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빠빠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4
아네트 티종 지음, 이용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예쁜 놀이동무 바바빠빠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 아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바바빠빠》(시공주니어,1994)



 네 살 아이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면 어버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여느 집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까요. 첫째는 어느덧 네 살로 자랐고, 한 달 뒤에 둘째가 태어납니다. 첫째가 걸어간 길을 둘째 또한 걸을는지, 둘째는 첫째하고 좀 다른 길을 걸을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시골자락에서 태어날 둘째는 첫째와 똑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첫째한테 했듯이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뿐 아니라, 첫째한테 제대로 못한 사랑나눔을 더 따사로이 나누어야 하리라 느낍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요모조모 가르칩니다. 말로 가르치기도 하지만, 퍽 어린 아이한테는 ‘말보다는 몸으로 더 자주 더 많이’ 가르칩니다. 제 어버이가 살아가는 나날이 아이한테는 책이고 교과서이며 스승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가면, 아이는 저절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갑니다. 좋다는 어린이책 백만 권이든 천만 권이든 부질없어요. 책 한 권 쥐어 주지 않더라도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어버이는 ‘책에 깃드는 모든 좋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아이랑 같이 살아오는 동안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이것저것 배웁니다. 아이 앞에서 말을 어떻게 하고,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내며, 어버이이기 앞서 오롯한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살아가는가를 되짚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이란 어른이 함께 먹는 밥입니다. 아이한테만 아이 몸을 생각하는 밥을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 또한 나란히 같은 밥상에서 먹는 밥을 아이한테 먹입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는 자가용을 좋아하는 아이를 낳고, 자전거를 달리는 어버이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는 어버이는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아토피는 어버이 되는 사람 몸에 쌓인 나쁜 것들이 유전자에 아로새겨져서 아이한테 이어지는 아토피입니다. 아이는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으나, 모두 어버이가 잘못한 나머지 아이가 괴롭습니다. 어버이 되는 사람 스스로 당신 몸에 나쁜 것들이 쌓이도록 막 살아온 나날을 돌이키지 않으며, 아이한테 화학연고를 발라 주거나 약을 먹인대서 아토피가 사라지거나 가라앉을 수 없습니다. 한동안 ‘어른 눈에 안 보일’ 뿐, 화학약을 써서 살짝 안 보이도록 한 아토피는 아이 몸에 그대로 잠든 채 다시 깨어날 때를 기다립니다.

 예부터 몸이 아픈 사람은 ‘더 맑은 바람과 물과 햇볕과 흙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골로 보냈습니다. 도시에서 아픈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일거리가 많아 돈을 조금 더 쉽게 한결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튼튼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버티며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몸이 여린 사람은 도시에서 버티기 힘듭니다. 아이들 가운데 꽤 튼튼한 녀석들이라면 도시에서도 잘 놀 테지만, 여느 아이들한테 도시는 참 끔찍한 보금자리입니다. 정수기를 쓴들 물이 맑을 수 없고,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들 페트병에 담긴 물이며, 자동차가 끝없이 가득한 데에 맑은 바람이 없습니다. 공기청정기를 쓰는 집은 시멘트로 발라 세운 높직한 건물인데, 이 높직한 시멘트 건물은 고작 서른 해를 못 버티기 때문에 허물어 새로 올려야 합니다. 도시에서 집이란 집이 아닌 돈(부동산)입니다. 집 아닌 돈(부동산)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가 아이다움을 건사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 바바빠빠는 프랑수아네 집 꽃밭에서 태어났습니다 ..  (2쪽)


 그림책 《바바빠빠》를 읽습니다. 나라밖에서는 꽤 일찍부터 나온 그림책이지만, 한국에서는 1994년에 드디어 선을 보입니다. 그나마 1994년에 선을 보인 한국 그림책 《바바빠빠》는 빛느낌이 참 얄딱구리합니다. 《바바빠빠》를 소개하며 출판사에서 쓴 글을 읽어도 ‘분홍 괴물’인 바바빠빠라 하지만, 한국 그림책을 읽으면서 바바빠빠가 참말 ‘분홍이’가 맞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분홍이 바바빠빠라면, 말 그대로 분홍 빛깔을 곱게 느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팔아야 할 텐데요.

 네 살 아이한테 한국판 《바바빠빠》를 차마 보여주지 못합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보여줍니다. 네 살 아이는 두 살 적부터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갖고 놀며 좋아했습니다.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는 1972년 6월 1일에 첫 쇄를 찍고, 우리 집 일본판 책은 2003년 3월에 203쇄를 찍었답니다. 우리 집 한국판 《바바빠빠》는 2007년 12월 5일에 29쇄를 찍었군요. 그나저나, 한국판 《바바빠빠》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81년으로 적히는데, 일본판에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71년으로 적힙니다. 뭔가 알쏭달쏭합니다. 일본은 ‘바바빠빠’ 그림책이 처음 태어난 1971년 이듬해인 1972년부터 일본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히도록 했고, 한국은 자그마치 스물세 해가 지난 1994년에야 비로소 한국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힐 수 있습니다.

 내 어린 날, 에이에프케이엔을 틀 때에 가끔 볼 수 있던 바바빠빠를 떠올립니다. 그무렵 바바빠빠 그림책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 그림책을 사 줄 만큼 넉넉한 집은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날 그림책을 사 줄 만한 집이 드물든 많든 적든 어떻든, 아이들이 즐겁게 볼 그림책을 마련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못한 대목이 적잖이 슬픕니다. 그래도, 이제는 나라밖 좋다 하는 그림책을 퍽 쉽게 한국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 바바빠빠는 동물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물원에서 바바빠빠는 우리에 갇혀 불행하게 지냈지요 ..  (6∼7쪽)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만 보다가 한국판 《바바빠빠》를 보면서 한두 줄 짤막하게 적힌 글을 함께 읽습니다. 그림으로 보아도 알 수 있기는 했는데, 바바빠빠는 꽃밭에서 태어났네요. 어린이 프랑수아가 꽃밭에 물을 줄 때에 물을 맛나게 받아먹으며 몽글몽글 몸이 커지며 태어났어요.

 꽃밭에서 태어난 바바빠빠는 꽃과 같은 목숨입니다. 꽃처럼 예쁘고 꽃잎처럼 푸릅니다. 들꽃처럼 작고 가녀리며, 들꽃처럼 씩씩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바바빠빠는 착합니다. 바바빠빠는 슬기롭습니다. 바바빠빠는 포근합니다. 바바빠빠는 꾀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커다란 집이나 빠른 자가용을 바라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더 맛난 밥이나 더 거룩한 이름값을 꿈꾸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마음을 나눌 좋은 동무를 그리워합니다. 바바빠빠는 사랑스레 어울릴 예쁜 벗을 아낍니다.


.. 사람들은 바바빠빠를 영웅처럼 환영했습니다. 바바빠빠가 많은 사람들을 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바빠빠는 친구 프랑수아에게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  (25∼26쪽)


 새벽 다섯 시 반에 깨어 한 시간쯤 옹알거리던 아이는 다시금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뜨개한 긴치마를 혼자서 단추 꿰어 입고 한들한들 놀다가는,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가는,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뜬 아이 곁에 다가가 볼을 부비며 이따가 더 신나게 놀고 조금 더 코 자자고 소곤소곤 말을 거니, 아버지가 저한테 해 주듯 아이도 제 아버지 머리를 살살 토닥이고 쓰다듬다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잠들어 줍니다.

 잠든 아이는 두 시간쯤 코 하고 꿈누리를 거닐다가는 번쩍 눈을 뜨고는 쉬 한 번 하고 나서 콩콩걸음으로 다가올 테지요. 그러면, 빈 그릇 하나 들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요 앞 비탈논 둘레로 나갑니다. 싱그러이 자라는 쑥을 그릇 가득 뜯어 쑥버무리도 하고, 쑥을 잔뜩 넣은 된장국도 합니다. 식구들은 아침을 맛나게 먹고는 오늘도 새 하루를 새삼스레 맞이하면서 부산스레 복닥이겠지요.


.. 바바빠빠는 어린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29쪽)


 바바빠빠는 어린이와 함께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라 해서 모두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어버이라 하든 갓난쟁이였고 어린이였으며 푸름이였습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든 마냥 신나게 뛰노는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가난하거나 괴로운 집에서 태어나 ‘놀이하는 어린 나날’을 못 보낸 어른이 있기도 할 텐데, 어린이는 누구나 놀이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커야 아름답습니다. 어른 또한 어린이와 함께 놀이하는 사람이어야 아름답고, 놀이를 실컷 즐겼으면,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다시금 신나게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지겹도록 하거나 억지로 하는 돈벌이 일거리가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즐겁고 아이와 함께하면서 기쁜 일거리를 찾아 내 살림살이에 알맞게 돈을 벌거나 밥을 벌면 됩니다. 돈을 더 많이 번대서 엄마 아빠가 서로 더 알콩달콩 놀 수 있지는 않거든요. 돈을 더 많이 벌었기에 아이 놀잇감을 잔뜩 장만해 주며 재미나게 놀도록 해 줄 수 있지 않거든요. 놀이에는 놀이동무가 있어야 하고, 일에는 일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둘이 서로 좋은 놀이동무이자 일동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 둘 사이에 새길을 열어 주는 놀이동무가 되면서 천천히 심부름을 익혀 집일을 거드는 고마운 일동무가 됩니다.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 줄 아는 바바빠빠는 어떠한 심부름이든 즐겁게 거뜬히 해낼 줄 압니다. 놀 때에는 잘 놀고, 일할 때에는 잘 일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다운 한몫을 하는 사랑스러운 목숨을 선물받아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 바바빠빠 (아네트 티종 그림,탈루스 테일러 글,이용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4.6.30./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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