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과 글쓰기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살짝 들러 책을 보다가, 헌책방 아주머니가 이웃 헌책방 지붕을 고쳐야 하는데, 밑에서 베니어판 예순 장을 올려줄 일손이 모자란다며 거들어 달라고 말씀한다. 시골집으로 돌아갈 버스 타는 때를 맞춰야 하니 오래 거들지는 못하지만 그쯤이야 거뜬히 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여관골목 쪽으로 문이 난 창고에서 베니어판을 하나하나 꺼내어 건물 지붕으로 올린다. 지붕을 고쳐야 하는 헌책방 사장님이 사다리에 올라가 서고, 이웃 헌책방 사장님이 지붕에 올라가 있다. 이웃 책쉼터 일꾼도 지붕으로 함께 올라가서 돕는다. 이웃 헌책방을 지키는 작은 사장님하고 내가 밑에서 한 장씩 받쳐서 올린다. 한창 올리는데, 사다리에 올라서 있던 헌책방 사장님이 한 번 베니어판을 놓쳐 내 발등에 모서리가 찍힌다. 발등이 찍힐 때에 베니어판이 땅바닥에 쿵 하지 않아 안 깨져 잘 되었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구두라든지 운동신을 신는 사람이 아니라, 고무신을 신는 사람. 제법 욱씬욱씬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닥 말썽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도 걸을 때마다 눈썹을 살짝 찡그릴 만큼 되었는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 씻는방에 밀린 빨래를 하려고 양말을 벗어 보니 왼쪽 발등이 조그맣게 패였다. 물이 닿으면 퍽 쓰라리다. 서울이나 인천으로 마실을 다녀오면 하루쯤 앓아눕지만, 이번에는 사흘이나 몸앓이가 잇는다. 이제 조금씩 아물어 가고, 생채기가 조금씩 아물수록 몸 또한 조금씩 나아지는구나 싶다. 새끼손가락 끝이 다칠 때에도 몸이 온통 힘들면서 마음이 그리로 쏠려 일을 제대로 못하곤 했는데, 발등이 찍힐 때에도 몸이 온통 힘겨우면서 마음이 이리로 박힌다. 날 적부터 몸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은 어쩌려나. 어릴 때부터 몸이 무겁거나 삐걱거리는 사람은 어찌어찌 지내려나. 아프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으며, 힘들게 살아가고프지 않다. 그렇지만 나처럼 이웃사람이나 동무나 살붙이 삶과 마음을 옳게 헤아리지 못할 뿐더러 그때그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꾸 다쳐야 하고 앓아야 하며 쓰러져 보아야지 싶다. 나 스스로 아플 때에 나만 아프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고, 내 몸을 스쳐 간 아픔이 잊히더라도 내 몸은 내 몸이 아팠음을 한켠에 아로새겨 놓는다. (4343.11.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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