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23. 눈으로 쓴다



  모든 글은 붓을 쥔 손으로 쓰는데, 붓쥐기 앞서 발로 땅을 디디고, 마음으로 삶을 새기고, 귀로 온누리를 듣고, 눈으로 뭇숨결을 읽는다. 눈코귀입을 모두 틔우기에 느끼고 헤아리면서 익힌다.


  눈을 떠서 하늘과 구름과 새와 들숲을 본다. 눈을 감고서 우리집과 곁님과 아이들 숨결을 바라본다. 책을 쥐고서 한 쪽씩 넘기고, 나뭇잎을 살살 쓰다듬고, 콧잔등을 스치는 바람을 돌아본다.


  작은나무가 모여 큰숲을 이루고, 큰나무가 어울려 작은숲을 이룬다. 솜씨나 재주에 기대면 길들지만, 손길과 발길을 부드러이 잇는 사이에 길을 연다.


  네가 있는 곳과 내가 선 곳 사이에는 해바람비가 드나든다. 우리가 살림하는 곳에는 풀꽃나무가 깃든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모아서 보금자리를 들숲메에 짓는다.


  아무리 다 다르던 숨빛으로 태어났어도, 다 똑같이 짜맞춘 학교와 입시지옥과 서울과 아파트와 자가용과 인문학과 주의주장에 스스로 가두면 으레 쳇바퀴질로 기울어버린다.


  여태 똑같은 구름이나 비가 있은 적이 없다. 나뭇잎은 모두 다르고 풀도 다 다르다. 그렇지만 가두리(공장식 축산·농업·교육·사회·정치·문화·예술)에 빠지면, 아예 똑같이 판박이가 된다. 어떻게 다 다른 사람이 다 비슷하거나 똑같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가?


  듣기 좋은 말을 바라는 마음이기에 닮다가 닳을 뿐 아니라 담벼락을 세워서 닫아걸더니 끼리끼리 닦달하는구나. 굳이 듣기 나쁜 말을 들을 까닭은 없다. 그저 스스로 배울 말글을 찾아나설 노릇이고, 배우려면 틀을 스스로 깨야 한다. 틀과 굴레를 안 깨니까, 깨어나지 않는 종살이에다가, 깨닫지 못 하는 얼뜬 나날이다.


  쉽게 말하지 않으면 다 거짓말이다. 수수하게 글쓰지 않으면 다 거짓글이다. 쉽게 말하는 길을 스스로 헤아리기에, 들이쉬고 내쉬는 바람에 서리는 바람빛을 읽고서 낱말로 담는다. 수수하게 글쓰는 살림을 스스로 살피기에, 숲이 왜 푸르게 우거지는지 알아차리면서 글씨를 빚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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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심어본다



고흥에서 길을 나서면

고흥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늘 멀디먼 즈믄길이라서


예전에는 책값으로 보태려고

더 값싼 자리를 찾았고

요새는 느긋이 다니려고 웃돈을 치르고


옆이나 뒤에 앉는 분이 얄궂으면

한말씀 여쭈기도 하지만

말없이 다른 빈자리로 옮기기도


즐겁게 놀고 노래하고 싶기에

늘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려고


2025.8.25.달.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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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토론



‘민주’로 가려면 ‘대화 + 토론’이라는데

어쩐지 아리송했다


마흔 살을 살아낸 어느 날

‘토(討)’가 어떤 한자인지 찾아보았다


워낙 ‘살림말’이 아니라서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심네 싶더라


이윽고 ‘이야기’가 무엇인지 곱씹었다

함께 하나이면서 다른 마음으로

새롭게 말을 잇는 길을 찾자고 느꼈다


내가 나한테 들려줄 마음을

낱말 하나에 담으며

나부터 한 마디를 짓기로 한다


2025.8.25.달.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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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8.23.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제임스 설터 글/최민우 옮김, 마음산책, 2020.2.10.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선다. 큰아이는 자다가 일어나서 배웅을 한다. 다음 불날까지 바삐 움직이면 열흘쯤 시골집에서 느긋이 쉴 수 있다. 시골버스도 시외버스도 늦여름이지만 찬바람이 매섭다. 우리는 버스에서 밖바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제는 ‘에어컨 끄고 창문 여는 버스’로 돌아갈 일이다. 온나라에 나무숲길을 이루어야 더위와 추위 모두 풀어낼 수 있다. 부산 동래 한켠에 자리한 〈금목서가〉를 들르고서 〈책과 아이들〉로 걸어간다. 퍽 수그러든 늦여름볕을 누리면서 걸아다니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여름이니 더울 노릇이니, 여름에 땀을 실컷 흘려야 철든 사람으로 일어선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읽었다. 이 책이야말로 몇 해 못 읽히고서 사라졌는데, 쓰지 않기에 사라지지 않는다. 쓰지 않으면 스스로 마음에 새길 뿐이다. 몸을 내려놓는 마지막날까지 글이나 말로 안 남기면 조용히 품고서 잠재울 텐데, 이렇게 품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멍울이나 눈물이나 응어리나 생채기로 남고, 노래나 이야기나 삶으로 잇는다. 꼭 써야 하지 않되, 굳이 안 써도 되는 줄 받아들인다면, 누구나 홀가분히 모든 하루를 다 다르게 꽃피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나눌 만하다고 본다.


#DontSaveAnything #JamesSalter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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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8.22.


《獄中書簡》

 디이트리트 폰회퍼 글/고범서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67.4.15.



마치 ‘신영복’이라도 된 듯, 또는 ‘김구’처럼 나라찾기에 온몸을 바치기라도 한 듯, 스스로 떠벌이고 자랑하기를 못 그치는 ‘조국’이라는 “옛 서울대 법학과 나으리”가 계시다. 이분은 시늉(코스프레)도 잘하고, 장사(북콘서트)도 잘하고, 벼슬도 잘 쥐고, 비싼밥도 잘 자신다. 다만, 이녁이 아닌 수수한 들사람이 나라일을 맡거나 길잡이로 서거나 일꾼으로 서지 않기를 바라는 티를 늘 낸다. 늘 이녁이 한가운데에 서서 우두머리로 찰칵찰칵 찍혀야 한다고 여긴다. 헌책집에서 본회퍼 님 책을 스치면 으레 새삼스레 쥐곤 한다. 이미 읽은 책이어도 다시 들추면서 곱새긴다. 2016년에 한글판이 새로 나온 《獄中書簡》이다. 눈물과 땀을 이슬과 비로 녹여낸 하루가 흐르는 꾸러미라고 여길 만하다. 모든 사람이 본회퍼 님 같을 수야 없다지만, 모든 사람한테는 ‘넋’과 ‘숨’이 있다. 누구나 스스로 마음에 살림씨앗을 심는다. 저마다 마음이라는 바다에 생각씨앗을 심는다. 하느님 이야기를 담았다는 꾸러미를 보면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같은 대목이 있다. 우리 옛말에는 “말이 씨가 된다”가 있고, 둘은 나란하다. 참하거나 착한 길도 씨앗이되, 꾸미거나 거짓스런 길도 씨앗이다. 알맹이로 갈는지 쭉정이로 길들는지 스스로 갈 뿐이다.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디트리히 본회퍼/김순현 옮김, 복있는사람, 2016.9.19.)


#WiderstandundErgebung #DietrichBonhoeffer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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