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비룡소 창작그림책 34
김기택 지음, 염혜원 그림 / 비룡소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그림책 장만하는 신나는 삶길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 김기택·엄혜원,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비룡소,2008)



 날마다 수많은 책이 새로 나오고, 나날이 숱한 그림책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꽤 큰 출판사에서 내놓는 책만 하더라도 한 사람이 다 읽을 수 없다 싶을 만큼 많습니다. 햇수가 오래되고 살림이 큰 출판사에서 엮는 도서목록이라면 두툼한 책 하나입니다. 그림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 만드는 도서목록은 아직 두툼한 책 하나만큼 되지는 않으나,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라면 그림책을 내놓는 출판사에서 엮을 도서목록 또한 묵직한 책 하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도서목록만 이러하다면, 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그림책을 집안에 갖추려 하면 자리를 많이 차지할 뿐더러 책값 또한 몹시 많이 써야 하겠지요. 그림책 천 권을 갖추려 한다면, 한 권에 줄잡아 만 원이라 할 때에 천만 원입니다. 한꺼번에 천만 원을 들여 그림책 천 권을 장만하기란 벅차다 할 테지만, 하루에 한 권씩 그림책을 장만한다 생각하면 다달이 삼십만 원입니다. 세 해에 걸쳐 그림책 한 권씩 사들여 즐기면 천 권을 거뜬히 그러모읍니다.

 그림책을 날마다 한 권씩 사들이자면 살림돈이 바닥난다 여길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는 하루아침에 천 권이든 만 권이든 장만할 만큼 돈이 넉넉할 테지요. 그런데 돈이 많아 하루아침에 그림책 천 권을 장만하거나 만 권을 장만한들, 아이로서는 이 많은 책을 다 볼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 권씩 세 해에 걸쳐 천 권을 본다든지, 날마다 세 권씩 한 해에 천 권을 볼 수야 있겠지요. 어쩌면 하루에 열 권씩 볼 수 있어요. 아이이든 어른이든 참 좋다고 여기는 그림책은 보고 다시 보며 거듭 봅니다. 같은 소설책 한 권을 100번이나 1000번 다시 보기 힘들 테지만, 같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은 100번이나 1000번은 가뜬히 다시 볼 만해요. 더없이 좋다고 느끼는 그림책이라 할 때에는 날마다 10번씩 되읽기도 하니까, 열흘이면 금세 100번을 되읽는 셈입니다. 아빠나 엄마는 같은 그림책을 날마다 10번씩 읽어 주면 며칠쯤 뒤에 아예 줄거리를 꿸 테고 한두 달 뒤라면 책을 펼치지 않고도 몇 쪽 어디에 어떠한 그림이 있다고 읊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느라 다달이 학원삯을 꽤나 씁니다. 영어를 배우건 수학을 배우건 논술을 배우건 교과서 시험공부를 배우건, 학원에 바치는 돈이 꽤 커요. 대학교 학비가 한 해에 천만 원이라지만, 유치원에 아이들을 넣는 데에 들어가는 돈만 하더라도 한 해에 오백만 원 즈음 됩니다. 어버이가 아이들을 유치원에 안 넣고 집에서 함께 놀고 어울리면서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날마다 한 권은 못 될지라도 이틀이나 사흘에 한 권씩 사 줄 수 있습니다. 집에서 홀로 아이를 맡아 키우면 어버이라도 힘드니까, 이웃집 아이하고 함께 놀도록 하면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한결 신납니다. 아이들은 놀려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지, ‘어버이가 밖에서 다른 일을 홀가분하게 하거나 바깥에서 돈벌이를 하자면’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습니다. 피아노학원에 보낼 돈을 한 해치 모아 피아노 한 대 들여놓고 아이 마음대로 악보를 보면서 치도록 하면 한결 즐거워요. 악보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치라 해도 되고요.

 아이들 어버이는 자가용을 모느라 기름값을 다달이 제법 씁니다. 자가용을 조금 덜 몬다면, 또는 자가용을 안 몬다면, 기름값으로 댈 돈으로 그림책을 장만할 만하며, 문학책이나 인문책이나 사진책이나 마음껏 장만할 만합니다. 자가용 한 대 값이라 하면, 한 집안 아이랑 어른이 ‘죽는 날까지 읽을 책’을 걱정없이 사서 읽을 만한 값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큰 아파트로 옮긴다든지 더 넓은 집으로 옮긴다든지 하면서 목돈을 모으기보다, 그때그때 좋은 책 사서 읽고 좋은 영화 찾아서 보며 좋은 노래 찾아서 듣고 부른다면, 하루하루 ‘더 돈 많은 부자’로 살아가지는 못할 테지만, ‘더 마음 너그러운 사람’으로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이란 아이들한테 ‘아이일 때에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버이와 딸아들이 함께 즐기는 책’인 만큼, 아이는 아이대로 어릴 때에 즐기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한 살 두 살 더 무르익는 가운데 즐기며, 나중에 아이들이 무럭무럭 커서 제금나서 혼인하여 아이를 낳아 키운다 할 때에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읽히는 책이 됩니다. 이때, ‘내 아이’이자 ‘손자 손녀 어버이인 아이’는 제 아이들하고 저희하고 같이 이 그림책들을 읽힐 테니까, 바로 오늘 장만하여 우리 아이한테 읽히는 그림책은 오늘 읽고 그치는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오래오래 즐기는 책이에요.


..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시골길을 가다가 길가에 활짝 핀 코스모스를 만났어요. “할머니, 왜 저희 같은 꽃한테 자꾸 절하시는 거예요?” “바람이 불 때마다 한들한들 하늘하늘 너희들은 신나게 춤추지 않니? 나는 춤은 못 추지만 허리가 꼬부라져서 꼬부랑꼬부랑 절은 잘 한단다.” ..


 두고두고 즐기는 그림책은 아무 그림책이나 골라서 장만할 수 없습니다. 오래오래 즐기는 그림책은 새로 나온 그림책이라 해서 무턱대고 몽땅 사들일 수 없습니다. 그림결을 살피고, 줄거리를 돌아보며, 책에 깃든 말투를 짚는 가운데, 짜임새와 엮음새를 낱낱이 헤아립니다. 모든 대목이 아름답다면 아주 기쁘게 장만하겠지요. 한두 대목이 아쉽다면, 아쉽기는 하지만 괜찮게 즐길 만하다고 여기며 장만합니다. 모든 대목이 아쉽다면, 말끔히 잊고 책방 책시렁 제자리에 얌전히 꽂아 놓습니다.

 그렇지만 엉터리로 그린 그림에 엉터리로 붙은 줄거리에 엉터리로 적바림한 말이 가득한 그림책도 제법 많습니다. 엊그제 경기문화재단에서 내놓는 소식지를 받아서 읽다 보니, 경기도 쪽에서 ‘골목동네 벽그림’을 그리는 어느 모임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 모임에서 ‘가난하다는 골목동네에서 그린 벽그림’ 사진을 몇 장 보다가는 그만 쓸쓸하고 슬프며 답답했습니다. 예쁘장하다 싶게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은 모두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작은 동네 술집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술상과 걸상과 몸크기가 도무지 안 맞습니다. 비례와 균형이라 하지요? 술상과 걸상이 딱 붙었는데 사람이 사이에 찡기도록 그렸습니다. 적어도 사진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면 이렇게는 안 그릴 텐데, 이나마도 못합니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꽃을 바구니에 담아 치마를 나풀거리며 자전거를 달리는 그림은 아주 형편없습니다. 바퀴와 자전거 몸체가 안 이어졌을 뿐 아니라 페달이 붙을 자리가 없고, 안장과 자전거 뼈대는 나타날 자리조차 없으며, 손잡이하고 꽃바구니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자전거라고는 타 본 적 없이 자전거를 그렸다 할까요. 어린이책에 자전거를 그리는 그림쟁이치고 제대로 그리는 이를 거의 못 봅니다. 어떤 이는 ‘자전거 체인을 앞바퀴에 이어 놓’고는 버젓이 책으로 내놓는데, 그림책 출판사 전문편집인조차 이를 알아채지 못해요. 잘못된 그림을 알려주어도 나중에 2쇄나 3쇄가 나오면서도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림책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를 읽습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말투를 재미있어 합니다. 그런데 혼자서 “내가 볼게!” 하고 말하며 넘기지는 않습니다. 강아지랑 꽃이랑 할머니 모습을 보며 “멍멍이다!” 하고 “꽃이다!” 하고 “할머니다!” 하고 말할 뿐입니다. 몸져누운 할아버지 그림을 보며 “할아버지 아야 해?” 하고 묻지만 깊이 빨려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림책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를 즐겁게 장만했습니다. 아이가 썩 즐거이 읽을 만하지 못하는 줄 뻔히 알지만 기쁘게 장만했습니다. 우리 옛이야기 결을 살리며 그리는 그림책이 몹시 드문데다가, 제대로 그리는 그림책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가 아주 훌륭히 그렸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애쓴 품이 반가울 뿐입니다.

 “자꾸 절하시는 거예요?”처럼 ‘것’을 지나치게 자주 쓰는 대목도 걸리적거립니다. 옛이야기라 한다면 ‘것’은 한 군데에도 나오면 안 되지요. 옛사람들 말투가 이러할 수 없으니까요. 말투를 굳이 예스러이 할 까닭은 없지만, 시골 할매 할배 이야기라 할 때에는 “자꾸 절하셔요?”나 “자꾸 절하셔유?”처럼 적바림할 때에 한결 구수합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걷는 길은 틀림없이 ‘시골길’일 테지만, ‘흙길’이라든지 ‘논둑길’이라든지 ‘짐수레길’이라 말한다면 한결 잘 어울릴 테고, 시골인데 ‘코스모스’를 들먹이는 대목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코스모스는 시골꽃이 아닐 뿐더러, 코스모스로 시골꽃을 대표하기에는 너무 슬픕니다. 시골자락에는 숱한 꽃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 아이들이기는 할 테지만, 도시 아이들도 시골 자연과 터와 꽃을 조금 더 깊고 넓게 살피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 할머니라 한다면 키 높이 자라는 코스모스를 보기는 힘들어요. 차라리 냉이라든지 씀바귀라든지 꽃다지 꽃을 이야기할 때가 한결 어울립니다. 어쩌면 할미꽃이 나오도록 했다면 더 나았겠지요. 찔레꽃이나 진달래꽃도 좋고요.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이 아니고, 그림책은 갓난쟁이나 코흘리개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즐겁게 보는 책이며, 그림책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다 함께 신나게 보는 책이에요.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은 ‘아주 작디작은 대목’ 하나를 더 마음을 기울여 아름답고 사랑스레 보듬어야 합니다. 그림책이야말로 ‘작은 이야기가 아름답다’는 느낌을 살리거나 살찌워야 합니다.

 한 가지 더 헤아린다면, 할머니가 몸져눕고 할아버지가 꼬부랑 꼬부랑 다니면서 할머니를 보살피며 온누리 흙과 바람과 햇볕을 아끼는 넋을 보여주어도 퍽 남다르며 좋겠구나 싶습니다. (4344.1.15.흙.ㅎㄲㅅㄱ)


―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김기택 글,엄혜원 그림,비룡소 펴냄,2008.12.24./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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