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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 ㅣ 창비청소년시선 38
신지영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11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2.3.
노래책시렁 524
《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
신지영
창비
2021.11.30.
작은집이 다닥다닥 모인 골목마을을 스무 해 즈음 지켜본 바를 옮겼다고 하는 《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입니다. 글쓴이 맺음말 그대로 이 꾸러미는 ‘지켜본’ 바를 그렸구나 싶습니다. 다만, 지켜보기보다는 ‘살아낸’ 바를 그리면 한결 나았을 텐데 싶어요. 지켜보기는 으레 ‘구경’에서 맴돌고, ‘스치기’와 ‘지나치기’로 고입니다. 살아낸 바가 아닌 지켜본 바를 글로 담을 적에는 ‘꾸밈없이’ 담기보다는 ‘꾸며서’ 담으려고 하더군요. 더 가난하고 더 아프고 더 힘들고 더 지치고 더 고되고 더 까마득하다고 자꾸 낮추고 내리고 떨구려는 글치레로 휩쓸리기 일쑤입니다. 가난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가난은 가난입니다. 돈있는 저 너머는 그저 돈있는 저 너머일 뿐입니다. 가난하면 그저 다 아파야 하지 않고, 가난하니 다 불쌍하지 않습니다. 돈있고, 장사를 안 하고, 가게에서 힘들어 꾸벅꾸벅 안 졸면, 안 불쌍하거나 마냥 기쁜 삶일는지 아리송합니다. 가난한 푸름이는 으레 이런 마음이겠거니 하고 넘겨짚으면서 쓰기보다는, 그저 글쓴이 마음과 삶을 담으면 됩니다. 가난하기에 더 높여야 하지 않고, 안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글감으로 안 삼아야 하지 않습니다.
ㅍㄹㄴ
쓸모가 없다니 정말 다행이다 / 쓸모가 많아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 / 내가 가진 가장 중요한 쓸모가 뭔지 잊어버릴 거다 / 발견되지 않은 나만의 쓸모는 그래서 안전하다 (무쓸모/12쪽)
이 작은 교실에서도 / 가끔 네가 멀게 느껴질 때가 있어 / 그러면 나는 내가 만졌던 네 마음을 떠올려 / 조금은 못생겼지만 그게 또 사랑스러운 / 우리의 마음 (닮다/26쪽)
너무 피곤해 코를 골다 / 자기 코골이에 놀라서 깨기도 한다 / 엄마는 (어려운 질문/44쪽)
눅눅한 지하의 공기를 뚫고 / 낮은 천장을 뚫고 / 주인집 지붕을 뚫고 / 푸른 희망의 지느러미 쫓아 헤엄쳐 올라가다 / 도착한 옥탑방 / 아직은 괜찮다 (이사/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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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버스데이 우리 동네》(신지영, 창비, 2021)
발견되지 않은 나만의 쓸모는 그래서 안전하다
→ 그래서 못 찾아낸 내 쓸모는 아늑하다
→ 그래서 못 본 내 쓸모는 고스란하다
12
누구의 마음도 다 따뜻하게 느껴지지
→ 누구나 마음이 다 따뜻하다 느끼지
→ 다 마음이 따뜻하다 느끼지
27
찢어질 것도 없이 가난한 게 우리 집이라는데 그것도 감상적인 거였구나
→ 찢어질 데도 없이 가난한 우리 집인데 눈물꽃이었구나
→ 찢어질 구석 없이 가난한 우리 집인데 눈물팔이였구나
34
전대에 손을 찔러 넣고
→ 쌈지에 손을 찔러 넣고
→ 돈자루에 손 찔러 넣고
36
한 번만이라도 잡아 보면 안다. 서러워서 자신을 지키는 것들은 얼마나 말랑거리는 슬픔을 가졌는지를
→ 슥 잡아 보면 안다. 서러워서 스스로 지키는 이는 얼마나 말랑거리듯 슬픈지를
→ 살짝 잡으면 안다. 서러워서 스스로 지키는 누구나 얼마나 말랑말랑 슬픈지를
78쪽
네가 하루분의 기다림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 네가 하루를 기다리며 꾸역꾸역 삼킨대서 무슨 자랑이라고
→ 네가 기다리는 하루를 꾸역꾸역 삼켜서 무슨 자랑이라고
82
누군가 다듬어 준 생선만 먹고
→ 누가 다듬어 준 고기만 먹고
→ 누가 다듬은 물고기만 먹고
86
담임이 심각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 길님이 근심으로 따스하게 말한다
→ 샘님이 깊고도 너그럽게 말한다
90
다문화 친구랑 짝을 지어서 동네 지도를 그려 올 것
→ 다살림 동무랑 짝을 지어서 마을길을 그려 와라
→ 나란꽃 동무랑 짝을 지어서 마을그림을 해 와라
9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