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미루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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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9]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라는 이름으로 옮겨진 ‘레이먼드 브릭스’ 님 그림책은 그냥 《UG》라는 이름으로 2001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한국판으로 옮기며 ‘UG’를 ‘우가’로 적는데, 이 아이는 ‘천재 소년’이 아닙니다. 그냥 사내아이입니다. “난 동굴에 사는 게 싫은데(10쪽)” 하고 생각하며, “강을 조금 구부려서 이쪽으로 흘러오게 하면 안 될까요(18쪽)” 하고 생각하는 여느 아이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는 여느 아이가 아니라 ‘천재’ 아이라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대로 즐거우면 즐겁다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 말합니다. 재미있으면 재미있게 즐기고 따분하면 따분하다는 느낌이 얼굴에 묻어납니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맛있게 먹고 싶으며, 더 재미나게 놀고 싶습니다. 어느 목숨이든 예쁘게 느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저절로 품는 마음입니다. 석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가라는 아이는 석기 시대이고 아니고를 떠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동무나 어른들은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을 찾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돈벌이에 바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내칩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글, 미루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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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빠빠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4
아네트 티종 지음, 이용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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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놀이동무 바바빠빠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 아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바바빠빠》(시공주니어,1994)



 네 살 아이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면 어버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여느 집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까요. 첫째는 어느덧 네 살로 자랐고, 한 달 뒤에 둘째가 태어납니다. 첫째가 걸어간 길을 둘째 또한 걸을는지, 둘째는 첫째하고 좀 다른 길을 걸을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시골자락에서 태어날 둘째는 첫째와 똑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첫째한테 했듯이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뿐 아니라, 첫째한테 제대로 못한 사랑나눔을 더 따사로이 나누어야 하리라 느낍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요모조모 가르칩니다. 말로 가르치기도 하지만, 퍽 어린 아이한테는 ‘말보다는 몸으로 더 자주 더 많이’ 가르칩니다. 제 어버이가 살아가는 나날이 아이한테는 책이고 교과서이며 스승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가면, 아이는 저절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갑니다. 좋다는 어린이책 백만 권이든 천만 권이든 부질없어요. 책 한 권 쥐어 주지 않더라도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어버이는 ‘책에 깃드는 모든 좋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아이랑 같이 살아오는 동안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이것저것 배웁니다. 아이 앞에서 말을 어떻게 하고,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내며, 어버이이기 앞서 오롯한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살아가는가를 되짚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이란 어른이 함께 먹는 밥입니다. 아이한테만 아이 몸을 생각하는 밥을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 또한 나란히 같은 밥상에서 먹는 밥을 아이한테 먹입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는 자가용을 좋아하는 아이를 낳고, 자전거를 달리는 어버이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는 어버이는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아토피는 어버이 되는 사람 몸에 쌓인 나쁜 것들이 유전자에 아로새겨져서 아이한테 이어지는 아토피입니다. 아이는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으나, 모두 어버이가 잘못한 나머지 아이가 괴롭습니다. 어버이 되는 사람 스스로 당신 몸에 나쁜 것들이 쌓이도록 막 살아온 나날을 돌이키지 않으며, 아이한테 화학연고를 발라 주거나 약을 먹인대서 아토피가 사라지거나 가라앉을 수 없습니다. 한동안 ‘어른 눈에 안 보일’ 뿐, 화학약을 써서 살짝 안 보이도록 한 아토피는 아이 몸에 그대로 잠든 채 다시 깨어날 때를 기다립니다.

 예부터 몸이 아픈 사람은 ‘더 맑은 바람과 물과 햇볕과 흙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골로 보냈습니다. 도시에서 아픈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일거리가 많아 돈을 조금 더 쉽게 한결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튼튼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버티며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몸이 여린 사람은 도시에서 버티기 힘듭니다. 아이들 가운데 꽤 튼튼한 녀석들이라면 도시에서도 잘 놀 테지만, 여느 아이들한테 도시는 참 끔찍한 보금자리입니다. 정수기를 쓴들 물이 맑을 수 없고,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들 페트병에 담긴 물이며, 자동차가 끝없이 가득한 데에 맑은 바람이 없습니다. 공기청정기를 쓰는 집은 시멘트로 발라 세운 높직한 건물인데, 이 높직한 시멘트 건물은 고작 서른 해를 못 버티기 때문에 허물어 새로 올려야 합니다. 도시에서 집이란 집이 아닌 돈(부동산)입니다. 집 아닌 돈(부동산)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가 아이다움을 건사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 바바빠빠는 프랑수아네 집 꽃밭에서 태어났습니다 ..  (2쪽)


 그림책 《바바빠빠》를 읽습니다. 나라밖에서는 꽤 일찍부터 나온 그림책이지만, 한국에서는 1994년에 드디어 선을 보입니다. 그나마 1994년에 선을 보인 한국 그림책 《바바빠빠》는 빛느낌이 참 얄딱구리합니다. 《바바빠빠》를 소개하며 출판사에서 쓴 글을 읽어도 ‘분홍 괴물’인 바바빠빠라 하지만, 한국 그림책을 읽으면서 바바빠빠가 참말 ‘분홍이’가 맞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분홍이 바바빠빠라면, 말 그대로 분홍 빛깔을 곱게 느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팔아야 할 텐데요.

 네 살 아이한테 한국판 《바바빠빠》를 차마 보여주지 못합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보여줍니다. 네 살 아이는 두 살 적부터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갖고 놀며 좋아했습니다.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는 1972년 6월 1일에 첫 쇄를 찍고, 우리 집 일본판 책은 2003년 3월에 203쇄를 찍었답니다. 우리 집 한국판 《바바빠빠》는 2007년 12월 5일에 29쇄를 찍었군요. 그나저나, 한국판 《바바빠빠》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81년으로 적히는데, 일본판에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71년으로 적힙니다. 뭔가 알쏭달쏭합니다. 일본은 ‘바바빠빠’ 그림책이 처음 태어난 1971년 이듬해인 1972년부터 일본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히도록 했고, 한국은 자그마치 스물세 해가 지난 1994년에야 비로소 한국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힐 수 있습니다.

 내 어린 날, 에이에프케이엔을 틀 때에 가끔 볼 수 있던 바바빠빠를 떠올립니다. 그무렵 바바빠빠 그림책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 그림책을 사 줄 만큼 넉넉한 집은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날 그림책을 사 줄 만한 집이 드물든 많든 적든 어떻든, 아이들이 즐겁게 볼 그림책을 마련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못한 대목이 적잖이 슬픕니다. 그래도, 이제는 나라밖 좋다 하는 그림책을 퍽 쉽게 한국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 바바빠빠는 동물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물원에서 바바빠빠는 우리에 갇혀 불행하게 지냈지요 ..  (6∼7쪽)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만 보다가 한국판 《바바빠빠》를 보면서 한두 줄 짤막하게 적힌 글을 함께 읽습니다. 그림으로 보아도 알 수 있기는 했는데, 바바빠빠는 꽃밭에서 태어났네요. 어린이 프랑수아가 꽃밭에 물을 줄 때에 물을 맛나게 받아먹으며 몽글몽글 몸이 커지며 태어났어요.

 꽃밭에서 태어난 바바빠빠는 꽃과 같은 목숨입니다. 꽃처럼 예쁘고 꽃잎처럼 푸릅니다. 들꽃처럼 작고 가녀리며, 들꽃처럼 씩씩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바바빠빠는 착합니다. 바바빠빠는 슬기롭습니다. 바바빠빠는 포근합니다. 바바빠빠는 꾀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커다란 집이나 빠른 자가용을 바라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더 맛난 밥이나 더 거룩한 이름값을 꿈꾸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마음을 나눌 좋은 동무를 그리워합니다. 바바빠빠는 사랑스레 어울릴 예쁜 벗을 아낍니다.


.. 사람들은 바바빠빠를 영웅처럼 환영했습니다. 바바빠빠가 많은 사람들을 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바빠빠는 친구 프랑수아에게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  (25∼26쪽)


 새벽 다섯 시 반에 깨어 한 시간쯤 옹알거리던 아이는 다시금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뜨개한 긴치마를 혼자서 단추 꿰어 입고 한들한들 놀다가는,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가는,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뜬 아이 곁에 다가가 볼을 부비며 이따가 더 신나게 놀고 조금 더 코 자자고 소곤소곤 말을 거니, 아버지가 저한테 해 주듯 아이도 제 아버지 머리를 살살 토닥이고 쓰다듬다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잠들어 줍니다.

 잠든 아이는 두 시간쯤 코 하고 꿈누리를 거닐다가는 번쩍 눈을 뜨고는 쉬 한 번 하고 나서 콩콩걸음으로 다가올 테지요. 그러면, 빈 그릇 하나 들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요 앞 비탈논 둘레로 나갑니다. 싱그러이 자라는 쑥을 그릇 가득 뜯어 쑥버무리도 하고, 쑥을 잔뜩 넣은 된장국도 합니다. 식구들은 아침을 맛나게 먹고는 오늘도 새 하루를 새삼스레 맞이하면서 부산스레 복닥이겠지요.


.. 바바빠빠는 어린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29쪽)


 바바빠빠는 어린이와 함께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라 해서 모두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어버이라 하든 갓난쟁이였고 어린이였으며 푸름이였습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든 마냥 신나게 뛰노는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가난하거나 괴로운 집에서 태어나 ‘놀이하는 어린 나날’을 못 보낸 어른이 있기도 할 텐데, 어린이는 누구나 놀이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커야 아름답습니다. 어른 또한 어린이와 함께 놀이하는 사람이어야 아름답고, 놀이를 실컷 즐겼으면,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다시금 신나게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지겹도록 하거나 억지로 하는 돈벌이 일거리가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즐겁고 아이와 함께하면서 기쁜 일거리를 찾아 내 살림살이에 알맞게 돈을 벌거나 밥을 벌면 됩니다. 돈을 더 많이 번대서 엄마 아빠가 서로 더 알콩달콩 놀 수 있지는 않거든요. 돈을 더 많이 벌었기에 아이 놀잇감을 잔뜩 장만해 주며 재미나게 놀도록 해 줄 수 있지 않거든요. 놀이에는 놀이동무가 있어야 하고, 일에는 일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둘이 서로 좋은 놀이동무이자 일동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 둘 사이에 새길을 열어 주는 놀이동무가 되면서 천천히 심부름을 익혀 집일을 거드는 고마운 일동무가 됩니다.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 줄 아는 바바빠빠는 어떠한 심부름이든 즐겁게 거뜬히 해낼 줄 압니다. 놀 때에는 잘 놀고, 일할 때에는 잘 일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다운 한몫을 하는 사랑스러운 목숨을 선물받아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 바바빠빠 (아네트 티종 그림,탈루스 테일러 글,이용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4.6.30./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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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살 아이 새벽맞이와 책읽기


 아버지는 네 시 반에 일어나서 글쓰기를 하려 한다. 네 살 아이는 다섯 시 반에 칭얼거리다가 일어난다. 아이가 엊저녁에 일찍 잤다면, 아주 일찍, 그러니까 다섯 시나 여섯 시나 일곱 시쯤 잠들어 밤새 고이 자다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면 토닥토닥 달래며 함께 놀아야겠지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어제 하루 졸리면서 낮잠을 꾸욱 참고 저녁까지 맞이하면서 저녁에도 일찍 잠들지 않고 겨우겨우 잠들다가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달라붙으면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만다.

 아이 어머니는 큰방으로 나와서 아이를 옆에 누우라 한다. 아이는 어머니 곁에 눕지 않는다. 큰방 바닥에 널브러진 그림책 하나를 펼친다. 어제 아이가 보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놓은 그림책이다. 아직 어스름이 깔려 어두운데 저렇게 책을 보아도 되나 걱정스러워 불을 켜고 싶지만 불을 켜지 않는다. 조금 기다리면, 1분 2분 3분이 지나며 먼동이 트니까, 차츰 밝는 바깥 빛살을 받아들이도록 해 주자.

 아이는 그림책을 다 보고는 아버지 옆으로 와서 무릎에 머리를 받치고 누웠다가 방바닥에 모로 누웠다가 한다. 아이 어머니가 일어나 아이를 부른다. 둘이 옆방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한참 듣는다.

 한숨을 돌리고 아이한테 간다. 아이는 눈을 뜬 채 누웠다. 일어나고는 싶은데 몸이 힘들고, 그렇지만 잠을 자기는 싫은가 보다. 아이 볼에 아버지 볼을 대고 살며시 말을 건다. 예쁜 돼지 조금 더 코 자고 이따가 쑥 뜯으러 가자고, 학교에 가서 언니 오빠 들하고 놀려면 조금 더 코 자야지, 안 그러면 몸이 힘들어서 잘 못 논다고, 아버지는 쌀 씻고 더 일을 할 테니까 벼리는 코 자고 이따가 놀자고, 소곤소곤 말을 건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되는 사람이 젊을 적, 밤 열두 시나 한 시에 잠들더라도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했고, 늦게 자더라도 일찍 일어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아이는 늦게 잠들었어도 금세 몸이 개운해지는지 모른다. 어버이로서 더 기운을 차리고 새삼 기지개를 켜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려는 아이를 반가이 맞이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이는 아직 아이일 테니까, 새벽 일찍 일어났으면 낮잠을 자 주지 않겠나. 어쩌면 오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도 낮잠을 다시 거르며 저녁까지 칭얼댈는지 모르리라. 그래도 어버이라면 아이를 더 예쁘게 바라보며 더 고운 말씨로 따스히 토닥이며 얼싸안아야 하지 않겠나.

 아이를 다시 들여다본다. 발로 바닥을 통통 차더니 이내 잦아든다. 눈을 살며시 감았다. 조용히 잠들어 주려나 보다. 고맙다, 예쁜 아이야.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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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구나무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는다. 2010년 6월 30일에 멧골자락으로 살림집을 옮긴 우리들이 참으로 이 시골자락 작은 집에서 고이고이 살고픈 마음을 담아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는다. 첫째가 무럭무럭 크고, 둘째가 어여삐 태어나 자라는 동안, 살구나무 두 그루도 씩씩하게 뿌리내려 주면 좋겠다. 한 그루는 첫째 아이를 생각하면서 심고, 다른 한 그루는 둘째 아이를 헤아리면서 심는다. 텃밭 가장자리에 심은 살구나무 두 그루는 아직 막대기를 꽂은 듯한 모습이다. 밤에는 퍽 쌀쌀한데 이 두 어린나무가 다부지게 힘을 내어 튼튼하게 제 보금자리로 삼아 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4344.4.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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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 대지의 슬픈 유랑자들 연해주 고려인 리포트
김재영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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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사람이 아픈 이웃을 사랑한다
 [책읽기 삶읽기 52] 김재영,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한얼미디어,2005)



 배를 곯은 적이 없는 사람은 배곯이를 모릅니다. 추위에 떤 적이 없는 사람은 추위를 모릅니다. 몸앓이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은 몸이 여리거나 아픈 사람을 모릅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모릅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책을 거의 못 읽은 사람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삶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얼마나 고되게 일하며 저희를 보살피는지 모릅니다. 아이인데 벌써부터 어른들 삶을 알거나 어른들이 얼마나 땀흘리거나 애써서 저희를 보살피는가를 안다면, 이런 아이를 두고 ‘애어른’이나 ‘애늙은이’라 합니다.

 아이는 아이로 자라야 합니다. 아이한테 아이다움이 없다면 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라 해서 마냥 철없거나 철딱서니없이 살아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라 하기에 건방지거나 시건방지게 살아도 되지 않아요. 아이는 아이다움을 건사하면서 사람다움을 차근차근 느끼며 깨달아 아름다운 제 삶길을 찾아야 합니다.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거나 동화책 《플랜더스의 개》를 읽으면, 두 작품 주인공인 네로(넬로)가 우유수레를 끄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이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힘에 부쳐 더는 수레를 끌 수 없어 자리에 누운 날부터 어린 네로는 우유수레를 끕니다.  추운 겨울날, 양말도 장갑도 없는 가난한 네로는 맨손과 맨발로 무거운 우유수레를 끌면서 그동안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라서 더 힘들다기보다 어른이라도 몹시 힘든 우유수레임을 깨닫습니다. 더구나 이토록 추운 날에도 하루를 거를 수 없이 날마다 우유수레를 끌어야 한다니, 이렇게 날마다 우유수레를 끌면서도 끼니를 잇지 못해 굶는 날이 있어야 한다니, 어린 네로로서도 몹시 괴롭고 슬픈 일입니다.

 네로는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이 할아버지하고만 살아가니까 양말이나 장갑마저 없이 추운 겨울을 홑옷으로 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네로처럼 추위를 사무치게 느끼지 않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네로처럼 배고픔과 가난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네로처럼 고된 일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추위와 가난과 배고픔과 고된 일에 시달린대서 우리 삶과 이웃 삶을 더 잘 헤아리거나 살피지는 않습니다. 괴롭거나 힘든 나날이 되풀이되는 나머지 마음이 비뚤어지거나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누구라도 추위와 가난과 배고픔과 고된 일을 견디거나 이기기 몹시 어렵습니다.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빌리네 아버지 또한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배신자’ 소리를 듣더라도 어쩔 수 없이 집식구 먹여살리는 슬픈 길을 걷습니다. 동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배신자 길을 가고야 맙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누구를 가리켜 배신자라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빵 한 조각을 얻으려고 도둑질을 했던 쟝 발장을 ‘뭐라 하든 넌 도둑일 뿐이야!’ 하고 모질게 몽둥이질을 할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쟝 발장은 부귀와 권세를 누리려고 빵 한 조각을 훔쳤을까요. 쟝 발장한테 빵 한 조각을 예쁘게 나눈 부자는 한 사람이나마 있었는가요. 아니, 똑같이 가난한 이웃 가운데 쟝 발장을 가엾이 여긴 사람이 있었는가요.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부역을 하거나 친일문학을 하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에는 말 그대로 부귀와 권세를 누리려던 사람이 있는 한편, 쟝 발장처럼 가난과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배신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바로 ‘배신자’가 되었고, 당신이 숨을 거두는 날까지 스스로 배신자 노릇을 했음을 떳떳이 밝히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봐요. 어떤 배신자가 스스로 배신자 발자국을 쉬 드러내겠습니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아무한테나 ‘네 잘못을 떳떳이 드러내어 뉘우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쟝 발장》을 한국말로 옮기기도 했던 이원수 님임을 생각한다면, 스스로 마음앓이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톺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밥 한 그릇 얻으려고 배신자 길을 걸었으면서도 살림살이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어요.


.. 왜 이들이 1948년 이전에 나라를 떠났겠는가. 가난과 수탈을 피해 굶주리을 면하고자 농사를 지으러 간 이들이었고, 징용과 정신대를 피해 이주한 이들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걸고 피흘려 싸웠던 독립투사들과 그 후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동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서조차 동포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 재외동포로 인정한다면 마땅히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 자기 민족을 감싸 주지 못할망정 불법체류자라는 족쇄를 채운단 말인가 … 러시아 국적이 없는 고려인은 의료와 연금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당연히 취업이 허락되지 못해 이 질긴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 한국의 백과사전은 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 그리고 그에게 훈장이 추서되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러나 백과사전은 한 가지를 빼먹고 있었다. 그의 11명의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그 중 생존한 두 명의 딸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  (8∼9, 48쪽)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고려인 생채기’를 헤아리거나 껴안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니, 고려인이라는 사람을 헤아리는 사람이나마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인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길을 걸어온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살피는 사람이나마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이 나라 남녘땅이랑 북녘땅은 군사분계선을 마주하면서 백만 젊은이 남짓이 총과 대포를 들고 불꽃 튀기도록 맞섭니다. 북녘은 굶어죽는 사람이 그토록 많다지만 남녘보다 더 많은 군인을 먹여살려야 한답니다. 남녘은 굶어죽을 사람이 적다지만 어김없이 가난한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남녘은 남녘대로 부자도 많고 가난뱅이도 많습니다. 북녘은 북녘대로 권력을 누리는 사람이 많고 굶어죽다 못 이겨 중국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총을 내려놓고 대포 아닌 살림살이를 마련해야 할 노릇이지만, 남녘도 북녘도 온통 전쟁무기 키우는 데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붓습니다. 한갓진 남녘사람들은 북녘 정치꾼들이 ‘제 나라 사람이 굶어죽는 데에도 전쟁무기에 저렇게 돈을 써서야 되겠느냐?’ 하고 나무라지만, 군사분계선을 마주하는 남녘나라가 전쟁무기를 더 많이 늘리면서 국방비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니까, 북녘도 똑같이 슬픈 길을 걷고야 마는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 어디서 누구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청년 지마와 스물세 살 꽃다운 처녀의 한을 말이다 … 연해주 재이주 고려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것이다. 법으로부터도 정치로부터도 경제로부터도, 그 무엇으로부터도 그들은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옷을 벗으라면 벗어야 하며, 떠나라면 떠나야 하는 이 그치지 않는 유랑자의 신세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여정 중 가장 곤란했던 것은 화장실이 없는 것과 먹을 것이 공급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서운 추위였다. 명령대로 2∼3일 분량의 식량밖에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굶기를 밥먹듯 했다. 아이들은 굶어죽어 갔고, 아비는 배곯아 죽은 자식을 어두운 밤 잠깐 멈추었던 어느 이름모를 땅에 맨손으로 묻었다 ..  (29∼30, 189쪽)


 지난날,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는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슬기롭거나 올바르지 못한 나머지 일본 제국주의자한테 나라를 넘겼을 뿐 아니라, 밑바닥 사람들이 더 밑바닥에서 헤매며 짓눌리도록 내몰았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때에 굶거나 추위에 떨던 권력자나 임금·신하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부자는 조선 때에도 부자였고 일제강점기에도 부자였습니다. 가난뱅이는 조선 때이든 일제강점기이든 가난뱅이였어요. 이리하여 고향땅에서 발을 붙일 수 없던 이들이 눈물을 삼키며 나라를 등졌습니다. 나라를 등지고 만주나 연해주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만주나 연해주로 넘어갔대서 입에 풀을 바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서로서로 도우며 끼니를 겨우 이을 수 있었는데, 조금 살림이 펼 만할 즈음 ‘강제이주’라는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강제이주를 겪고 길디긴 나날이 흐르며 겨우 생채기가 아물 무렵 다시금 ‘재이주’라는 새로운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라는 책은 강제이주에다가 재이주를 겪으며 ‘살아간다는 즐거움이나 꿈이나 기쁨’을 도무지 누리기 힘든 고려인을 만나며 조금이나마 이웃으로서 도우려고 애쓰던 두 사람이 고려인들을 마주한 나날을 고스란히 적바림합니다. 속속들이 받아들이거나 껴안지는 못하지만, 고려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부대끼거나 마주하거나 겪는 숱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습니다.


.. 40대 중년의 얼굴을 가지고 그도 동갑이라며 반가워한다. 나는 내 손과 기름진 얼굴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 누구든 러시아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길가의 그들을 보라. 그들의 얼굴과 말소리와 표정을 주목해 달라. 내 어머니 같고 내 아버지 같은 그들이 파는 한 덩이의 감자는 곧 ‘밥’이며 ‘약’이며 ‘물’이며 ‘옷’이며 그들의 ‘아이’들이다 … 뒷날 내가 원주로 반강 선생을 찾아뵈었을 때 그는 강원대와 원주대에 출강하고 계셨는데, 마침 학생들이 모아 준 25만 원과 헌옷·신발 등을 챙겨 주셨다. 그날 선생은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라가 망해도 독립운동은 절대로 하지 마라. 내가 연해주에 가 보니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짐승처럼 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이냐.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냔 말이다.” ..  (75, 137, 228쪽)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김재영 님은 당신 옆지기와 함께 러시아땅에서 고려인하고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같은 책을 내놓습니다. 고려인들 눈물을 느끼고 웃음을 느낍니다. 고려인들 손바닥을 쓰다듬고 당신 손바닥을 비빕니다. 만화영화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앤 셜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버이를 잃고 여러 집에서 애보개로 떠돌며 세 쌍둥이까지 보살펴 본’ 일을 치렀기 때문에, 살가운 동무 다이애나 동생 미니메이가 후두염에 걸렸을 때에 차분하면서 살뜰히 보살펴 목숨을 건지도록 돕습니다.

 겪는다 해서 다 알지는 않습니다. 겪으나 못 깨닫거나 못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안 겪었다 해서 다 모르지는 않습니다. 안 겪거나 못 겪었다지만 온몸과 온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요. 만화책 《달려라 하니》를 보면 ‘유지애’라고 하는 아주머니 또한 어린 날 ‘새엄마’한테 시달리던 아픔이 있기 때문에 하니가 그토록 저를 미워하는 모습을 가슴으로 아파하면서 하니가 느낄 아픔과 생채기를 달래려고 애씁니다. 어쩌면 유지애라는 아주머니는 스스로 겪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니가 껴안는 아픔과 생채기를 달래려 했겠지요. 그런데 당신 스스로 어린 나이에 하니와 마찬가지로 뼛속 깊숙하게 겪었기 때문에 더 사무치게 떠올리고 더 애틋하게 보듬고 싶어 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김재영 님이 살짝 ‘봉사’하러 러시아로 갔다가 금세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같은 책을 내놓을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러시아에서 힘껏 땀흘리며 어깨동무하는 삶을 잇는다 한다면,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를 이은 둘째 이야기나 셋째 이야기를 살포시 들려줄 수 있겠지요.


.. 어느새 바뀌어 버린 계절, 겨울이었다. 오두막은커녕 낡은 거적때기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사람들, 그곳에 고려인들이 서 있었다 … 이제 러시아어를 사용해서도 안 되며 소련 시절의 어떤 훈장도 소용이 없게 됐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고려인들에겐 또 한 번의 고난을 예견하는 단어 ‘난민’이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  (193, 205쪽)


 우리 집 아이는 허구헌날 넘어져 무릎이 깨집니다. 날마다 몇 번씩 무릎이 다시 깨집니다. 이러다 예쁜 무릎에 생채기 자국이 깊이 남겠구나 싶어 걱정스러운데, 늘 넘어지며 무릎이 깨져 울먹이는 아이는 제 또래이든 동생이든 언니이든 넘어져서 다치거나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살며시 다가가서 호호 하고 입김을 붑니다. 살살 쓰다듬거나 토닥이면서 “이제 안 아파.” 하고 얘기합니다.

 겪는다고 다 알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겪어야 제대로 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은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를 겪는 나날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스스로 겪으며 스스로 발돋움합니다. 스스로 부딪히고 스스로 마주하면서 스스로 거듭납니다. 새봄에 새롭게 피어나는 어여쁜 꽃을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을 맞닥뜨렸을 때에 이 겨울을 견디어 내면서 새로운 봄이 다시금 찾아올 때에 새로운 봄꽃을 새삼스레 보고픈 꿈을 키우면서 어깨를 폅니다.

 오늘날 한국사람은 지나치게 배부르고 지나치게 한갓지며 지나치게 넉넉하다 보니, 내 곁에 이웃이 있으며, 내 곁 이웃이 어떠한 마음이거나 삶이거나 넋인가를 도무지 들여다보지 못할 뿐더러 들여다본다 한들 가슴으로 못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을 느껴 나누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을 못 받아 외로운 동무를 꼬옥 껴안으며 아낄 수 있습니다. (4344.4.18.달.ㅎㄲㅅㄱ)


―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김재영 글·사진,한얼미디어 펴냄,2005.2.19./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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