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토비오)과 이주노동자와 재일조선인과


 〈우주소년 아톰〉 만화영화를 본다. 아이와 함께 네 번째 이야기를 본다. 아톰은 로봇이고, 둘레에는 모두 사람이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아톰을 깔보거나 얕잡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한다. 생각해 보니, 첫째나 둘째나 셋째 이야기에서도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로봇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다루어진다. 더구나, 궂고 지저분하며 힘든 일은 온통 로봇한테 떠맡긴다. 청소를 하건 집일을 하건 로봇이 하지, 사람이 하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사고를 친 아이들을 아톰이 살려내는데, 이때에 아이들을 살린다며 찾아오는 일꾼은 ‘119 구조대원’ 같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고, 이 로봇은 자기장에 휩싸여 금세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사람은 로봇을 부리며 탱자탱자 놀듯 살아간다. 머리에는 온갖 지식을 집어넣고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단추 하나만 눌러도 모든 일이 다 된다. 로봇은 사람 일을 모조리 해 줄 뿐 아니라,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심심하지 않게 노리개가 되거나 놀이꾼이 되어 주기까지 한다.

 아톰은 제 아빠를 잃고 새로운 어버이를 만난다. 새 어버이는 아톰을 학교에 넣는다. 아톰은 로봇으로 태어나기 앞서 ‘토비오’라는 어린이였는데, 어린이 ‘토비어’는 그만 사고로 죽는다. 로봇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인 ‘토비오’인데, 이 아이가 제 나이에 걸맞게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가지만, 학교에서도 꽤 많은 아이들은 아톰을 따돌리거나 괴롭힌다. 마치, 일본에서 이주노동자하고 재일조선인이 따돌림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듯이.

 그렇구나.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로봇은 이주노동자와 똑같이 다루어진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을 다루듯 아톰을 다룬다면, 한국에서는 돈이 없거나 이름이 없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을 아톰을 비롯한 로봇처럼 다루는구나 싶다. 사람들이 보이는 못난 모습 때문에 아톰이 슬퍼 하면서 눈을 내리깔 때마다 함께 슬프다. 아톰하고 한 배에서 태어난 ‘아트라스’가 사람들을 몹시 싫어하면서 스스로 ‘지구별 사람을 깡그리 쓰러뜨리어 세계 정복’을 하겠다는 꿈을 품을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아톰은 로봇도 사람도 똑같이 사랑스러우며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을 아름다운 나날을 꿈꾼다. 나는 데즈카 오사무 님 슬프면서 착한 만화가 좋다. (4343.1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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