서려고 하는 길에서 손에 쥐는 책이라면, ‘사람으로서 책읽기’를 바라볼 만하다고 본다. ‘아이로서 책읽기’에 ‘어른으로 가는 책읽기’를 이을 만하고, ‘사랑하는 책읽기’에 ‘눈뜨는 책읽기’에 ‘숲빛으로 책읽기’를 펴는 동안, ‘겉몸’을 넘어서며 철드는 눈길을 헤아리면서 늘 새롭게 책과 이야기와 오늘을 누릴 만하다고 느낀다.


  ‘보는 눈금’이란 ‘사는 눈금’이다. ‘사는 눈금’이란, 사람으로서 살림을 사랑으로 여미는 ‘눈’과 ‘금’이다. 거꾸로 볼까? 누가 ‘남자들의 책읽기’를 내건다면 아예 쳐다보고 싶지 않다. ‘남자들의 책읽기’란 얼마나 비좁아터지면서 외곬일까? 낡은 굴레와 틀을 깨부수려고 하는 길에서는 ‘남자들의 책읽기’도 좁게 마련이요, ‘여자들의 책읽기’도 좁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함께 책읽기’를 바라볼 때에 스스로 눈을 뜬다. 우리는 ‘서로 헤아리는 책읽기’를 품을 적에 응어리를 풀면서 생각을 틔울 수 있다.


  문득 ‘군대에서 책읽기’는 있을까 하고 헤아려 본다. 거의 웬만한 ‘최전방 육군보병 소총수’는 책을 아예 못 쥐거나 구경조차 못 하면서 이태를 살게 마련이다. 군대에서가 아닌 ‘집에서 집안일하는 책읽기’라면 어떨까? ‘논밭을 돌보는 틈에 책읽기’라든지 ‘지옥철에서 책읽기’나 ‘걸어다니며 책읽기’처럼, 스스로 두 다리로 선 터전에서 스스로 품을 넖히려고 땀흘리면서 그야말로 쪽틈을 살리는 길을 내다볼 적에는, 누구나 언제나 스스로 비로소 바꾼다고 느낀다. 우리는 남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나 스스럼없이 “내가 나를 가꾸기”를 하면 된다.


  토미 드파울라 그림책 《오른발 왼발》은 그저 사랑책이다. 엘사 베스코브 그림책 《펠레의 새옷》은 성평등과 자립을 일깨우는 살림책이다. 바바라 쿠니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는 꿈을 씨앗으로 삶에 심는 길을 깨달은 빛책이다. 윌리엄 스타이그 그림책 《생쥐와 고래》는 다 다른 우리가 이 같은 별에서 어떻게 어깨동무하는 사이로 거듭날 만한지 밝히는 노래책이다.


  먼발치가 아닌 집에서 나부터 바꾸면 어느새 마을이 바뀐다. 풀꽃 한 송이가 오르기에 들빛이 푸르다. 나무 한 그루가 오르기에 마을에 숲빛이 번진다. 어느 책이든 안 나쁘되, 조금 더 눈을 틔우려 한다면, 이 하루를 노래하는 책을 알아보면서 글을 여밀 만하다. 모든 하루는 우리한테 다 다르게 배움길이다.


  이제 몽글구름은 다 사라졌다. 제비노래를 못 들은 지 이레가 지난다. 아직 꾀꼬리는 우리집 뒤꼍으로 찾아와서 노래한다. 물까치는 다시 무리지어서 다닌다. 참새도 떼지어 날갯짓을 한다. 첫가을 길목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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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씨 2050 : 근무 시작 건


개성에서 근무를 시작한 건 2008년입니다

→ 개성에서는 2008년부터 일했습니다

→ 개성에서 2008년부터 일했습니다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김진향, 슬로비, 2019) 6쪽


‘것(건)’을 끼워넣기에 글이 뒤틀려요. “개성에서는 2008년부터 일했습니다”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그만입니다. ‘것’을 함부로 안 써야 말이 말답고 글이 글답습니다. ㅍㄹㄴ


근무(勤務) : 1. 직장에 적을 두고 직무에 종사함 2. 일직, 숙직, 당번 따위를 맡아서 집행함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또는 그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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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씨 2051 : 혼돈의 카오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 그야말로 어지럽다

→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 그야말로 널브러진다

→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 그야말로 골아프다

→ 그야말로 나뒹군다

《날마다, 출판》(박지혜, 싱긋, 2021) 102쪽


한자말 ‘혼돈’은 영어로 ‘카오스’를 가리키고, 영어 ‘카오스’는 한자말로 ‘혼돈’을 가리킵니다. “혼돈의 카오스”란 그야말로 겹말인데, 우리말을 안 살핀 말씨라고 여길 만합니다. ‘어지럽다·어수선하다’라든지 ‘뒤죽박죽·뒤범벅’이라든지 ‘북새통·바글바글’이라든지 ‘엉망·지저분하다’라든지 ‘골아프다·흩날리다’처럼 알맞게 가리고 살펴서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ㅍㄹㄴ


혼돈(混沌/渾沌) : 1.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또는 그런 상태 ≒ 혼륜 2.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

카오스(chaos) : [철학] 그리스의 우주 개벽설에서,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 혼돈이나 무질서 상태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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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씨 2052 : 대통령께서 북측 진실 평화 원 사실 공개적 전 세계 천명 거


우리 대통령께서도 북측이 진실로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전 세계에 천명한 거예요

→ 우리 나라지기도 북녘이 참말로 어깨동무를 바란다고 널리 외쳤어요

→ 우리 나라님도 북녘이 참으로 꽃나라를 바란다고 온누리에 밝혔어요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김진향, 슬로비, 2019) 69쪽


무늬는 한글이지만 정작 우리말이 아닌 글을 쓰는 분이 아직 수두룩합니다. 겉보기만 한글이기에 한말(우리말)이지 않습니다. 나라지기가 어떤 길을 밝히든, 서로 어깨동무를 참말로 바란다고 하든, 먼저 말부터 밝게 외칠 노릇입니다. 우리는 꽃나라로 나아갈 일입니다. 온누리에 대고 밝히든 안 밝히든, 언제나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부터 꽃빛으로 물들이고 숲빛으로 가꿀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ㅍㄹㄴ


대통령(大統領) : [법률]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원수.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을 갖는 경우와 형식적인 권한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에 속한다

북측(北側) : 1. 네 방위의 하나. 나침반의 엔(N) 극이 가리키는 방위이다 = 북쪽 2. 휴전선 북쪽 지역을 휴전선 남쪽 지역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진실(眞實) : 1. 거짓이 없는 사실 2.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 3. [종교 일반] 참되고 변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진리를 방편으로 베푸는 교의(敎義)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평화(平和) :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원하다(願-) : 무엇을 바라거나 하고자 하다

사실(事實) : 1.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2.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일을 솔직하게 말할 때 쓰는 말 3.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조할 때 쓰는 말

공개적(公開的) : 어떤 사실이나 사물, 내용 따위를 여러 사람에게 터놓는

전세계 : x

천명(闡明) : 진리나 사실, 입장 따위를 드러내어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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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053 : 인간 건 간단 게


인간이 아니라는 건 그리 간단한 게 아니구나

→ 사람이 아니면 그리 쉽지 않구나

→ 사람이 아니라서 그리 안 쉽구나

《루리 드래곤 2》(신도 마사오키/유유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4) 16쪽


글을 쓰건 말을 하건 ‘것’은 다 털어낼 만합니다. “어느 것”을 가리킬 적에만 쓰면 됩니다. 이 보기글처럼 “아니라는 건 간단한 게 아니구나” 같은 자리는 “아니면 쉽지 않구나”나 “아니라면 안 쉽구나”처럼 단출히 손볼 만합니다. 사람이 아니면 안 쉬울 수 있고, 사람이 아니기에 영 안 수월할 때가 있습니다. ㅍㄹㄴ


인간(人間) : 1.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 상의 고등 동물 2. 사람이 사는 세상 3. 사람의 됨됨이 4. 마음에 달갑지 않거나 마땅치 않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간단하다(簡單-) : 1. 단순하고 간략하다 2. 간편하고 단출하다 3. 단순하고 손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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