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9.18. 읽고 보고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몇 가지 일이 잇달았습니다. 먼저 간밤에 알쏭한 꿈자리였습니다. 이미 몸을 내려놓고서 저승길에 계신 분이 나타났어요. “무슨 일이지? 무슨 뜻이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고 물으려는 즈음 꿈에서 깹니다. 낮에 알낳기를 앞둔 암사마귀를 만났습니다. 마당에 세운 사다리를 타고서 기웃거리더군요. 암사마귀는 우리가 이쪽으로 가면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면서 눈알도 이쪽으로 돌립니다. 우리가 저쪽으로 가면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면서 눈알도 저쪽으로 돌려요.


  늦은낮에 두바퀴를 달려서 면소재지 가게에서 과일을 장만하는데, 가게지기님이 “사시는 마을에서 한 분 돌아가셨다는데 아셔요?” 하고 물으십니다. 아침에 마을 아재 한 분을 찾는다는 마을알림이 나왔는데, 간밤에 사라진 분이 윗마을 못에 빠져서 저승길로 가셨다더군요. 집으로 돌아와서 이 말을 들려주니, 저뿐 아니라 곁님과 두 아이도 간밤에 꿈에서 죽은 사람을 만났다고 얘기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네 사람은 마을 아재가 몸을 내려놓은 그무렵 나란히 느끼고 알아챘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주검길(장례)은 치르지 않는 듯싶습니다. 여태 마을에서 몸을 내려놓으신 분이 있으면 마을에서도 주검길을 치르고서 보냈는데, 오늘만큼은 안 치르는군요.


  갑자기 떠난 마을 아재는 이 삶이 어떠했으려나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아재는 마을살이를 무척 버거워했지만, 엄마아빠가 태어나서 자라고서 흙으로 돌아간 이 시골을 떠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엄마아빠가 나고자라서 돌아간 흙으로 나란히 돌아간 삶을 어느 새뜸(언론)에서도 다루거나 쓸 일은 없겠지요. 이 시골에서는 나리(군수·국회의원)쯤 저승길을 가야 새뜸에 날 테니까요.


  여러모로 보면, 가난하고 쓸쓸하게 살다가 떠난 사람을 다룬 궂김글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돈있거나 이름있거나 힘있는 사람이 삶을 내려놓으면 너도나도 궂김글을 씁니다. 이른바 자취(역사·history)에는 돈꾼과 이름꾼과 힘꾼만 나옵니다. 게다가 싸움박질만 가득한 자취(역사·history)예요.


  누가 어느 해에 태어나고 무슨 큰일을 하다가 어느 해에 죽었다고 하는 줄거리를 굳이 가르쳐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끝없이 쏟아지는 글(신문기사)을 죽 훑으면 으레 ‘서울에서 큰무리(거대정당)가 치고받는 쌈박질’이기 일쑤입니다. ‘서울에서 고즈넉이 골목길을 비질하고 나무 한 그루를 돌보는 할배’라든지 ‘시골에서 새벽 3시에 밭일을 하고서 쉬다가, 마을고양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간밤에 먹고 남은 된장찌개에 밥을 섞어서 그릇에 놓는 할매’ 같은 이야기가 머릿글(헤드라인)로 나온 일도 아예 본 바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 오늘일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읽고 쓰는 하루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갓 스무 살에 이르던 1994년 어느 봄날에 서울 기스락 헌책집에서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라는 분이 쓴 책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두레’에서 갓 옮긴 묵은책입니다. 나중에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 같은 이름으로 바뀌어 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녁이 쓴 책은 ‘이디시말’이라 했고, ‘텃말’로 글을 남기는 길을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남(사회·정부·세계화)을 따라가거나 뒤좇는 말길이나 글길이 아닌, 스스로 나고자란 숨빛을 헤아리면서 한 마디 두 마디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는 새길이 있을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집 네 사람은 다시 찾아온 밤에 촛불 한 자루를 켜고서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한창 촛불을 보는데 작은 촛불이 숱한 꽃송이로 벌어지더니 큰날개를 단 큰사람이 가만히 솟아서 하늘로 올랐습니다. 촛불에서 웬 날개사람이 나타나서 하늘로 오르나 싶어 살짝 놀랐지만, 촛불은 말없이 빛을 낼 뿐입니다. 살며시 눈을 감고서 너머길을 다독였습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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