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 베틀북 그림책 68
데이비드 맥키 글 그림, 민유리 옮김 / 베틀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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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깔 고운 자연은 도시에도 있습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6] 데이비드 맥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베틀북,2005)



 여느 도시에서는 겨울을 코앞에 둔(또는 겨울날) 저녁 여섯 시 무렵이면 한창 일할 때이거나(아니면 한창 일을 마무리짓고 일터를 나설 때이거나) 슬슬 놀 때이지 싶습니다. 여느 시골에서는 겨울이 눈앞에 이른(또는 겨울 한복판) 저녁 여섯 시 즈음이면 하루 일을 마감하며 잠자리를 추스를 때입니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아이는 참 늦게 잠들었습니다. 저녁 여섯 시이든 여덟 시이든 아랑곳하지 않으며, 밤 열 시나 열두 시까지 뛰어놀려 했습니다. 골목동네 작은 2층집 불을 다 꺼 놓아도 길거리에는 등불이 환하게 켜 있습니다. 하나도 어둡지 않고 조금도 어두울 수 없습니다.

 시골로 처음 옮겨 왔을 무렵, 아이는 도시에서 살듯이 저녁 여덟 시이든 열 시이든 잠을 안 자려 합니다. 한여름이라 하더라도 일곱 시 무렵이면 어둑살이 내려요. 집 바깥은 온통 깜깜하지만, 아이 몸은 도시에서처럼 일찍 깨고 늦게 자는 데에 버릇이 들었으니, 아이 엄마나 아빠로서는 몹시 고단합니다.

 한 달을 지내고 두 달을 지내며 석 달을 지내니, 아이는 차츰 시골 어두움에 익숙해집니다. 까까를 사러 동네 구멍가게에 손쉽게 찾아갈 수 없을 뿐더러, 멧기슭에 자리한 살림집 둘레에서 가까운 이웃집조차 까마득합니다. 한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타는 데까지 이십 분은 넉넉히 걸어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러모로 읍내로 마실 갈이 잦았으나, 하루이틀 지나며 딱히 읍내로 마실 갈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내는 나날이 길어지니, 저녁에 불을 켜고 아이 엄마가 뜨개질을 하거나 아이 아빠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이 또한 곱게 잠들어 줍니다.


.. 옛날에 어떤 장군이 다스리는 큰 나라가 있었습니다. 큰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나라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 나라에는 전쟁이 나가기만 하면 이기는 힘센 군대랑 커다란 대포도 있었으니까요 ..  (4쪽)


 아침과 낮과 저녁, 새벽과 밤, 비와 눈, 바람과 햇살, 물과 하늘, 바다와 흙, … 모든 자연은 시골에만 있지 않습니다. 모든 자연은 시골과 도시에 나란히 있습니다. 도시라 해서 자연이 없을 수 없고, 자연이 없지 않아요. 다만, 도시라는 곳은 도시사람 스스로 자연을 느끼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게끔 울타리가 놓여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자연이 아닌 돈을 보고 이름값을 거머쥐며 힘을 누리도록 하는 데에 사람들 눈길이 쏠리게끔 짜여 있습니다.

 느긋하게 살아갈 때에,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연을 느낍니다. 넉넉하게 사랑할 때에,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연을 살피어 껴안습니다. 스스로 곱게 살아가고픈 꿈을 키울 때에,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 살더라도 자연을 맑고 밝게 받아들입니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을 읽습니다. 아이는 이 그림책을 퍽 즐겨 펼칩니다. 아이 스스로 혼자 자주 펼치곤 합니다. 책에 나오는 그림이 재미있는지, 책 얼거리가 재미난지, 혼자 그림책을 볼 때에 고양이 그림책이랑 린드그렌 할머님 그림책이랑 이 전쟁 얘기 그림책을 으레 펼칩니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에 나오는 ‘싸움꾼 장군’은 언제나 싸움을 벌입니다. 왜냐하면 ‘싸움꾼 장군’이 할 일이란 ‘싸움’이거든요.

 군대라는 곳은 ‘싸우라’ 있습니다. ‘싸우지 말라’며 있는 군대는 온누리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군대를 마련한 까닭은 ‘나라 지키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웃나라 넘보기’를 헤아리며 군대를 추스릅니다.

 이리하여, ‘싸움꾼 장군’은 자꾸자꾸 이웃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이웃나라가 ‘싸움꾼 장군’이 다스리는 나라를 해코지하거나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못살게 굴지 않지만, ‘싸움꾼 장군’은 싸움을 그치지 않습니다. 더 싸우고 싶으니 쳐들어갑니다. 이 양반이 할 일이란 싸움이니까 싸움을 자꾸자꾸 벌입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나라를 군대힘으로 짓밟을 때까지 칼을 들고 대포를 쏩니다. 사람을 죽이고 식민지로 삼습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전쟁이란, 싸움이란, 그지없이 끔찍한데, 어떻게 전쟁이라는 낱말 앞에 ‘행복한’ 같은 꾸밈말을 붙일 수 있는지 소름이 돋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총이나 칼이나 대포를 들지 않으면서 싸우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컴퓨터로 싸웁니다. 서류로 싸우고 행정과 정책으로 싸웁니다. 정치꾼은 늘 싸우고, 기자와 지식인과 교수 또한 노상 싸웁니다. 대통령은 사람들하고 싸우고, 생채기를 입거나 아픈 사람들 또한 못된 사람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권리를 빼앗겨서 싸우고, 집과 삶터를 앗겨서 싸웁니다. 돈을 더 벌려 싸우기도 하고, 모든 돈을 혼자 차지하려 싸우기까지 합니다. 버스와 전철 같은 데에서 빈자리를 차지한다든지 먼저 타거나 내리려고 싸웁니다. 자동차를 몰며 더 빨리 달리고픈 마음에 싸웁니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싸우며, 내 가게 장사가 조금 더 잘 되도록 하려고 싸웁니다.

 온통 싸움판인 나라입니다. 운동경기 가운데 싸움이 아닌 운동이 없습니다. 운동을 한다면서 안 싸우는 사람이 없어요. 문학이든 예술이든 서로서로 겨루거나 다투거나 맞섭니다. 어디에서나 피가 튑니다. 어느 곳에서나 등수를 매깁니다. 학교에서마저 아이들을 싸움판으로 내몰며 등수를 매기는데요. 슬기롭게 일구면서 아름다이 북돋우는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학문을 마주하기란 꽤 힘듭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싸움나라라 할 만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싸움판입니다.


.. 장군은 집에 돌아와서 무척 기뻤어요. 비록 큰 나라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 보였지만 말이에요. 밖에 나가면 작은 나라의 거리에서 맡았던 음식 냄새가 풍겨 왔어요. 작은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던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지요. 어떤 사람들은 작은 나라 사람들의 옷을 입고 있었어요. 장군은 웃으며 생각했지요. “그래, 이게 다 전쟁에서 이긴 덕분이지!” ..  (25쪽)


 ‘싸움꾼 장군’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한 나라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예 쳐들어갑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한 군데 나라는 참말 작은 나라라서 ‘싸움꾼 장군’으로서는 딱히 쳐들어가서 얻을 만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남았겠지요. 다른 나라들은 ‘싸움을 일으켜 쳐들어가’면 ‘빼앗거나 거머쥐거나 사로잡을’ 만한 보배가 많았겠지요. 싸움을 일으키는 까닭은 그냥저냥 싸움이 재미있기 때문이겠습니까. 싸움이 즐거워 싸움을 자꾸 벌이기도 했겠지만(참 두려운 일입니다), 이웃사람이 알뜰히 누리는 삶을 빼앗는 즐거움(이 또한 몹시 무섭습니다) 때문에 끝없이 싸움을 벌입니다.

 싸움이란, 나한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대단히 크거나 많이 있다 할지라도 더 갖고 싶거나 더 누리고 싶거나 혼자만 차지하고 싶기 때문에 일으킵니다.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싸우지 못합니다. 아니, 싸움이라는 낱말부터 몰라요. 사랑을 하고 싶은데 무슨 싸움을 하나요. 믿음을 섬기는 사람이 싸울 수 있을까요. 믿음을 참다이 섬기는 사람은 ‘교회 크기 싸움’을 하지 않을 뿐더러 ‘예배당에 나와서 하느님 믿으셔요’ 하는 다툼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조촐하며 나 스스로 고즈넉하게 꾸릴 뿐입니다. 그저 내 삶이 나와 내 이웃한테 따사롭게 펼치지도록 마음을 기울일 뿐입니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에서 ‘싸움꾼 장군’은 마지막 한 나라로 무시무시하며 어마어마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나라에는 군대가 없습니다. 무시무시하며 어마어마한 군대가 쳐들어왔으나 따로 맞서 싸우며 ‘나라 지키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싸움이란 모르고, 싸울 무기란 없기도 하니까요. 총이나 칼이 아닌 낫과 호미가 있고, 대포가 아닌 쟁기가 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지키는 군대’가 아닌 ‘싸우는 군대’는 이웃나라로 쳐들어가거나 군대를 이어가자며 ‘군량미’라고 하는 먹을거리를 무척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작은 나라는 군대가 없으니 따로 군량미 같은 먹을거리를 챙기지 않을 뿐더러, 무기를 만드느라 돈이나 품이나 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무시무시하며 어마어마한 군대가 쳐들어왔어도 이들을 총칼로 때려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한테 ‘조금 더’ 있는 밥과 옷을 나누어 줍니다. 잠자리를 나누어 주고 함께 놀이를 합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요놈한테서 무얼 빼앗거나 요놈을 어떻게 괴롭히다가 죽일까?’ 하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이는 어떤 삶을 꾸려 왔을까?’ 하고 생각하며 살가이 마주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이라는 그림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아이를 바라보며 곱씹어 봅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는 그냥저냥 그림만 보지 않으랴 싶습니다. 이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에 나오는 군인들은 군인이라고는 하나 그림으로 보기에는 그저 짜리몽땅 귀여운 인형처럼 보이거든요. 무시무시한 군대가 대포를 쏘아대며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면 피를 흘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널브러져 있습니다. 아이가 보기에 ‘넘어진’ 모습이기만 합니다.

 그림책을 옆으로 밀쳐 놓습니다. 가만히 헤아립니다. 싸움꾼 나라에서 싸움꾼 사람들이 되도록 다스리는 싸움꾼 장군은 당신 삶에서 무엇이 아름답거나 무엇이 참답거나 무엇이 착한 일인지 하나도 깨닫지 않습니다. 깨달을 가슴이 없고, 깨달으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싸움꾼 장군이 살아가는 나라에도 나무는 자라며 새는 지저귀고 바람이 붑니다. 싸움꾼 장군이 군대를 거느리는 나라에도 농사짓는 사람이 있으며 옷을 깁거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맑고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으며, 파란하늘과 푸른숲이 있겠지요.

 바닥에 쌓인 그림책들을 책꽂이에 하나하나 꽂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이라는 그림책을 다시 쥡니다. 아무래도 이 그림책은 이름을 잘못 붙였습니다. “온누리에서 가장 어리석은 싸움”쯤으로 이름을 고쳐 붙여야지 싶습니다. “가장 바보스러운 싸움”쯤으로 이름을 다시 달아야지 싶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을 몰라보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내 둘레에 서린 아름다운 터전을 몰라보는 사람은 바보스럽습니다. (4343.11.9.불.ㅎㄲㅅㄱ)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 (데이비드 맥키 글·그림,민유리 옮김,베틀북 펴냄,2005.1.2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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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에 맞이한 음성읍 장날. 아침에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가, 버스 때에 맞추어 다시 부랴부랴 돌아오다. 다음에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서며 한결 느긋하게 다녀야겠다고 생각한다. 

- 20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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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거될 집 앞에 놓인 빗자루는 그저 그대로 헐려야 할 집하고 나란히 남습니다.

 - 2010.10.2. 인천 남구 도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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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톰(토비오)과 이주노동자와 재일조선인과


 〈우주소년 아톰〉 만화영화를 본다. 아이와 함께 네 번째 이야기를 본다. 아톰은 로봇이고, 둘레에는 모두 사람이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아톰을 깔보거나 얕잡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한다. 생각해 보니, 첫째나 둘째나 셋째 이야기에서도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로봇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다루어진다. 더구나, 궂고 지저분하며 힘든 일은 온통 로봇한테 떠맡긴다. 청소를 하건 집일을 하건 로봇이 하지, 사람이 하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사고를 친 아이들을 아톰이 살려내는데, 이때에 아이들을 살린다며 찾아오는 일꾼은 ‘119 구조대원’ 같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고, 이 로봇은 자기장에 휩싸여 금세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사람은 로봇을 부리며 탱자탱자 놀듯 살아간다. 머리에는 온갖 지식을 집어넣고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단추 하나만 눌러도 모든 일이 다 된다. 로봇은 사람 일을 모조리 해 줄 뿐 아니라,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심심하지 않게 노리개가 되거나 놀이꾼이 되어 주기까지 한다.

 아톰은 제 아빠를 잃고 새로운 어버이를 만난다. 새 어버이는 아톰을 학교에 넣는다. 아톰은 로봇으로 태어나기 앞서 ‘토비오’라는 어린이였는데, 어린이 ‘토비어’는 그만 사고로 죽는다. 로봇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인 ‘토비오’인데, 이 아이가 제 나이에 걸맞게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가지만, 학교에서도 꽤 많은 아이들은 아톰을 따돌리거나 괴롭힌다. 마치, 일본에서 이주노동자하고 재일조선인이 따돌림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듯이.

 그렇구나.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로봇은 이주노동자와 똑같이 다루어진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을 다루듯 아톰을 다룬다면, 한국에서는 돈이 없거나 이름이 없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을 아톰을 비롯한 로봇처럼 다루는구나 싶다. 사람들이 보이는 못난 모습 때문에 아톰이 슬퍼 하면서 눈을 내리깔 때마다 함께 슬프다. 아톰하고 한 배에서 태어난 ‘아트라스’가 사람들을 몹시 싫어하면서 스스로 ‘지구별 사람을 깡그리 쓰러뜨리어 세계 정복’을 하겠다는 꿈을 품을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아톰은 로봇도 사람도 똑같이 사랑스러우며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을 아름다운 나날을 꿈꾼다. 나는 데즈카 오사무 님 슬프면서 착한 만화가 좋다. (4343.1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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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글쓰기


 새벽에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살짝 깬다. 얼마만에 내려 주는 비인가. 이 가을비는 겨울을 부르는 비인가.

 시골마을마다 가을걷이를 하기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가을을 맞이하기까지 여름 내내 얼마나 비가 잦았고 햇살은 안 비쳤는가. 한가위를 앞두고 푸성귀며 열매며 제대로 여물지 않어 농사짓는 사람들 한숨이 얼마나 깊었던가. 그나마 벼베기를 해야 하는 동안에는 비가 안 왔을 뿐 아니라 햇살이 퍽 따사롭게 내리쬐 주기까지 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든다. 아이는 고이 잠잔다. 아이는 빗소리를 들었을까. 아이는 빗소리를 어떻게 들으려나. 아이는 도시 골목동네에서 살며 듣던 빗소리하고 시골 멧기슭에서 듣는 빗소리하고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를 헤아릴 수 있을까. 시골집으로 들어온 지 고작 다섯 달이라지만, 이내 도시에서 살던 자취는 탈탈 털고 시골내음과 시골자락으로 몸과 마음을 넉넉히 품어 주려나.

 아침에 비가 그친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햇살이 들락 말락 하기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빨래를 마당에 내놓는다. 기저귀 빨래가 바람에 마구 나부낀다. 안 되겠다 싶어 방으로 들인다. 창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자니 바람소리는 잘 안 들리지만, 바람에 흩날리거나 나부기는 나뭇잎이 창밖으로 꽤 많이 보인다.

 쉬를 눌 때에 부러 멧기슭으로 가거나 감나무 앞으로 간다. 바람에 떨어진 가을잎을 내려다보다가는 아직 대롱대롱 달린 나뭇잎을 올려다본다. 바람은 잘 익은 감알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자그마한 시골 멧자락이 곱다. 집으로 달려가 사진기를 들고 다시 나온다. 깊은 골짜기 커다란 멧자락은 얼마나 고울까. 아마 대단히 곱겠지. 아마 참 많은 사람들이 깊은 골짜기 커다란 멧자락으로 가을마실을 떠날 테지. 외딴 곳에 깃든 자그마한 시골집 가을소리는 아이랑 아빠랑 엄마가 듣는다. 여기에 엄마 배속에서 천천히 자라는 둘째도 시골집 가을소리를 함께 듣겠지. 고맙다. (4343.1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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