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쓸모없어, 네 오지랖



  쓸모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쓸모있는 일이 남달리 있을까? 그렇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퍽 많은 분들이 쓸모없는 일에 너무 기울지 싶다. 스스로 사랑하고, 모든 일놀이를 사랑으로 기쁘게 할 수 있을 텐데, 사랑하고 사랑받는 모든 곳에서 즐겁게 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펴는 분은 뜻밖에 드물지 싶다.


  아니, 사랑하고 사랑받는 온하루를 기쁘게 노래하는 분은 많다고 해야겠지. 많이 배우거나, 많이 쥐거나, 많이 드날리거나, 많이 부리는 이야말로 사랑이 없는 채 움직인다고 느낀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많이’나 ‘적게’가 없다. 남이 보기에는 많거나 적어 보일 테지만, 사랑살림일 적에는 “늘 스스로 즐겁게”일 테니까.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무렵을 떠올린다. 그때 동무들은 “야, 너 그런 책 왜 읽어? 그 책이 시험(수능)에 나온대?” 하고 묻는다. “아마, 이 책이나 이 책을 쓴 사람이 남긴 다른 글은 시험에 안 나올 듯해.” “그래? 알면서도 읽어? 시간 안 아까워?” “책을 꼭 시험에 나와야만 읽니? 읽어야 할 책이니 읽고, 배워야 할 책이니 배워.” “시험에 안 나오는 책을 뭐 하러 읽어? 정 읽고 싶으면 대학교에 붙고 나서 읽으면 되잖아.” “그래? 오늘 안 읽는 책을 나중에 가서 읽을 수 있을까? 내가 보기론 말야, 코앞에 시험이 닥쳤다고 해서 안 읽는 책은 있지, 시험이 끝난 뒤에도 안 읽어. 그래서 나는 오늘 읽을 책을 그저 읽을 뿐이야.” “…….” “너, 생각해 봐.” “뭘?” “내가 ‘시험에 나올 턱도 없는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할 시험공부는 스스로 끝냈기 때문에 ‘시험에 나오든 안 나오든’ 스스로 읽어. 그리고 ‘시험에 안 나오는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이 삶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들 시험문제를 더 잘 풀지 않을 수 있지만, 거꾸로 이 책을 읽기 때문에 한결 느긋해. 생각을 깊고 넓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시험문제에 안 나오는 책’을 읽으면서 더 ‘시험공부 대비를 잘할’ 수 있어.” “야, 네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응, 그러니까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알고 싶으면 너도 이럴 때에 책 좀 읽어 봐. 추천도서나 권장도서에 아예 들어간 적 없는 책을 읽으면, 너도 ‘생각’을 해볼 수 있어.”


  열일고여덟 살 무렵이던 1991∼92년에 동무하고 나눈 말은 오지랖이었을까? 바보스런 멋이었을까? 얼토당토않은 핑계였을까? 그러나 푸른배움터 여섯 해 내내 ‘중간·기말시험’뿐 아니라, 1993년 9월과 11월에 있던 우리나라 첫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러 가는 길에도 ‘수험서 아닌 책’을 잔뜩 챙겼다. 나는 ‘수능 1교시·2교시’가 끝나고서 숨돌리는 틈뿐 아니라, 도시락을 먹는 낮밥 무렵에도 ‘수험서 아닌 그냥 책’을 펼쳐서 읽으며 마음을 다독이고 다스리면서 이다음에 치를 셈겨룸을 헤아렸다.


  이날 저녁에 만난 또래는 “너 진짜 미쳤구나. 그때에 수험서를 한 쪽이라도 더 보았으면 10점은 더 나오지 않아? 아니 20점도 더 나오겠다.” “아니야. 안 나올 점수는 그때 더 들여다본다고 해서 나오지 않아. 나올 점수는 알아서 나와. 그리고 나는 그때 ‘그냥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기에 시험을 더 잘 치를 수 있었어.”


  ‘오지랖’이란 뭘까? ‘옷자락’을 가리키는 낱말일 텐데, 옷자락이 넓으면, 품이 넓어서 푸근하게 품을 줄 아는 마음이기도 하다. 오지랖이 넓기에 겨울에도 나눌 수 있고, 너른 옷자락을 잘라서 건넬 수 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닌 ‘끼어들기’를 하는 사람은 다르다. ‘끼어들기’를 하는 사람은 늘 말썽을 일으키고, ‘쑤석거린다’고 할 만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오지랖이 아닌 끼어들기를 하니까. 알지 않기에 뒷말이나 남말이나 쑥덕질을 할 테고.


  오지랖은 쓸모없는 짓일까. 오지랖은 그냥 바보짓이고 귀찮거나 성가시게 구는 짓일까. 오지랖이라고 하는 ‘품’이 넓은 사람이란, 언제나 스스로 넓게 펴고 살림을 짓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오지랖이 없다면 ‘품’이 좁거나 밭은 나머지, 오히려 ‘나(스스로)’부터 스스로 돌아볼 줄 모르고 바라볼 줄 모르게 마련이라, 이때에는 ‘남’을 헤아릴 그릇이 안 된다고 느낀다. 둘레를 볼 만큼 느긋하고 넉넉하기에 오지랖이요, 둘레를 안 보고 냅다 달려들기에 끼어들기일 테지.


  굳이 ‘쓸모있는’ 뭘 해야 하지 않다. ‘쓸모있는’ 글을 써야 하지 않다. 지난날 ‘쓸모있는’ 글이란, ‘애국·충성·효도·교훈’이었고, 오늘날 ‘쓸모있는’ 글이란, ‘돈·이름·힘’이라고 느낀다. 돈되거나 이름팔거나 힘센 글을 써야 할까?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는 글을 써야 하지 않나? 쓸모있을 글이 아니라, 스스로 이 삶을 사랑하면서 나랑 너를 아우르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글을 쓸 일이지 않나? 글삯이 톡톡해야 글을 쓴다는 이름꾼(유명작가)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나는 글삯이 0원이어도 기꺼이 쓴다. 나는 나부터 스스로 살리고, 곁님과 아이들과 이웃이 어깨동무하면서 푸르게 피어날 숲길을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2025.2.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인복 人福


 인복이 많다 → 사람이 많다

 인복이 있다 → 빛살이 있다

 인복이 박하다 → 사람길이 궂다

 인복을 타고나다 → 사랑을 타고나다

 인복이 있는 사람 같다 → 빛이 있는 사람 같다


  ‘인복(人福)’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복 ≒ 인덕”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사람·사람들’이나 ‘사람값·사람길·사람몫’이라 할 만합니다. ‘사람꽃·사람빛·사람사랑’이라 할 수 있어요. ‘빛·빛살·빛발’이나 ‘사랑·사랑멋·사랑맛’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인복(認服)’을 “어떤 일을 인정하여 복종함”으로 풀이하며 싣지만 털어냅니다. ㅍㄹㄴ



인복은 타고났다

→ 사람은 타고났다

→ 사랑은 타고났다

→ 빛은 타고났다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나호선, 여문책, 2022) 11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맛의


 어떤 맛의 밥일까 → 어떤 맛인 밥일까

 예전의 맛의 기억으로 복원해서 → 예전 맛을 떠올리고 되살려서

 반가운 맛의 국밥이다 → 국밥맛이 반갑다


  ‘맛 + -의’ 얼거리라면 ‘-의’를 털면 되고, ‘-인’으로 토씨를 손볼 만합니다. ‘-이’로 토씨를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이런) 맛의 술이야” 같은 짜임새라면 “(이런) 술맛이야”로 손볼 수 있어요. ㅍㄹㄴ



같은 맛의 과일 시럽을 채도를 달리해서 시식하게 한 실험

→ 같은 맛인 과일 단물을 빛결을 달리해서 맛보기

→ 맛이 같은 과일 달콤물을 빛을 달리해서 맛선

《색의 놀라운 힘》(장 가브리엘 코스/김희경 옮김, 이숲, 2016) 69쪽


자네들이 모르는 맛의 술이야

→ 자네들이 모르는 맛인 술이야

→ 자네들이 모르는 술맛이야

《모야시몬 5》(이시카와 마사유키/김시내 옮김, 시리얼, 2019) 39쪽


처음 맛본 어죽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맛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 처음 고깃밈을 맛보며 맛결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 처음 고깃보미를 맛보며 맛빛을 새롭게 일깨웠다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 129쪽


맛의 감각을 잊었을지도 몰라요

→ 맛을 잊었을지도 몰라요

→ 혀맛을 잊었을지도 몰라요

《플라타너스의 열매 9》(히가시모토 토시야/원성민 옮김, 대원씨아이, 2024) 2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동체착륙



 동체착륙을 시도하였다 → 몸으로 내리려 하였다

 활주로에 동체착륙으로 충돌하였다 → 나래길에 몸받이로 부딪혔다


동체착륙(胴體着陸) : [교통] 착륙 장치가 작동이 안 될 때에 비행기의 동체를 직접 땅에 대어 착륙함



  하늘을 날다가 땅으로 내려앉을 적에 바퀴를 쓸 수 없으면 몸으로 내립니다. 이때에는 ‘몸받이’나 ‘몸내림’이라 할 만합니다. “몸으로 내리다”처럼 수수하게 써도 어울려요. ㅍㄹㄴ



내가 탄 그 비행기는 일본 공항에서 동체착륙

→ 내가 탄 날개는 일본 하늘나루에서 몸받이

→ 내가 탄 날개는 일본 하늘나루에서 몸내림

《노다메 칸타빌레 5》(니노미야 토모코/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03) 18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일타강사



 일타강사를 섭외한다 → 으뜸길님을 모신다

 일타강사의 설명을 듣고서 → 꽃잡이 이야기를 듣고서

 유명한 일타강사를 초청해서 → 이름난 별잡이를 불러서


일타강사 : x

일타 : x

강사(講師) 1. 학교나 학원 따위에서 위촉을 받아 강의를 하는 사람. 시간 강사와 전임 강사가 있다 2. 모임에서 강의를 맡은 사람 3. [불교] 강당에서 경론을 강의하는 승려



  낱말책에 없지만 퍽 널리 쓰는 ‘일타강사’는 ‘一star講師’처럼 적습니다. 하나도 우리말스럽지 않아도 거리끼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별 하나로 꼽을 만한 길잡이일 적에는 ‘꼭두길님·꼭두길잡이·꼭두길잡님’이나 ‘으뜸길님·으뜸길잡이·으뜸길잡님’이라 할 만합니다. 단출히 ‘첫별·샛별’이라 해도 어울려요. ‘별님·별씨·별꽃·별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님·꽃잡이·꽃바치·꽃길님·꽃길잡이’라 해도 되고요. ㅍㄹㄴ



일타강사가 이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 으뜸길잡이가 이 책을 읽어 주었다

→ 꼭두길잡이가 이 책을 읽어 주었다

《숲속책방 천일야화》(백창화, 남해의봄날, 2021) 187쪽


분야별 일타강사가 누구인지를 두고 자발적으로 훌리건이 되어

→ 갈래마다 누가 첫별인지를 두고 스스로 바보가 되어

→ 밭마다 누가 별님인지를 두고 기꺼이 목매달고서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나호선, 여문책, 2022) 1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