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환경연대 소식지에 실으려고 쓴 글.) 


 발굽병이든 구제역이든 다 괜찮아요
 ― 제삶을 제대로 제값 치르며 살아가요



 도시에는 도시가스가 있습니다. 밥을 하거나 따순물을 쓸 때에 그닥 근심하지 않습니다. 꼭지만 돌리면 따순물 졸졸 흐릅니다.

 도시가스는 시골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골가스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도시라 해서 모든 도시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흔히들 ‘빈민촌’이라 하거나 ‘철거민촌’이라고도 하며 ‘가난한 골목집’이라고도 하는, 제가 느끼기로는 그예 달동네랑 꽃동네인 집에는 도시가스가 잘 안들어갑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도 달을 보기 어렵지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면 밤하늘 달을 올려다봅니다. 아파트에는 지킴이가 ‘지키는’ 꽃밭만 있으나, 골목동네 곳곳에는 골목사람 스스로 일구는 텃밭과 꽃밭이 예쁘장합니다.

 인천 창영동에서 첫째를 낳아 살던 때, 우리 집에는 도시가스가 안 들어왔습니다. 머잖아 통째로 허물어 아파트로 확 바꾸려는 도시 정책 때문에 이러한 집은 도시에 깃들어도 도시 살림집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식구는 지난여름에 인천 골목집을 떠나 음성 멧골자락 시골집으로 옮겼습니다. 시골 멧자락에 붙은 집인 만큼 도시가스 구경은 꿈도 꾸지 않고, 전화줄에 딸린 인터넷은 되게 느리기도 하며, 면내나 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드뭅니다. 자가용이 없을 뿐더러 자가용 몰 생각을 안 하고 자가용 장만하거나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바깥마실을 할 때면 시골버스 지나는 때를 맞추어 큰길로 걸어 나갑니다. 으레 이십 분은 걷고, 다시 이십 분쯤 기다려 시골버스를 탑니다.

 누군가는 ‘느리게 살기’라고 여길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냥 시골살이입니다. 하루에 여섯 대 오가는 시골버스에 맞추어 읍내를 다녀옵니다. ‘천천히’라기보다 시골살이에 맞추는 나날입니다.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추위를 느끼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더위를 느낍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느끼고, 봄에는 봄빛을 마주합니다.

 지난겨울 하룻밤 잘못한 탓에 물이 얼어붙어 삼월이 되어도 녹지 않으니 벌써 넉 달째 접어들도록 물을 길어다가 씁니다. 밥하고 설거지할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는 빨랫감을 들고 가서 하며, 몸을 씻기 참 힘듭니다. 어찌저찌 한겨울 지났고 곧 얼음이 사르르 녹아 물 한 그릇 고맙게 쓸 날을 맞이하겠지요. 힘들지만 힘든 대로 요모조모 더 알뜰히 살아내면 됩니다.

 우리 살림은 꽤나 가난해서 흔한 말로 ‘최저생계비조차 안 되는 살림돈’으로 어영부영 꾸립니다. 돈이 없으니 어디 나라밖으로 다녀온다든지 무슨 맛난 밥집을 찾아다닌다든지 예쁘장한 옷을 사입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여러 생협 물건을 장만해서 씁니다. 으레 생협 물건이 비싸다고 여기지만, 생협 물건은 안 비쌉니다. 알맞게 붙인 값이요 알뜰살뜰 쓸 물건으로 매긴 값이에요. 몸소 논밭일을 하는 사람은 알 테지요. 똥거름 내고 손수 김매어 흙을 일군 먹을거리하고 풀약이랑 비료를 먹인 먹을거리랑 같은 값이 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내가 벼농사를 짓지 못하면, 옳게 벼농사 지은 일꾼 땀방울에 값하도록 돈을 제대로 써야 올바릅니다. 생협 고기는 마트 고기보다 비싸다 하지만 마땅히 옳은 고기이고, 더 맛있으며, 더 알맞게 즐기기 마련인데다가, 고맙게 얻습니다. 항생제와 사료 안 먹인 고기란 매우 드뭅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집에 살면서 발굽병이고 뭐고를 안 느낍니다. 우리는 고기를 사먹는 일이 없고, 집에서 집짐승을 안 기릅니다. 발굽병이란, 거의 날마다 아주 많이 값싸게 고기를 먹으려 하는 도시사람들, 더욱이 돈만 내면 언제 어디서라도 고기를 냠냠짭짭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도시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제값을 치를 줄 알며, 제삶을 꾸릴 줄 알아야, 발굽병이건 4대강사업이건 이 나라에 함부로 깃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발굽병이란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사람 때문에 생긴 병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시골사람만 받습니다. 도시사람이야 발굽병이 터져도 고기를 예전하고 똑같이 먹으나, 시골사람은 온 마을을 소독한다느니 출입통제라느니 하면서 꽤나 시끌벅적합니다. 그래도 지난 설날부터 장마당이 다시 열렸으니, 장마당마실을 못할 일은 이제 없겠지요.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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