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적' 없애야 말 된다
감상적 感傷的
감상적 기분 → 들뜬 마음 / 두근거림 / 설렘 / 눈물꽃 / 슬픔비 / 먹구름
감상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마라 → 눈물지으며 일을 다루지 마라
추억은 감상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 옛일은 설렌다
‘감상적(感傷的)’은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쉽게 기뻐하는”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쓸쓸하다·외롭다·오솔하다’나 ‘홀·홀로·홀몸·혼몸·혼자 있다·호젓하다’로 손봅니다. ‘쓰다·쓰겁다·쓰라리다·쓰리다’나 ‘허전하다·서운하다·섭섭하다·아쉽다·아프다·앓다’로 손보고, ‘마음앓이·속앓이·속아프다·가슴아프다’로 손봐요. ‘눈물·눈물겹다·눈물꽃·눈물짓다·눈물빛’이나 ‘눈물앓이·눈물비·눈물팔이·눈물장사’로 손보고, ‘서글프다·서럽다·섧다·시름·식다’로 손보면 돼요. ‘가라앉다·갈앉다·처지다·늘어지다·잠기다’나 ‘걱정·근심·끙끙거리다·무겁다·찢기다·찌뿌둥’으로 손볼 만합니다. ‘달랑·덜렁·덩그러니·축·축축하다·촉촉하다’나 ‘구슬프다·슬프다·미어지다·잠을 못 자다’로 손보고, ‘슬픔꽃·슬픔길·슬픔바람·슬픔빛·슬픔구름’이나 ‘슬픔비·슬픔앓이·슬픔짓다·슬픔팔이·슬픔장사’로 손보아도 어울려요. ‘애타다·애끊다·애끓다·애틋하다’나 ‘먹구름·비구름·뜬눈·눈검정·검정·검정꽃·검은꽃’으로 손보지요. ‘까맣다·깜깜하다·컴컴하다·캄캄하다’나 ‘새까맣다·새카맣다·시꺼멓다·시커멓다’로 손보고, ‘멍·멍울·멍들다·멍꽃·멍울꽃’으로 손봐요. ‘아롱빛·이슬맺다·아련하다’나 ‘들뜨다·두근거리다·설레다’로 손봐도 됩니다. ‘피말리다·씻을 길 없다·풀지 못하다·털 길 없다’나 ‘하느작·하늘거리다·흐늘거리다·흐물거리다’로도 손봐요. ‘설다·섣부르다·어설프다·어줍다·어쭙잖다·철없다·철모르다’로 손봐도 되고요. ㅍㄹㄴ
군산에 와 차에서 내리자 나는 감상적이 된다
→ 군산에서 내리며 두근거린다
→ 군산에서 내리자 애틋하다
→ 군산에서 내리니 미어진다
《민요기행》(신경림, 한길사, 1985) 88쪽
뭔가 감상적인 추억거리가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 무슨 아련한 얘깃거리가 있을 듯하지만 정작 그와 다르다
→ 어떤 애틋한 옛일이 있을 듯하지만 막상 그렇지 않다
《풀종다리의 노래》(손석희, 역사비평사, 1993) 31쪽
“모두가 상상한 건 축복의 따뜻한 불빛입니다.” “상당히 감상적으로 말하는군.”
→ “모두 기쁘면서 따뜻한 불빛을 생각했습니다.” “무척 애틋하게 말하는군.”
→ “모두 기쁘면서 따뜻한 불빛을 그렸습니다.” “무척 슬픈 듯이 말하는군.”
《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2》(야마시타 카즈미/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0) 259쪽
자기계발서는 감상적인 일화와 지혜로운 명언을 이용하여
→ 나가꿈책은 애틋한 이야기와 슬기로운 옛말로
→ 길닦기책은 설레는 이야기와 눈밝은 말씀으로
→ 나찾기책은 눈물겨운 일과 환한 말씀을 앞세워
→ 나를 돌보는 책은 이슬맺는 일과 어진 말씀을 따와서
《건강 신드롬》(칼 세데르스트룀·앙드레 스파이서/조응주 옮김, 민들레, 2016) 112쪽
그러나 그것은 감상적인 생각이었다
→ 그러나 섣불렀다
→ 그러나 어설펐다
→ 그러나 어쭙잖았다
→ 그러나 철이 없었다
→ 그러나 내가 얕았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돌베개, 2017) 21쪽
하지만 감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완벽한 장작을 태우더라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으니까요
→ 그러나 슬퍼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장작을 훌륭히 태우더라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으니까요
→ 그런데 서운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장작을 멋지게 태우더라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으니까요
→ 그렇지만 아쉬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장작을 잘 태우더라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으니까요
《노르웨이의 나무》(라르스 뮈팅/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2017)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