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사진책, 사진잡지, 사진작품
 ― 참다운 문화와 착한 예술로 나아갈 사진밭



 모든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팔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모든 책은 태어나는 만큼 숨을 거둡니다. 모든 책은 앞에 나온 책이 숨을 거두며 새롭게 빛을 보지만, 모든 책은 저 스스로 숨을 거두며 뒤에 나올 책한테 자리를 물려줍니다.

 수많은 사진책이 새롭게 나왔고, 오늘날 읽히며, 앞으로 새로 나옵니다. 예전 사진책이라 해서 더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값있지 않습니다. 오늘 새책방에서 잘 팔리거나 제법 팔리는 책이라 해서 이름값 있다든지 알차다든지 사랑할 만하지 않아요. 앞으로 나올 책이 훨씬 훌륭하거나 아름다우리란 법은 없습니다.

 앞에서 사진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어 오늘 꿋꿋하게 사진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이 길을 꾸준히 이을 사람이 있습니다. 앞에서 누군가 사진으로 담아낸 이야기라서 굳이 오늘로서는 다시 안 담을 만하지만, 오늘은 오늘인 만큼 오늘을 사는 사람이 오늘 눈썰미로 새삼스레 담을 만하기도 합니다.

 먼 옛날 모습이 더 아련하거나 더 살가울 수 없습니다. 2010년대에 거슬러 살핀다면 1970년대가 그립다거나 아름답다 여길 사람이 있을 텐데, 이와 마찬가지예요. 2050년대에 살아갈 뒷사람으로서는 2010년대 오늘을 그리워 하거나 아름다이 여길 수 있어요.

 사진이란 어제를 찍는 일이 아닙니다. 사진은 오늘을 찍는 일입니다. 글은 어제 이야기도 쓰고 앞으로 펼칠 이야기도 씁니다. 그림 또한 어제와 앞날을 그립니다. 그런데 그림은 사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그릴 수 있어요. 다만, 사진은 어제도 앞날도 다루지 못합니다. 사진은 오직 오늘 하루 이날 이곳만 다룰 수 있어요.

 사진은 한계가 많습니다. 사진은 못하거나 못 담을 이야기가 몹시 많습니다. 사진은 반편장이나 외다리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진이란 한계가 많아 재미있습니다. 사진은 한계가 넘치기에 글을 붙여 사진수필을 엮기도 합니다. 사진으로 못하거나 못 다룰 이야기가 많은 탓에, 사진은 이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틀에서 새삼스레 바라보는 오늘 모습이 있고, 그 어느 매체나 예술보다 오늘 이곳을 더 날카롭거나 깊거나 넓게 아우른다든지 헤아린다든지 보듬는다든지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사진이란 사진을 찍은 날짜가 새겨집니다. 만드는 사진이든 찍는 사진이든 ‘사진이 태어난 날짜’는 고치지 못합니다. 셈틀을 만지작거리면서 포토샵으로 어찌저찌하더라도 ‘사진을 건드린 날짜’ 또한 고치지 못해요. 사진은 그야말로 ‘오늘이라는 테두리에 갇히고 오늘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달리 보면 ‘어떠한 매체와 예술도 할 수 없는 오늘 삶 보여주기’를 가장 멋스럽고 아름다이 펼칠 수 있습니다.

 사진책은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책입니다. 사진잡지는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잡지입니다. 사진작품은 오늘을 사진으로 말하는 꼭 한 장짜리 이야기입니다.

 사진책에 따라 널리 팔리거나 사랑받는 책이 있으나, 거의 안 팔리거나 사랑스러운 손길 한 번 못 타고 잊히는 책이 있습니다. 사진잡지 가운데 오래도록 꾸준히 펴내는 잡지가 있으나, 몇 해 버티지 못하거나 오래도록 이었으나 이제 그만 목숨이 다해 사라져야 하는 잡지가 있습니다. 사진작품 가운데 매우 비싸다 싶은 값으로 팔리는 작품이 있는 한편 거저 주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작품마저 있습니다.

 사진이란 오늘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끝과 끝처럼 갈립니다. 사진이란 바로 오늘을 보여주는 거울인 터라 이 끝과 저 끝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이란 그예 오늘을 밝히는 빛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저기까지는 끝없이 벌어졌으나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느 책방에는 들어가지 않는 사진책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이 있습니다. 2010년에 나온 이 사진책은 사진쟁이 김보섭 님이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들을 담은 사진을 엮습니다. 이 사진책은 2010년 3월 10일에 나왔는데, 김보섭 님이 2011년에 같은 이름으로 다른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진쟁이가 인천 동구에 있는 공장을 저 나름대로 다니면서 “내가 본 인천 동구 공장들은 이렇던데?” 하면서 다른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1980년에 나온 《日本の民家》(A.D.A. EDITA Tokyo)라는 두툼한 사진책이 있습니다. 일본땅 여느 사람 살림집을 다룬 사진책은 1980년에 나온 이 사진책 하나로 끝나지 않을 뿐더러, 이 한 권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1981년이든 1980년 같은 해이든 1990년이든 2010년이든 2030년이든 얼마든지 새로 나올 만할 뿐 아니라 새로 나와야 합니다. 한국땅 서울이라는 도시를 돌아보는 사진책 하나 나왔다면 이 사진책 하나가 ‘서울땅 모든 모습’을 보여준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사진책 하나를 첫끈으로 하든 첫걸음으로 하든, 수많은 ‘서울땅 모습’ 사진책이 태어나야 합니다.

 사진잡지는 수많은 사진책이 태어나는 흐름에 발맞추어 사진밭 사람들을 살피는 가운데 온갖 이야기를 그러모읍니다. 사진작품은 온갖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더도 덜도 아닌 다문 한 장짜리 사진’으로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진작품이 마루나 방에 걸릴 수 있다면, 이 한 장짜리 사진작품을 언제나 누구하고라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잡지란 다달이 호수를 채우는 잡지가 아니라, 다달이 다 다른 사람들 수많은 이야기가 어우러지거나 흐드러지는 사진놀이마당입니다. ‘사진 놀이마당’이나 ‘사진놀이 마당’이나 ‘사진 놀이 마당’이 아니라 ‘사진놀이마당’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든지 어느 한켠으로 치우쳐서는 안 돼요. 잡지이기 때문에 잡지다움을 건사해야 합니다. 잡지인 만큼 잡지스럽게 엮어야 해요. 살롱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한결같이 사랑해야 할 사진잡지입니다. ‘나라를 만든 사람들’ 사진이든 ‘빨갱이 좌파’ 사진이든 골고루 아껴야 할 사진잡지입니다. 풋내기이든 새내기이든 헌내기이든 어르신이든 다 같이 어깨동무할 사진잡지입니다. 나라안 사진쟁이이든 나라밖 사진쟁이든, 또 이주노동자인 사진쟁이이든 너나들이하듯 사귀어야 할 사진잡지예요.

 100만 원짜리 사진작품이 있다면 100원짜리 사진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제 사진을 ‘크기에 따라’ 팔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 거저 주거나 안 팔기도 합니다. 한 달 살림돈이 빠듯한 가운데 큰돈 들여 사진을 뽑아 사진틀까지 낀 사진작품을 스스럼없이 선물하기도 하지만, 달랑 종이에 뽑았을 뿐이며 그리 크지도 않은 사진작품을 50만 원이나 20만 원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넘겨주지 않기도 합니다. 작은 책에 앙증맞게 들어갈 만하게 사진작품을 여럿 만들어 놓고는 고마운 분한테 책을 선물할 때에 슬쩍 끼워넣기도 합니다. 사진잔치 전단지처럼 쓰려고 뒤쪽에는 안내글을 넣지만 앞쪽은 사진작품만 담아서, 이 종이를 ‘사진잔치 전단지’로 쓰기도 하는 가운데, 이 전단지에 매직으로 제 이름 석 자를 슥슥 적으면 ‘또다른 사진작품’으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사진쟁이 ㅇ님을 만났을 때에 ㅇ님께서는 사진책을 당신 돈을 들여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사진책을 내주더라도 ‘당신이 책을 선물할 사람이 많은’ 나머지, 언제나 ‘인세 몫에다 두 권’을 받을지라도 ‘선물해야 할 책이 모자라’니까 출판사에 돈을 주고 사야 한다더군요. 이렇게 책을 돈 주고 사야 하면, 당신 돈을 들여 사진책을 만들 때보다 돈이 더 들기 마련인데 출판사에서는 이런 형편을 보아주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당신 돈을 들여서 사진책을 만든다 말씀합니다. 듣고 보니 딱하지만, 생각해 보니 슬픕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진을 아낀다면, 사진쟁이 ㅇ님이 손수 당신 이름 석 자를 적바림해서 봉투에 담아 선물할 때에, 이 사진책 선물을 받은 분들은 봉투에 책값 얼마를 넣어 사진쟁이 ㅇ님한테 쥐어 주어야 옳기 때문입니다. “아, 참 사진이 좋군요!”라든지 “이야, 사진책 멋진데요?” 하는 주례사 같은 입발린 칭찬은 접어 놓고, “이 사진은 어떻게 찍었나요?” 하고 묻는다든지 “이 사진은 좀 엉성해 보이는군요.” 하면서 사진쟁이 ㅇ님으로서 사진길을 더 알차며 튼튼히 걸어가도록 도움말을 들려주기라도 해야 옳기 때문이에요.

 사진책이 안 팔리는 까닭은, 한국땅에서 비싼 사진장비 갖추려는 사람은 많아도 좋은 사진책 사서 읽으려는 사람이 몹시 적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처음부터 너무 비싼값을 매겼기 때문이라고만 탓할 수 없습니다. 작가나 전문가나 어르신으로 사진을 하는 분들부터 이웃 사진쟁이 사진책을 기꺼이 제값 들여 책방마실을 하면서 사들여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소개하는 신문이나 잡지는 아주 드물기 때문에 새 사진책 소식을 못 들을 수 있겠지요. 더구나 사진잡지가 몇 가지 없을 뿐더러, 사진책 제대로 소개하는 사진잡지는 없다 할 만합니다. 이런 형편이니 사진밭 어르신들 스스로 ‘새 사진책 소식’을 못 듣는다든지, 다른 사진쟁이가 선물해 주는 책을 받고서야 ‘어, 이런 책이 나왔네?’ 하고 생각할 만합니다. 우리네 사진밭 높낮이는 이러하니까, 사진쟁이 어르신들 스스로 이러한 높낮이를 잘 살피면서 ‘사진책 선물을 받았’으면, 책방마실을 해서 선물받은 사진책을 한 권 새로 사 주어야 합니다. 새로 산 책은 사진밭 후배나 조수나 동료한테 다시 선물해 주어야 합니다. 사진책이 제대로 읽히거나 팔리거나 나오도록 하자면, 누구보다 사진밭 어르신들이 사진책 사들이고 읽는 데에 주머니를 털어야 해요. 주머니를 털어 사진책을 사서 읽을 때에 비로소 ‘사진비평’이 태어납니다. 거저로 선물받은 책을 이야기할 때에는 주례사비평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살림이 가난하다면 가난한 가운데 비싼 사진책 하나 애써 사서 읽으면서 ‘이렇게 비싸다 싶은 값을 하는 사진책인지, 허울좋게 비싼값만 붙은 사진책인지’를 낱낱이 돌아보거나 짚으면서 사진비평을 내놓아야 합니다. 사진잡지사는 사진책 내놓은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에 따라 짤막히 소개하는 기사를 담으면 안 되고, 출판사한테 사진책 값을 계좌이체로 보내주고 나서, 차분히 곱씹고 헤아리는 가운데 참답고 올바른 사진비평을 잡지에 실어야 합니다.

 사진책이 사진책답게 나오지 못하고 읽히지 못할 때에는 사진잡지도 사진잡지답게 엮기 힘들며 읽히지 못합니다. 사진책이 사진책 노릇을 못하고 사진잡지가 사진잡지 노릇을 못하는 사진밭이라면, 사진작품이 뜬구름잡듯 너무 높은 값에 팔린다든지, 사진작품이 높은 값에 팔려야 좋은 사진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엉터리 흐름이 퍼지고 맙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에 걸맞게 값을 치러야 합니다. 사진작품은 예술작품이 아닌 사진작품입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다이 비평을 받으면서 값을 치러 사고팔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작품은 사진작품으로서 내 집 내 방 내 일터 벽에 즐거이 붙여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싼값 자랑하는 사진작품이란 덧없습니다. 이름값 내세우는 사진작품이란 부질없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고 따스한 사랑을 나누는 사진작품이어야 참 사진이요 착한 문화요 고운 예술입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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