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사진책, 사진잡지, 사진작품
 ― 참다운 문화와 착한 예술로 나아갈 사진밭



 모든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팔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모든 책은 태어나는 만큼 숨을 거둡니다. 모든 책은 앞에 나온 책이 숨을 거두며 새롭게 빛을 보지만, 모든 책은 저 스스로 숨을 거두며 뒤에 나올 책한테 자리를 물려줍니다.

 수많은 사진책이 새롭게 나왔고, 오늘날 읽히며, 앞으로 새로 나옵니다. 예전 사진책이라 해서 더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값있지 않습니다. 오늘 새책방에서 잘 팔리거나 제법 팔리는 책이라 해서 이름값 있다든지 알차다든지 사랑할 만하지 않아요. 앞으로 나올 책이 훨씬 훌륭하거나 아름다우리란 법은 없습니다.

 앞에서 사진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어 오늘 꿋꿋하게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이 길을 꾸준히 이을 사람이 있습니다. 앞에서 누군가 사진으로 담아낸 이야기라서 굳이 오늘로서는 다시 안 담을 만하지만, 오늘은 오늘인 만큼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오늘 눈썰미로 새삼스레 담을 만하기도 합니다.

 먼 옛날 모습이 더 아련하거나 더 살가울 수 없습니다. 2010년대에 거슬러 살핀다면 1970년대가 그립다거나 아름답다 여길 사람이 있을 텐데, 이와 마찬가지예요. 2050년대에 살아갈 뒷사람으로서는 2010년대 오늘을 그리워 하거나 아름다이 여길 수 있어요.

 사진이란 어제를 찍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은 오늘을 찍는 일입니다. 글은 어제 이야기도 쓰고 앞으로 펼칠 이야기도 씁니다. 그림 또한 어제와 앞날을 그립니다. 그런데 그림은 사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그릴 수 있어요. 다만, 사진은 어제도 앞날도 다루지 못합니다. 사진은 오직 오늘 하루 이날 이곳만 다룰 수 있어요.

 사진은 한계가 많습니다. 사진은 못하거나 못 담을 이야기가 몹시 많습니다. 사진은 반편장이나 외다리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진이란 한계가 많아 재미있습니다. 사진은 한계가 넘치기에 글을 붙여 사진수필을 엮기도 합니다. 사진으로 못하거나 못 다룰 이야기가 많은 탓에, 사진은 이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틀에서 새삼스레 바라보는 오늘 모습이 있고, 그 어느 매체나 예술보다 오늘 이곳을 더 날카롭거나 깊거나 넓게 아우른다든지 헤아린다든지 보듬는다든지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사진이란 사진을 찍은 날짜가 새겨집니다. 만드는 사진이든 찍는 사진이든 ‘사진이 태어난 날짜’는 고치지 못합니다. 셈틀을 만지작거리면서 포토샵으로 어찌저찌하더라도 ‘사진을 건드린 날짜’ 또한 고치지 못해요. 사진은 그야말로 ‘오늘이라는 테두리에 갇히고 오늘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달리 보면 ‘어떠한 매체와 예술도 할 수 없는 오늘 삶 보여주기’를 가장 멋스럽고 아름다이 펼칠 수 있습니다.

 사진책은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책입니다. 사진잡지는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잡지입니다. 사진작품은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꼭 한 장짜리 이야기입니다.

 사진책에 따라 널리 팔리거나 사랑받는 책이 있으나, 거의 안 팔리거나 사랑스러운 손길 한 번 못 타고 잊히는 책이 있습니다. 사진잡지 가운데 오래도록 꾸준히 펴내는 잡지가 있으나, 몇 해 버티지 못하거나 오래도록 이었으나 이제 그만 목숨이 다해 사라져야 하는 잡지가 있습니다. 사진작품 가운데 매우 비싸다 싶은 값으로 팔리는 작품이 있는 한편 거저 주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작품마저 있습니다.

 사진이란 오늘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끝과 끝처럼 갈립니다. 사진이란 바로 오늘을 보여주는 거울인 터라 이 끝과 저 끝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이란 그예 오늘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저기까지는 끝없이 벌어졌으나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느 책방에는 들어가지 않는 사진책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이 있습니다. 2010년에 나온 이 사진책은 사진쟁이 김보섭 님이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들을 담은 사진을 엮습니다. 이 사진책은 2010년 3월 10일에 나왔는데, 김보섭 님이 2011년에 같은 이름으로 다른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진쟁이가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을 저 나름대로 다니면서 “내가 본 인천 동구 공장들은 이렇던데?” 하면서 다른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1980년에 나온 《日本の民家》(A.D.A. EDITA Tokyo)라는 두툼한 사진책이 있습니다. 일본땅 여느 사람 살림집을 다룬 사진책은 1980년에 나온 이 사진책 하나로 끝나지 않을 뿐더러, 이 한 권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1981년이든 1980년 같은 해이든 1990년이든 2010년이든 2030년이든 얼마든지 새로 나올 만할 뿐 아니라 새로 나와야 합니다. 한국땅 서울이라는 도시를 돌아보는 사진책 하나 나왔다면 이 사진책 하나가 ‘서울땅 모든 모습’을 보여준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사진책 하나를 첫끈으로 하든 첫걸음으로 하든, 수많은 ‘서울땅 모습’ 사진책이 태어나야 합니다.

 사진잡지는 수많은 사진책이 태어나는 흐름에 발맞추어 사진밭 사람들을 살피는 가운데 온갖 이야기를 그러모읍니다. 사진작품은 온갖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더도 덜도 아닌 다문 한 장짜리 사진’으로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진작품이 마루나 방에 걸릴 수 있다면, 이 한 장짜리 사진작품을 언제나 누구하고라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잡지란 다달이 호수를 채우는 잡지가 아니라, 다달이 다 다른 사람들 수많은 이야기가 어우러지거나 흐드러지는 사진놀이마당입니다. ‘사진 놀이마당’이나 ‘사진놀이 마당’이나 ‘사진 놀이 마당’이 아니라 ‘사진놀이마당’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든지 어느 한켠으로 치우쳐서는 안 돼요. 잡지이기 때문에 잡지다움을 건사해야 합니다. 잡지인 만큼 잡지스럽게 엮어야 해요. 살롱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한결같이 사랑해야 할 사진잡지입니다. ‘나라를 만든 사람들’ 사진이든 ‘빨갱이 좌파’ 사진이든 골고루 아껴야 할 사진잡지입니다. 풋내기이든 새내기이든 헌내기이든 어르신이든 다 같이 어깨동무할 사진잡지입니다. 나라안 사진쟁이이든 나라밖 사진쟁이든, 또 이주노동자인 사진쟁이이든 너나들이하듯 사귀어야 할 사진잡지예요.

 100만 원짜리 사진작품이 있다면 100원짜리 사진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제 사진을 ‘크기에 따라’ 팔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 거저 주거나 안 팔기도 합니다. 한 달 살림돈이 빠듯한 가운데 큰돈 들여 사진을 뽑아 사진틀까지 낀 사진작품을 스스럼없이 선물하기도 하지만, 달랑 종이에 뽑았을 뿐이며 그리 크지도 않은 사진작품을 50만 원이나 20만 원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넘겨주지 않기도 합니다. 작은 책에 앙증맞게 들어갈 만하게 사진작품을 여럿 만들어 놓고는 고마운 분한테 책을 선물할 때에 슬쩍 끼워넣기도 합니다. 사진잔치 전단지처럼 쓰려고 뒤쪽에는 안내글을 넣지만 앞쪽은 사진작품만 담아서, 이 종이를 ‘사진잔치 전단지’로 쓰기도 하는 가운데, 이 전단지에 매직으로 제 이름 석 자를 슥슥 적으면 ‘또다른 사진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사진쟁이 ㅇ님을 만났을 때에 ㅇ님께서는 사진책을 당신 돈을 들여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사진책을 내주더라도 ‘당신이 책을 선물할 사람이 많은’ 나머지, 언제나 ‘인세 몫에다 두 권’을 받을지라도 ‘선물해야 할 책이 모자라’니까 출판사에 돈을 주고 사야 한다더군요. 이렇게 책을 돈 주고 사야 하면, 당신 돈을 들여 사진책을 만들 때보다 돈이 더 들기 마련인데 출판사에서는 이런 형편을 보아주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당신 돈을 들여서 사진책을 만든다 말씀합니다. 듣고 보니 딱하지만, 생각해 보니 슬픕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진을 아낀다면, 사진쟁이 ㅇ님이 손수 당신 이름 석 자를 적바림해서 봉투에 담아 선물할 때에, 이 사진책 선물을 받은 분들은 봉투에 책값 얼마를 넣어 사진쟁이 ㅇ님한테 쥐어 주어야 옳기 때문입니다. “아, 참 사진이 좋군요!”라든지 “이야, 사진책 멋진데요?” 하는 주례사 같은 입발린 칭찬은 접어 놓고, “이 사진은 어떻게 찍었나요?” 하고 묻는다든지 “이 사진은 좀 엉성해 보이는군요.” 하면서 사진쟁이 ㅇ님으로서 사진길을 더 알차며 튼튼히 걸어가도록 도움말을 들려주기라도 해야 옳기 때문이에요.

 사진책이 안 팔리는 까닭은, 한국땅에서 비싼 사진장비 갖추려는 사람은 많아도 좋은 사진책 사서 읽으려는 사람이 몹시 적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처음부터 너무 비싼값을 매겼기 때문이라고만 탓할 수 없습니다. 작가나 전문가나 어르신으로 사진을 하는 분들부터 이웃 사진쟁이 사진책을 기꺼이 제값 들여 책방마실을 하면서 사들여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소개하는 신문이나 잡지는 아주 드물기 때문에 새 사진책 소식을 못 들을 수 있겠지요. 더구나 사진잡지가 몇 가지 없을 뿐더러, 사진책 제대로 소개하는 사진잡지는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런 형편이니 사진밭 어르신들 스스로 ‘새 사진책 소식’을 못 듣는다든지, 다른 사진쟁이가 선물해 주는 책을 받고서야 ‘어, 이런 책이 나왔네?’ 하고 생각할 만합니다. 우리네 사진밭 높낮이는 이러하니까, 사진쟁이 어르신들 스스로 이러한 높낮이를 잘 살피면서 ‘사진책 선물을 받았’으면, 책방마실을 해서 선물받은 사진책을 한 권 새로 사 주어야 합니다. 새로 산 책은 사진밭 후배나 조수나 동료한테 다시 선물해 주어야 합니다. 사진책이 제대로 읽히거나 팔리거나 나오도록 하자면, 누구보다 사진밭 어르신들이 사진책 사들이고 읽는 데에 주머니를 털어야 해요. 주머니를 털어 사진책을 사서 읽을 때에 비로소 ‘사진비평’이 태어납니다. 거저로 선물받은 책을 이야기할 때에는 주례사비평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살림이 가난하다면 가난한 가운데 비싼 사진책 하나 애써 사서 읽으면서 ‘이렇게 비싸다 싶은 값을 하는 사진책인지, 허울좋게 비싼값만 붙은 사진책인지’를 낱낱이 돌아보거나 짚으면서 사진비평을 내놓아야 합니다. 사진잡지사는 사진책 내놓은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 따라 짤막히 소개하는 기사를 담으면 안 되고, 출판사한테 사진책 값을 계좌이체로 보내주고 나서, 차분히 곱씹고 헤아리는 가운데 참답고 올바른 사진비평을 잡지에 실어야 합니다.

 사진책이 사진책답게 나오지 못하고 읽히지 못할 때에는 사진잡지도 사진잡지답게 엮기 힘들며 읽히지 못합니다. 사진책이 사진책 노릇을 못하고 사진잡지가 사진잡지 노릇을 못하는 사진밭이라면, 사진작품이 뜬구름잡듯 너무 높은 값에 팔린다든지, 사진작품이 높은 값에 팔려야 좋은 사진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엉터리 흐름이 퍼지고 맙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에 걸맞게 값을 치러야 합니다. 사진작품은 예술작품이 아닌 사진작품입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다이 비평을 받으면서 값을 치러 사고팔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으로서 내 집 내 방 내 일터 벽에 즐거이 붙여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싼값 자랑하는 사진작품이란 덧없습니다. 이름값 내세우는 사진작품이란 부질없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 따스한 사랑을 나누는 사진작품이어야 참 사진이요 착한 문화요 고운 예술입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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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비룡소 창작그림책 34
김기택 지음, 염혜원 그림 / 비룡소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그림책 장만하는 신나는 삶길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 김기택·엄혜원,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비룡소,2008)



 날마다 수많은 책이 새로 나오고, 나날이 숱한 그림책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꽤 큰 출판사에서 내놓는 책만 하더라도 한 사람이 다 읽을 수 없다 싶을 만큼 많습니다. 햇수가 오래되고 살림이 큰 출판사에서 엮는 도서목록이라면 두툼한 책 하나입니다. 그림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 만드는 도서목록은 아직 두툼한 책 하나만큼 되지는 않으나,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라면 그림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 엮을 도서목록 또한 묵직한 책 하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서목록만 이러하다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그림책을 집안에 갖추려 하면 자리를 많이 차지할 뿐더러 책값 또한 몹시 많이 써야 하겠지요. 그림책 천 권을 갖추려 한다면, 한 권에 줄잡아 만 원이라 할 때에 천만 원입니다. 한꺼번에 천만 원을 들여 그림책 천 권을 장만하기란 벅차다 할 테지만, 하루에 한 권씩 그림책을 장만한다 생각하면 다달이 삼십만 원입니다. 세 해에 걸쳐 그림책 한 권씩 사들여 즐기면 천 권을 거뜬히 그러모읍니다.

 그림책을 날마다 한 권씩 사들이자면 살림돈이 바닥난다 여길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는 하루아침에 천 권이든 만 권이든 장만할 만큼 돈이 넉넉할 테지요. 그런데 돈이 많아 하루아침에 그림책 천 권을 장만하거나 만 권을 장만한들, 아이로서는 이 많은 책을 다 볼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 권씩 세 해에 걸쳐 천 권을 본다든지, 날마다 세 권씩 한 해에 천 권을 볼 수야 있겠지요. 어쩌면 하루에 열 권씩 볼 수 있어요. 아이이든 어른이든 참 좋다고 여기는 그림책은 보고 다시 보며 거듭 봅니다. 같은 소설책 한 권을 100번이나 1000번 다시 보기 힘들 테지만, 같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은 100번이나 1000번은 가뜬히 다시 볼 만해요. 더없이 좋다고 느끼는 그림책이라 할 때에는 날마다 10번씩 되읽기도 하니까, 열흘이면 금세 100번을 되읽는 셈입니다. 아빠나 엄마는 같은 그림책을 날마다 10번씩 읽어 주면 며칠쯤 뒤에 아예 줄거리를 꿸 테고 한두 달 뒤라면 책을 펼치지 않고도 몇 쪽 어디에 어떠한 그림이 있다고 읊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느라 다달이 학원삯을 꽤나 씁니다. 영어를 배우건 수학을 배우건 논술을 배우건 교과서 시험공부를 배우건, 학원에 바치는 돈이 꽤 커요. 대학교 학비가 한 해에 천만 원이라지만, 유치원에 아이들을 넣는 데에 들어가는 돈만 하더라도 한 해에 오백만 원 즈음 됩니다. 어버이가 아이들을 유치원에 안 넣고 집에서 함께 놀고 어울리면서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날마다 한 권은 못 될지라도 이틀이나 사흘에 한 권씩 사 줄 수 있습니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맡아 키우면 어버이라도 힘드니까, 이웃집 아이하고 함께 놀도록 하면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한결 신납니다. 아이들은 놀려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지, ‘어버이가 밖에서 다른 일을 홀가분하게 하거나 바깥에서 돈벌이를 하자면’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습니다. 피아노학원에 보낼 돈을 한 해치 모아 피아노 한 대 들여놓고 아이 마음대로 악보를 보면서 치도록 하면 한결 즐거워요. 악보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치라 해도 되고요.

 아이들 어버이는 자가용을 모느라 기름값을 다달이 제법 씁니다. 자가용을 조금 덜 몬다면, 또는 자가용을 안 몬다면, 기름값으로 댈 돈으로 그림책을 장만할 만하며, 문학책이나 인문책이나 사진책이나 마음껏 장만할 만합니다. 자가용 한 대 값이라 하면, 한 집안 아이랑 어른이 ‘죽는 날까지 읽을 책’을 걱정없이 사서 읽을 만한 값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큰 아파트로 옮긴다든지 더 넓은 집으로 옮긴다든지 하면서 목돈을 모으기보다, 그때그때 좋은 책 사서 읽고 좋은 영화 찾아서 보며 좋은 노래 찾아서 듣고 부른다면, 하루하루 ‘더 돈 많은 부자’로 살아가지는 못할 테지만, ‘더 마음 너그러운 사람’으로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이란 아이들한테 ‘아이일 때에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버이와 딸아들이 함께 즐기는 책’인 만큼, 아이는 아이대로 어릴 때에 즐기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한 살 두 살 더 무르익는 가운데 즐기며, 나중에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제금나서 혼인하여 아이를 낳아 키운다 할 때에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읽히는 책이 됩니다. 이때, ‘내 아이’이자 ‘손자 손녀 어버이인 아이’는 제 아이들하고 저희하고 같이 이 그림책들을 읽힐 테니까, 바로 오늘 장만하여 우리 아이한테 읽히는 그림책은 오늘 읽고 그치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오래오래 즐기는 책이에요.


..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시골길을 가다가 길가에 활짝 핀 코스모스를 만났어요. “할머니, 왜 저희 같은 꽃한테 자꾸 절하시는 거예요?” “바람이 불 때마다 한들한들 하늘하늘 너희들은 신나게 춤추지 않니? 나는 춤은 못 추지만 허리가 꼬부라져서 꼬부랑꼬부랑 절은 잘 한단다.” ..


 두고두고 즐기는 그림책은 아무 그림책이나 골라서 장만할 수 없습니다. 오래오래 즐기는 그림책은 새로 나온 그림책이라 해서 무턱대고 몽땅 사들일 수 없습니다. 그림결을 살피고, 줄거리를 돌아보며, 책에 깃든 말투를 짚는 가운데, 짜임새와 엮음새를 낱낱이 헤아립니다. 모든 대목이 아름답다면 아주 기쁘게 장만하겠지요. 한두 대목이 아쉽다면, 아쉽기는 하지만 괜찮게 즐길 만하다고 여기며 장만합니다. 모든 대목이 아쉽다면, 말끔히 잊고 책방 책시렁 제자리에 얌전히 꽂아 놓습니다.

 그렇지만 엉터리로 그린 그림에 엉터리로 붙은 줄거리에 엉터리로 적바림한 말이 가득한 그림책도 제법 많습니다. 엊그제 경기문화재단에서 내놓는 소식지를 받아서 읽다 보니, 경기도 쪽에서 ‘골목동네 벽그림’을 그리는 어느 모임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 모임에서 ‘가난하다는 골목동네에서 그린 벽그림’ 사진을 몇 장 보다가는 그만 쓸쓸하고 슬프며 답답했습니다. 예쁘장하다 싶게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은 모두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작은 동네 술집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술상과 걸상과 몸크기가 도무지 안 맞습니다. 비례와 균형이라 하지요? 술상과 걸상이 딱 붙었는데 사람이 사이에 찡기도록 그렸습니다. 적어도 사진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면 이렇게는 안 그릴 텐데, 이나마도 못합니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꽃을 바구니에 담아 치마를 나풀거리며 자전거를 달리는 그림은 아주 형편없습니다. 바퀴와 자전거 몸체가 안 이어졌을 뿐 아니라 페달이 붙을 자리가 없고, 안장과 자전거 뼈대는 나타날 자리조차 없으며, 손잡이하고 꽃바구니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자전거라고는 타 본 적 없이 자전거를 그렸다 할까요. 어린이책에 자전거를 그리는 그림쟁이치고 제대로 그리는 이를 거의 못 봅니다. 어떤 이는 ‘자전거 체인을 앞바퀴에 이어 놓’고는 버젓이 책으로 내놓는데, 그림책 출판사 전문편집인조차 이를 알아채지 못해요. 잘못된 그림을 알려주어도 나중에 2쇄나 3쇄가 나오면서도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림책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를 읽습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말투를 재미있어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 “내가 볼게!” 하고 말하며 넘기지는 않습니다. 강아지랑 꽃이랑 할머니 모습을 보며 “멍멍이다!” 하고 “꽃이다!” 하고 “할머니다!” 하고 말할 뿐입니다. 몸져누운 할아버지 그림을 보며 “할아버지 아야 해?” 하고 묻지만 깊이 빨려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림책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를 즐겁게 장만했습니다. 아이가 썩 즐거이 읽을 만하지 못하는 줄 뻔히 알지만 기쁘게 장만했습니다. 우리 옛이야기 결을 살리며 그리는 그림책이 몹시 드문데다가, 제대로 그리는 그림책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가 아주 훌륭히 그렸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애쓴 품이 반가울 뿐입니다.

 “자꾸 절하시는 거예요?”처럼 ‘것’을 지나치게 자주 쓰는 대목도 걸리적거립니다. 옛이야기라 한다면 ‘것’은 한 군데에도 나오면 안 되지요. 옛사람들 말투가 이러할 수 없으니까요. 말투를 굳이 예스러이 할 까닭은 없지만, 시골 할매 할배 이야기라 할 때에는 “자꾸 절하셔요?”나 “자꾸 절하셔유?”처럼 적바림할 때에 한결 구수합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걷는 길은 틀림없이 ‘시골길’일 테지만, ‘흙길’이라든지 ‘논둑길’이라든지 ‘짐수레길’이라 말한다면 한결 잘 어울릴 테고, 시골인데 ‘코스모스’를 들먹이는 대목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코스모스는 시골꽃이 아닐 뿐더러, 코스모스로 시골꽃을 대표하기에는 너무 슬픕니다. 시골자락에는 숱한 꽃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 아이들이기는 할 테지만, 도시 아이들도 시골 자연과 터와 꽃을 조금 더 깊고 넓게 살피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 할머니라 한다면 키 높이 자라는 코스모스를 보기는 힘들어요. 차라리 냉이라든지 씀바귀라든지 꽃다지 꽃을 이야기할 때가 한결 어울립니다. 어쩌면 할미꽃이 나오도록 했다면 더 나았겠지요. 찔레꽃이나 진달래꽃도 좋고요.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이 아니고, 그림책은 갓난쟁이나 코흘리개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겁게 보는 책이며, 그림책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다 함께 신나게 보는 책이에요.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은 ‘아주 작디작은 대목’ 하나를 더 마음을 기울여 아름답고 사랑스레 보듬어야 합니다. 그림책이야말로 ‘작은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느낌을 살리거나 살찌워야 합니다.

 한 가지 더 헤아린다면, 할머니가 몸져눕고 할아버지가 꼬부랑 꼬부랑 다니면서 할머니를 보살피며 온누리 흙과 바람과 햇볕을 아끼는 넋을 보여주어도 퍽 남다르며 좋겠구나 싶습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김기택 글,엄혜원 그림,비룡소 펴냄,2008.12.24./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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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게 글쓰기


 며칠 동안 아이하고 몹시 복닥이며 집일로 지치는 바람에 글을 거의 못 썼다. 글조각은 붙잡지만 정작 쓰려 하던 글이나 막상 써야 할 글은 못 쓰며 지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날 보내고 난 오늘 새벽에 글 하나 붙잡으면서 문득 느낀다. 힘든 나날을 보내기에 힘든 나날 힘든 손길이 글로 고스란히 옮겨진다. 나만큼 힘들다거나 나보다 더 힘들다거나 나와 비슷하지는 않을지라도 여러모로 힘들 사람들 삶결에 따라 책이나 사진이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헤아리면서 글을 쓴다.

 몸으로 힘들게 살아내지 않고서 머리만 굴려 글을 쓸 때에는 나부터 썩 좋아할 만한 글을 쓸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글로 꾸밈없이 적바림할 때에 즐겁다. 내 삶이 힘겹든 벅차든 고되든 내가 살아가는 결을 사랑하면서 글을 써야 내 글을 내가 사랑할 만하다.

 입으로 떠드는 글이 아니라 몸으로 사랑하는 글이 좋다. 이론으로 재거나 따지는 글이 아니라 살내음 묻어나고 살내음 나누는 글이 좋다. 따지고 보면, 나는 내가 쓴 글이라서 내 글을 좋아할 수 없다. 참다이 쓰거나 착하게 쓰거나 곱게 쓴 글이라면 내가 쓴 글이든 옆지기가 쓴 글이든 다른 어느 누가 쓴 글이든 좋다. 글은 글로 읽을 뿐이요, 책은 책으로 만날 뿐이며, 사람은 사람으로 살필 뿐이다.

 엉터리로 살아가며 엉터리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주 많다. 이들 엉터리 가운데에는 헌책방을 깎아내리는 글을 쏟아낸다든지 헌책방 맛과 멋을 하나도 모르는 채 어설피 글솜씨를 부리는 이들이 꽤 많다. 이들은 스스로 제살을 깎는 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헌책방이라는 책쉼터에서 얻거나 누리거나 나눌 아름다움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스스로 슬프게 살며 슬픈 글로 슬픈 몸짓을 하는 셈이다. 이들은 엉터리로 살며 엉터리로 글을 쓰기에 엉터리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몹시 소름이 돋는다. 이 소름은 이들 엉터리 때문에 돋지만은 않는다. 나 또한 언제라도 이들과 같은 엉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지 않거나 내 가슴을 착하게 쓰다듬지 않거나 내 사랑을 따스히 보살피지 않는다면, 나부터 바로 오늘부터 엉터리 떠벌쟁이나 어설픈 글쟁이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고맙다. 모든 글은 고맙다. 모든 책은 고맙다. 모든 하루는 고맙다. 그렇지만 힘들기는 참 힘들다. 엉터리 사람들이 힘들게 몰아세우고, 엉터리 글로 눈알이 어지러우며, 엉터리 책 때문에 살가운 책들이 묻히니 안쓰럽다. 그래도 오늘 아침 또한 새삼스레 맞이하며, 쌀을 불려 밥냄비에 안치고 아이랑 새롭게 복닥이며 밥을 먹일 테며,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살짝 마실을 다녀와야지. 힘드니까 힘들게 산다. 가난하니까 가난하게 산다. 책을 좋아하니까 책을 좋아하며 산다. 아이와 옆지기를 사랑하니까 아이와 옆지기를 사랑하며 산다. 엊저녁에는 몹시 힘들고 지친 나머지 형광등 불빛이 너무 따가워 큰방에서 혼자 뻗고 말았다. 살짝 눈을 붙였다가 식구들이 잠들면 작은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그만 새벽 네 시 오십 분까지 죽은 듯이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고맙게 보낸 하루요, 고맙게 새로 여는 하루이다.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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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8 : 그림책 읽기

 새벽에 일어나서 글쓰기를 하고, 바깥이 희뿌윰히 밝는 아침에 쌀을 씻어 불리며, 국거리로 끓일 다시마를 끊고 말린버섯을 풀어 불립니다. 이윽고 뒷간에 갔다 와서 글쓰기를 마저 하다 보면 아이가 먼저 깨어납니다. 이 즈음부터 아침을 해서 차리고 아이를 먹이고 치우노라면 어느새 한낮이 됩니다. 이 다음에 빨래를 하고 이불을 털곤 하는데, 기운이 남으면 자전거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살짝 마실을 다녀옵니다. 낮나절이 되어도 집일은 그치지 않습니다. 낮나절에는 저녁밥을 헤아려야 하니까요. 이무렵 아이가 살짝 낮잠이라도 자 주면 아빠로서 책읽기를 조금이나마 합니다. 낮잠 없이 저녁까지 놀자고 엉겨붙으면 그만 지쳐떨어져 저녁에 아이한테 그림책 한 권 제대로 읽어 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이 되어도 여느 아빠들은 집 바깥에서 돈 버는 일만 합니다. 오늘날이 되어도 여느 엄마들은 집순이가 되어 살림만 꾸립니다. 또는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할머니한테 맡기고 두 어버이가 돈벌이에 매달립니다. 바깥에서 돈벌이에 바쁜 어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를 씻기거나 먹이거나 재우거나 책을 읽어 주거나 하기 어렵습니다. 바깥에서 온힘을 다 쓰고 돌아왔으니, 이튿날 다시 기운을 차려 돈벌러 나가자면 ‘집순이한테서 다리 주무름을 받으’며 느긋하게 쉬어야 할 테니까요.

 엊저녁에는 아이하고 《까만 크레파스》를 함께 읽습니다. 책에 적힌 얄궂은 말은 아빠가 볼펜을 쥐어 하나하나 바로잡습니다. “타닥타닥 뛰어가다가”는 “타닥타닥 달려가다가”로 고칩니다. ‘뛰어가다’는 콩콩 통통 뛰면서 가는 모습이니까, 타닥타닥이든 다다다다이든 ‘달려가다’라 해야 합니다. “와, 기분 최고다!”는 “와, 좋다!”로 고치고, “황토와 갈색이”는 “흙빛이와 밤빛이”로 고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는 “그림을 그립니다.”로 고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즐거이 들으면서 배울 말을 헤아린다면, 아무 말이나 그림책에 적힌 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고, 어린이 말매무새를 살핍니다. 아이는 둘레 어른이 “에이, 젠장!” 하는 말을 고스란히 배워서 따라합니다. 어른이 얄궂게 말하면 아이도 얄궂게 말해요. 줄거리와 엮음새와 그림결 모두 훌륭한 그림책일지라도, 그림책에 담은 ‘말’이 우리 말답거나 참답지 못하다면 슬픈 일이에요.

 일본 그림쟁이 ‘다케다 미호’ 님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고, 이분 그림책 또한 썩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읽히기는 하는데, 2001년에 《책상 밑의 도깨비》, 2007년에 《짝꿍 바꿔 주세요!》, 2008년에 《우리 엄마 맞아요?》가 한글판으로 나왔습니다. 앙증맞으면서 살가운 그림결에, 그윽하면서 따사로운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아 내놓기에 사랑받습니다. 이제 막 서른두 달째 접어든 아이는 《까만 크레파스》이든 다케다 미호 님 그림책이든, 아빠가 한 번 함께 읽어 주면 “내가 읽을게!” 하면서 앙증맞은 손으로 앙증맞은 그림책을 넘깁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오늘날 어버이들이 자가용을 버리며 ‘자가용 값’과 ‘자가용 굴릴 기름값’으로 아이들 그림책을 장만해서 아이랑 함께 읽으면 우리 누리가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레 탈바꿈할까요. 한 아이 한 해 어린이집 배움삯 500만 원을 그림책 값으로 바꾼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좋아할까요.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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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2] 아이러브그린

 누리집이라는 곳을 만들자면 알파벳으로 주소를 적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ilovegreen’ 같은 이름을 쓸밖에 없을 텐데, 누리집 주소는 알파벳이라 하지만, 누리장터 이름은 사랑스러우면서 고운 말로 붙이면 즐거웁지 않으려나요. 저는 제 누리집 이름으로 ‘hbooks’나 ‘hbooklove’를 즐겨씁니다. ‘헌책’과 ‘헌책사랑’을 이냥저냥 옮겨 본 이름입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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