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과 글쓰기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살짝 들러 책을 보다가, 헌책방 아주머니가 이웃 헌책방 지붕을 고쳐야 하는데, 밑에서 베니어판 예순 장을 올려줄 일손이 모자란다며 거들어 달라고 말씀한다. 시골집으로 돌아갈 버스 타는 때를 맞춰야 하니 오래 거들지는 못하지만 그쯤이야 거뜬히 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여관골목 쪽으로 문이 난 창고에서 베니어판을 하나하나 꺼내어 건물 지붕으로 올린다. 지붕을 고쳐야 하는 헌책방 사장님이 사다리에 올라가 서고, 이웃 헌책방 사장님이 지붕에 올라가 있다. 이웃 책쉼터 일꾼도 지붕으로 함께 올라가서 돕는다. 이웃 헌책방을 지키는 작은 사장님하고 내가 밑에서 한 장씩 받쳐서 올린다. 한창 올리는데, 사다리에 올라서 있던 헌책방 사장님이 한 번 베니어판을 놓쳐 내 발등에 모서리가 찍힌다. 발등이 찍힐 때에 베니어판이 땅바닥에 쿵 하지 않아 안 깨져 잘 되었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구두라든지 운동신을 신는 사람이 아니라, 고무신을 신는 사람. 제법 욱씬욱씬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닥 말썽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걸을 때마다 눈썹을 살짝 찡그릴 만큼 되었는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 씻는방에 밀린 빨래를 하려고 양말을 벗어 보니 왼쪽 발등이 조그맣게 패였다. 물이 닿으면 퍽 쓰라리다. 서울이나 인천으로 마실을 다녀오면 하루쯤 앓아눕지만, 이번에는 사흘이나 몸앓이가 잇는다. 이제 조금씩 아물어 가고, 생채기가 조금씩 아물수록 몸 또한 조금씩 나아지는구나 싶다. 새끼손가락 끝이 다칠 때에도 몸이 온통 힘들면서 마음이 그리로 쏠려 일을 제대로 못하곤 했는데, 발등이 찍힐 때에도 몸이 온통 힘겨우면서 마음이 이리로 박힌다. 날 적부터 몸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은 어쩌려나. 어릴 때부터 몸이 무겁거나 삐걱거리는 사람은 어찌어찌 지내려나. 아프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으며, 힘들게 살아가고프지 않다. 그렇지만 나처럼 이웃사람이나 동무나 살붙이 삶과 마음을 옳게 헤아리지 못할 뿐더러 그때그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꾸 다쳐야 하고 앓아야 하며 쓰러져 보아야지 싶다. 나 스스로 아플 때에 나만 아프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고, 내 몸을 스쳐 간 아픔이 잊히더라도 내 몸은 내 몸이 아팠음을 한켠에 아로새겨 놓는다. (4343.11.12.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전태일은 사랑씨앗 뿌린 예쁜 벗님
 [책읽기 삶읽기 25] 손아람과 다섯 사람, 《너는 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림을 꾸리는 한편, 즐거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일은 꿈으로만 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꿈이 바로 내 삶이고, 내 삶이 곧 꿈입니다. 꿈꾸듯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꿈을 이루며 하루하루 거듭나는 내 삶이에요. 왜냐하면 꿈이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돈있고 이름있으며 힘있는 사람을 어버이로 두어 태어나야 꿈같은 나날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봄날에 볍씨를 뿌리거나 모내기를 하면서 곧바로 쌀을 얻지 않습니다. 볍씨를 뿌렸으면 볍씨가 잘 자라 싹이 트고 잎이 나며 열매를 맺기까지 잘 건사해야 합니다. 감자알을 묻었다고 이내 굵은 새 감자가 나지 않아요.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기다립니다. 마냥 손 놓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땀 뻘뻘 흘리는 몸뚱이로 기다립니다. 날마다 바지런히 일하면서 기다립니다. 마음속으로 빌고 온몸으로 흙과 부대끼면서 손꼽아 기다립니다.

 참으로 돈이 많고 이름이 높으며 힘이 대단한 분을 어버이로 두었다면 내 삶이 그야말로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멋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어버이가 돈이 아주 많아, 책을 살 때마다 주머니가 거덜날까 걱정할 일이 한 번도 없다면, 내 책읽기가 더없이 신나거나 즐거울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어버이가 이름이 아주 높아, 내가 조그마한 글 하나 끄적였을지라도 널리 알려지거나 읽히며 이름값을 거머쥘 수 있으면, 내 글쓰기가 그지없이 기쁘거나 놀라울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 “몸을 쓰는 위험한 일이고 바깥에서 보면 어떻게 이렇게 일하냐,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저는 노동환경 개선이나 그런 것보다는 그냥 관리직 윗사람들의 따뜻한 한 마디면 충분할 것 같아요. 수고했다, 한 마디만 해도 되는데 오히려 화풀이 하고 욕질하는 윗사람들이 있어요. 힘들지 않냐, 물 한 잔 마시고 해라, 지나가는 말만 해 줘도 일을 더 열심히 할 텐데. 기분도 좋잖아요. 조금만 더 인간적으로 대해 준다면 …….” ..  (57쪽)


 제 몸에 불을 살라 숨을 거둔 전태일 님이 흙으로 돌아간 지 마흔 돌이 된 2010년 11월 13일입니다. 이날을 맞추어 《너는 나다》라는 이야기책 하나 조용히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라는 이름이 작달막하게 붙은 이야기책입니다. 덧이름 그대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또다른 전태일’이란 수없이 많을 뿐더러, 너는 나다란 이름 그대로 전태일이 나요, 내가 전태일입니다.


.. 누군가는 요즘 청년들이 도전정신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한 번도 동의해 본 적이 없다. 내 주변 청년들은 다들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미 대학에서 학점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누구나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은 어떤가? 얼마나 필사적이면 그 엄청난 취업 준비, 학점 경쟁 속에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지 … 이번 달에 택시 한 번 탄 적이 없는데 10만 원 가까운 돈이 교통비로 나갔다. 최근 나가고 있는 단체의 한 여자 후배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자전거를 샀다고 한다. 나도 매달 10만 원에 달하는 돈을 교통비로 쓸 바에 후배처럼 자전거를 살까 생각이 든다 ..  (120, 126쪽)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이룬 젊거나 나이든 이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공무원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다 비슷한 꿈을 꾼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게 돈을 버는 거잖아요(155쪽/단편선).” 같은 아주 마땅하면서 참 마땅히 잊는 생각조각을 끄집어냅니다. 그렇잖아요. 모두들 ‘꿈’을 이루겠다고들 말은 하지만, 정작 이 꿈이 뭔가를 들여다보면 ‘돈’이기 일쑤예요. 얼음판에서 지치기를 잘하고 싶다는 꿈이든, 조그마한 공 하나를 잘 던지거나 잘 차고 싶다는 꿈이든,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 학문 하나 거룩히 세우겠다는 꿈이든, 마지막 자리를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돈’과 맞닿습니다. 끝마음이 ‘돈’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 첫마음은 무엇이려나요.

 새삼스러울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훤히 안다는 이야기인 ‘한 사람한테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돌아볼 수 있으면, ‘나 하나 살아가는 데에 돈을 얼마나 벌어 얼마나 쓸 수 있으면 되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 하나 아름다운 삶으로 일구는 동안 나 스스로 손에 쥘 책은 몇 권이면 넉넉한가’라든지, ‘내 아름다운 사랑을 만나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귀어 보아야 하는가’라든지, ‘내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자면 어떻게 땀을 흘리거나 어디에서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가’ 같은 이야기를 톺아볼 수 있겠지요.

 스스로 숨을 거두며 노동법과 노동권을 지켜 달라 외치던 전태일 님이라 합니다. 그러나 1970년이건 2010년이건 노동법이나 노동권을 지키는 공무원이나 기자나 지식인이나 관료나 정치꾼이나 교사는 몹시 드물다고 느낍니다. 하루 여덟 시간 일하도록 하는 일이 노동권이 아닙니다. 최저생계비를 제대로 챙기도록 하는 법이 노동법이 아닙니다. ‘일할 권리’란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권리입니다. ‘일하는 사람을 지키는 법’이란 종이책에 적바림하는 글줄이 아닌, 사람이 사람다이 사랑할 이야기여야 합니다.


.. 그가 죽기 전까지 외쳤던 것은 삶이었다. 그가 주장했던 것은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였다 ..  (9쪽)


 길은 어디에나 손쉽게 나 있습니다. 삶은 어디에서나 알차게 일굴 수 있습니다. 사랑은 누구하고나 살가이 나눌 수 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내 살림에 맞게 벌 수 있습니다.

 다만, 길을 못 느끼며 살아가기 일쑤이고, 삶을 못 붙잡으며 헤매기 일쑤이며, 사랑 아닌 수렁에 빠지기 일쑤요, 돈이 아닌 권력과 욕심에 허덕이기 일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내가 아름다이 살아가고 싶다면, 내가 돈을 조금 더 번달지라도 내가 돈을 조금 더 버는 일이 내 삶터와 자연을 망가뜨린다 할 때에도 그냥 돈을 조금 더 벌면 되나요. 가야 할 길이 바쁘니까, 찻길에서 고양이를 치건 사마귀를 밟건 잠자리를 들이받건 개구리를 밟건 아랑곳하지 않으며 씽씽 내달리면 되는가요.

 어여쁜 꽃 한 송이를 꽃집에서 돈 몇으로 장만해서 선물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여쁜 꽃 한 송이를 우리 집 한켠에 꽃그릇 마련해서 씨앗 하나 심어 작은 싹부터 어린 잎과 가느다란 줄기부터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돌보며 꽃이 피어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노동권이든 노동법이든 꽃집에서 꽃 한 송이 장만하듯 거머쥐거나 움켜쥘 수 없는 노릇이에요. 언제나 꽃씨 하나 심어 차근차근 알맞춤하게 날씨와 철을 돌아보면서 고마이 얻을 삶이어야지 싶어요.

 사랑씨 하나 심어 사랑싹과 사랑잎과 사랑줄기를 보듬을 줄 아는 좋은 일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랑씨앗 하나로 사랑꽃을 피운 다음, 이 사랑꽃에서 또다른 사랑씨앗을 얻어 이웃한테 나누어 주는 가운데, 사랑꽃에서 사랑열매를 맺어 나부터 즐기고 내 고운 벗님과 살붙이하고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내고 싶습니다. (4343.11.12.쇠.ㅎㄲㅅㄱ)


― 너는 나다 (손아람과 다섯 사람,철수와영희 펴냄,2010.11.13./13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가 고등학생 때 쓰던 물건을 뒤엎거나 쌓거나 그러모으거나 하며 노는 어린이. 얘야, 아무리 스무 해 넘은 물감이라도 쓸 수 있거든? 

- 2010.1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네 빨래집에서 돌보는 꽃그릇이 막 빨래를 마친 빨래 아래쪽에 놓입니다. 잘 마르는 빨래마다 골목꽃 기운을 살며시 받아들입니다.

 - 2010.10.7. 인천 중구 관동1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기 여우 헬렌 쪽빛문고 9
다케타쓰 미노루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백 가지 삶과 백 가지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7] 다케타쓰 미노루, 《아기 여우 헬렌》(청어람미디어,2008)



 스물일곱 달째를 지나 스물여덟 달째 함께 살아가는 아이가 큰방에서 혼자 놉니다. 아이 엄마는 작은방에서 이불을 무릎에 덮고 뜨개질을 합니다. 아이 아빠는 이불을 쓰고 자리에 누워 허리를 폅니다. 그제 서울과 인천으로 볼일 보러 갔다가 어제 돌아와서는 끙끙거립니다. 하룻밤 사이에 먼길을 오가고 나면 꼭 하루 남짓 끙끙 앓습니다. 아이 엄마가 아이 아빠한테 넌지시 묻습니다. “아이 예쁘지요?” 아이 아빠는 능청스레 대꾸합니다. “뭐가? 어디가?”

 아이랑 스물일곱 달을 꾹꾹 채워 살아오는 동안 날마다 서른 장 남짓 아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 아이 모습을 어떤 이야기를 붙여 사진으로 담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갖은 집일을 떠맡아 살림을 꾸리면서 이 사진은 이렇고 저 사진은 저렇고 하며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 이 모습은 이 삶결대로 담고, 저 모습은 저 삶자락대로 담을 뿐입니다.

 요 한두 달 사이 이 사진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빠한테 둘도 없이 어여쁜 모델이 되어 주는 이 아이 삶을 어떤 이야기 담은 모습으로 나눌 때에 아빠한테도 엄마한테도 아이한테도 즐거울까 하고. 참말로 바쁘다고 말은 하지만, 이런 말은 핑계일 뿐, 나로서는 아직 아빠다운 아빠 길을 못 걸으니까 아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 사진이 아이 삶하고 어떻게 어울리도록 하면 좋겠는가 하는 갈피를 못 잡는 셈 아닌가 하고.

 아이 사진을 함부로 누리집(블로그라든지 인터넷방이라든지)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느낀 어느 날부터 아이 사진을 섣불리 다른 사람 앞에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달 남짓 이러다가 마음을 곰곰이 추슬러 하루에 한 장씩 아이 사진을 글 한 줄씩 붙여 갈무리해 보자 생각합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 살갑게 쓸 수 있다면, 이 이야기를 이루는 사진을 둘레 사람하고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없이 사진을 아무렇게나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비로소 생각합니다.

 이제 날마다 한 가지 모습을 되새기며 이름붙이기를 해 봅니다. 이를테면 ‘고구마 어린이’라든지 ‘자전거 어린이’라든지 ‘책 어린이’라든지 ‘포대기 어린이’라든지 ‘북치는 어린이’라든지 ‘춤노래 어린이’라든지 ‘가을길 어린이’라든지 하면서. 어차피 이름을 붙인다면, 되도록 글자수를 맞추고 싶습니다. 첫 이름을 ‘고구마 어린이’로 했으니 모두 세 글자로 맞추고 싶은데, ‘책 어린이’에서 그만 걸렸습니다. 이 이름을 붙일 때 미처 생각을 못했으나, ‘책읽는 어린이’로 했다면 꼭 세 글자가 되었을 텐데, 왜 그때에는 이처럼 이름을 못 붙였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굳이 이름붙이기를 하지 않고 날짜만 살폈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하루 동안 찍는 사진 서른 장이나 쉰 장이나 일흔 장으로 얼마든지 책 하나 날마다 만들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쉰 장을 찍더라도 쉰 가지 얼굴빛과 몸빛과 삶빛을 담을 수 있는 ‘내 아이 삶 사진’입니다. 이는 우리 집 아이한테서만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온누리 어느 집 아이한테서도 엿볼 수 있어요. 아이하고 어버이가 늘 집에만 붙어 있다 하더라도 매한가지입니다. 아이하고 어버이가 날마다 먼길 마실을 다닌다 하더라도 ‘날마다 쉰 가지나 일흔 가지 다 다른 얼굴빛’을 못 볼 수 있어요. 이 나라 저 나라 쏘다닌다 하는 사람이 더 나은 사진을 얻지 않고, 한 나라 조그마한 마을 작은 집에서 산다는 사람이 덜 떨어진 사진을 얻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조그맣게 동물병원을 꾸리는 의사이면서, 당신이 돌보아야 하는 들짐승들 삶을 사진과 글로 묶어 이야기책을 내놓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낸 책 가운데 《아기 여우 헬렌》을 읽으면, “솔개와 함께 생활했던 때를 뒤돌아보면, 그 형제와 형제의 학교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았던 그 솔개의 일생이 불행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즐거웠을 것입니다(34∼35쪽).”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들새로 살아야 할 솔개이지만, (몹쓸 어른들 때문에) 몸이 크게 다쳐 아파 하던 솔개를 마을 아이들이 살려 달라며 껴안고 찾아왔다지요. 이 솔개를 어루만지고 함께 돌보면서 다시금 살아나 훨훨 날도록 도왔다지요. 이렇게 솔개랑 하루이틀 살아가면서 다케타쓰 미노루 님부터 ‘즐겁다’고 느끼는 한편, 들짐승 어루만지는 의사로서 솔개 몸이 ‘즐거워’ 함을 느꼈겠지요. 그야말로 날마다 새롭게 즐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아기 여우 헬렌을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도 “아내에게 안겨 있는 헬렌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90쪽).” 하고 느끼거든요.

 아이 사진을 날마다 꾸준하게 찍으면서 곰곰이 떠올립니다. 아이가 아빠한테 안기거나 엄마한테 안길 때, 아이는 더없이 포근해 합니다. 할머니한테 안기든 할아버지한테 안기든 이모한테 안기든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마음을 제 마음으로 느끼어 받아들입니다. 아이 사진을 찍는 아빠 앞에서 아빠가 제 모습을 사랑스레 담아내는 줄 느끼니 스스럼없이 찍혀 줍니다. 나중에는 아이가 아빠 사진기를 쥐어 아빠 모습을 찍어 줍니다. 우리 집 딸아이는 고작 여섯 달이 되었을 무렵부터 아빠 사진기를 갖고 놀았고, 일곱 달이 채 안 되어 첫 사진을 찍었으며, 돌이 안 되었을 때 엄마나 아빠를 찍어 준다며 사진놀이를 즐겼습니다.

 천재라서 돌쟁이조차 아닌데 사진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그예 함께 살아가니까 사진을 제 몸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아빠랑 엄마가 텃밭을 일구거나 너른 논을 돌보며 살면, 아이는 낫이나 호미를 즐겨 들겠지요. 이때에 아이는 돌쟁이조차 아닌데 ‘호미 어린이’가 되어 풀 베거나 벼 베는 어린이 몫을 톡톡히 했겠지요. 그러니까, 때때로 텔레비전 같은 데에 ‘아주 어린 꼬맹이가 자동차 이름을 다 판가름하는 모습’ 따위를 보여줄 때에 이 아이를 일컬어 ‘천재’라느니 무어라느니 떠드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게다가, 어린이한테 영어를 일찌감치 가르치거나 한자를 일찍부터 알려주는 일 또한 덧없어요. 아니, 이런 짓은 아이를 망가뜨립니다. 어느 아이든 아이일 때 무엇이든 쏙쏙 빨아들입니다. 좋은 모습이든 궂은 모습이든 빨아들여요. 빨아들여야 살아낼 수 있으니까요. 빨아들여 제 것으로 삼아야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아이가 어릴 때에는 영어이니 책이니 한자이니 한글이니 따위를 머리에 집어넣으면 안 됩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삶을 어버이 스스로 힘껏 살아내는 하루하루를 곱다시 껴안도록 손을 잡고 이끌어야 해요. 맑은 바람과 싱그러운 하늘과 하얀 구름과 밝은 별을 아이가 가슴에 꼬옥 안도록 거들어야 합니다. 물맛과 밥맛을 깨닫도록 힘쓰고, 손맛과 발맛을 새삼스레 느끼도록 도와야 합니다. 착하지 않으면서 영어를 잘하거나 일본말을 잘한들 무슨 보람이 있나요. 참답지 않으면서 수백 수천 권에 이르는 책을 달달 왼들 어떤 빛이 서리나요. 고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가 서울대학교이든 하버드대학교이든 첫손 꼽으며 들어간들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아이하고 살아가는 동안 아이는 어버이한테 날마다 다른 빛깔을 베풀어 주고, 어버이는 아이한테 늘 다른 빛무늬를 나누어 줍니다. 주니까 받는 사랑이 아니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랑 또한 아닙니다. 살랑살랑 흐르는 사랑입니다.

 노상 느끼는 사랑이니까 노상 느끼는 그대로 사진 한 장 얻고, 노상 느끼는 그대로 사진 한 장 꾸준히 얻다 보니, 나날이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실어 사진을 차곡차곡 그러모읍니다.

 이야기책 《아기 여우 헬렌》을 들춥니다. “헬렌은 한 번도 모래사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이상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00쪽).” 여느 여우와 달리, 앞을 보지 못하는 헬렌은 어미를 잃었습니다. 어미 잃은 새끼 여우한테 무엇인가를 사람이 가르치기란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앞을 못 보는 헬렌이라지만, 헬렌은 여느 여우하고 똑같은 여우입니다. 여우는 여우이니까요. 한편, 새끼 여우 헬렌은 구경거리 여우 헬렌이 아닌 서로서로 따사롭고 넉넉히 안아 줄 좋은 살붙이인 여우 헬렌입니다.

 “헬렌은 본래의 귀여운 아기 여우 얼굴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습니다(161쪽).” 삶을 함께 누리기에 죽음을 함께 맞이합니다. 슬픔을 같이 나누고 기쁨을 서로 맞아들입니다. 솔개를 돌보든 다람쥐를 돌보든 여우를 돌보든 딱따구리를 돌보든 저마다 다른 짐승들을 저마다 다른 결과 손길로 돌보지만, 모두들 고운 목숨이요 삶임을 헤아리는 손길로 함께 돌봅니다. 이들 짐승들을 다루는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차곡차곡 엮어야 비로소 동물병원 살림돈을 마련한다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인데, ‘살림’하는 돈을 얻고자 용쓰던 사진찍기이고 글쓰기였지, 벌어들일 ‘돈’만 생각하며 꾀부리던 사진찍기나 글쓰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제와 오늘이 새롭고, 이 아이와 저 아이가 새로우며, 내 삶과 네 삶이 새롭습니다.

 백 가지 삶을 느끼기에 백 가지 사진을 찍습니다. 백 가지 짐승을 만나기에 백 가지 손길을 뻗어 돌보고자 애씁니다. 백 가지 사진을 찍으며 한 가지로 이어지는 고리를 깨닫고, 백 가지 손길을 뻗는 동안 모두 한결같은 손길일밖에 없다고 알아챕니다. 동물병원이든 사람병원이든, 병원이면서 보금자리이고 삶터입니다. 삶터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사랑과 믿음이 고이 묻어납니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옮기어 나누는 옛이야기로 남을 수 있고, 글로 적바림해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사진으로 옮겨 예술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 아기 여우 헬렌 (다케타쓰 미노루 사진·글,고향옥 옮김,청어람미디어 펴냄,2008.7.10./98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