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글쓰기


 새벽에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살짝 깬다. 얼마만에 내려 주는 비인가. 이 가을비는 겨울을 부르는 비인가.

 시골마을마다 가을걷이를 하기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가을을 맞이하기까지 여름 내내 얼마나 비가 잦았고 햇살은 안 비쳤는가. 한가위를 앞두고 푸성귀며 열매며 제대로 여물지 않어 농사짓는 사람들 한숨이 얼마나 깊었던가. 그나마 벼베기를 해야 하는 동안에는 비가 안 왔을 뿐 아니라 햇살이 퍽 따사롭게 내리쬐 주기까지 했다.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든다. 아이는 고이 잠잔다. 아이는 빗소리를 들었을까. 아이는 빗소리를 어떻게 들으려나. 아이는 도시 골목동네에서 살며 듣던 빗소리하고 시골 멧기슭에서 듣는 빗소리하고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를 헤아릴 수 있을까. 시골집으로 들어온 지 고작 다섯 달이라지만, 이내 도시에서 살던 자취는 탈탈 털고 시골내음과 시골자락으로 몸과 마음을 넉넉히 품어 주려나.

 아침에 비가 그친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햇살이 들락 말락 하기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빨래를 마당에 내놓는다. 기저귀 빨래가 바람에 마구 나부낀다. 안 되겠다 싶어 방으로 들인다. 창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자니 바람소리는 잘 안 들리지만, 바람에 흩날리거나 나부기는 나뭇잎이 창밖으로 꽤 많이 보인다.

 쉬를 눌 때에 부러 멧기슭으로 가거나 감나무 앞으로 간다. 바람에 떨어진 가을잎을 내려다보다가는 아직 대롱대롱 달린 나뭇잎을 올려다본다. 바람은 잘 익은 감알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자그마한 시골 멧자락이 곱다. 집으로 달려가 사진기를 들고 다시 나온다. 깊은 골짜기 커다란 멧자락은 얼마나 고울까. 아마 대단히 곱겠지. 아마 참 많은 사람들이 깊은 골짜기 커다란 멧자락으로 가을마실을 떠날 테지. 외딴 곳에 깃든 자그마한 시골집 가을소리는 아이랑 아빠랑 엄마가 듣는다. 여기에 엄마 배속에서 천천히 자라는 둘째도 시골집 가을소리를 함께 듣겠지. 고맙다. (4343.11.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