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과 글쓰기


 아이가 눈 똥과 오줌을 치웁니다. 요 몇 달을 더듬어 보면, 아이가 옷에 오줌이나 똥을 지리거나 싼 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이는 늘 제 똥오줌 그릇에 앉아 똥이나 오줌을 누어 줍니다. 이렇게 똥오줌을 가리니 얼마나 고마운 노릇인지요.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을 덜면 새로운 걱정이 생깁니다. 아이는 스스로 앞가림을 하는 가운데 몸이 더 튼튼해지고 마음이 더 자라면서 새롭게 받아들이며 즐기고픈 일이 늘어납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지 않으며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이란 얼마나 홀가분하며 손쉽다 할 만한지.

 아이가 눈 똥이 담긴 그릇을 치운다거나 아이가 싼 똥이 묻은 바지를 빠는 일이란 아무것조차 아닙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거나 아이한테 옷을 입히거나 아이를 씻기는 일 또한 아무것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몇 시간 놀아 주는 일이란 기껏 몇 시간 놀아 주었다뿐입니다. 아이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고운 목숨입니다. 어른 된 사람은 하루를 온통 아이랑 보내면서 아이가 없던 나날 스스로 살림을 꾸리며 하던 집 안팎 일을 슬기롭게 맺고 풀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 혼자만 즐겁게 살아갈 수 없고, 집식구 먹여살려야 한다며 바깥일에 더 마음쓸 수 없으며, 내가 읽고픈 좋은 책이라며 나 홀로 책누리에 빠져들 수 없습니다. (4343.10.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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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 바닷마을 다이어리 3 바닷마을 다이어리 3
요시다 아키미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수수하게 살면서 곱고 착한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18] 요시다 아키미,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이브의 잠》이나 《바나나 피쉬》나 《러버스 키스》라는 만화책을 그렸다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가운데 3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보다. 이분 다른 만화책도 보고 싶은데 만화책방에 갈 때마다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는 잊고 만다. 아직 다른 만화책들은 판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내가 더 까먹지 않는다면 즐겁게 장만해서 읽을 수 있겠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책에 붙인 큰이름인데, 일본글로는 ‘海街diary’로 적는다. 그러면 이 이름을 한글로 옮길 때에는 ‘바닷마을 일기’나 ‘바닷마을 이야기’나 ‘바닷마을 편지’쯤으로 옮겨야 알맞은데, 엉뚱하게 ‘다이어리’라 적고 만다(이 나라 만화책 출판사 편집자 마음씀이 아쉽다). 일본사람은 워낙 영어를 일본말인 듯 여기며 함부로 자주 쓰지 않는가.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 또한 영어를 참 쉽게 쓴다. “열린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라 말할 줄 아는 오늘날 한국사람은 퍽 드물다. 으레 “오픈 마인드”를 주워섬긴다. 몇 해 앞서부터 시월 끝무렵에 한국방송국(KBS 아닌)에서 벌이는 책잔치 이름은 “책잔치”가 아닌 “북쇼”이다.

 만화쟁이 요시다 아키미 님은 ‘바닷마을 일기’를 어느덧 세 권째 그린다. 첫째 권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2009.5.)이고, 둘째 권은 《한낮에 뜬 달》(2009.12.)이며, 셋째 권은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2010.10.)이다. 앞으로 몇 권까지 더 그릴는지 모른다만, ‘바닷마을 일기’는 일본에서 ‘카마쿠라’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복닥이는 삶을 담아낸다. 언뜻 보기에 아무 이야기가 없을 듯하다 여길 수 있고, 썩 재미난 일이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참 작은 시골마을(또는 작디작은 도시이거나 시골 읍내쯤) 사람들 여느 삶을 수수하게 보여준다. 우리로 치면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신니면 산골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고, 전라도 고흥군 풍양면 바닷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다. 이 작디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이 하루하루 벌이는 자그마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바닷마을 일기’이다.

 일본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을 잘 들여다보며 알뜰살뜰 만화 하나로 엮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한국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은 들여다볼 생각 없이 더 잘 팔리거나 더 눈길을 끌거나 더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에 휩쓸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삶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 집에 텔레비전을 안 들여놓고 내 살붙이와 동무랑 오순도순 지내는 맛을 안다면, 살붙이와 동무랑 복닥이며 하루를 빠르게 보내는 삶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눈물과 웃음이 있는가를 깨닫는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놀랍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품는 짝사랑 하나로도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가슴에 차츰차츰 커 가는 또다른 사랑과 믿음 또한 그지없이 깊은 이야기로 여미기 마련이다. 어른들이 나누는 사랑은 어떠할까. 어른들이 하루하루 꾸리는 삶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배우거나 놀거나 일하거나 어울리는 삶은 어떠하겠는가.

 날마다 일기를 꼬박꼬박 적어 보는 사람은 알 테지. 한 해 삼백예순닷새 일기 가운데 똑같이 적바림하는 일기란 나오지 않는다.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할지라도 날마다 똑같은 낱말과 말투로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글자수로 적바림하는 일이란 없다. 나 스스로 똑같다 잘못 생각할 뿐, 어느 하루조차 똑같을 수 없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한달지라도 날마다 날씨가 다르며,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이 다를 뿐 아니라,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라든지 보내는 겨를은 다르다. 햇살이 드리울 때하고 비가 쏟아부을 때가 다르다. 옷장에서 꺼내어 입는 옷이 다르다. 빨래를 할 때에 드는 품이 다르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다르며, 텔레비전 구경을 좋아한다면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이야기 또한 다르다.

 바닷마을 일기 셋째 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가득 채우며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같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되씹어 본다.


- “어쩔 수 없지. 그런 부분까지 다 좋아했던 걸 테니까.” (19쪽)
- ‘길지 않았지만 친구들도 생겼었고, 산도 강도 깨끗하고, 마을도 사람들도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오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 따윈 바라지 않았다.’ (24∼25쪽)
- ‘유아, 눈치 채고 있었구나. 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유야. 나서서 허드렛일도 챙기고, 혼자서 잠자코 재활 연습을 하고. 강하구나.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하다. 뭐니,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50∼51쪽)
-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는 건데 그럼 안 되니?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병 때문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75쪽)
- “응. 곱게 유카타도 차려입었어.” “유카타라.” “그에 비하면 우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고.” “어쩔 수 없잖아. 우리 집 배는 고기잡이 배니까 차려입으면 불편하다고. 슈퍼 비닐봉지나 들고 있고. 딱 아줌마네.” “하지만 과자가 없으면 아쉬우니까.” “피부도 까맣고.” “어쩔 수 없잖아. 밖에서 뛰는 축구부니까.” (86쪽)
- ‘지금쯤 유아도 어딘가에서 이 불꽃을 보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유아의 다리에 대해 알면서도 사귀는 걸 테니 분명 좋은 아이겠지. 유야의 다정함과 배려는 다른 모두에게도 평등하게 향해 있던 거구나.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더. 유아는 잘못한 게 없어. 내가 멋대로 착각했을 뿐. 하지만 그 아이를 향한 유아의 마음은 역시 조금은 특별한 거겠지?’ (94∼95쪽)



 만화책을 보면서 잘 그린 그림이라서 집어드는 일은 거의 없다. 더없이 멋진 그림이구나 싶어 집어드는 만화책이란 아예 없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림책을 볼 때에는 참 잘 그렸구나 싶은 책을 사들 때가 있기도 하다만, 그림만 잘 되어 있을 때에는 몇 번 넘기기 힘들다. 솜씨만 빼어난 그림이라면 벽에 걸어 놓고 오래오래 두고두고 바라보기 어려우니까. 내 마음을 건드리는 만화나 그림이어야 즐겁게 넘기고 다시 넘기며 우리 딸아이한테까지 물려줄 만하니까. 내 삶을 밝히거나 빛내는 고운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거나 그림책일 때에 비로소 기쁘게 장만하여 우리 집 책꽂이에 예쁘게 꽂아 놓으니까.

 요시다 아키미 님 만화를 보면서 이분 만화결이 빈틈이 없다거나 예쁘장하다거나 맛깔스럽다거나 하고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결인지 아닌지조차 느끼지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든 《한낮에 뜬 달》이든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이든 수수하게 붙인 책이름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시사람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시골사람 자잘한 이야기로 스며들어 엮은 줄거리가 내 마음을 얼싸안는다. 작은 사람들 작은 이야기를 살가이 보듬는 만화쟁이 마음씨를 느끼며 고맙다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만화결이 훌륭하다고 이 만화책을 사지 않듯이 글솜씨가 빼어난 작품이라 해서 이 글책(문학책이든 인문책이든 예술을 다루는 책이든)을 사지는 않는다. 토박이말을 잘 살린 작품이라 해서 뛰어나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운 문학이 될까? 현대문학에서 손꼽힌다 하는 작품이라 하여 멋지거나 재미나거나 고운 문학이 될까? 노벨문학상을 탄다 한들, 이상문학상을 탄다 한들, 아쿠타가와상을 탄다 한들 무엇이 다르려나. 훌륭하기에 상을 받는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상을 받은 작품이 내가 읽어서까지 빛깔 곱거나 아리따운 삶으로 녹아드는 이야기이지는 않다. 나는 내 마음을 따스하고 넉넉하게 일구는 데에 길동무가 될 좋은 이야기 담은 책 하나를 만날 수 있으면 흐뭇하다.

 조용하거나 한갓지다 느낄 수 있고, 들뜨거나 두근거린다 느낄 수 있는, 차분하면서 따사로운 말마디를 거듭거듭 되뇌어 본다.


- ‘산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몰라.’ (104쪽)
- “유야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안 순간, 실은 나 조금 안심했어. 혹시 유야랑 스즈가 사귀게 되어서 그런 두 사람을 계속 곁에서 봐야 한다면, 나 분명 속상해서, 속상해서 …….” (107쪽)
- ‘어쩐지 이상하다. 1년 전에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언니와 ‘자매’가 되는 일은 없었겠지. 마찬가지로 요시노 언니나 치카 언니와도 ‘자매’가 될 수 없었을 거다. 옥토퍼스(축구단)의 친구들도 감독님도 만날 수 없었다. 만약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야마가타의 작은 온천 마을에서 또다른 ‘가족’과 지금도 살고 있었겠지. 진학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달콤한 간식도 먹거나 …….’ (128∼129쪽)
- ‘그때 언니는 잠자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봈다. 딱히 슬퍼하거나 하지 않은 채, 그렇지만 무언가 알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133쪽)
- “그리고 그 ‘정말 소중한 것’은 누가 봐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74쪽)
- “사과하시더라구. 지금껏 못난 딸이 붙들고 있어서 미안했다고.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어. 날 원망할 때가 훨씬 편했어. 부부는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그분들은 나처럼 도망칠 수도 없을 테니까.” (179쪽)
- ‘마음의 병을 앓는 아내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여 앞으로도 절대 지워지지 않겠지. 나는 그걸 계속 지켜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불만을 쌓아 가는 나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났다. 그래도 행복했던 그 시간들. 그건 대체 뭐였던 걸까?’ (183∼184쪽)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고운 문학이란 무엇인가. 맑은 문학이나 밝은 문학, 또는 기쁜 문학이나 예쁜 문학이란 어떤 모습이려나. 참된 문학이나 착한 문학을 생각해 볼 수 없나. 내 좋은 삶을 꿈꾸며 좋은 문학을 찾거나 즐기면 어떠하려나. 내 고운 삶을 일구려는 매무새로 고운 작품 하나 어깨동무한다면 내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 착한 넋 착한 이 착한 말 착한 꿈 착한 삶으로 이어지는 착한 만화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보낸다면 내 몸은 어떻게 달라질까.

 제법 사랑받으며 읽히는 만화 ‘바닷마을 일기’일 테지만 아주 널리 알려지지는 못하리라 본다. 꽤 두루 팔리기도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바닷마을 일기’를 그린 요시다 아키미 님은 당신이 그리는 이 만화를 100만 사람이나 1000만 사람이 읽고 가슴 뭉클히 받아들여 주리라 바라지 않겠지. 10만이 아닌 1만 사람일 뿐이더라도, 1만조차 아닌 1천 사람이나 1백 사람일지라도, 가슴으로 따뜻하게 껴안아 줄 고운 벗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그린이가 먼저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면서, 읽는이 또한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곱고 맑은 온누리에서 즐거이 어깨동무할 보금자리를 바라 마지 않겠느냐 싶다. (4343.10.16.흙.ㅎㄲㅅㄱ)


―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요시다 아키미 글·그림,이정원 옮김,애니북스,2010.10.2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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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책을 사는 곳


 나한테 여느 책을 사는 곳은 헌책방. 온갖 책을 사는 곳 또한 헌책방. 새로 나오는 책을 사는 데는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문화책과 예술책을 살 때에는 혜화동 인문책방 〈이음책방〉. 만화책을 살 때에는 홍대 앞 〈한양문고〉. 예전에는 사진책을 늘 〈이음책방〉에서 샀는데, 이제 〈이음책방〉에서는 사진책을 예전처럼 많이 다루지는 않으니 어디에서 사야 할까. 사진책을 알뜰히 다루는 책방이 없으니 시골집에서 받아보도록 누리책방에서 사야 하나. 어쩌면 몇 갈래 책, 이들 인문사회과학이나 환경이나 문화나 만화를 다루는 책을 빼놓고 앞으로 누리책방 아니고서는 책을 살 길이 꽉 막혀 버릴는지 모른다. 더구나 인문사회과학이나 환경을 다루는 책이라 할지라도 자그마한 책방에서는 모두 갖추지 못한다(그래서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해서 사야 하지). 사람들 스스로 즐거이 다리품 팔며 책방마실을 하는 맛과 멋이란 거의 모두 사라질는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책방마실 맛과 멋은 벌써 많이 사라지거나 없어졌을 뿐 아니라, 진작부터 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다리품 팔아 책을 살피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내가 사서 읽을 책을 찾는 즐거움을 잊거나 잃었다. 지난날 사람들은 으레 단골 책방을 몇 군데씩 두었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단골 책방을 몇 군데쯤 꼽을 수 있을까. 단골 새책방 몇 군데뿐 아니라 단골 헌책방 여러 군데를 으레 사귀며 살던 ‘책 사랑이’란 그예 자취를 감출 사람들일 뿐인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아닌, 동네에서 가볍게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 가까운 단골 책방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책은 책방에서 사야 하는데, 이제 사람들은 겉보기는 책방이지만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마찬가지인 커다란 ‘할인매장’ 같은 ‘독점 대형 창고’에서 더 값싼 물건을 골라 버리고 만다. (4343.10.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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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쓰는 글쟁이는


 머리를 쓰는 글쟁이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스스로 제 머리속에 갇혀 있어요. 그래서 머리를 쓰는 글쟁이한테는 열린 마음이나 새로운 길은 바라지 못합니다. 몸을 써서 땀흘려 일하는 사람은 글솜씨가 없다 하지만, 언제나 몸으로 글 한 줄 두 줄 새로 일굽니다. 이들 몸뚱이 사람들(일꾼들)은 새로 거듭나고자 힘쓰며 열린 마음과 새로운 길을 보여줘요. 그래서 나는 기자나 학자나 작가가 쓴 글을 못 읽겠어요. 마치 사슬에 매인 동물원 짐승 같은 글인데 어찌 읽나요. 적어도 골목고양이답게는 살아간다면 조금이나마 살아숨쉬는 글을 쓸 텐데요. 스스로 살아 있음을 드러내며 온몸을 쓸 때에 비로소 글 한 줄 얻으며 고맙게 종이랑 사랑을 나눕니다. 조지 오웰도, 하이네도, 소노 아야코도, 권정생도, 이원수도, 박경리도, 한결같이 꾸덕살 박힌 일하는 손으로 글을 꽃피웠습니다. 참 따사롭고 넉넉하답니다. (4343.10.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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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0 : 책은 어떻게 읽는가

 유홍준 님이 쓴 책에서 따 널리 떠도는 말마디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아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이 말은 맞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은 얼마나 알맞을까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아는 테두리에서 책을 살펴서 읽는다’고 할 수 있을까 아리송해요.

 곰곰이 헤아립니다.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찾아가서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으레 ‘내가 아는 책’을 찾아서 사거나 읽고자 한답니다. 그럴 테지요. 그런데 ‘내가 아는 책을 읽는 맛’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누구나 ‘아는 책’을 ‘아는 테두리’에서 받아들이고자 책을 읽어야 하나요. ‘아는 책’을 ‘아는 만큼’ 받아들이면 책읽기가 즐거운가요.

 아는 사람을 만나 아는 만큼 이야기를 나누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아는 대로 일감을 찾아 아는 대로 힘써서 아는 대로 돈을 벌어 아는 대로 돈굴리기까지 하는 도시사람입니다. 아는 길을 아는 솜씨대로 아는 자가용을 몰며 아는 밥집과 옷집과 술집을 찾아드는 요즈막 사람들입니다. 아는 배우가 나오는 아는 영화를 보고, 아는 연기인이 나오는 아는 방송을 즐기는 한국사람입니다.

 엊그제 라디오 방송국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면서 취재 연락이 와서 녹음을 했습니다. 라디오 방송 마무리를 지을 때 사회자는 “아는 만큼 본다고 하는데 …….” 하고 말씀합니다. 마무리 말씀을 들으며 저 또한 마무리 말을 해야 하기에, “저는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을 아주 싫어해요. 제가 느끼기로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만큼 보거든요. 내가 살아가는 만큼 책을 찾아서 읽고, 내가 살아가는 만큼 사람을 사귀며, 내가 살아가는 만큼 사랑을 해요.” 하고 대꾸합니다.

 옛말에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뿌린 대로’란 ‘아는 대로’가 아닌 ‘살아온 대로’입니다. 살아온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살아온 대로 내 짝꿍을 사귑니다. 살아온 대로 내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살아온 대로 대학교를 고르고 일터를 찾으며 밥을 먹습니다. 아는 대로 밥을 먹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아는 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란 없어요. 아는 대로 어버이를 섬기거나 아는 대로 스승한테서 배우는 사람이란 없답니다. 모두들 살아온 대로 밥을 먹고, 살아온 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대로 어버이를 섬깁니다. 살아온 대로 스승한테서 배우고, 살아온 대로 내 몸과 마음에 걸맞을 책을 찾아나서며 곰삭여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만 찾아 읽을 수 있는 《부부 이야기》(부림출판사,1984)를 읽습니다. 몇 번씩 거듭 읽으며 책상맡에 놓는 책이에요. 그러나, 요사이는 잘 안 읽힐 뿐더러 책소개 또한 찾을 수 없는 ‘미우라 아야코’ 님 글을 담은 책입니다. 어린 날부터 몸이 여렸던 미우라 아야코 님은 “우리들의 일생에 그러한 고통이나 슬픔은 정말 전혀 없는 편이 좋을까(3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당신 남편만 가난과 아픔을 겪고 당신은 가난과 아픔을 안 겪으면 당신 삶은 어떻게 되었을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은 당신이 겪어야 했던 아프며 고단한 삶을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래, 이녁은 ‘아픈 삶을 하루하루 꾸리고 일군 대로’ 글을 썼고 사랑을 했으며 믿음을 섬겼습니다. 참 어여쁜 사람입니다. 살아온 모든 나날을 껴안고 어깨동무하며 좋아했어요. (4343.10.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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