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걱별


 밤과 새벽에 일어나 아이 오줌기저귀를 갈아 준 다음, 아빠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쉬를 눕니다. 찬겨울 찬새벽이지만 꽤 따스하다고 느낍니다. 모처럼 시골집에 아이 이모랑 삼촌이 찾아와서 하룻밤 함께 자기 때문일까요. 초롱초롱 빛나는 밤하늘 별을 보다가 굵직한 일곱 별이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올려다봅니다. 저 별을 어릴 적에 무슨 별이라고 들었던가. 주걱별이었나? 국자별이었나? 물바가지별이었나?

 손잡이가 달린 물바가지처럼 생겼다 했고, 도시에서도 쉽게 알아보았을 뿐더러, 늦게까지 동무들하고 놀다 보면 어김없이 올려다보던 별입니다. 국자별만큼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도 밝은 빛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우리 아이한테도 저 국자별인지 주걱별인지 물바가지별인지를 보여주었던가? 아빠가 아이한테 저 별 이름을 국자별이라 가르쳐 준다면 아이는 국자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서 크겠지요. 아빠가 아이한테 요 별은 이름이 주걱별이라 이른다면 아이는 주걱별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기면서 자라겠지요.

 아빠 마음대로 아무 이름이나 붙일 수 있습니다. 아빠 마음대로 아무 이름이나 붙이는 일은 자칫 두렵습니다. 아빠는 아빠가 살아온 마음에 따라 가장 살가우면서 아름답다 느끼는 이름을 곱새기면서 고운 이름으로 별 하나 이름을 붙여 아이하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쉬를 눈 텃밭에는 마당에 쌓인 눈을 눈삽으로 퍼서 뿌립니다. (4344.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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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1-03 08:47   좋아요 0 | URL
저에겐 칠형제 별이었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란놀 2011-01-03 08:49   좋아요 0 | URL
네, 바라보는 곳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각했을 테니까, 다 다른 이름들이 저마다 예쁘리라 생각해요.

새해에 즐거우며 반가운 일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새해와 글쓰기


 이제껏 새해를 새해라고 여기며 맞은 적은 없다. 글을 쓰고 나서 끝에 붙이는 날짜가 조금 달라진다고 여길 뿐, 새해라 해서 헌해가 아쉽거나 새해가 반갑거나 하지 않다. 헌해가 그립거나 새해가 애틋하지 않다. 아무래도 여태껏 걸어온 내 삶이란 내 길만 헤아린 삶이었기 때문에 굳이 내 나이라든지 새해라든지 돌아볼 까닭이 없는지 모른다. 바깥에 눈길을 돌린다거나 보배스러운 삶을 남들한테서 찾는다면 새해를 새삼스레 느끼겠지만,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야말로 보배스러운 삶이라고 여긴다면 새해라 해서 달라질 느낌은 없다. 다짐을 하건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사람을 만나건 ‘바로 오늘’부터 할 뿐이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1일을 맞이하여 아이가 네 살이고, 오뉴월에 둘째가 태어난다. 첫딸하고 어느새 네 해(서른 달)째 함께 살아가는 셈이요, 둘째랑 첫 해를 살아가는 셈이다. 둘째는 엄마 배속에서 자라니까 지난해부터 함께 살아왔다고 해야 옳겠지. 아이가 엄마 배속에 고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나날부터 우리 집은 네 식구 살림이니까.

 아빠는 새해 첫날을 맞이했어도 떡국을 끓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양력설 아닌 음력설을 쇠니까 양력설에 굳이 떡국을 낼 까닭이 없는지 모르나, 생각조차 못했다. 네 식구 복닥이는 나날로 노상 빙글빙글 돌기 때문이다. 옆지기 동생들이 양력설 맞이 마실을 와 주면서 떡국떡을 들고 왔기에, 이 떡국떡을 국을 끓이며 넣을 때에 비로소 ‘새해 첫날이니 떡국을 차려서 먹네.’ 하고 깨달았다.

 밥을 하면서 만화책을 들여다본다. 다른 때에는 책 들출 겨를이 없으니,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이며 다른 이것저것을 하는 틈에 조금이나마 책을 들춘다. 아이는 불가에서 서성이며 논다. “이거 뜨거워?” 하고 묻기에 “응, 뜨거워. 가까이 가지 마.” 하고 얘기할 뿐, 아빠는 아이도 즐길 만한 일거리를 나누어 주지 않는다. 모처럼 어른 넷에 아이 하나 밥차림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아이가 부엌에서 거치적거린다고 여길 뿐, 아이한테 무어 하나 심부름이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이 바보, 아이는 저랑 놀아 주거나 저한테도 뭔가를 시키지 않으니 얼마나 심심하겠니.’ 하고 떠오른다. 내 어릴 적, 언제나 일만 하느라 바쁜 어머니는 당신 아이한테 따로 말을 걸거나 놀아 줄 틈이 없었다. 아이인 나는 어머니 곁에 촐랑촐랑 따라붙으며 다녔고, 어머니는 퍽 귀찮아 하시기는 했으나 이것저것 심부름이나 잔일을 시켰으며, 심부름이나 잔일을 하며 즐거워 하곤 했다. 쓰레기 하나 내다 버리든 밥상을 닦든 아주 조금이라도 집일을 거든다면서 더없이 뿌듯했고, 밥값을 했다고 느꼈다.

 옆지기 남동생한테 ‘아빠가 설거지한 그릇을 모시천으로 닦는 일’을 시키다가, ‘설거지한 그릇을 옆지기 남동생한테 건네주는 몫’을 아이한테 맡긴다. 아이는 차분한 얼굴로 그릇을 착착 받아 넘긴다. 마치 어린 날 제 아버지 얼굴하고 같다.

 깊어 가는 밤나절, 아이는 잠들지 않는다. 제 손수건에 침을 발라 빈 밥그릇을 닦는 시늉을 한다. 아까 설거지를 할 때에 외삼촌이 모시천으로 그릇 물기를 닦는 모습을 따라한다. 아이가 유리잔을 꽤나 많이 깨뜨리기는 했으나, 웬만해서는 놓쳐서 깨뜨리지는 않으니까, 아이한테도 이 일을 좀 시킬까. 엄마는 아이한테 밥상 닦는 일을 시켜 주라 얘기한다. 아빠 혼자 다 하기만 한다면 힘들기도 힘들고, 아이한테 한두 가지 시킨들 일거리가 줄지 않으나, 아이로서 무언가 겨울날 집안에서 오래오래 보내야 하는데, 자잘하더라도 일거리를 느끼며 함께 하도록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아이는 자꾸자꾸 제 어버이 말을 안 들을는지 모른다.

 아이는 제 엄마랑 아빠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며 제 말을 배우고, 아이는 제 엄마랑 아빠가 하는 일을 거들며 제 몸을 가꾼다. 아이가 손을 다칠까 걱정하거나 아이가 물건을 떨어뜨려 망가뜨릴까 근심한다고 해서 나쁜 일이 아니다. 이런 일도 걱정하고 근심하는 한편, 아이가 심심해 할까 걱정하고, 아이가 무엇을 배우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좋을까를 근심해야지 싶다. 아이가 깨어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아이가 혼자 책읽기나 그림그리기에 빠져들지 않는 만큼, 아이 앞에서 되도록 책읽기를 하지 말아야겠다. 아니, 책읽기를 못하겠지. 아이한테 자꾸 말을 걸고, 심부름을 시키며, 아주 살짝이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놀려야겠다. 엊그제까지 이 일을 옳게 못했으니, 오늘부터 이 일을 옳게 하도록 한결 마음을 기울이자. (4344.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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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아무리 예쁘장하거나 멋들어져 보이는 옷이라 할지라도, 모든 아이들한테 개성과 자유와 창조와 민주와 '참다운' 통일을 이루도록 돕지 못하는 입시지옥 학교에서 비싼 학교옷을 입히는 일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알쏭달쏭하다. 어른들은 진작부터 자율학습과 보충수업과 두발단속과 소지품검사 따위는 진작에 떨쳐 냈어야 하지만, 아직도 이 따위에 붙잡혀 옳은 배움길을 걷지 않는다. 오로지 돈 되는 길만 걷는다. 'Pink Line'이란 '예쁜 줄'이 아닌 '돈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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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일꾼이라 해서 말을 더 잘 쓰란 법은 없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말을 더 정갈히 쓰는 일은 없다. 그러나, 종로도서관 같은 데에서 "더 나은 세상"이 아닌 "보다 나은 세상"이라 하면서 우리 말법하고 어긋난 외침말을 큼직하게 붙여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더 나은 누리"나 "더 나은 삶터"나 "더 나은 마을" 같은 외침말을 쓰라고 바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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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한 밥집'이나 '깨끗한 가게'라 이름을 붙인다면 가장 훌륭하다 할 만하지만, '클린'이나 'clean'이나 '청정'이라는 낱말을 쓰지 않은 대목으로도 참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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