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팔월에 써둔 글이네요. 아직 책살림을 시골로 다 옮기기 앞선 때 겪은 일을 고스란히 살려서 '밥그릇'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말 16] 밥 한 그릇

 인천 골목동네 살림집을 충주 산골마을로 옮겼습니다. 아직 다 옮기지 못한 책짐 때문에 홀로 인천으로 와서 책을 묶고 나르며 쌓는데, 밥때가 되면 밥을 사 먹어야 합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무렵 김밥을 사러 시내로 나갑니다. 시내에서 김밥과 보리술을 장만한 다음 도서관으로 돌아옵니다. 김밥을 먹으며 아까 이곳으로 오던 길에 밥집 안쪽에 붙은 차림표를 본 일을 떠올립니다. 밥집에 혼자 들어가서 사 먹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어느 밥집이든 차림표가 아닌 ‘메뉴(menu)’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 차림표에 적힌 글월은 ‘공기(空器)밥’입니다. “공기에 담은 밥 한 그릇”이라 ‘공기밥’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공기’란 무엇인가요. 우리한테 ‘공기’란 무엇인지요. 혼자이든 여럿이든 밥집에 가면 으레 “여기 밥 한 그릇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지만, 이런 제 말을 알아듣는 밥집 일꾼은 아직 못 봅니다. 모두들, 누구라 한들 ‘공기밥’이랑 ‘밥공기’가 익숙할 테니까요. “밥 한 그릇”이라는 말을 다 알기는 하여도, 밥집에서는, 아니 밥집이 아닌 ‘식당(食堂)’이니까 그러할는지 모르는데, 저절로 ‘공기밥’입니다.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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