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차와 책읽기


 서울 홍대 앞에서 전철을 내린다. 사람들이 참 미어터진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 가운데 안 바쁜 사람은 아주 느리게 걷는다. 느리게 걸으면서 뒷사람 가운데 바쁜 이가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걸을 때에는 자리를 조금만 차지하면서 한쪽으로 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복판을 널따랗게 차지하며 여럿이 손을 나란히 잡으면서 걸으니, 이리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저리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미적거리는 앞사람 궁둥짝만 멀뚱멀뚱 올려다보면서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끙끙거려야 한다.

 나 또한 이 미어터지는 사람들하고 똑같이 미어터지는 한 사람이다. 나 또한 사람물결을 이루는 한 사람이다. 바깥으로 나와도 길에는 사람으로 꽉 찬다. 참 놀란다. 언제 보아도 놀라는 모습이다. 서울에는 어인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 좁은 곳에 어쩜 이렇게 복닥거리면서 서로서로 만나거나 사귀거나 어울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숲을 헤치고 만화책방에 들어간다. 만화책 28000원어치 고른다. ㅇ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만화책 두 권을 살까 하고 집어들다가는 150쪽이 안 되는 얄팍한 판인데 자그마치 12000원이나 붙은 모습에 깜짝 놀란다. 얌전히 내려놓는다. ㅇ출판사는 무슨 만화책을 이렇게 비싸게 찍어서 내놓을까. 더 값나가는 종이에 만화를 찍는다고 만화책 품격이 올라가는가. 여느 만화책은 물건값이 올랐어도 요즈음 4200원인데, ㅇ출판사는 왜 이리 비싼값을 버젓이 붙이는가. 여느 만화책 세 권 살 만한 값을 양장도 아니요 애장판도 아니며 빛깔그림이 들어간 만화도 아니면서 지나치게 비싸게 값을 붙인다.

 망원역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책값을 셈한 다음 가방에 넣는다. 헐레벌떡 달려서 길을 건넌다. 푸른불이 깜빡거릴 때에 겨우 찻길 한복판 버스타는곳에 들어선다. 히유, 한숨을 돌린다. 어느 버스를 타야 하나 살핀다. 버스길 알림판을 여러 곳에 붙이면 좋으련만 한쪽에만 붙여놓아서 들여다보기 참 힘들다.

 271번 버스를 탄다. 버스가 들어올 때부터 안에 사람이 꽤 많이 탔다. 타도 되나 고개를 갸웃하는데, 내리는 사람이 제법 된다. 그러면 타고 되겠구나. 두 정류장을 더 가니, 내리는 사람은 적고 타는 사람만 많다. 버스를 모는 일꾼이 새로 타려는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한다. “뒷차 금방 오니까 뒷차 타세요. 너무 밀려요.” 그렇지만 뒷차를 기다려 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이 버스에 오른다. 가뜩이나 미어터지는 버스는 더욱 미어터진다.

 내가 버스에 타려 할 때에 버스 일꾼이 뒷차를 타라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바삐 가야 한다면 그냥 탔을까. 곰곰이 헤아린다. 음, 나도 그냥 버스에 오르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까. 옆지기하고 아이랑 함께 마실을 와서 서울버스를 타야 하는 몸이었으면 어떠했을까. 아무래도 나는 미어터지는 차를 타지 말고 텅 빈 뒷차를 타라는 버스 일꾼 말을 따랐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뒷차를 기다리다 보면 ‘버스 일꾼 말처럼 뒷차가 금세 오기’도 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뒷차는 올 생각을 않는’ 때가 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어 때를 맞추어 가야 하기는 하지만, 서울에는 버스도 많고 차도 많으니까 그냥 기다려 보겠지. 그러나, “뒷차 타셔요”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힘들다고 느낀다. 겪어 보니 그렇다.

 시골집으로 옮기기 앞서를 떠올린다. 아직 인천에서 살아가던 때, 식구들과 함께 마실을 간다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일을 떠올린다. 시내버스에 사람이 꽉 차면 으레 이 꽉 찬 차를 보냈다. 좀 홀가분한 뒷차를 기다렸다. 꽉 찬 버스가 지나가면 으레 뒷차는 텅 비기 마련이요, 곧 새로 오기 일쑤인데, 이러하지 않을 때도 꽤 되지만, 홀가분한 뒷차가 금세 오는 적도 잦다.

 나는 새로 나오는 책을 그때그때 읽는 일을 좋아한다. 이와 함께, 새로 나오는 책을 한두 해쯤 묵힌 다음 읽는 일도 좋아한다. 때로는 다섯 해나 열 해쯤을 기다린 끝에 읽기도 한다. 모든 새로 나오는 책을 모두 그때그때 맞추어 읽을 수 없기 때문이요, 내 마음밭을 차분히 가다듬은 다음에 읽어야 할 책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내 가슴이 어느 책 하나를 받아들일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고 여긴다면, 책상맡에 오래도록 꽂기만 한다. 때로는 나중에 사자고 생각한다. 요사이는 나중에 사자고 생각하기보다는, 어찌 되든 사 놓고 보기 일쑤이다. 요사이는 한두 해쯤 지나고 나서 품절이 된다든지 새책방 책시렁에서 자취를 감추는 책이 퍽 많기 때문이다. 헌책방에서는 한 번 지나치면 두 번 다시 못 만나는 책이 매우 많기도 하다.

 그때그때 새로 나오는 흐름에 맞추어 읽는 책은, 새로 나온 느낌을 곱씹으면서 즐겁게 읽는다. 몇 해쯤 묵힌 다음 읽는 책은, 이 책이 참말로 내가 오래도록 곁에 두면서 읽을 만한 책인가를 돌아보면서 즐거이 읽는다.

 어떠한 책이든 한 번 읽고 치운다면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책이든 한 번 읽고 나서 두 번 세 번 잇달아 읽는다든지, 한두 해 뒤에 다시 읽고프다고 생각할 만큼 되어야 비로소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열 번쯤 되풀이해서 읽는다든지, 여러 사람하고 돌려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살 만한 값이나 보람이나 뜻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뒷차 기다리기를 좋아한다. 앞차를 타고 먼저 간다고 해서 나쁘지 않다. 사람들 물결이 앞차로 쏠리면서 버스타는곳에 미어터지던 사람이 싹 줄어 호젓해지는 느낌이 좋고, 한결 홀가분한 뒷차를 가뿐히 타면서 창밖을 느긋하게 내다보는 느낌이 좋다. (4344.3.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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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멀미


 옆지기는 차멀미를 한다. 나도 어릴 때에 차멀미를 했는데, 어느결에 차멀미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차를 탈 때에 속이 좋지는 않다. 그저 꾸욱 참을 뿐이지.

 이제 나도 옆지기만큼은 아니지만 차멀미를 한다. 시골집에서 지내다가 때때로 볼일 보러 도시로 나갈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괴롭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내리’니까.

 볼일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미식거림을 참아야 한다. 오늘은 그나마 빈속으로 나왔기에 서울 닿을 무렵에 눈알이 핑핑 돌지만 그럭저럭 버틴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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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환경연대 소식지에 실으려고 쓴 글.) 


 발굽병이든 구제역이든 다 괜찮아요
 ― 제삶을 제대로 제값 치르며 살아가요



 도시에는 도시가스가 있습니다. 밥을 하거나 따순물을 쓸 때에 그닥 근심하지 않습니다. 꼭지만 돌리면 따순물 졸졸 흐릅니다.

 도시가스는 시골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골가스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도시라 해서 모든 도시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흔히들 ‘빈민촌’이라 하거나 ‘철거민촌’이라고도 하며 ‘가난한 골목집’이라고도 하는, 제가 느끼기로는 그예 달동네랑 꽃동네인 집에는 도시가스가 잘 안들어갑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도 달을 보기 어렵지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면 밤하늘 달을 올려다봅니다. 아파트에는 지킴이가 ‘지키는’ 꽃밭만 있으나, 골목동네 곳곳에는 골목사람 스스로 일구는 텃밭과 꽃밭이 예쁘장합니다.

 인천 창영동에서 첫째를 낳아 살던 때, 우리 집에는 도시가스가 안 들어왔습니다. 머잖아 통째로 허물어 아파트로 확 바꾸려는 도시 정책 때문에 이러한 집은 도시에 깃들어도 도시 살림집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식구는 지난여름에 인천 골목집을 떠나 음성 멧골자락 시골집으로 옮겼습니다. 시골 멧자락에 붙은 집인 만큼 도시가스 구경은 꿈도 꾸지 않고, 전화줄에 딸린 인터넷은 되게 느리기도 하며, 면내나 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드뭅니다. 자가용이 없을 뿐더러 자가용 몰 생각을 안 하고 자가용 장만하거나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바깥마실을 할 때면 시골버스 지나는 때를 맞추어 큰길로 걸어 나갑니다. 으레 이십 분은 걷고, 다시 이십 분쯤 기다려 시골버스를 탑니다.

 누군가는 ‘느리게 살기’라고 여길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냥 시골살이입니다. 하루에 여섯 대 오가는 시골버스에 맞추어 읍내를 다녀옵니다. ‘천천히’라기보다 시골살이에 맞추는 나날입니다.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추위를 느끼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더위를 느낍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느끼고, 봄에는 봄빛을 마주합니다.

 지난겨울 하룻밤 잘못한 탓에 물이 얼어붙어 삼월이 되어도 녹지 않으니 벌써 넉 달째 접어들도록 물을 길어다가 씁니다. 밥하고 설거지할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는 빨랫감을 들고 가서 하며, 몸을 씻기 참 힘듭니다. 어찌저찌 한겨울 지났고 곧 얼음이 사르르 녹아 물 한 그릇 고맙게 쓸 날을 맞이하겠지요. 힘들지만 힘든 대로 요모조모 더 알뜰히 살아내면 됩니다.

 우리 살림은 꽤나 가난해서 흔한 말로 ‘최저생계비조차 안 되는 살림돈’으로 어영부영 꾸립니다. 돈이 없으니 어디 나라밖으로 다녀온다든지 무슨 맛난 밥집을 찾아다닌다든지 예쁘장한 옷을 사입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여러 생협 물건을 장만해서 씁니다. 으레 생협 물건이 비싸다고 여기지만, 생협 물건은 안 비쌉니다. 알맞게 붙인 값이요 알뜰살뜰 쓸 물건으로 매긴 값이에요. 몸소 논밭일을 하는 사람은 알 테지요. 똥거름 내고 손수 김매어 흙을 일군 먹을거리하고 풀약이랑 비료를 먹인 먹을거리랑 같은 값이 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내가 벼농사를 짓지 못하면, 옳게 벼농사 지은 일꾼 땀방울에 값하도록 돈을 제대로 써야 올바릅니다. 생협 고기는 마트 고기보다 비싸다 하지만 마땅히 옳은 고기이고, 더 맛있으며, 더 알맞게 즐기기 마련인데다가, 고맙게 얻습니다. 항생제와 사료 안 먹인 고기란 매우 드뭅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집에 살면서 발굽병이고 뭐고를 안 느낍니다. 우리는 고기를 사먹는 일이 없고, 집에서 집짐승을 안 기릅니다. 발굽병이란, 거의 날마다 아주 많이 값싸게 고기를 먹으려 하는 도시사람들, 더욱이 돈만 내면 언제 어디서라도 고기를 냠냠짭짭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도시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제값을 치를 줄 알며, 제삶을 꾸릴 줄 알아야, 발굽병이건 4대강사업이건 이 나라에 함부로 깃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발굽병이란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사람 때문에 생긴 병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시골사람만 받습니다. 도시사람이야 발굽병이 터져도 고기를 예전하고 똑같이 먹으나, 시골사람은 온 마을을 소독한다느니 출입통제라느니 하면서 꽤나 시끌벅적합니다. 그래도 지난 설날부터 장마당이 다시 열렸으니, 장마당마실을 못할 일은 이제 없겠지요.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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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2.23. 

낮에 드디어 잠을 한숨 자 주는 아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이나마 낮잠을 자 주니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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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47] 스마트한 Samsung Wave

 오늘날 우리 나라에 있는 큼지막한 회사 이름은 ‘삼성’이 아닌 ‘Samsung’입니다. 이곳은 회사이름을 한글이 아닌 알파벳으로 바꾸었고, 이와 같은 회사로 ‘LG’나 ‘SK’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들 회사가 이름을 알파벳으로 바꿀 때에 처음에는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나 이내 잦아들었고, 한국사람 누구나 이들 회사를 알파벳 이름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른 알파벳 이름 회사는 알파벳으로 이름을 적으면서 막상 ‘Samsung’만큼은 알파벳 이름으로 안 적습니다. 한글로 ‘삼성’으로 적습니다. 이곳 ‘삼성’ 아닌 ‘Samsung’에서 ‘스마트한 방법’으로 쓴다는 ‘스마트폰’인가를 만들며 이 물건에 ‘Wave’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광고를 할 때에도 이 이름을 따서 여러모로 멋있게 만듭니다. 한국사람 누구나 ‘삼성’이든 ‘Samsung’이든 따지지 않을 뿐더러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이듯이, 이 회사에서 만드는 물건에 ‘Wave’라 이름을 붙이든 ‘물결’이라 이름을 붙이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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