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32] 앞마당

 큰도시에 새로 들어서는 커다란 아파트숲에서도 으레 ‘놀이터’라는 이름을 붙이는 줄 압니다만, 아직도 놀이터를 ‘놀이터’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놀이하는 터니까 ‘놀이터’인데, 이 낱말만큼은 고이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자그맣게 꾸민 쉼터이니 ‘작은쉼터’라 하면 되지만, 아파트숲 사이에 낀 좁다란 쉼터는 ‘근린공원(近隣公園)’이라고만 하거든요. 큰도시 아파트숲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분들은 몇 억이니 몇 십억이니 참으로 큰돈을 들입니다. 살 만하기에 이러한 집에서 살림을 꾸리실 텐데, 아파트숲 보금자리 가운데 마당 있는 집은 없습니다. 마당 들어설 수 없고 마당 꾸밀 수 없는 아파트숲이 차츰 넓어지면서, 우리네 살림집이면 꼭 있던 마당이라는 터뿐 아니라 ‘마당’이라는 낱말마저 쓰임새가 확 사라집니다. 동네 골목집 가운데 제법 가멸찬 살림이라면 손바닥 마당쯤 있을 테지만, 마당 있는 집은 시골집만 남겠구나 싶어요. 집 앞이라 앞마당이고, 집 옆은 옆마당이며, 집 뒤는 뒷마당입니다. 마당은 일마당이면서 놀이마당입니다. 잔치를 벌이면 잔치마당, 춤을 추면 춤마당, 노래를 부르면 노래마당인 한마당이었어요.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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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왜 말하는가 돌아보고, 애써 글쓰는 삶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멧골집 둘레에는 가게가 없습니다. 시골집만 있는데, 가까운 이웃집조차 꽤 멉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온 만큼, 우리 집 아이는 때때로 얼음과자나 까까 노래를 부르곤 하며, 애 아빠인 저는 보리술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걸어서 다녀올 구멍가게나 편의점이란 아예 없을 뿐더러, 얼음과자나 보리술을 파는 곳까지 낮에 걸어서 찾아가자면 오가는 데에만 한 시간 반쯤 걸립니다.

 바라보기에 따라 다른데, 우리 살림집은 오늘날 문명하고 동떨어졌다 할 만하지만, 여느 시골은 다 이와 같아요. 굳이 가게에 들러야 할 일이 없고, 집에서 모든 일을 다 봅니다. 가게에 갈 일이란 때때로 오일장에 맞추어 읍내로 가면 넉넉합니다.

 가끔 아이랑 도시로 마실을 나와 보면, 길가에 가게가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눈이 아프다고 느낍니다. 참말 도시에서는 가게를 꾸려야 살아남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야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게마다 간판을 어떻게 붙이는지 찬찬히 살펴보신 적 있나요?

 얼마 앞서 아이하고 둘이 서울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창전동 골목 한켠에서 ‘커피가게’라는 찻집을 하나 보았습니다. 커피를 파는 집이라 ‘커피가게’일 텐데, 이곳은 아예 이름이 ‘커피가게’였어요. 흔히들 ‘커피숍’이라 하잖아요. 더구나 알파벳으로 ‘coffee shop’이라 적기 일쑤이고요. 어른들이랑, 또 동무들이랑 길거리를 다니면서 커피집 간판을 가만히 살펴보셔요. 하나같이 알파벳으로 간판을 적어 놓는답니다.

 이와 달리, 김밥집 가운데 간판에 알파벳 한 글자라도 적어 놓는 집은 없습니다. 한자조차 적어 넣지 않아요. 국밥집이나 분식집이나 여느 밥집도 마찬가지예요. 여느 밥을 파는 가게 가운데 간판에 영어나 한자를 적어 넣는 곳은 없어요. 그리고, 머리방이라든지 햄버거집이라든지 튀김닭집은 으레 영어를 많이 적어 넣습니다. 그러나, 시골마을 머리방은 오로지 한글로만 적어 놓더군요. 간판에 영어를 적어 넣는 집하고 간판에 한글만 있는 집하고 무엇이 다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셔요. 그리고, 글만 한글인지 속뜻까지 우리말인지를 함께 헤아려 보셔요.

 저는 우리 말사랑벗들이 착한 마음과 참다운 넋과 고운 얼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면 고맙다고 여깁니다. “우리말이 온누리에서 가장 훌륭한 말이야.”라든지 “한글만큼 멋지며 알찬 글이란 없지.” 같은 생각으로 말과 글을 생각하거나 아끼려 하지 않으면 고맙겠다고 여깁니다. 그저 내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보듬어 주면 좋겠어요. 그예 내가 사랑할 삶이듯 내가 사랑할 말이라고 헤아리면서 껴안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 스스로 마주하는 이웃이 누구인가에 따라, 또 내가 가게 임자라 할 때에 어떤 손님을 맞이하려 하는가에 따라 말과 글이 달라져요. 시골 읍이나 면에서 시골 농사꾼을 손님으로 맞이할 신집에서 ‘shoe’ 같은 말을 섣불리 간판에 적지 않겠지요. 서울 강아랫마을 같은 데 가게에서는 시골 농사꾼을 손님으로 맞아들일 까닭이 없을 테니까 갖가지 알파벳을 잔뜩 적어 놓겠지요.

 착하게 생각하며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착하게 말을 합니다. 참답게 생각하며 참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참다이 글을 써요. 곱게 생각하며 고이 살아가고픈 사람이라면 고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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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6] more, go, top

 반 해 남짓 한글학회 일을 거든 적 있다. 이때에 우리 나라 모든 지자체랑 공공기관 누리집에서 어떤 말을 쓰는가를 살폈는데, 말과 글을 알차게 가다듬은 지자체랑 공공기관이 드물게 있었으나, 웬만한 지자체랑 공공기관은 말글을 아주 엉터리로 내팽개쳤다. 가장 높은 자리 정치꾼이 내리는 말에 따라 움직이니까, 산 말이 아닌 죽은 말일밖에 없는지 모르지만, 웃사람 말을 따른다면, 청와대 누리집에서도 ‘more’는 안 쓰니까 ‘더보기’라 쓸 수 없는가 궁금하곤 했다. 가만히 살피면, 뜻있거나 생각있는 모임에서도 ‘more, go, top’을 쓰지만, 뜻없거나 생각없는 모임에서도 ‘더보기, 가기(바로가기), 위로(맨위로)’를 쓴다. 왼쪽 사람들이 말을 더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고, 오른쪽 사람들이 말을 더 짓밟거나 어지럽히지 않는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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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5] 널리 읽힌 책

 책을 말한다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신간’이니 ‘구간’이니 ‘서평’이니 하는 말을 썼으나, 오늘날에는 ‘북’이니 ‘북리뷰’이니 하는 말을 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주워섬기는 사람은 하나같이 “어른한테 읽힐 글”만 살핀다. 아이들 앞에서 책을 말하려 할 때에는 ‘신간’이니 ‘북’이니 읊지 못한다. 아이들 앞에서는 어떤 지식인이나 기자라 할지라도 ‘책’이라고만 말한다.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나는 늘 어린이 앞과 할머니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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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책·삶·글


 새벽에 글을 써서 누리집에 걸칠 때에 느낌이 좋다. 새벽 두 시나 세 시나 네 시 무렵이라는 시간이 새겨질 때에는 무언가 새삼스럽다. 글을 마치면서 내 글 끄트머리에 날짜를 적바림하지만 시간까지는 적지 않는다. 누리집에 글을 걸칠 때에만 몇 시 몇 분에 걸치는 글인가 자국이 남는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시간을 함께 적으면 한결 새삼스러울 수 있겠구나 싶다. 내가 어느 때에 이렇게 생각하거나 마음을 쏟으면서 이야기 하나 풀어냈는가를 더듬는 보람이 있을 테니까.

 그러나, 굳이 몇 시 몇 분 글이라고 안 밝히더라도 내 글에 이러한 때가 살포시 묻어나도록 하면 넉넉한 일인지 모른다. 시시콜콜 밝혀 적어야만 알 수 있다면, 이런 글을 글이라 할 수 있는가. 지식쪼가리나 정보조각일 뿐 아닌가. 글이란 삶인데, 삶을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이라는 숫자놀음으로 밝힐 수 없다.

 가만히 보면, 삶이란 책으로 알아채거나 읽을 수 없다. 책을 더 읽는다고 더 빼어난 삶이 아니고, 책을 덜 읽는다고 모자란 사람이 아니다. 책을 가까이한다 해서 아름다운 삶이 아니요, 책하고 동떨어진 채 일한대서 못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애써 책을 말해야 할 까닭이 있는가. 애써 책을 생각하거나 돌아볼 값어치가 있을까.

 책은 그예 책이기도 하지만, 책은 사람이기도 하다. 책은 종이뭉치이면서 삶이기도 하다. 사람은 고운 목숨이기도 하나, 숱한 이야기보따리이기도 하다. 사람은 삶이면서 죽음이다. 책을 보며 사람을 느끼고, 사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가운데 사람 삶을 돌아보고, 사람 삶을 돌아보다가는 책을 살핀다.

 책 하나는 고운 이웃이다. 이웃사람 또한 고운 책이다. 책이란 살가운 이야기꽃이다. 이야기꽃은 살가운 사람한테서도 마주한다. 책은 온통 사랑이다. 이웃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 또한 온통 사랑이다. 책에는 하느님이 깃들고, 하느님한테는 책이 깃든다. 우리 아이한테도 하느님이 깃들며, 우리 옆지기한테도 하느님이 자리한다. 더 많은 책을 읽거나 더 많은 글을 쓰자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믿거나 보살필 꽃과 열매와 꿈과 이야기가 어우러질 삶을 살펴야겠다고 다짐한다. (4344.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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