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좋아하는 분홍 빛깔 돋보기인데! 쳇! 

- 2010.11.22.

 

 덤 : 아이가 볼펜놀이를 하는 모습은 참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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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평도 사태를 이렇게 본다. 구지레하게 늘어놓기보다는 내 딸아이하고 나누고픈 이야기를 적바림해 본다. 


 싸움과 글쓰기


 아이 엄마가 뜨개질을 하며 양말을 뜬다. 거의 보름쯤 걸려 겨우 당신 양말 한 켤레를 빚어낸다. 드디어 첫 뜨개를 내놓았으니 이제 아이 양말도 한 켤레 뜰 수 있겠지. 아이 양말은 어른 양말보다 실이나 품이 조금 들 테니 조금 더 빨리 뜰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직은 느릿느릿이고 앞으로도 느릿느릿일 수 있는데, 뜨개질을 하여 옷 한 벌 마련하자면 얼마나 기나긴 나날에 걸쳐 많디많은 품을 들여야 할까. 사랑을 참다이 나누고 믿음을 곱게 함께하기까지는 얼마나 오래오래 마음과 생각과 넋과 얼을 쏟아야 하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을 바늘에 걸어 한 땀 두 땀 꿰다가 한눈이라도 팔면 그만 실을 도로 풀고 다시 떠야 한다. 흔들려서는 안 되고 흔들어도 안 된다. 착하고 어여삐 손을 놀려야 한다. 아이는 뜨개질하는 어머니 곁에 앉아 얌전히 책을 읽거나 놀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뜨개질은 그만하고 저랑 신나게 뛰어놀자면서 안기고 엎어지며 올라타곤 한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에 온삶을 바쳐도 모자라지만, 모자라면서 얼마든지 즐겁기에 사랑하며 살아간다. 내 아이랑 내 아이 엄마랑, 여기에 아이 아빠랑 서로 툭탁질을 하면서 보낼 만큼 목숨줄이 길지 않기도 하지만, 목숨줄이 짧다 하더라도 낫을 무기처럼 휘두른다든지, 아예 무기 하나 벼려 휘두르고 다닐 겨를을 낼 수 없다. 무기를 벼리는 품과 땀과 겨를과 마음이 아깝고 안쓰러우며 슬프다. 주먹이 있으니까 다투고 무기가 있으니까 싸우며 군대가 있으니까 서로서로 죽이며 올라탄다. 둘째 또한 딸아이로 태어나면 좋겠다. 사내아이로 태어난다면 군대에 보내기 싫다. 군대에 가야 한다면, 아, 어떡해야 하나. 사람 죽이는 솜씨를 가르칠 뿐 아니라 몸에 단단히 배도록 하는 군대라는 데에, 푸르며 어린 넋을 어떻게 집어넣나. 사랑하며 살아가기에 즐거운 이 삶터에서 아이한테 사람 죽이는 이야기로 온마음과 온몸을 휘감도록 하는 수렁에 어떻게 밀어넣나. 처음부터 군대란 곳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지만, 힘과 돈과 이름을 쥔 누군가가 군대를 만들었어도 힘이며 돈이며 이름이며 없거나 쥘 마음조차 없는 이라면 군대 아닌 논밭에서 땀을 흘리도록 힘을 쏟아야 할 텐데, 이렇게 해야 참 어버이요 참 어른일 텐데. (4343.11.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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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에 올려야 할 글이지만, 책방에는 안 들어간 책을 이야기해야 하기에 이곳에 적바림합니다. 

 
 작은 손으로 뿌리는 작은 씨앗
 [책읽기 삶읽기 28] 갓골생태농업연구소·마실이학교, 《우리 마을입니다》



 조그맣게 나와서 조그맣게 읽히는 책 《우리 마을입니다》를 읽습니다. 이 책은 여느 책방에는 들어가지 않는 책이라 출판사 누리집(gmulko.cafe24.com)에 따로 이야기를 해서 계좌로 돈을 보내고 나서야 받아 읽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에 주문 글을 띄우면 책 하나 그날 바로 집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판에 느릿느릿 받을 수 있을 뿐더러, 책값은 고작 5천 원인 작은 책을 받기까지는 여러 날이 걸립니다.


.. 출판사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한결같이 녹색의 쉼터를 만들어 주었고, 마당에 심어 놓은 앉은뱅이밀은 자라지 않아 포기하려고 하는 어느 날이면 그 자리에 낮게 피어났습니다. 이름 없이 가난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농부님과의 만남은 출판사에 큰 축복이었습니다. 자연과 농부님들은 날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과 출판사도 그 규모에 맞게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  (119쪽/그물코 출판사 소개)


 《우리 마을입니다》는 대단한 이야기를 담지 않습니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작은 마을에 깃든 사람과 삶터 이야기를 담습니다. 《우리 마을입니다》는 대단한 이야기를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한 마을 사람과 삶터 이야기를 담으면 넉넉하니까요. 잘나지 않고 못나지 않은 사람과 삶터 이야기를 수수하게 담으면 되니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을입니다》 같은 이야기책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작은 마을에서만 나올 만한 책이 아닙니다. 서울 종로구 평동 자그마한 삶자락 한켠에서도 나올 만하고, 제주시 삼도1동 조그마한 삶마당 한구석에서도 나올 만합니다. 대단히 이름난 사람이라든지 대단히 알려진 유적지라든지 대단히 멋스러운 관광지 이야기를 담아야 할 《우리 마을입니다》가 아닙니다. 저마다 오순도순 어울리거나 복닥이거나 부대끼는 조용한 이야기를 담으면 될 《우리 마을입니다》입니다.

 이 작은 책 《우리 마을입니다》를 일구는 사람, 그러니까 이렇게 작은 책에 실을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남달리 빼어난 글쟁이가 되어야 하고 사진쟁이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는커녕 초등학교 문턱조차 못 밟은 사람 또한 얼마든지 내 삶과 내 이웃과 내 동무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보급형 사진기조차 아닌 손전화에 딸린 사진기로 얼마든지 내 모습과 내 이웃 모습과 내 삶터 모습과 내 마을 모습을 살뜰히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눌 벗입니다. 서로서로 아옹다옹하거나 툭탁툭탁하는 자그마한 삶을 알뜰살뜰 이야기로 나눌 벗님입니다.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라든지, 연속극 이야기라든지, 전쟁 이야기라든지, 주식 이야기라든지, 아파트 이야기라든지를 나눌 까닭은 없습니다. 배추씨 심은 이야기를 나누고, 꽃씨 가꾸는 이야기를 나누며, 구름이 흐르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습니다. 바람 흐르는 소리를 듣고, 물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 놀면서 재잘거리는 소리에 웃을 만합니다.

 어디 멀리 자동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떠나 보아야 내 ‘삶 발자국’이 넓어지지 않습니다. 이웃나라를 다녀 보았다든지 유럽 나라나 중남미 나라를 밟았다고 해서 앎이나 슬기가 넓어지지 않습니다. 고작 이곳 이 땅에서 맴돌며 살았달지라도, 아니 부엌데기 소리를 들으며 집 안팎을 벗어나지 않으며 예순 해 일흔 해를 살았달지라도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먼 마실을 다니지 못하며 집에서만 고요히 살아온 사람들 삶에서 앎이나 슬기가 샘솟는지 모릅니다. 제아무리 몸에 좋다고 하거나 맛이 좋다고 하는 가공식품일지라도, 투박한 농사꾼 손길로 땅에 뿌리고 보듬어 자란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거두어들여야 빚을 수 있거든요.

 내 뿌리를 생각하고, 내 줄기를 헤아리며, 내 잎싹을 돌아봅니다. 내 꽃봉우리는 누구한테 예쁘게 보여주면 좋을까요. 내 온힘을 짜내어 맺은 열매는 누가 맛보도록 하면 좋으려나요. 가을녘 동네 감나무를 살피면, 까치밥 하나 없이 모조리 딴 집이 있으나, 까치밥 몇 알 남긴 집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까치 때문에 못살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만큼, 이제는 까치밥 따위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까치를 총으로 쏘아 잡아죽여야 하는 판이란 소리가 터져나오는데 무슨 까치밥을 남기겠어요. 그러나 까치밥은 다람쥐밥이고 박새밥이며 꾀꼬리밥입니다. 까치만 먹는 까치밥이 아니에요. 지난날에는 곰도 여우도 오소리도 너구리도 먹었을 까치밥은 아니었을까 곱씹어 봅니다. 아마 생쥐나 멧쥐도 까치밥을 나누어 먹었을는지 모르지요. 그나저나 도시에는 감나무이든 배나무이든 능금나무이든 구경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까치밥을 나눌 나무조차 없어요. 아니, 아파트숲 이룬 큰 마을에는 감나무가 없지만, 작디작아 재개발을 해서 아파트를 새로 올려세워야 한다는 조그마한 골목동네 곳곳에 마흔 해 쉰 해 예순 해를 뿌리박은 집들 마당에는 으레 감나무가 있고, 이 감나무에는 까치밥이 대롱대롱 달리곤 해요.

 텃밭에서 아이랑 무를 뽑으며 생각합니다. 아이는 제 아빠를 따라 텃밭에서 처음으로 ‘열매 거두기’를 합니다. 지난여름에 처음으로 텃밭에서 호미질을 한 아이요, 올가을에 처음으로 텃밭에서 무뽑기를 한 아이입니다. 이제 이듬해에는 아이로서는 처음으로 거름을 내어 밭에 뿌릴 테지요. 이듬해 봄에는 올여름에 아빠 엄마랑 함께 했듯이 호미나 괭이를 조그마한 손에 쥐고는 함께 밭을 갈아 새 고랑을 내고 새 이랑을 내어 아이 손톱보다 더 조그마한 씨앗 하나 예쁘게 심겠지요. 아이 손가락으로 보드라운 흙에 뽕뽕 구멍을 내어 아이 손으로 요 구멍에 둘셋씩 씨앗을 묻어 따순 흙한테 안기도록 하겠지요. (4343.11.26.쇠.ㅎㄲㅅㄱ)


― 우리 마을입니다 (갓골생태농업연구소·마실이학교 엮음,그물코 펴냄,2001.9.30./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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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팔월에 써둔 글이네요. 아직 책살림을 시골로 다 옮기기 앞선 때 겪은 일을 고스란히 살려서 '밥그릇'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말 16] 밥 한 그릇

 인천 골목동네 살림집을 충주 산골마을로 옮겼습니다. 아직 다 옮기지 못한 책짐 때문에 홀로 인천으로 와서 책을 묶고 나르며 쌓는데, 밥때가 되면 밥을 사 먹어야 합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무렵 김밥을 사러 시내로 나갑니다. 시내에서 김밥과 보리술을 장만한 다음 도서관으로 돌아옵니다. 김밥을 먹으며 아까 이곳으로 오던 길에 밥집 안쪽에 붙은 차림표를 본 일을 떠올립니다. 밥집에 혼자 들어가서 사 먹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어느 밥집이든 차림표가 아닌 ‘메뉴(menu)’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 차림표에 적힌 글월은 ‘공기(空器)밥’입니다. “공기에 담은 밥 한 그릇”이라 ‘공기밥’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공기’란 무엇인가요. 우리한테 ‘공기’란 무엇인지요. 혼자이든 여럿이든 밥집에 가면 으레 “여기 밥 한 그릇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지만, 이런 제 말을 알아듣는 밥집 일꾼은 아직 못 봅니다. 모두들, 누구라 한들 ‘공기밥’이랑 ‘밥공기’가 익숙할 테니까요. “밥 한 그릇”이라는 말을 다 알기는 하여도, 밥집에서는, 아니 밥집이 아닌 ‘식당(食堂)’이니까 그러할는지 모르는데, 저절로 ‘공기밥’입니다.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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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6] 작은이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어머니가 큰마음 먹고 저한테 ‘다달 학습지’ 하나를 받아서 주었습니다. 웅진아이큐라는 데에서 나오는 학습지였고, 이 학습지에 곁달린 이야기책에는 “큰 마음 작은 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학습지는 제대로 안 풀면서 “큰 마음 작은 아이” 이야기책은 알뜰히 읽고 즐겼습니다. 어느 날 이 이야기책 이름을 “큰 아이 작은 마음”이라고 잘못 말해, 형은 이 이름을 갖고 동생을 오래도록 놀렸습니다. 학습지를 만들던 어른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노릇은 없으나,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몸은 작아도 마음은 크다는 뜻을 나누고프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엉뚱하게도 저는 몸은 크면서 마음은 좁은 아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벌써 스물 몇 해가 흐른 지난일인데 오늘까지 이때 일은 잊히지 않습니다. 저는 예나 이제나 ‘작은사람’, 곧 ‘작은이’이면서 ‘큰마음’이고프기 때문인지 모르며, 이제는 제법 ‘큰사람’, 곧 ‘큰이’가 되었으나 아직까지 ‘작은마음’에 머물거나 갇히거나 옭매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꼭 큰마음이라 해서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작은이 작은마음, 곧 작은사람 작은넋이어도 얼마든지 아름답습니다. 크든 작든 내 결대로 살아가며 곱게 여미면 좋습니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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