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1
― 대학교 바깥에서 사진 배우기
저는 대학교 사진학과나 사진과라든지, 고등학교 사진과를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저로서는 이러한 곳을 다니면서 어떠한 사진을 배워 어떠한 삶을 일굴 수 있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은 대학교를 다니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대학교를 다니지 않은 사람으로서 사진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 하는 한 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으며, 사진을 전공으로 삼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다섯 학기를 다니고 대학교를 그만두던 때는 1994∼1998년입니다. 사이에 군대살이를 스물여섯 달 했기에 햇수로 치면 조금 깁니다. 저는 대학교를 한 학기 다닌 1994년 여름에 ‘대학교가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대학교에 들어오자며 그토록 푸른 날을 아깝게 내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대학교쯤 된다면 제대로 학문을 파고들면서 내 삶과 이웃 삶을 살뜰히 보듬는 길을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라는 데는 고등학교하고 다를 바 없을 뿐 아니라, 사이사이 강의가 비는 때마다 도서관에 가는 선·후배는 찾아볼 길이 없으며, 도서관에 간달지라도 책을 읽으러 가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도서관에 가는 까닭은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보고서 쓰는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도서관에 갖춘 책부터 그리 안 많기도 한데다가 대학생이 도서관에서 빌린다는 책은 ‘유행하는 소설’에 그칩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대학생이 빌린 다음 돌려주는 책을 책시렁 제자리에 꽂는 일’을 한 해 동안 해 보면서, 대학생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엉터리로 읽고 함부로 다루는가를 깨달았습니다.
1995년 가을에 군대에 들어가기 앞서 휴학계를 냈지만, 제 마음은 휴학계 아닌 자퇴서를 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말렸기에 휴학계로 그쳤고, 1998년에 군대살이를 마친 뒤에도 어머니가 한 해만 더 다녀 보라 해서 한 해만 더 다닌 뒤에 다시금 휴학계를 냈습니다. 저는 따로 나와 살며 살림돈과 책값은 제가 벌어서 댔으나 비싼 배움값은 아버지한테서 빌려 댔습니다. 자퇴를 하면 그동안 빌린 배움값을 은행에 한꺼번에 갚아야 한대서 휴학계를 냈습니다.
대학교를 다닐 때에 겪어 보니, 한국땅에서 대학교는 학문이나 문화나 창작이나 꿈을 키워 주지 않습니다. 대학교는 학점과 졸업장을 주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와서는 문학을 하든 학문을 하든 예술을 하든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농사를 하든 할 수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자가 될 만큼 여러 가지 손재주를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기술자가 되는 손재주는 학원에서 가르쳐 줍니다. 모든 배움과 재주는 스스로 찾아서 갈고닦아야 합니다. 교재로 쓰는 책을 읽는다 해서 내가 전공으로 삼은 학문을 깊이 파고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교재 아닌 다른 책으로 무엇이 있는가를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모두 스스로 찾아야 하고 손수 살펴야 하며 몸소 곰삭여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하든 글을 하든 그림을 하든 하자면 ‘졸업장 없으면 받아 주는 데가 없다’시피 하니까 대학교에 안 가면 안 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강단에도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강사나 교수 일을 하면서 우리들을 가르치려고 애씁니다. 다만, 이분들은 알뜰살뜰 가르치려고 애를 쓰시지만 몇 사람 안 되고, 몇 사람 안 될지라도 참으로 애쓰시는데, 워낙 고등학생 때까지 입시지옥에 시달려 ‘스스로 찾아서 배울 줄 모르는’ 아이들한테 ‘스스로 찾아서 배우기’를 알려주려고 애쓸 뿐이지, 이밖에 다른 어떠한 이야기도 가르쳐 주지는 못합니다. 입시교육에 찌든 때를 벗겨 주는 대학교라고 할까요. 그나마, 이마저도 스스로 더 애써서 내 허물을 벗으려고 하는 사람들만 알아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스스로 허물벗기를 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허물벗기를 못하지만, 대학교를 다녀도 허물벗기를 못합니다. 스스로 허물벗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허물벗기를 하지만,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허물벗기를 합니다.
1994∼1998년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내야 하던 배움값은 한 해를 줄잡아 150만입니다. 2010년대에 들어선 오늘날 대학교를 다닐 때에 내야 하는 배움값은 한 해를 줄잡으면 1000만 원입니다. 숫자로 치면 오늘날이 훨씬 비싼 듯하지만, 물건값 오름세를 따지면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똑같습니다.
제가 대학생 아닌 여느 사회사람으로서 책을 가까이하고 사진을 좋아하는 삶을 일구면서 책과 사진을 배우려 했다면, 한 해 150만 원이란 어마어마하게 큰 돈입니다. 그무렵 저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먹고살았으며, 신문배달 한 달 일삯이 1995년에는 16만 원, 1998년에는 32만 원이었습니다. 신문사지국에서 밥값이랑 잠값을 대주었으니 밥값이랑 잠값을 따지면 꽤나 많이 받는 셈이에요. 이런 살림에서 150만 원이면 알음알음으로 잠자리를 얻어서 자고 밥도 얻어먹는다면 한 해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한국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여인숙 작은 방에서 잠을 잔다 해도 석 달 넘게 다닐 수 있어요(1994∼1998년에). 요즈음 2010년대에는 여인숙 작은방을 15000원 받고 시골 여관이면 20000원 받을 테니까 한 해 1000만 원이면 여관만 돌면서도 잠값이 다 나오고 밥도 웬만큼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하고 자전거를 한 대씩 장만해서 한 해 동안 나라안 이 마을 저 마을 돌면서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터전을 마주할 수 있어요. 나와 함께 한국말을 쓰면서 한국사람으로 지내는 이웃이 어떠한 삶을 일구는가를 마주할 수 있어요. 때때로 어느 마을에서는 일손을 거들면서 여행삯을 보탤 수 있겠지요.
어떤 지식을 더 갖추었대서 사진을 더 잘 찍지 않는 만큼, 더 두루 다니며 더 깊이 사람을 사귀면서 지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내가 어디에서 누구를 왜 어떻게 언제 사진으로 담으면 좋을까를 시나브로 깨달으리라 생각합니다. 알아야 찍는 사진이 아니라, 살아야 찍는 사진입니다. 만나고 마주하며 부대끼면서 비로소 언제 어디에서 사진기 단추를 눌러야 하는가를 깨달으리라 봅니다.
다큐사진은 나라밖 인도나 티벳이나 중남미나 아프리카에 있지 않습니다. 패션사진은 서울 강아랫마을이나 스튜디오에 있지 않습니다. 예술사진은 옷 벗긴 모델 아가씨 몸매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진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깃듭니다. 살아도 사람이 살고, 살아도 마을에서 사람이 삽니다. 내 삶을 보고 이웃 삶을 보아야 사진으로 어떤 이야기를 엮으면 좋을까를 알아챕니다. 내 삶을 살피며 동무 삶을 살펴야 사진으로 어떤 삶자락을 담으면 즐거울까를 알아냅니다.
대학교 바깥에서 사진을 배운다 할 때에는 ‘사진 학문’이 아닌 ‘사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이야기를 샘솟도록 이끄는 물줄기이자 밑바탕’을 배운다는 소리입니다.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우든 대학교 바깥에서 스스로 사진을 익히든, 사진을 찍는 나부터 사람이고, 사진에 찍히는 모든 모습은 사람들 모습이거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이거나 사람들 꿈꾸거나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자연 풍경을 찍는달지라도 자연 풍경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 터전이 가장 스스럼없이 펼쳐진 풍경’입니다. 풀과 나무와 햇볕과 물과 바람이 없이는 사람이 살아가지 못해요. 도시만 있으면 사람은 몽땅 죽습니다. 시골 논밭이랑 사람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끔한 자연 터전이 함께 있어야 사람이 살아갑니다. 공장에서 음료수와 공산품과 식료품을 만들어 낸다 해서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아요. 모든 공장 물건은 자연에서 재료를 얻어서 만듭니다. 자연 풍경 사진이랄지라도 사람 내음과 빛깔과 살결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가끔 ‘출사’를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찍는 사진이 아니라, 늘 내가 부대끼는 자리에서 사귀는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게끔 내 매무새를 다스리는 사진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한국사진을 돌아보면, 다큐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또 무슨무슨 이름을 내거는 사진이든 ‘출사 사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사진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처음부터 ‘출사 사진 배우기’ 아닌 ‘살아가는 내 하루를 사랑하는 사진 배우기’를 즐거이 꾸렸던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4344.2.14.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