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 잘못 쓰는 말을 왜 돌아보는가


 잘 쓰는 말이 되려면 내 마음이나 뜻을 잘 나타내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 쓰는 말이라 한다면 내 마음이나 뜻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말입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나 혼자만 잘 안다 해서 잘 쓴 말이나 글이 되지 않습니다. 내 말을 듣는 사람이나 내 글을 읽는 사람이 함께 잘 알아듣도록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잘 쓴 말이나 글입니다.

 어린 동생한테 말을 건다고 생각해 보셔요. 말사랑벗이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나 취미 이야기를 할머니한테 들려준다고 헤아려 보셔요. 말사랑벗은 좋아할는지 모르나, 말사랑벗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한테는 낯설거나 영 모를 이야기를 ‘어떠한 말’로 들려주는지를 곱씹어 보셔요.

 학교에서 말사랑벗을 가르치는 분들은 어떤 말투와 낱말로 교과서를 가르치는지 짚어 보셔요. 집에서 어버이가 쓰는 말은 어떠한지 되뇌어 보셔요. 동무들끼리 주고받는 말이랑, 동네에서 흔히 듣는 말이랑, 신문이나 책이나 교과서에 적힌 글이랑, 가만히 견주어 보셔요.

 모든 말과 글은, 첫째, 잘 알아들을 수 있게끔 써야 합니다. 잘 알아듣기 힘들게 썼다면 옳지 못한 말이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말과 글은, 둘째, 옳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말법을 옳게 맞추고 말투를 바르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모든 말과 글은, 셋째, 슬기롭고 착하게 써야 합니다. 어영부영 말할 때에는 어영부영 듣고 맙니다. 어설피 말하니까 어설피 듣습니다. 모든 잘잘못은 말이나 글을 처음 꺼낸 사람한테서 비롯합니다. 슬기롭게 말을 한대서 꼭 슬기롭게 듣는다 할 수 없으나, 슬기롭게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 슬기로이 말하는 넋을 추슬러야 합니다. 착하게 말한다 하더라도 착하게 듣지 않는 사람이 많으나, 착하게 어깨동무하기를 꿈꾸면 착하게 말하는 얼을 다스려야 좋아요.

 말하기와 글쓰기 밑틀은 이 세 가지로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인다면, 맞춤법까지 잘 맞추고 띄어쓰기를 알맞게 살필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테고, 어차피 나눌 말이라면 한결 따스하면서 살가이 펼칠 때에 더욱 좋습니다. 군더더기 없도록 돌아보면 더 좋고,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않은 알맞춤한 길이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참으로 좋아요.

 다음으로 하나를 더 살핀다면, 내가 쓰는 말이 참말 우리말답다 할 만한지 살핀다면 아주 고맙습니다. 이 대목까지 바라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을 살아가는 말사랑벗은 영어를 더 잘 쓰거나 한자 지식을 더 익히거나 갖가지 자격증을 더 갖추도록 내몰리거든요. 바쁘고 힘든 나머지 말사랑벗 스스로 말사랑벗이 날마다 쓰는 말글을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이 건사할 겨를이 없어요. 대학입시로도 바쁠 뿐더러, 대학입시가 아니라 이 일 저 일 아주 고단할 텐데, ‘참말 우리말다운지’를 살피라 하는 일은 무거운 굴레를 뒤집어씌우는 셈입니다.

 이리하여, 말하기와 글쓰기 밑틀은 딱 세 가지로만 듭니다. 더 기운을 낼 수 있거나 더 사랑을 쏟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를 읽으면서 생각을 기울여 주셔요. 괜히 섣부른 지식쌓기로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를 읽다가는 머리가 핑핑 돕니다. ‘우리말 달인’이 되자며 읽을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가 아니에요. ‘우리말 깨끗이 지키기’를 하자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또한 아닙니다. 말사랑벗 스스로 깨끗하다고 느끼는 삶을 사랑하면서 지내면, 저절로 우리말을 깨끗하게 지킵니다. 나 스스로 맑으면서 고운 삶을 돌본다면, 내 넋과 말은 시나브로 맑으면서 고운 결을 이을 수 있어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는 말꼬리잡기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얄궂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 해서 “당신은 뭔데 말을 요로코롬 하우?” 하고 따지자는 말꼬리잡기가 아니에요. 우리말을 바르게 손보면서 내 삶을 바르게 추스르자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입니다. 우리말을 바르게 손보는 가운데 내 마음밭을 알차게 일구겠다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예요. 책을 읽을 때에 더 깊이 읽으면서 더 제대로 헤아리자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입니다. 내가 늘 쓰는 우리말이 얼마나 우리말다운가를 톺아보면서 내 꿈을 한껏 알뜰히 보살피고프다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입니다.

 이 말은 맞고 저 말은 그릇되니까 엉터리라 일컫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또한 아닙니다. 이렇게만 써야 하고 저렇게는 써서는 안 된다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도 아니에요.

 우리말이 어느 만큼 우리말다운가를 살피면서, 우리말다움을 빛내는 길이란 어떻게 찾아서 걸어가야 즐거운가를 함께 어깨를 겯고 생각하자는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로 삼아 읽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 상자에 담아.”랑 “이 박스에 담아.”를 놓고 본다면, “이 상자에 담아.”로 써야 알맞고 올바르지만, “이 박스에 담아.”라 말하는 사람을 함부로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해서는 안 됩니다. 나 스스로 즐거이 옳고 바르게 말하면서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꿈을 빛내는 길에서 함께할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입니다. (4344.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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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1
― 대학교 바깥에서 사진 배우기



 저는 대학교 사진학과나 사진과라든지, 고등학교 사진과를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저로서는 이러한 곳을 다니면서 어떠한 사진을 배워 어떠한 삶을 일굴 수 있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은 대학교를 다니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대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으로서 사진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 하는 한 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으며, 사진을 전공으로 삼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다섯 학기를 다니고 대학교를 그만두던 때는 1994∼1998년입니다. 사이에 군대살이를 스물여섯 달 했기에 햇수로 치면 조금 깁니다. 저는 대학교를 한 학기 다닌 1994년 여름에 ‘대학교가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대학교에 들어오자며 그토록 푸른 날을 아깝게 내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대학교쯤 된다면 제대로 학문을 파고들면서 내 삶과 이웃 삶을 살뜰히 보듬는 길을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라는 데는 고등학교하고 다를 바 없을 뿐 아니라, 사이사이 강의가 비는 때마다 도서관에 가는 선·후배는 찾아볼 길이 없으며, 도서관에 간달지라도 책을 읽으러 가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도서관에 가는 까닭은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보고서 쓰는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도서관에 갖춘 책부터 그리 안 많기도 한데다가 대학생이 도서관에서 빌린다는 책은 ‘유행하는 소설’에 그칩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대학생이 빌린 다음 돌려주는 책을 책시렁 제자리에 꽂는 일’을 한 해 동안 해 보면서, 대학생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엉터리로 읽고 함부로 다루는가를 깨달았습니다.

 1995년 가을에 군대에 들어가기 앞서 휴학계를 냈지만, 제 마음은 휴학계 아닌 자퇴서를 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말렸기에 휴학계로 그쳤고, 1998년에 군대살이를 마친 뒤에도 어머니가 한 해만 더 다녀 보라 해서 한 해만 더 다닌 뒤에 다시금 휴학계를 냈습니다. 저는 따로 나와 살며 살림돈과 책값은 제가 벌어서 댔으나 비싼 배움값은 아버지한테서 빌려 댔습니다. 자퇴를 하면 그동안 빌린 배움값을 은행에 한꺼번에 갚아야 한대서 휴학계를 냈습니다.

 대학교를 다닐 때에 겪어 보니, 한국땅에서 대학교는 학문이나 문화나 창작이나 꿈을 키워 주지 않습니다. 대학교는 학점과 졸업장을 주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와서는 문학을 하든 학문을 하든 예술을 하든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농사를 하든 할 수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자가 될 만큼 여러 가지 손재주를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기술자가 되는 손재주는 학원에서 가르쳐 줍니다. 모든 배움과 재주는 스스로 찾아서 갈고닦아야 합니다. 교재로 쓰는 책을 읽는다 해서 내가 전공으로 삼은 학문을 깊이 파고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교재 아닌 다른 책으로 무엇이 있는가를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모두 스스로 찾아야 하고 손수 살펴야 하며 몸소 곰삭여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하든 글을 하든 그림을 하든 하자면 ‘졸업장 없으면 받아 주는 데가 없다’시피 하니까 대학교에 안 가면 안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강단에도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강사나 교수 일을 하면서 우리들을 가르치려고 애씁니다. 다만, 이분들은 알뜰살뜰 가르치려고 애를 쓰시지만 몇 사람 안 되고, 몇 사람 안 될지라도 참으로 애쓰시는데, 워낙 고등학생 때까지 입시지옥에 시달려 ‘스스로 찾아서 배울 줄 모르는’ 아이들한테 ‘스스로 찾아서 배우기’를 알려주려고 애쓸 뿐이지, 이밖에 다른 어떠한 이야기도 가르쳐 주지는 못합니다. 입시교육에 찌든 때를 벗겨 주는 대학교라고 할까요. 그나마, 이마저도 스스로 더 애써서 내 허물을 벗으려고 하는 사람들만 알아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스스로 허물벗기를 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허물벗기를 못하지만, 대학교를 다녀도 허물벗기를 못합니다. 스스로 허물벗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허물벗기를 하지만,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허물벗기를 합니다.

 1994∼1998년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내야 하던 배움값은 한 해를 줄잡아 150만입니다. 2010년대에 들어선 오늘날 대학교를 다닐 때에 내야 하는 배움값은 한 해를 줄잡으면 1000만 원입니다. 숫자로 치면 오늘날이 훨씬 비싼 듯하지만, 물건값 오름세를 따지면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똑같습니다.

 제가 대학생 아닌 여느 사회사람으로서 책을 가까이하고 사진을 좋아하는 삶을 일구면서 책과 사진을 배우려 했다면, 한 해 150만 원이란 어마어마하게 큰 돈입니다. 그무렵 저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먹고살았으며, 신문배달 한 달 일삯이 1995년에는 16만 원, 1998년에는 32만 원이었습니다. 신문사지국에서 밥값이랑 잠값을 대주었으니 밥값이랑 잠값을 따지면 꽤나 많이 받는 셈이에요. 이런 살림에서 150만 원이면 알음알음으로 잠자리를 얻어서 자고 밥도 얻어먹는다면 한 해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한국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여인숙 작은 방에서 잠을 잔다 해도 석 달 넘게 다닐 수 있어요(1994∼1998년에). 요즈음 2010년대에는 여인숙 작은방을 15000원 받고 시골 여관이면 20000원 받을 테니까 한 해 1000만 원이면 여관만 돌면서도 잠값이 다 나오고 밥도 웬만큼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하고 자전거를 한 대씩 장만해서 한 해 동안 나라안 이 마을 저 마을 돌면서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터전을 마주할 수 있어요. 나와 함께 한국말을 쓰면서 한국사람으로 지내는 이웃이 어떠한 삶을 일구는가를 마주할 수 있어요. 때때로 어느 마을에서는 일손을 거들면서 여행삯을 보탤 수 있겠지요.

 어떤 지식을 더 갖추었대서 사진을 더 잘 찍지 않는 만큼, 더 두루 다니며 더 깊이 사람을 사귀면서 지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내가 어디에서 누구를 왜 어떻게 언제 사진으로 담으면 좋을까를 시나브로 깨달으리라 생각합니다. 알아야 찍는 사진이 아니라, 살아야 찍는 사진입니다. 만나고 마주하며 부대끼면서 비로소 언제 어디에서 사진기 단추를 눌러야 하는가를 깨달으리라 봅니다.

 다큐사진은 나라밖 인도나 티벳이나 중남미나 아프리카에 있지 않습니다. 패션사진은 서울 강아랫마을이나 스튜디오에 있지 않습니다. 예술사진은 옷 벗긴 모델 아가씨 몸매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진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깃듭니다. 살아도 사람이 살고, 살아도 마을에서 사람이 삽니다. 내 삶을 보고 이웃 삶을 보아야 사진으로 어떤 이야기를 엮으면 좋을까를 알아챕니다. 내 삶을 살피며 동무 삶을 살펴야 사진으로 어떤 삶자락을 담으면 즐거울까를 알아냅니다.

 대학교 바깥에서 사진을 배운다 할 때에는 ‘사진 학문’이 아닌 ‘사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이야기를 샘솟도록 이끄는 물줄기이자 밑바탕’을 배운다는 소리입니다.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우든 대학교 바깥에서 스스로 사진을 익히든, 사진을 찍는 나부터 사람이고, 사진에 찍히는 모든 모습은 사람들 모습이거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이거나 사람들 꿈꾸거나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자연 풍경을 찍는달지라도 자연 풍경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 터전이 가장 스스럼없이 펼쳐진 풍경’입니다. 풀과 나무와 햇볕과 물과 바람이 없이는 사람이 살아가지 못해요. 도시만 있으면 사람은 몽땅 죽습니다. 시골 논밭이랑 사람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끔한 자연 터전이 함께 있어야 사람이 살아갑니다. 공장에서 음료수와 공산품과 식료품을 만들어 낸다 해서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아요. 모든 공장 물건은 자연에서 재료를 얻어서 만듭니다. 자연 풍경 사진이랄지라도 사람 내음과 빛깔과 살결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가끔 ‘출사’를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찍는 사진이 아니라, 늘 내가 부대끼는 자리에서 사귀는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게끔 내 매무새를 다스리는 사진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한국사진을 돌아보면, 다큐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또 무슨무슨 이름을 내거는 사진이든 ‘출사 사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사진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처음부터 ‘출사 사진 배우기’ 아닌 ‘살아가는 내 하루를 사랑하는 사진 배우기’를 즐거이 꾸렸던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4344.2.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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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책읽기


 좋은 사람을 마주하면 좋은 사람이 나누어 주는 좋은 삶과 넋과 말을 받아들이면서 즐겁습니다. 나쁜 사람을 마주하면 나쁜 사람이 풍기는 나쁜 삶과 넋과 말을 맞아들이면서 괴롭습니다.

 살아가면서 늘 좋을 수만 없으니 나쁜 일도 겪겠지요. 그러나 좋고 나쁜 일이 되풀이되는 삶이라기보다, 좋은 사람을 마주하는 동안 나부터 좋은 삶을 일굴 때에 나와 내 둘레 사람들한테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가를 헤아립니다. 나쁜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동안 나부터 나쁜 짓을 하면서 살아갈 때에 나부터 얼마나 나쁜 냄새를 풍길 뿐 아니라 내 둘레 사람한테도 얼마나 괴로우며 고달플까를 떠올립니다.

 좋다 하는 책이 아닌 나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책을 읽을 때에는 내 삶을 좋은 쪽으로 일굽니다. 나쁘다 하는 책이 아닌 나 스스로 나쁘다고 느끼는 책을 쥐어야 할 때에는 내 삶이 나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단단히 다스리거나 추스릅니다. (4344.2.1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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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삯과 책값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달삯을 치르느라 주머니가 텅텅 비었다. 그래도 사야 할 책은 꼬박꼬박 사면서 살았다. 어떻게 달삯 다 치르고 옆지기 밥 먹이며 책까지 살 수 있었나 용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살림돈 바닥나 갤갤대던 때마다 생각하지 않던 곳에서 도움돈을 받았고, 정 힘들 때에는 형한테서 살림돈을 얻기도 했다. 내 둘레 사람들은 우리 식구가 좋은 책을 가까이하면서 좋은 책이 널리 사랑받도록 힘쓰는 일을 한결같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둘레 사람들 힘과 사랑과 손길을 받으면서 살림을 꾸리고, 책을 읽는다.

 시골에서 살면서 달삯을 치르지 않으나 주머니가 가득하지는 않다. 그러니 시골에서 산달지라도 책을 마음껏 사들일 수는 없다. 다만, 주머니가 비지도 차지도 않는 살림이기는 하나, 사야 할 책이 있을 때에는 여러 날 조용히 지낸 다음 덜컥 지르듯이 장만한다. 곰곰이 살피면 살림돈 없기야 어디에서나 매한가지인데, 우리 식구가 시골집에서 집삯 안 내며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분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면서 살림을 꾸리다가는 읽고 싶거나 도서관에 갖추고픈 책이 있으면 마음껏 사들인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이끈다. 좋은 사람들 손길은 크거나 많거나 대단하지는 않으나, 좋은 책 하나 스러지지 않을 만큼 알맞으면서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4344.2.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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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2.13. 

충청북도 음성군 읍내4리. 

지난날에는 '초가삼간'이었다는 집. 박정희 새마을운동 때에 처음 올린 슬레트지붕이 아직 잘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시골집. 방 둘에 부엌 하나. 또는 방 하나인데 문이 둘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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