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명성으로 2025.4.28.달.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어. 저마다 이름이 있고, 다 다른 이름에는 모든 사람이 새롭게 살아온 이야기가 흘러. 얼핏 이 사람과 저 사람이 “같은 이름”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둘이나 여럿이 이름이 같아 보여도, 걸은 길과 삶은 다르단다. ‘이름’이란, 이제까지 이른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면서, 이제부터 이르려는 길을 밝히는 뜻이야. 이름을 보면서 어제·오늘·모레를 읽어. 이름을 짓고 나누면서 이제껏 일군 보람을 살펴. 서로 이름을 헤아리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느끼고 돌아봐. 그런데 ‘이름’이 아닌 ‘이름값(명성)’을 따지는 사람이 많구나. 이름이 없는 사람이 없듯, 값이 없는 이름도 없어. 누구나 이름과 값이 다르게 있되, 높거나 낮다고 가를 수 없는데, 자꾸만 이름값(명성)으로 휘두르거나 휘말리면서 이야기를 잊는구나. 이름값을 따라가려는 사람은 가엾어. 이름값을 높이려는 사람은 불쌍해. 이름값에 매이는 사람은 스스로 갉거나 깎는구나. 이름값을 얻어서 누리거나 부리는 사람한테는 이야기가 사라지고 빛이 바래면서 숨결과 숨소리가 죽어간단다. 너는 무엇을 보니? 너는 어디로 가니? 네 이름은 무엇이니? 이름을 구슬로 느끼고 돌보렴. 네 이름을 구슬처럼 굴리면서 스스로 노래하렴. 서로 이름을 맑고 밝게 부르면서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렴. 이름값을 내세울수록 가난하단다. 이름값을 차리려 할수록 껍데기가 단단하게 늘어나고 말아.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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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종종걸음 2025.4.29.불.



누가 널 주먹으로 치거나 발로 차더라도, 네가 다치는 일은 없어. 너를 치거나 차는 이가 스스로 갉거나 할퀴는 짓이란다. 그런데 네가 “맞았어!” 하는 마음을 잇고 외치는 사이에 네 몸과 마음이 아프고 앓고 무너져. 너는 빗물을 맞을 적마다 “맞았어!” 하고 서러워하니? 너는 바람을 맞거나 햇볕을 맞거나 별빛을 맞을 적마다 “맞았어!” 하고 따지거나 싫어하니? “널 때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는지 생각하렴. 누가 누구를 때리거나 치거나 차거나 할퀴려고 주먹·발길·막말 들을 휘두른다면, 늘 “때리려는 이가 스스로 갉아먹기”를 하면서 널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야. 네 눈길을 잡아끌어서, 네가 네 하루를 안 보거나 잊기를 바라는 속내란다. ‘그놈’을 안 따져야 하지는 않아. 다만, “아무개가 때리는구나. 또 때리네.” 하고 밝히면서 끝내면 돼. 넌 네 하루를 살아야지. 비가 오기에 “비가 오네. 오늘은 비를 맞으며 걸을까.” 하고 생각할 만해. 언제나 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별이 돋아. 날마다 흐르는 날씨를 살피면서, 이날과 이때에 네가 일구려는 길을 새롭게 그려서 풀어낼 노릇이야. 네가 네 하루그림을 바라보기에 네 하루가 알차고 넉넉하단다. 네가 “저놈이!”나 “저 녀석이!” 하면서 저쪽을 쳐다보느라 네 삶을 자꾸 잊다가 놓치느라 종종걸음을 치기 일쑤란다. 너는 너를 사랑하는 길을 그려서 펴기에 스스로 하늘빛으로 품어서 풀어. 너는 너를 생각하는 빛을 바라보기에 종종걸음 아닌 제걸음이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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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TO YOU 님에게 (2024.9.29.)

― 부산 〈국제서적〉



  해거름에 보수동을 찾아갑니다. 어제 살까 말까 망설이던 책이 있어서 ‘한동안 굶으면서 책을 읽으면 되지’ 하고 여기면서 장만합니다. 이제 저녁자리로 옮기는 길인데 〈국제서적〉 앞에서 서성이다가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겉을 ‘TO YOU 님에게 초컬릿’으로 싼 《三中堂文庫 4 그리이스 로마 神話》가 보이는군요. 1982년에 나온 달콤이 겉종이로 쌌으니, 이무렵에 작은책을 아낀 손길입니다.


  저는 1982년에 어린배움터에 들어갔습니다. 이즈음은 종이가 드물고 비쌌어요. 배움터 앞 글붓집에서는 똥종이도 ‘한 자락’씩 팔았습니다. 새하얀 그림종이는 ‘8절지 하나에 20원’이었고, 똥종이는 ‘하나에 5원’이었는데, 쉰이나 온 자락쯤 사면 2원으로 에누리해 주었습니다. 이해에 어린이 버스삯은 60원이고, 어른 버스삯은 110원입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가 없던 때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요사이는 종이뿐 아니라 책을 매우 쉽게 버립니다. 안 읽히거나 안 팔려서 버리기도 하고, 잘못 찍었기에 버리기도 합니다. 지난날에는 잘못 찍힌 책이어도 ‘잘못 찍힌 데’에 종이를 덧대거나 글붓으로 고쳐써서 팔았어요. 때로는 눅은값으로 팔았습니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마쳐서 선보이는 일은 안 나쁘되, 자칫 쓰레기를 잔뜩 낳습니다. 버림받을 책이 아닌, 되살리고 되읽을 책을 헤아릴 때라고 느껴요. 많이 찍어서 많이 팔고 많이 벌어들이는 길에 책을 끼워넣지 않을 때입니다.


  어제까지 잘못이나 말썽이었더라도, 스스로 즐겁게 끊거나 그만두면 아름답습니다. 오늘까지 잘하거나 훌륭하더라도, 난데없이 뒤틀거나 비틀면 얄궂습니다. 우리는 어제만 볼 일이 아닌, 오늘과 모레를 함께 볼 일이면서, 언제나 한결같이 볼 일이지 싶습니다. 사랑은 바뀔 수 없어요. 사랑은 한꽃같이 피고서 씨앗을 맺어요.


  이웃을 마주하고 말을 섞습니다. 이웃하고 함께 한자리에 있는 동안, 여태 몰랐던 삶과 사람과 사랑과 살림을 부드러이 헤아립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아닌 사람을 마주하고 말을 섞을 적에도, 서로 눈과 마음을 틔우거나 여는 조그마한 실마리를 이뤄요. 먼 남남인 그이도 ‘사람’이자 ‘숨결’인걸요. 모두 새롭습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기에 밝게 받아들이고 배운다면, 안 반가운 사람을 스치거나 마주할 적에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돌보는 길을 배워요. 누구랑 어울리든 서로 살리는 길을 찾아요. 한 해 모든 날은 서로서로 빛나는 배움날입니다.


  몸을 내려놓고 떠난 어느 이웃님을 떠올립니다. 이웃님은 이제 새가 되어 온누리를 날아다닌다고 느껴요. 문득 고개를 들어 가을하늘을 봅니다. 멧새와 들새와 철새와 텃새를 바라봅니다. 할머니 사랑빛이 골골샅샅 상냥하게 퍼집니다.


ㅍㄹㄴ


《三中堂文庫 4 그리이스 로마 神話》(T.불핀치/장왕록 옮김, 삼중당, 1975.2.1.첫/1981.9.10.중판)

- TO YOU 님에게 초컬릿 200원 82.2.10.

《三中堂文庫 26 復活 下》(톨스토이/박형규 옮김, 삼중당, 1975.2.1.)

- 공급처 영광종합도서. 전화 3-1553번

《三中堂文庫 220 밤과 낮 사이의 기나긴 獨白》(L.린저/홍경호 옮김, 삼중당, 1975.11.15.첫/1978.5.15.중판)

《三中堂文庫 245 二中人格》(도스토예프스키/박형규 옮김, 삼중당, 1976.4.5.첫/1981.5.25.중판)

《三中堂文庫 498 惡靈 1》(도스토예프스키/이철 옮김, 삼중당, 1982.3.10.첫/1986.5.25.중판)

《博英文庫 11 엘리아 隨筆選》(차알즈 램/공덕룡 옮김, 박영사, 1974.5.25.첫/1982.12.20.중판)

《乙酉文庫 101 菜根譚》(홍자성/이주홍 옮김, 을유출판사, 1973.2.28.첫/1982.6.10.10벌)

《村上春樹, 河合準雄に會いにいく》(村上春樹·河合準雄, 新潮社, 1996.1.1.첫/2013.5.28.28벌)

《도해관찰 탐구생활 3 나비와 나방의 무리》(기초과학진흥회, 예술문화사, 1994.1.30.)

《좋은 사람 1∼26》(타카하시 신/박연 옮김, 세주문화, 1998∼2000)

《현재진행형 1∼4》(강경옥, 대화, 199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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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지나치지 않기 (2023.8.6.)

― 부산 〈보수서점〉



  여름볕을 느끼면서 부산버스를 탑니다.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고 싶지만, 여름버스는 찬바람을 휭휭 틀어대기에 미닫이를 못 엽니다. 찬바람 아닌 밖바람을 누리고 싶기에 일찍 내려서 햇볕을 쬐며 걷습니다. 책골목을 둘러싼 마을부터 가만히 한 바퀴를 돌고서 보수동에 닿습니다. 오늘은 〈보수서점〉에 등짐을 내려놓습니다.


  무슨 일이건 빨리빨리 마치려고 애쓰면 으레 사달이 납니다. 다치거나 아픈 곳이 얼른 낫기를 바라기에 으레 도집니다. 돌봄터(병원)에 기대어 낫는 몸이 아닙니다. 스스로 돌아보며(돌보며) 다스리는 몸입니다. 아플수록 느긋할 노릇이요, 앓을수록 드러누워서 온몸과 온마음에 시골숲과 푸른들을 그릴 노릇입니다.


  천천히 나아야 참하게 빛납니다. 천천히 걸어야 차분히 둘러봅니다. 우리는 왜 코앞에 있는 책시렁에 꽂힌 아름책을 못 알아볼까요? 까닭은 하나예요. 서두르거든요. 둘째 까닭도 있어요. 글쓴이와 펴냄터 이름값에 얽매이거든요. 셋째 까닭도 있습니다. ‘비싼책’이란 없이 ‘배움책’만 있을 뿐인데, 새책도 헌책도 그저 ‘돈’으로만 셈하기에 아름책을 지나치고 사랑책을 못 알아챕니다.


  더 느긋이 읽기에 더 넉넉히 품습니다. 제대로 쉬며 집안일을 하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다니라고, 다가서라고, 다다르라고, 담으라고, 다 이으라고 있는 다리입니다. 두다리로 걸어다니면서 하루빛을 읽습니다. 두다리로 마을과 고을을 만나면서 이웃살림을 마주합니다.


  ‘말모이’는 주시경 님이 빚은 낱말입니다. 말을 모았으니 수수하게 ‘말모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누구나 수월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자리를 틔워서 길목을 내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냥그냥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에 앞서, 그야말로 아무도 안 쳐다보던 훈민정음이었지만, 주시경 님이 꿋꿋하게 우리글을 지켜보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짓기도 했고, 이분은 딸아이를 고르게(평등) 돌보고 가르쳤습니다. 그나저나 첫 ‘국어사전’은 이웃(선교사)이 엮었습니다. 이 나라 말밭(국어학계)은 ‘선교사 국어사전’은 ‘꾸러미(단어장)’라 여기며 팽개치던데, ‘단어장’부터 있어야 ‘사전’을 엮을 수 있는걸요.


  누구나 오늘 이곳에 있는 수수한 나를 바라보고 받아안을 적에 스스로 눈을 틔웁니다. 잎눈도 꽃눈도 살림눈도 남이 안 틔웁니다. 저마다 가만히 틔워요. 바쁘다는 핑계를 붙이기에 지나치면서 고개를 돌려요. 바쁘기에 틈을 내고 짬을 마련하고 말미를 들여서 다가가기에 새삼스레 배울 이야기를 두 손에 쥡니다. 하루에 2만 원씩 책값을 쓰는 ‘어른’이 천천히 늘어나기를 빕니다.


ㅍㄹㄴ


《티베트 의학의 지혜》(다이쿠바라 야타로/박영 옮김, 여강, 1991.7.30.)

《簡明 實業修身書 券三》(勝部謙造, 英進社, 1938.7.10.첫/1941.7.25.고침3벌)

- 大本營發表

- 金山漢奎

《輓近圖法敎科書 卷一》(馬場秋次郞, 右文書店, 1937.6.1.첫/1937.12.20.고침2벌)

《輓近圖法敎科書 卷二》(馬場秋次郞, 右文書店, 1937.6.1.첫/1937.12.20.고침2벌)

- 朝鮮工業技術學校 土木科 壹年 四七號

- 現住所 京機府 新堂町 石山洞 二八-二二號 (서울 신당동)

- 1949.9.9. ‘김한규’로 새로 새기다

《ATALA》(Chateaubriand, Didier & Mericant, ?)

- 1983.3.13. 봄이 시작하는 일요일 아침. 그와 함께 찾아낸 조그만 기쁨.

《ヒュ-マン·ファグタ-》(グレアム·グリ-ン/宇野利泰 옮김, 早川書房, 1983.12.31.첫/1988.1.31.5벌)

- 記號番號 25 鶴本書店. 日本の古本屋 ¥250

#GrahamGreen

《藥이 되는 自然食 上》(심상룡, 창조사, 1974.5.15.첫/1976.5.15.재판)

《藥이 되는 自然食 下》(심상룡, 창조사, 1974.9.20.)

- 인천교육쎈타 3-4800 책은 마음의 신성한 마취제이다

《이안의 산책, 자폐아 이야기》(로리 리어스 글·카렌 리츠 그림/이상희 옮김, 큰북작은북, 2005.5.10.첫/2006.4.1.2벌)

《재미있는 수학탐험》(R.N.펠레리만 외/편집부 엮음, 팬더북, 1989.7.31.)

《사회란 무엇인가》(송건호·오연호·다까하시·나까마, 참한, 1984.3.1.첫/1988.3.10.증보)

《佛敎의 성전》(에드워드 콘제/정병조 옮김, 고려원, 1983.11.25.첫/1988.10.20.재판)

《민요기행 2》(신경림, 한길사, 1989.7.27.첫/1989.11.25.3벌)

《詩作法》(테드 휴즈/한기찬 옮김, 청하, 1982.5.5.첫/1985.2.15.중판)

《新譯版 어린 왕자》(쎙떽쥐뻬리/전성자 옮김, 문예출판사, 1982.10.30.첫/1986.1.30.중판)

《맑스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대화》(홍기석 엮음, 백산서당, 1991.4.25.)

《국민학생·중학생을 위한 바둑교실 1∼5》(加藤劍正/조훈현 옮김, 지문사, 1982.9.10.)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46 세계명작동요동시집》(윤석중 엮음, 계몽사, 1975.11.1.)

《오늘의 내 몫은 우수 한 점》(이형기, 문학사상사, 1986.12.22.)

《범우문고 274 세계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헤르만 헤세/박환덕 옮김, 범우사, 2012.10.5.)

《詩精神과 遊戱精神》(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4.25.첫/1981.1.10.3벌)

《사랑을 느낄때면 눈물을 흘립니다》(김현희, 고려원, 1992.7.15.)

《붓다 1 카필라성》(데스카 오사무/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10.30.)

《붓다 6 제자 아난다》(데스카 오사무/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12.1.첫/1991.1.20.재판)

《붓다 8 빛의 성지 기원정사》(데스카 오사무/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12.31.첫/1991.1.20.재판)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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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9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사진속 오래된 책들은 이젠 서울의 헌책방에서 더 이상 보기 힘든것 같습니다.

파란놀 2025-05-09 09:0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울 여러 헌책집에서 아직 쉽게 볼 수 있어요.
주머니만 든든하다면 말이지요 ^^;;;;
 

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4.30.


《불태워라》

 릴리 댄시거 엮음/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0.10.19.



인천 주안나루 곁 길손집에서 아침을 연다. 책짐을 이고 지면서 연수동으로 간다. 전철을 갈아타며 손으로 글을 쓰다가 내릴 곳을 지나친다. 부랴사랴 내려서 건너간다. 숨을 고른다. 밖으로 나오니 온통 네모반듯한 잿마을이다. 이 잿마을이 보기싫어서 1995년 4월 5일에 인천을 떠났다. 이때부터 땅밑집과 하늘집과 골목집에서만 살았고, 2011년에는 아주 시골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서른 해 만에 걷는 예전 잿길은 똑같이 휑뎅그렁하되, 그새 나무가 꽤 자라서 크고작은 새가 노래한다. 새노래를 들으며 땀을 훔친다. 〈열다책방〉에 들러서 책을 읽는다. 늘어난 책짐을 즐거이 이고 진 채 시내버스를 탄다. 낯익은 ‘송도놀이터(유원지)’하고 바닷가 옆을 달린다. 어릴적 보던 모습하고 그대로이되, 바닷가에 무섭게 있던 가시울타리는 사라졌네. 〈나비날다〉에서 책을 더 읽는다. 저녁에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말밑수다(어원강의)를 펴고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진다. 《불태워라》를 읽었다. 첫머리는 ‘사내놈’한테 불길(분노)을 퍼붓는 글이라면, 1/6부터는 ‘왜 사내녀석은 삶과 살림과 사랑을 안 배우려 하지?’ 하고 궁금한 마음에 새길을 찾는 글이 흐르고, 이윽고 ‘사내를 바보로만 여기고 미워하고 불태우면 같이 죽는 수렁’인 줄 알아차리는 글로 맺는다.


다만, 숱한 사내가 바보라는 대목은 맞다. 틀림없는 말이다. 그래서 ‘바보돌이’를 미워하거나 불태우기만 하면, 바보돌이는 총칼을 들고서 싸우려 한다. 이와 달리 ‘바보돌이’를 토닥이면서 살림길을 가르치고 삶길을 알려주고 사랑길을 보여주면, 어느새 ‘사람돌이’로 거듭난다. 사내라는 몸은 애벌레와 같다. 사내는 애벌레처럼 입과 똥구멍만 있는 몸으로 잎갉이만 하는 얼거리이다. 사내는 고치를 틀어서 날개돋이를 하기 앞서까지는 ‘아직 바보’이기에, 사내 스스로도 받아들이면서 가다듬을 길이요, 가시내는 곁과 둘레에서 차분히 기다리며 지켜볼 일이기도 하다.


왜 사람은 번거롭게 ‘가시내·사내’라는 두 가지 몸으로 태어나겠는가? 이미 깨달은 몸으로 태어나서 아기를 밸 줄 아는 가시내는 ‘어진순이’이다. 어진순이는 어질게 가르칠 몫을 타고난다. 갖은 일살림을 도맡는 나날을 한참 보내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사내는 ‘바보돌이’인 터라, 끝없이 듣고 배우고 고치고 손보면서 드디어 눈을 뜬다.


집안일은 마땅히 둘이 함께해야지. 한 사람이 아프거나 앓으면 반드시 다른 한 사람이 도맡을 일이지 않은가? 사내는 ‘일하려고’ 태어난다. 가시내는 ‘일을 가르치고 물려주려고’ 태어난다. 총칼을 쥐거나 돈만 벌려고 하는 사내는 끝까지 안 배우려고 하면서 얼뜬 몸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가시내도 총칼을 쥐거나 돈만 벌려고 하면 그만 사내하고 똑같이 수렁에 잠긴다.


아무리 가시내가 아기를 밸 줄 아는 몸이라 하더라도, 가시내 혼자 아기를 못 낳는다. 가시내하고 사내는 ‘하나를 이룰 두 가지 다른 아기씨’를 저마다 하나씩 몸에 품는다. 서로 돕고 북돋우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천천히 스스로 사랑을 익히라는 뜻으로 두 갈래 몸으로 태어난다.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지 않다. 그냥 다른 몸이다. 다르기에 다른 줄 받아들이고 바라보면서 바다처럼 아늑하고 바람처럼 맑게 서로 아끼고 돌보는 눈빛을 가꾸면, 바야흐로 새길을 일구면서 둘 다 ‘사람’으로 거듭나는 사랑을 씨앗(아기)으로 이룰 수 있다.


그러니 불태우려고 하지 말자. 불태우기가 아닌 북돋우기를 하면 된다. 불질이 아닌 붓질(글쓰기)을 하면 된다. 불수렁이 아닌 풀꽃나무로 숲을 이루는 보금자리를 지으면 너나없이 아름답게 푸른별이 깨어날 만하다. 우리는 서로 뜻과 눈과 손과 마음을 모아서 푸르고 파란 이 조그마한 별을 ‘사랑별’로 틔울 몫을 맡으려고 이곳에서 하루를 누린다고 느낀다.


#BurnItDown #WomenWritingaboutAnger #LillyDancyger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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