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함께 누워서



우리는 신나게 놀다가

“아! 이제 힘들어!” 외치고서

땅바닥에 벌렁 눕는다


숨을 고른다

아무 말도 안 한다

흐르는 구름을 본다


드러누운 우리는

서로 ‘구름무늬 찾기’로 논다

누운 채 킬킬 깔깔 하하

신바람으로 수다를 떨다가

벌떡 일어나서 달린다


2025.9.14.해.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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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손으로 푸는



1994년에 끈으로 책을 묶는 길을

헌책집 아주머니 아저씨한테서

처음 배웠다


처음으로 묶고 풀 적에는

서툴고 엉성해서 자꾸 풀렸고

한 해 두 해 이어가는 사이

옥매듭을 알아채는 짐꾼이 되었다


손길을 타는 동안 새롭더라

손끝이 닿는 동안 즐겁더라

땀흘려 묶고 풀며 노래한다


2025.9.14.해.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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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9.18. 읽고 보고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몇 가지 일이 잇달았습니다. 먼저 간밤에 알쏭한 꿈자리였습니다. 이미 몸을 내려놓고서 저승길에 계신 분이 나타났어요. “무슨 일이지? 무슨 뜻이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고 물으려는 즈음 꿈에서 깹니다. 낮에 알낳기를 앞둔 암사마귀를 만났습니다. 마당에 세운 사다리를 타고서 기웃거리더군요. 암사마귀는 우리가 이쪽으로 가면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눈알도 이쪽으로 돌립니다. 우리가 저쪽으로 가면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면서 눈알도 저쪽으로 돌려요.


  늦은낮에 두바퀴를 달려서 면소재지 가게에서 과일을 장만하는데, 가게지기님이 “사시는 마을에서 한 분 돌아가셨다는데 아셔요?” 하고 물으십니다. 아침에 마을 아재 한 분을 찾는다는 마을알림이 나왔는데, 간밤에 사라진 분이 윗마을 못에 빠져서 저승길로 가셨다더군요. 집으로 돌아와서 이 말을 들려주니, 저뿐 아니라 곁님과 두 아이도 간밤에 꿈에서 죽은 사람을 만났다고 얘기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네 사람은 마을 아재가 몸을 내려놓은 그무렵 나란히 느끼고 알아챘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주검길(장례)은 치르지 않는 듯싶습니다. 여태 마을에서 몸을 내려놓으신 분이 있으면 마을에서도 주검길을 치르고서 보냈는데, 오늘만큼은 안 치르는군요.


  갑자기 떠난 마을 아재는 이 삶이 어떠했으려나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아재는 마을살이를 무척 버거워했지만, 엄마아빠가 태어나서 자라고서 흙으로 돌아간 이 시골을 떠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엄마아빠가 나고자라서 돌아간 흙으로 나란히 돌아간 삶을 어느 새뜸(언론)에서도 다루거나 쓸 일은 없겠지요. 이 시골에서는 나리(군수·국회의원)쯤 저승길을 가야 새뜸에 날 테니까요.


  여러모로 보면, 가난하고 쓸쓸하게 살다가 떠난 사람을 다룬 궂김글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돈있거나 이름있거나 힘있는 사람이 삶을 내려놓으면 너도나도 궂김글을 씁니다. 이른바 자취(역사·history)에는 돈꾼과 이름꾼과 힘꾼만 나옵니다. 게다가 싸움박질만 가득한 자취(역사·history)예요.


  누가 어느 해에 태어나고 무슨 큰일을 하다가 어느 해에 죽었다고 하는 줄거리를 굳이 가르쳐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끝없이 쏟아지는 글(신문기사)을 죽 훑으면 으레 ‘서울에서 큰무리(거대정당)가 치고받는 쌈박질’이기 일쑤입니다. ‘서울에서 고즈넉이 골목길을 비질하고 나무 한 그루를 돌보는 할배’라든지 ‘시골에서 새벽 3시에 밭일을 하고서 쉬다가, 마을고양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간밤에 먹고 남은 된장찌개에 밥을 섞어서 그릇에 놓는 할매’ 같은 이야기가 머릿글(헤드라인)로 나온 일도 아예 본 바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 오늘일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읽고 쓰는 하루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갓 스무 살에 이르던 1994년 어느 봄날에 서울 기스락 헌책집에서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라는 분이 쓴 책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두레’에서 갓 옮긴 묵은책입니다. 나중에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 같은 이름으로 바뀌어 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녁이 쓴 책은 ‘이디시말’이라 했고, ‘텃말’로 글을 남기는 길을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남(사회·정부·세계화)을 따라가거나 뒤좇는 말길이나 글길이 아닌, 스스로 나고자란 숨빛을 헤아리면서 한 마디 두 마디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는 새길이 있을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집 네 사람은 다시 찾아온 밤에 촛불 한 자루를 켜고서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한창 촛불을 보는데 작은 촛불이 숱한 꽃송이로 벌어지더니 큰날개를 단 큰사람이 가만히 솟아서 하늘로 올랐습니다. 촛불에서 웬 날개사람이 나타나서 하늘로 오르나 싶어 살짝 놀랐지만, 촛불은 말없이 빛을 낼 뿐입니다. 살며시 눈을 감고서 너머길을 다독였습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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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멈출 수 있는 (2025.9.13.)

― 부산 〈무사이〉



  ‘이야기(대화·토론)’는 뜻맞거나 마음맞는 사람하고만 할 수 없습니다. 뜻맞거나 마음맞는 사람하고는 오히려 아무 말이 없이도 어울리게 마련입니다. 뜻이 안 맞고 마음조차 안 맞는 사람하고는 자주 만나서 말을 섞어야 비로소 조금씩 서로 알아갑니다. 뜻과 마음이 안 맞는데 말조차 안 섞으면서 고개를 휙휙 돌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내내 다투고 싸우고 겨루다가 나란히 죽습니다.


  요즈음 ‘다툼(갈등)’이라는 낱말로 서로 갈라서고 갈라치고 갈라놓는 담벼락이 부쩍 느는 듯합니다. 마을다툼(지역갈등)은 나들이(여행)를 누구나 흔히 하면서 꽤 허물었다고 느낍니다만, 둘다툼(남녀갈등·젠더전쟁)은 끔찍할 만큼 사납습니다. 미워하다 못해 ‘죽여 없어야 할 놈년’으로 바라본다면, 더 다투고 싸우다가 함께 죽을밖에 없어요. 갈래다툼(정치갈등·정쟁)도 끝없는데, 서로서로 무리짓기(팬덤·팬클럽·열성지지층)로 확 돌아선 채 삿대질만 합니다. 이쪽은 ‘극좌’가 아니고 저쪽은 ‘극우’가 아닙니다. 걸핏하면 서로 ‘극-’을 앞에 붙여서 손가락질하기 바쁘더군요.


  ‘극좌’란 말을 함부로 쓰는 무리도 이웃(상대방 존중)을 안 봅니다만, ‘극우’란 말을 마구 쓰는 무리도 이웃을 안 들여다봅니다. 예전에는 ‘진보·보수’라고만 하더니, 어느새 ‘극좌·극우’라는 말로 바뀐 채 노려보고 쏘아보는 싸움터로 번집니다.


  저놈더러 먼저 멈추라고 할 일이 아닙니다. 저놈부터 멈춰야 한다고 외칠 일이 아닙니다. 나부터 멈추면 됩니다. 나부터 너를 ‘극-’이 아닌, 그저 ‘왼’과 ‘오른’으로 보면 되는데, 왼오른이나 ‘순돌(순이돌이·여남)’ 같은 겉모습을 넘어서 오롯이 ‘사람’으로만 볼 일이에요. 그래서 둘을 놓고서 ‘비장애인·장애인’으로 긋지 않아야지요. 둘 모두 ‘사람’입니다.


  부산 〈무사이〉로 찾아가는 새벽에는 비가 시원히 쏟아졌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서 슬슬 책을 읽으며 전철을 갈아타고 거니는 동안에는 조용하다가, 〈무사이〉에서 나와서 다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연산동으로 건너갈 적에도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빗소리 참 대단하지요. 빗줄기 참 놀랍지요. 빗발 참 아름답지요.


  다 다른 책집에는 다 다른 손끝으로 다 다르게 여민 책이 다 다르게 깃들 적에 사랑스럽고 오붓하고 즐겁습니다. 책집마실을 할 적에는 ‘이미 아는 글님과 펴냄터’가 아닌 ‘책집 시렁에 놓인 아직 모르는책’에 손을 뻗기에 반갑고 느긋하고 새롭습니다.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요. 다 다른 책은 다 다른 들꽃입니다.


ㅍㄹㄴ


《미래 세대를 위한 민주시민 이야기》(정주진, 철수와영희, 2025.9.18.)

《군대를 버린 나라》(아다치 리키야/설배환 옮김, 검둥소, 2011.7.8./2013.2.14.3벌)

《그리운 날엔 사랑을 지어 먹어야겠다》(류예지, 책과이음, 2024.8.30.)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내 이름을 찾기로 했다》(김혜원, 느린서재, 2022.6.28.)

《일기장은 비웃질 않아》(심신, 피스카인드홈, 2024.11.30.첫/2025.2.20.2벌)

《부디 당신이 무사히 타락하기를》(무경, 나비클럽, 2025.6.18.)

《복닥맨션》(고유진과 열세 사람, 삼림지, 2025.3.17.)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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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흙묻은 2025.6.20.쇠.



흙묻은 손에서는 흙내음이 나. 물묻은 손에서는 물내음이 나고. 밥을 짓는 손에서는 밥내음이 날 테고, 비를 맞이하는 손에서는 비내음이 나겠지. 모든 곳에 냄새가 있고, 이 냄새에는 빛·빛깔·소리·몸짓에 마음·숨결·이야기가 감돌아. 너는 다 다른 냄새를 맡으면서 숱한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볼 수 있어. 너는 다 다른 냄새 가운데 ‘좋은냄새’만 좋아하고 ‘싫은냄새’를 싫어하면서, 이웃뿐 아니라 네 삶을 등지는 굴레를 스스로 살아갈 수 있어.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는 손”이야.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아왔든 이제부터 새롭게 살아가려는 손”이야. “어떤 손”이란 “어떻게 살았는지 짚으면서 하나하나 다시 배워서 바꾸어갈 손”이야. 구름내음이 묻은 바람을 느끼겠니? 별내음이 묻은 밤빛을 느끼겠니? 꽃내음이 묻은 씨앗을 느끼겠니? 네가 느끼려는 마음에 따라서 늘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고 밤이고 씨앗이야. 한 발짝씩 걸을 적마다 땅바닥을 느낄까? 한 포기씩 쥘 적마다 풀빛을 느낄까? 제비는 논에서 한 덩이씩 조금조금 물어서 둥지를 천천히 짓는구나. 숱한 날갯짓과 부리질이 닿으면 흙내음이 물씬 번지는 작은집이야. 어미제비가 낳은 알은 흙빛에 안겨서 아늑하게 자라다가 깨어나. 새끼제비를 돌보는 어미제비는 온몸을 흙빛으로 물들이면서 스스로 기운차게 살아가. 예부터 사람들은 땅바닥과 흙바닥을 느끼고 누리며 집을 지었고, 하루를 누렸고, 아이를 돌보았고, 이야기를 지었고, 즐겁게 철맞이와 해맞이를 했어. 흙묻은 손은 냇물로 씻고, 흙묻은 몸은 빗물로 달래고, 흙묻은 얼굴은 빙그레 웃으면서 하루를 노래해 왔어. 흙묻은 티가 없이, 높다랗고 빼곡하고 번쩍거리는 서울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너는 너희 나라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바라니? 네 손에는 흙내음이 흐르니? 너희 집에는 흙빛이 감싸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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